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람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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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생활이여서 백합물이라고 하실 수 있는데

설정이 타케야 유키, 에비스자와 쿠루미, 와카사 유리와

이름 불명의 소년이 함께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나오키 미키는 언급도 안됨







그날 세상이 끝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던, 지루할 정도의 일상이

지금은 너무나도 그리웠다


졸리면서도 나른한 몸을 일으키고, 부모님깨 인사드리고

준비하고, 학교를 가서, 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그런 즐거우면서도 지루한 일상...



언제부터 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좀비들이 덮치고, 세계가 끝나버린 것 말이다


오직 기억나는 것은 그 일상이 부서진 첫날이였다


말소리로 넘치던 흥겨운 교실에 갑지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 함께 상황을 보러 갔더니, 거기서 보인 것은

반듯한 제복을 입고있는 너덜너덜한 피부...

아니, 너덜너덜하기 보단 무너지고 있었다... 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튼 거기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였다


사람 현상을 한 무언가...

그저 게임이나 영화의 세계에 있다고 믿었던


좀비


거기엔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본 반응은 사람마다 달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다던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친다던가

그들과 맞서려고 사람들 앞에 선다던가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 앞의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몰라서

그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세상이 달라졌다

좀비는 확실히 사람을 잡아먹으며 동료를 늘려갔다

간신히 도망친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도망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학원 생활부


이곳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여기 있으니까, 제발 누가 좀 도와줘...





유리가 다 부숴진 창 너머로 바깥의 경치를 보았다

무수한 사람의 그림자가 느린 페이스로 걷고 있었다

슬슬 밖에 나가지 않으면, 식량이 떨어질 것이다

나는 가벼운 두통을 동반한 채, 한숨을 쉬었다


또 지옥 순례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방의 문이 열렸다





"안녕"


시선을 옮기자

한 손을 힘차게 흔들며, 싱글벙글 웃는 그녀가 있었다


"안녕 유키"


나와는 달리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유키를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웃는 얼굴이 되어버린다


뭐랄까, 모르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필요한 사람이였다


유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다


유키가 없었다면 지금쯤...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좀비들을 보았다


...일단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군




"오늘도 모두들 좋은 아침!"


유키는 아무도 없는 테이블을 향해 인사를 했다


"오늘 수학 시험 이였지? 

나, 공부하고 왔어~!"


아무도 없는 자리를 향해

시선을 옮기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유키


그걸 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키, 아침밥 먹자"


"하아아, 오늘도 건빵이야?"


"음... 그럼 조만간 외출해서 장 좀 볼까?"


"소풍이라, 좋아"


유키는 기쁜 마음으로 대답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모두 같이 가자'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로서는 혼잣말이지만, 유키로서는 달랐다

아마도... 어엿한 회화였다



여기는 학원 생활부

딱 두 명밖에 하지 않는 동아리 활동


하지만 처음엔 달랐다

나를 포함해 4명, 그리고 고문 선생님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날, 소풍이라고 불렀던 지옥순례...

식량확보를 하러 갔을 때 일이였다

솔직히 여유롭게 좀비를 따돌릴 줄 알았다


나와 쿠루미는 좀비들을 상대했다

약간의 숫자라면 문제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다


차를 타고 쇼핑몰까지 가서

안에 있는 좀비들을 상대하면서 식량을 모으고

중간까지는 어찌어찌 잘 들어갔는데...

너무 많은 수를 상대했던 탓에 집중력이 떨어졌던 탓일까


처음엔 유리 씨가 물렸다

나는 유리 씨가 물려서 동요한 나머지, 

하마터면 같이 물릴 뻔 했다


모두 도망가려고 했지만

유리 씨... 아니, 유리 씨였던 좀비가 쿠루미의 다리를 잡았다

쿠루미는 내게 맡기며, 유리 씨의 처리를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까지 잘 알아왔던 그녀를 죽이고 싶진 않았다

물론 사람이 아닌 좀비가 되버린 그녀였지만

그래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쿠루미에게 삽을 양보했지만

그것은 대실수였다

쿠루미는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이미 다리를 물려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쿠루미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응시했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는 듯 싶었지만


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서둘러 유키와 함께 도망치고 말았다




...쿠루미, 유리 씨


그 후의 일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유키에게 물어보니, 계속 교실에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미안해... 라는 말을 반복하며 말이다


그 날부터 우리는 둘 뿐이게 되었다


하지만 유키는 다른 것 같았다

...괜찮아, 그녀는 상관없어

유키는 이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세상을 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들을 지키지 못했기에

유키만이라도 끝까지 지켜 보이겠어


......이게 조금이라도 변명이 되면 좋겠지만....




