"수준 맞는 집안이랑 결혼을 해야지, 우리 쪽팔려서 어떻게 살라고 그런 여자를 만나니? 아이고... 우리가 불효자를 낳았어, 불효자를."
좁은 집의 식탁보다도 더 좁은 마음의 공간에 질식되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였다.
상대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부모님에게 품었다는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 실제로 그러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버리는 엿같은 현실에, 좌절을 느끼며 고독을 곱씹어야 할까.
"...잘먹었습니다."
"당신도 그만해. 얀붕이가 알아서 할 문제야."
"난 그냥... 걱정되서.."
가난한 집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수준의 소득, 좀처럼 보이지 않는 밝은 미래, 한없이 어두우며 구렁텅이에 쳐박히려는 내 자신.
[응 오빠. 왜 전화했어? 좀있으면 자려고 하는데.]
"그냥... 네 목소리 듣고싶어서."
[아하하핫, 그게 뭐야. 그래도 나두 오빠목소리 듣고싶었는데 좋네~]
한없이 밝은 그녀의 기운을 마주할 때마다, 긍정적인 느낌을 받기보단 초라한 나의 모습이 비루해져 보인다. 이미 어둠은 나를 침식했고, 가끔 나는 내 열등감에 살해당한 시체를 자주 목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도 변하지 않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뭔가 타고내린다는 감각을 느꼈다.
눈물이였다.
내가- 나같은 게- 그녀와 함께 있어도 괜찮은 걸까.
부모님의 말대로, 그분들이 느끼는 쪽팔림이나 자격지심을 제외하고서라도, 내가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에 진정 행복함을 가져다 줄까.
내가 사라지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네 목소리 들으니까, 좋은 꿈 꿀 것 같아."
[헤헤. 나도.]
그녀는 뛰어난 인간이였다.
새내기 때부터 학교에 소문난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 두루두루 모두와 친한 사교적인 성격에 더불어 항상 높은 성적까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재력까지.
그녀의 유일한 오점은, 나일 뿐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흙수저에, 아싸에, 거의 매일같이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쓰고, 그나마 공부는 좀 하는지 장학금은 타간다만, 그딴 음침해보이는 새끼랑 얀순이가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
"...잘자."
[오빠도. 내일봐! 내꿈꿔!]
"그래."
뚝.
뚝.
피가, 노트를 적시고 있었다. 또,
툭.
툭.
눈물이, 노트를 적시고 있었다.
------------
"...우리 헤어지자."
"...어?"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자괴감에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 차마 숨길 수 없다 생각하는지 얼굴을 가린 손까지.
그런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오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왜,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오빠?"
"아냐. 너는... 너는 아무 잘못 없어. 그냥, 그냥 내가 혼자 생각한거야."
"그럼 왜-"
"...하하, 괜찮아, 얀순아. 너라면 나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거야. 정말로. 진심으로. 진짜니까, 너는..."
내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것을 느꼈는지, 바로 감정을 숨기며 웃는 표정을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위태로운 위치에 있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아.
"오빠, 이거 뭐, 몰래카메라, 그런거지? 근처에 애들 숨어있고. 와! 너가 왜 거기서 나와! 하면서 튀어나오고."
"아냐,아냐, 그냥, 그, ...그냥, 너가- 질렸어. 하하, 어. 그래. 맨날 너한테 얻어먹는 것도 쪽팔리고, 애들이 수근거리는거 듣는것도 지겹고, 너같은 금수저랑 사귀는것도 좀 좆같았어. 사람이 수준에 맞게 사귀어야지, 안그래? 그러니까-"
"...아, 그랬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한 편에 속했다.
그 자신의 어려운 가정형편 이야기에 슬픔의 파도에 휩쓸려 홀로 눈물흘리다가도 관계없는 이와 이야기를 해야 할 때에는 바로 눈물을 끊고는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슬픔에 맞장구라도 쳐주기 위해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소리-"
"난 그게 왜 오빠와 내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인지 모르겠어."
"너- 아니, 됐어. 내가 갈게, 그냥."
