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글 제대로 써본지가 오래돼서 적당히 좋아하는 소설 틀 갖다 쓰긴 했음

읽다가 성각이 뭔가 싶을텐데 그거 별을 새기는 마술사임

순우리말로 풀어 읽으니까 멋이 ㅈ도 없어서 같은 이유로

이 둘에게도 오리지널 네임 붙여줌






마술사.

마력을 각성해, 마술을 다루는 자.

하지만 동시에 배척받는 자.


마술사들은 마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토지에는 비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치료를.
추위에 떨어가는 이들을 위해 불을.

그야말로 기적이라 칭할 만한 능력.

사람들은 마술사를 신의 사자라고 여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려움과 경멸의 시선으로 바뀌어갔다.

이는 아마 마술사와 거의 동시에 나타난 괴물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통칭 DDD(Different Dimension Demon).

다른 차원의 악마들.


슬라임부터 시작하여 그리폰, 케르베로스, 라미아 등등 하급 악마부터, 왕의 칭호를 가진 상급 악마까지.

심연왕 빌가메스.
신탁왕 다르크.
주혈왕 사이프리트.
사위왕 헬 아마게돈.

그리고 이차원의 왕들 전체를 지휘하는, '사치왕 데스 마키나'.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이요, 수십의 국가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DDD와 동시에 등장한 마술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놈들. 저놈들 때문이야!'

'빌어먹을 마술사 놈들, 감히 우리 마을에 악마들을 불러모으는 거냐!'

이는 마술사들이 열심히 DDD를 퇴치했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권력자들 또한 그들의 힘이 DDD를 상대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아 마술사들을 전장에 투입할 뿐,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제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인류 최강의 무력 집단인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으니.

자신이 마술사임을 드러내는 팔찌는 우리의 행동을 구속하고 통제했다.

어느 계열의 마술을 쓰는지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만일 조금이라도 명령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경우 곧바로 구속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 행위에 쉽사리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비윤리적이라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류를 구하기 위함.

이미 타락한 마술사들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들은 DDD의 힘을 받아들여, 불멸과도 같은 힘을 보였으며, 강한 마술사였을수록 왕에 필적하는 힘을 보였다.

도시 하나가 괴멸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시간.

그런 상대가 마술사에게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통제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헬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향하는 이유 또한, 타락한 마술사다.

-지직··· 지지직······. 오늘 9시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미국, 러시아 그리고 호주의 정상 회담에서 습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범인은 현재 싱가포르 내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방대한 DDD의 힘이 감지된 거거걱···.

"쳇, 폭우 덕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구만. 빨리 바꾸던가 해야지 원."

"그러게 왜 그딴 고물 라디오를 쓰는 거냐."

손에 들린 라디오를 탁탁 치며 투덜거리는 천룡. 혜안은 그를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몇번을 더 두드리자 라디오는 다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직, 치지직. ···으로 보아 왕급 존재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 정부는 현재 토벌대를 꾸려 싱가포르에···.

왕급 존재는 본래 일반적인 군사무기론 상대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당장 빌가메스가 베이징 한복판에 떡하니 등장했을 때만 보아도 그 증명은 충분하리라.

총기, 수류탄, 미사일 그 어떤 것을 쏟아부어도 멀쩡했던 것이 왕이다.

핵을 수 차례 때려넣는다는 무식한 작전 덕에 겨우 처치할 수 있었으니, 이번에 우리가 처치하지 못한다면 싱가포르는 불모지가 되겠지.

그 어느 때보다도 급하게 토벌대를 꾸린 건 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작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범인은 이번 뿐 아니라 이미 수많은 권력자들을 노렸다.

지금까지 마술사와 군대들에게 맡겨두고 뒤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던 권력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받았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조용히 들었다.

싱가포르 지역이 괴멸 상태라던가. 누가 얼마나 다치고 죽었는가. 또, 각국의 수뇌부들이 잘 도망쳤는가.

모든 걸 맡겨두고 자신들의 권력이나 바라보던 이들은, 결국엔 그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단 한 명의 타락한 마술사의 손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쓰러져가는 건물과 수많은 시체들.