"아, 달링! 나 말고 어디를 보는 거야!"


달링


그것은 나를 부르는 별칭이였다


딱히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애초에 반도 달랐고 

이 지옥 안에서 고백 같은 것을 받을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조우 할때까지 처음 보는 그녀였다


하지만 유키는 나와 사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 했다


유키 가라사대

"달링이 나한테 고백했잖아, 이상해 달링"... 이라는 것이였다


그 날

우리 둘 만 있었던 이 방에서

갑자기 이 말을 꺼낼 때는 솔직히 놀랐지만

이것은 분명 유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것 같았던 것 같았다


......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달링, 바람 피워서는 안되는 거야"


"알았어, 바람 피우지 않을게"


"정말?"


"...내게는 유키밖에 없으니까"


정말로 내게는 유키 밖에 없었다

유키마저 없어진다면 나는...


"에헤헤, 그럼 언제나처럼 자~"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지킬거야

그것이 마지막 남은 변명이니까


그러면서 고개를 조금 뗐다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고,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다





*





유키와 함께 수업을 받기 위해, 조용한 교실에서 낮을 보냈다


이 소리 하나 없는 교실에서 자는게, 나의 일상이였다


밤에는 좀비들을 항상 경계하면서

내 곁에서 자는 유키의 얼굴을 보면서 공포를 이겨나갔다


난 밤이 매우 두려웠다

하지만 좀비들은 밤에만 활성화하는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대낮에 책상에 고개를 받치고 잠을 청하면서

미안해... 미안해...

이렇게 되뇌었다


꿈속에서는 늘 쇼핑몰이 튀어나왔다

쿠루미가, 유리 씨가 좀비가 되는...

하지만 마지막만은 항상 달랐다


유키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니, 유키가 사라졌다

방에서 나가려고 해도, 문이 하나도 없었다

가득 모여있던 좀비들은 어느새 사라져있었고

대신에 눈에 익숙한 교복을 입은 좀비 두 명이 서 있었다


나는 피비린내를 느끼며,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사이.... 좀비들이 내게 다가와....



".......다....."


누군가 쓰러져있는 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ㄹㅣ......"


좀비의 기세에 넘어지고 만걸까?

내 앞에는 익숙한 교복을 입은 물체가 있었다

설마... 좀비다... 좀비다... 좀비다... 좀비다..



"달링!!"


갑작스러운 큰 소리 덕에 잠을 깼다

너무 큰 목소리잖아, 좀비가 몰려오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교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웃으면서 즐겁게 지냈던 교실은

지금은 살벌하고도 텅 빈 교실로 탈바꿈했다

다시는 지루했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키를 껴안았다

유키의 어깨가 크게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더욱 더 힘차게 껴안았다


"아파, 달링"


"...미안"


"에헤헤, 조금만 더 이대로 안아준다면 용서해줄게"


장난스럽게 웃는 유키


유키, 너만은 내가 지켜내겠어

불썽 사나운 변명 같은 것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달링"


"왜 그래?"


"나 요즘 학교가 재밌어졌어"


"...그래?"


"달링이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


"...그렇구나"


"달링이 내 곁에 있으면, 그것만으로 난 행복해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어

언제까지나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계속 우리가 곁에 있을 수 있는 세계가 왔으면 좋겠어"


"........."



유키는 무슨 의미로 말하는 것일까

진짜 현실 세상을 보면서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만의 세계에서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유키가 행복할 수 있다면야...


"행복해, 달링이 옆에 있으니까"


그렇게 유키는 몇번이나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유키의 행복한 얼굴을 지켜야 한다

나는 더욱 더 강하게 다짐했다






방과 후에 우리는 동아리실에서 지낸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구조 신호를 보내는 일을 했다


이번에는 풍선에 편지를 담아 날리는 작업


벌써 몇번이나 시도하는 작업이였다


적당한 종이를 사용해

주소와 지금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의 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였다


유키에게는 풍선 부는 일을 시켰다


"재밌어"


"그래?"