"아니. 아직 내 얘기 안끝났어."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만들어낸 표정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떨리고, 겨우 눈물을 참으려 하고선, 고통과 미안함으로 점칠된 얼굴.
어찌, 그것을 놓을 수 있을까.
"오빠가 돈 없는거? 괜찮아. 내가 돈 많아. 오빠 집안? 내가 다 책임질 수 있어. 나? 나는 오빠 너무 사랑해. 내가 오빠 다 책임지고, 마음만 먹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집 안방에다 오빠를 묶어놓고 감금해두고 싶어. 오빠는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여자애들 중 오빠 좋아하는 애들 꽤 많거든. 근데, 안해. 난 오빠랑 사랑을 하고싶은거지, 내 일방적으로 오빠를 가지고 싶은게 아니야. 근데-"
나를 뿌리치려 시도하는 약한 저항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손목을 넘어, 옷깃을 잡아, 내쪽으로 당겨, 그의 쇄골을 만지면서, 목덜미를 붙잡아, 귀에 내 입술을 갔다대곤,
"-그런 얼굴을 하고있는 당신을, 나는 놓아 줄 생각 없어. 내 행복을 고려?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내 행복을 고려한다면, 당장 짐 다 싸들고 내 자취방으로 들어와서 동거하겠다 하는 쪽이 맞지 않겠어?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를 찾아내서, 나보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면, 헤어질 수 있다."
그의 새하얀 목덜미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체향이였다. 그가 가진.
"나도 할 수 있어. 물론, 그런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꺼야. 그렇지만 당신이 진정 행복하다면야, 난 그럴 수 있어."
그의 옷깃을 풀어헤치고, 어깨를 강하게 물었다. 피맛이 배여나왔다. 맛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내 방이였다.
"그런데... 왜 울고 있어, 오빠."
그는 울고있었다.
고통으로 인한 것일까.
...아니였다. 내가 그의 몸에 수많은 흔적을 남길 때에도, 그저 움찔댔을 뿐인 사람이니까.
"내가... 내가 너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니까... 너는 날 좋아할 이유가... 이유가 없잖아..."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해?"
흙수저. 사교적이진 못하지만 굳이 남을 쳐내거나 욕하며 질투하는 타입도 아니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좌절을 느끼며 주저앉는 성격은 아니고, 외모도 괜찮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알바를 병행하면서도 높은 학업성취도를 유지하기까지.
그런 이가 인기가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이의 개입이 있었겠지. 그게 누굴지,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오빠가 좋아. 사랑해. 기호식품이라면 선호해. 마약이라면 의존해. 종교라면 의지해. 그리고 그것들에,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아. 맛있는거고, 중독되는거고, 믿는거고, 그저 사랑하는거야. 그러니까... 날 더 자극하지 말아줘. 지금도 충분히, 오빠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 눈을 파내버려서 나에게 의존하게 하고싶어. 뇌를 망가트려서 내 생각만 하게 만들고싶어. 광신자가 된다면 오빠를 싫어하는 이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워 버릴거야. 다 싫다면, 오빠를 묶어놓고 다른 애들을 조금 괴롭히고 싶을지도 몰라."
겁에 질린 눈동자일까.
아니면, 나에게 질린 것일까.
그의 체향을 맡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얼굴은, 눈물, 미안함, 고통, 죄책감, 사랑, 자괴감, 고마움, 그리고... 공포.
"다시는, 헤어지자, 같은 말, 입에 담지 마."
만약애 그런다면
나는 참을 수 있을까.
"오빠는 내꺼야. 오빠는 내 친구고, 연인이고, 가족이고, 소유물이야."
눈물이 흐르는 모습이 고혹적이라, 참을 수 없어서, 핥아버렸다.
일반적으로 눈물은 짠맛이라고 하던데, 그의 눈물은 끊을 수 없는 단맛이였다.
"내가 얀붕이라는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했고, 얀붕이라는 인간이 얀순이보다 좋으며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그때까지 계속. 그리고, 그런 상대는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응.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 강의 들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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