그리고 그 한중간에 우리를 기다리듯 가만히 서 있는, 흑색 케이프를 두른 사내.

나는 그를 내려다 보곤, 고개를 돌려 말했다.

"···가자."

다른 마술사들은 조용히 내 말에 끄덕였다.


탁.

헬기에서의 낙하와 함께 혜안은 모두에게 비행술을 걸었다.

덕분에 천천히 착지한 우리는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다루는 최상위 마술의 대가.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 아는 마술사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사내를 주시했다.

나는 뒤쪽을 한 번 쓱 훑고는 눈앞의 남자에게 발을 옮겼다.

천체의 마술사와 시공의 마술사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랜만이군, 크로노. 그간 잘 지냈는가?"

"잘 지내기야 했지, 아스트로. 이 힘, 듣던 대로 활력이 넘쳐 올라서 말이네."

그리 말하는 크로노의 몸에선 흑색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왕들에게서 보았던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 모습에 마술사들은 더욱 경계를 올렸다.

"확실히 불길하기 짝이 없군. 자네답지 않아."

"그거야 뭐, 이 힘을 받아들이면 이해하게 될 걸세!"

크로노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주위로 황금빛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로마자 숫자로 휘감긴 그 포탈에서 하나씩 그의 시곗바늘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에 대응해 마술사들도 장벽을 펼쳤다.

"상극, 상생은 가장 바깥의 1차 장벽을! 그 다음으로는 아스란, 레논이 맡는다!"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빛의 장벽이 크로노의 무기들을 막아내며 우리들을 둘러쌓았다.

내 지휘에 따라 2차 장벽까지 완성되었으나, 포탈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병기들을 버티기엔 부족했다.

"크윽! 아스트로 님! 1차 장벽이 곧 파괴됩니다!"

고작 10초도 채 버티지 못하였는가.

하지만 이도 어느 정돈 예상 범주에 속한다.

"성각은 3차 장벽을 준비! 그리고 오홍은 장벽을 펼치고 있는 이들과 천룡, 자독에게 버프를! 백익은 후방에서 지친 마술사의 치료를 하도록!"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새로운 장벽이 하나 더 생겨났고, 오홍의 마술사의 지팡에서 나온 무지개빛이 몸을 감쌌다.

덕분에 한 층 더 두꺼워진 장벽은 가까스로 크로노의 공세를 막아냈다.

"꽤나 두터운 벽이로구나!"

"이래 보여도 더럽게 힘듭니다요, 영감님!"

유쾌하게 크로노의 말을 받아치는 성각.

둘이 펼치는 것과 달리 혼자 펼치는 장벽임에도 그는 훌륭히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마술사들의 방어에 국한될 뿐.

장벽으로 막아내지 못한 건물들은 무기 하나하나에 무력하게 무너져갔다.

명검과도 비견되는 시곗바늘을, 활처럼 쏘아내는 능력.

거기에 시간 가속 마술까지 걸려있으니 한 번 맞으면 순식간에 몇십, 몇백의 시간이 흘러버린다.

"그렇게 겁쟁이처럼 벽 뒤에 숨어서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

방어만 해도 겨우 막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크로노는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는 곧 시곗바늘 하나를 빼 들어 후방으로 몸을 돌렸다.

카앙!

두 검이 부딪히면서 깨끗한 금속음이 퍼져나갔다.

크로노의 앞엔, 자신의 지팡이를 검으로 만든 천룡이 그의 시곗바늘을 맞대고 서있었다.

"쳇, 역시 눈치 하난 기가 막히는구만."

"늙은이 감 무시하지 말거라. 천룡. 무투 중심의 전투법을 익힌 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쯤은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단다."

"그러슈? 그럼 이건 어때!"

천룡이 손목을 비틀더니, 그의 검이 마치 뱀처럼 휘감기며 크로노의 검을 파고 들어갔다.

카가각.

바람의 마술로 검을 감싼 만큼 시곗바늘에 걸린 마술도 통하지 않았고, 보이는 것 이상의 공격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검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바람의 칼날이 크로노를 향해 날아왔다.

크로노는 천룡의 검을 가까스로 막아냈으나, 상처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원거리 타입인 그가 근거리 전투를 당해내기엔 기술이 부족했다.