"달링도 같이 풍선 불자"


"나는 이쪽 담당이잖아"


"...그렇구나"



동아리실엔 우리 둘 뿐이였다

유키의 세계에서도 우리 둘만 인것 같았다


"아, 달링"


"응? 무슨 일 있어?"


"이거 말이야, 의미가 있는 거야?"


"...재미 없어?"


"....아니야, 이상한 말을 해서 미안해"



날카로운 질문


유키는 요즘 가끔씩 이런 말을 했다

말을 돌리면, 더 이상의 질문이 오지 않는 것이

불행 중의 다행이였지만


어쩌면 유키도 조금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세계에...


"하지만 조금 넌더리가 나는 걸"


"조금 쉴래?"


"쉴래!"



유키는 부풀린 풍선의 끈을 한 곳에 묶고 내 옆에 앉았다

간식용으로 건빵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것을 유키 앞에 가져다 두었다


"건빵이야?"


"싫어?"


"아냐, 달링이랑 함께라면 다 맛있어"


그녀는 내 팔을 껴안으면서 건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것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입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아~"


입을 벌리라는 듯, 내밀어진 건빵

정말 커플이였으면 행복할텐데

...라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되는 나였다


나는 입을 벌리며 건빵을 먹었다

겉으로라도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에헤헤, 나도 아~"


"그래"



그녀의 입에 건빵을 부드럽게 넣었다

그것을 기쁜 듯이 먹는 유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나까지 기뻐져 버렸다


만약...만약 이대로......

이대로 끝까지 둘만 있게 된다면


문득 상상한 것이였지만, 곧바로 공포를 느끼는 나였다


하지만...

옆에서 행복한 듯이 미소짓는 유키를 보면

왠지 모르게 한번 더 상상하게 되었다

끝까지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나랑 유키 둘이서...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안돼


이상한 생각 하지마


우리들은 살아남을거야

구조되거나 어떻게든 탈출해서 사는거야



"달링"


유키는 내 팔을 감싸안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달링, 뭔가 무서운 얼굴 하고 있어"


"...미안"


"괜찮아~"


내 한쪽 팔을 껴안으면서 말하는 유키는 어딘가 행복해 보였다


"달링, 나 좋아해?"


"응? 갑자기 말이야?"


"대답해줘"


나는 진지한 눈으로 묻는 유키에게 동요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전에 없이 너무나도 당당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진지하게 응답했다


"좋아해, 나에게는 유키밖에 없으니까"


이제는 유키밖에 없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됐어"


그녀는 평소의 다정한 미소로 돌아왔다

방금 그것은 뭐였지?


"달링, 나 요즘 행복해"


유키는 자신의 세계를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과 공부하고 끝나면, 여기로 놀러 오는거야

여기에는 달링이 있잖아?

달링이 있으니까 나는 행복할 수 있어

달링이 있으면 난 행복해

달링만 있어 준다면 그걸로 됐어

다들 너무 좋아하지만, 달링이 최고로 좋아

사랑해, 달링"



행복한 듯이 미소 짓는 유키

그것을 보니 나까지 매우 기뻐졌다


이 세상에는 둘 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그런 세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날부터 이 지구상엔 우리 둘


"달링, 우리 계속 끝까지 함께 하는 거지?"


끝까지 유키와 함께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끝까지 하는 거지?"


어느 한 쪽이 죽는다... 그것은 모두가 죽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내가 죽으면 유키는 살아갈 수 없고

유키가 죽는다면, 나 또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게 안겨오는 그녀를 보면서, 하늘에게 빌었다

만약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발 우리를 도와줘요

우리는 여기에 있다

도움을 줄 수 없다면, 그걸로 됐다


우리는 여기에서 함께할 거니까


이 세상에서...





그 후

우리는 살았다

구조되었다


하지만 유키의 모습이 이상했다

구조하러 온 구조대의 모습을 보면서

내 옆에서 이상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나는 달링의 둘만의 세계가 좋은데"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거야


그래, 그럴리가 없지

왜냐면, 우리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럴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