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장파을 벌여놓고 고작 바라는것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라니 흑발의 기사는 어이가 없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 미친 여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위험해진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알겠소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소녀는 클로에 얀이라고 합니다 기사님."


평소 잘 웃지않는 흑발의 기사였지만 이번엔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뻔 했다. 클로에의 이름 뜻은 그녀의 고향에선

화려한 꽃이라는 의미지만 흑발의 기사의 고향에선 그냥 미친년이라는 뜻이었다. 이름과 그 소유주의 상성이

이렇게나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시선을 돌려 웃음을 참은 흑발의 기사가 마지못해 그녀의 바람대로 해주었다.


"클로에 그대가 원한다면 그리 불러드리겠소."


클로에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기뻐 쥐고 있던 고급 부채를 우그러트렸다.


"아아...... 매일 매일 꿈속에서 기다렸어요 기사님이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순간을 한시도 빠짐없이 상상했어요.

그 이후도 생각했지만 그건 아직 괜찮답니다 천천히 조금씩 행복을 맛볼테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이름을 따라 가는게 맞는 것 같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지만 아무리 봐도 미쳐있었다.

고작 이름을 불러준 것 만으로 저렇게 발광하는 꼴을 보자니 흑발의 기사는 자신이 이런 여자한테 질 정도인지 약간의 회한을 품었다.


"그 아이에게만 손을 대지 말아주시오."


"하아 기사님 정말 이렇게 소녀와 단둘이 있는 오붓한 시간에는 타인의 이야기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 없답니다.

그렇게 말씀 안하셔도 기사님이 날뛰시지만 않는다면 위협할 생각은 조금도 품은 적이 없답니다. 사실 그런 종자 따위

죽이던 말던 상관없지만 기사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특별히 자비를 베푼 것인데 칭찬은 커녕 소녀를 못믿어주시다니

소녀는 섭섭하답니다 매우 섭섭해서 눈물마저 차오른답니다."


"하아.... 내가 미안하오 클로에 일단 이 구속부터 풀어주시겠소?"


클로에는 쥐고있던 우그러진 부채를 휘둘러 흑발의 기사의 손을 구속한 사슬을 산산조각 내었다.

단 한번의 손놀림이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고 흑발의 기사는 클로에의 실력을 제대로 눈에 익혔다.


"곤란한 짓을 하시면 저도 도리가 없답니다. 기사님께서 도망가시면 소녀 무슨짓을 할지 소녀도 모른답니다."


"그대의 저택이라면 분명 수도일텐데 적국 한복판에서 도주행위를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소."


"쇠사슬로 꽁꽁 묶이신 상태로 이틀을 보내셨는데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글쎄 어릴 적엔 더한 것도 당해봐서 쇠사슬에 몸을 묶이는 정도는 요람에 눕는 것 같은 기분이오."


클로에는 자신이 흑발의 기사가 어릴적 당한 학대와 똑같은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미약한 충격을 받았다.

그냥 침대에 밧줄로 묶어놓는 정도로 충분했을 것을 말이다. 클로에는 흑발의 기사를 호화스런 손님 방으로 안내했고

이윽고 방안으로 식사를 들고왔다.


"소녀가 직접 만든 요리랍니다, 부끄럽지만 소녀 당신을 향한 사랑을 충족시킬만한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배워왔답니다."'


금방 만든것 치고는 메뉴가 화려한 편이다. 생선 살토막을 버터와 향신료로 구워 접시에 담고 갓 구운듯한 빵에 

각종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스튜가 있었다. 하지만 흑발의 기사는 섣불리 요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장하시지 않으신가요? 소녀가 독을 탔을까 걱정하는 것이시라면 음..."


클로에는 스튜를 스푼으로 떠 제 입으로 가져갔고 뻥도 한조각을 뜯어 오물거리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후 삼켰다.

그리고 생선도 살 한점을 나이프로 썰고 흑발의 기사의 눈앞에서 제대로 씹는것을 보여준 후 목구멍 안으로 넘겼다.


"맛도 좋고 독도 없는 소녀의 요리랍니다 드셔주세요. 아아 혹시 제 목 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것을 원하시나요?"


"그대가 먹은 요리가 이 요리 아니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려."


"아이 참~ 기사님도 이런 방면에선 둔하시다니까요~ 분명히 기사님 눈앞에 있는 요리를 먹었지만

기사님꼐서 직접 이 요리를 입으로 가져가 씹어 드시는 요리하고 제가 목구멍 안으로 삼켜진 것은 전혀 다르답니다~."


흑발의 기사는 그제야 클로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자신이 씹던 요리를 입에서 입으로 넘겨주고 자신의 침과 섞인

스튜를 입에서 입으로 넘겨주겠다는 소리였다. 확실히 자신이 심하게 얻어맞고 겨울철의 연못에 빠진걸 누님이 구해주시고

하도 얻어맞아 이가 아파 무언갈 제대로 씹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대신 씹어주신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건 일곱 살 무렵의 이야기고 

지금 처한 상황과는 180도 다른 전제의 이야기다.


"하아... 딱히 필요없소 아니 그대가 원하는대로 하시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올바른 답이겠지."


눈앞의 미친 여자는 흑발의 기사에게 위험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고 그걸 섣불리 자극하면 누님이 돌아가시며

자신에게 부탁한 그 아이마저 위험해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아이의 성별조차 속이고 자신의 종자로 삼아

옆에서 지켜 온 것인데 고작 식사를 누가 씹느냐는 하찮은 문제 따위로 그 아이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아... 제가 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소녀와 같은 것을 삼켜주시는 것이랍니다.

소녀의 침이 섞인 스튜가 기사님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소녀의 치아로 형태를 바꾸고 소녀의 침으로

적셔진 빵이 기사님의 입안에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아무래도 흑발의 기사가 한 선택은 정답이면서 정답이 아니었나 보다. 클로에의 광기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조카에게 이 광기가 옮겨 붙었을지도 모른다. 클로에는 서둘러 스류를

입에 넣고 흑발의 기사에게 입맞춤을 하며 스튜를 흘려넣었다. 클로에의 침이 섞여서 그런지 흑발의 기사는 설탕을 넣은 적도

없는 스튜에서 희미한 단맛마저 느꼈다. 그리고 클로에는 빵을 오물거린 후 기사에게 다시 입맞춤하며 씹던 것을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수치심 마저 느낄 행위지만 양쪽 다 그런건 없었다. 클로에는 사랑에 미쳐 수치심 따위 느낄 겨를이 없었고 흑발의 기사는 애초에

이런 일로 수치심을 느낄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자신에 대한 애착 자체가 없었기에 이런 일로 크게 동요할 인물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명의 입이 함께 움직이는 식사가 계속되었다.




걍 한편 더 써봄. 조카 사실 남자인줄 알았는데 여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