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gx방영 중일때 일인데

내 친구가 글 쓰는거 좋아했음.


그렇다고 막 소설가가 되고 싶다 그런건 아니고,

왜 예전엔 전혀 관련없는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다가 막 "듀얼 아카데미아 여정기 1편" 이런 식으로 소설 연재 애들 종종 있었잖아?

얘는 그때 유희왕 소설 썼음. 유희왕이 가장 인기있기도 했고.


근데 뭐 어린 애들이 써봐야 뭐 듀얼 고증이라던가 개연성 같은거 얼마나 지키겠어. D히어로 오리카 나오고 자작 테마 나오고 애니에서 나올 법한 상황 걍 글로 옮긴 수준이었지.

대사도 막 "(뒤로 날아가며) 으악!!!" 이런 식이고.


그래도 그냥 걔는 뭐 쓰는 것 자체가 좋았나봄.

댓글 한 두개 달리면 만족해하고 설정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나도 글 읽는 거 좋아해서 말도 잘 통했고.


그 당시 나는 친구라서 이기도 했지만 얘 소설 은근히 잘 읽었음. 왜냐면 일단 문장력은 둘째치고 줄거리가 의외로 흥미로웠던 거야.


내용은 대충 이럼.

주인공은 듀얼은 좋아하지만 같이 할 친구가 없는 왕따라서 괴로운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듀얼만능주의가 되고 내가 다니는 학교는 듀얼 아카데미아로 전향함. 이유없이 세계가 바뀜. 너도 나도 듀얼하고 막 트레이드 걸고..

주인공은 잔뜩 기대했음. 자기가 제일 자신 있어하는 듀얼이 세상의 주가 되었으니까. 꽃길뿐이겠지 하면서.


근데 문제는 얘가 듀얼도 어중간했던 거임.

실력도 그저 그래서 듀얼 성적은 중하위권이고

전교 1등이 막 룰미스 지적하고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인정사정없이 주인공 쳐바른다던지,

양아치들이 카드를 뺏는 일이 빈번한..


오히려 다른 의미로 인외마경이 되버린 거야.


그래도 이제 주인공이 자기가 좋아하는 듀얼만큼은 질 수 없다며 노력하고 공부하고 예전보다 열의를 갖는 모습을 보이는데


막 부잣집 애가 레어 떡칠 덱으로 양학한다든지,

오히려 공부 잘하는 애가 덱 분석력이 더 좋아서 주인공보다 능숙하게 주인공 덱을 쓴다던지.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음.

설상가상으로 주인공이 운도 안 좋음.



그때 내레이션으로


"(주인공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나오는데 문장력이 안받쳐줘서 그렇지 그 당시의 나는 주인공이 존나 불쌍했음. 지가 제일 자신있고 잘한다고 여긴 게임이고, 아예 판을 깔아주다시피 했음에도 오히려 주인공의 처지만 확실해진거지. 너는 존나 별거 없다는...


그치만 주인공은 이제 듀얼 밖에 없고 듀얼이 정말 좋기 때문에 어떻게든 아락바락 적응하려고 노력함. 우울한 에피소드만 있진 않았음. 뭐 듀얼 2등급 따는 날도 있고... 부정행위지만 양아치랑 안티룰 걸어서 이긴 적도 있고...



아무튼 생각보다 현실적인 내용이라 나는 엔딩이 뭘까 궁금했는데 어린 애들이 늘 그렇듯, 흥미 잃기 시작하더니 점점 연재 기간이 길어지다가 결국 흐지부지하고 말았음.



그때 친구 말로는 그냥 귀찮아서 아시발꿈 하고 말까 생각했대 ㅋㅋㅋㅋㅋ갠적으론 좀 아쉬웠던 기억이 있음. 그렇다고 내가 이어서 할 마음은 없었고...


시간이 지나

그 친구는 (인스타보니) 직업군인이 된 것 같고

오히려 내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지만 전혀 글을 쓰지 않고 병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 진짜 노파심으로 말하는데 내 얘기를 돌려 쓴 게 아니라 진짜로 친구 에피소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