탓!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던 그때, 슬며시 천룡의 입가가 말려올라갔다.

그가 몸을 뒤로 빼자마자,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자독이 돌진해 왔다.

"······!"

그의 몸엔 맹독이 흐르고 있어, 그를 베어내면 설령 시간을 가속시킨다 할지언정 완전히 피해내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다른 마술사들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대규모의 원거리 마법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홍채의 눈이 크로노와 마주침에 따라 그들이 준비한 마술 또한 쏘아져 나갔다.

그중엔 내가 준비한 유성우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통수.

···라고 생각했으나.

"이 정도론 부족하네."




째깍. 째깍.




시침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몸이 굼떠진 것이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점점 '정지'해 간다고 봐야겠지.

범위는 약 반경 10미터.

정지한 세계에서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시간이 멈췄다 한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의 힘은 오로지 물체에 한정될 뿐. 사고까지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그 사실은 그다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아무리 생각을 할 수 있다 한들 정지한 시간 속에서 홀로 움직이는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그는 침착하게 자독을 시곗바늘의 옆면으로 밀어낸 뒤, 전방위로 포탈을 생성했다.

하나의 창과 같이 쏘아져 오는 수십의 시곗바늘은 스물의 마술사가 준비하던 대규모 마술을 파괴했고.

내 유성우에는 그에 맞대응 하듯 차례차례로 시곗바늘이 날아들어갔다.




째깍. 째깍.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비록 머리로는 받아들였으나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통증이 찾아왔다.

"끄흑······!"

"이 망할 영감이······."

"설마 시간 정지를 쓰고도 저리 멀쩡할 줄은."

안 그래도 공격 능력 면에선 최강이었던 양반이 타락하면 방어까지도 이 레벨일 줄이야.

아예 다 막아내지는 못하였는지, 유성우 중 몇 개가 몸에 박혀있었지만 상처는 시간의 힘으로 서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작 3초의 시간 정지.

그것만으로도 장벽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였고, 많은 마술사들은 방금의 공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다행히 의식은 제대로 남아있었나 보군.

부패한 시체가 되지 않고 기절만 한 것으로도, 그 사실은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다.

정신을 잃지 않고 아직까지 서있는 자는 8명.


나,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

혜안의 마술사.

천룡의 마술사.

홍채의 마술사.

자독의 마술사.

성각의 마술사.

별을 읽는 마술사, 아스란.

시간을 읽는 마술사, 레논.


"스승님."

시간을 읽는 마술사가 조용히 입을 열자, 크로노는 손을 내리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어째서 혼자 나선 것입니까."

담단하고도 차가운 어조.

그 목소리에서 스승은 그의 감정을 읽어내었다.

본래 이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

무력으로 각국의 수뇌부를 처리하고 마술사만의 영토를 요구하려 했다. 그리고 타락한 우리는 다른 마술사들에게 토벌당하는 계획.

허나, 크로노는 이 모든 죄를 자기만 뒤집어 쓴 채 홀로 토벌당하는 길을 택했다.

크로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절대악이 되어, 자신들을 퇴치한 마술사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이 계획이 얼마나 빈약한 지는 알고 있었을 테지."

모두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설령 마술사들의 땅을 얻어낸다 할 지라도 권력자 놈들은 어떻게든 다시 그 땅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럼 너희가 흘린 피와 희생은 대체 뭐가 되겠냔 말이다."

"그래도 지금 이대로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인류는 마술사를 배척하고, 마술사는 인간 취급을 받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살아있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서 그 미래를 바꿔야 할 것이 아니냐. 세상이 바뀌고 고작해야 20년이다. 아직 너희들에게 '시간'은 남아있을 것이야."

그 말에, 모두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오로지 그의 제자만이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승님······!"

레논이 크로노를 향해 다가가려 하자, 나는 그를 지팡이로 제지했다.

크로노는 그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스트로, 언제나 고맙구먼."

"뭘, 이제와서···."

"자네는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 주었지. 지휘 능력과는 별개로, 네겐 탁월한 리더의 자질이 있었어. 공격 외엔 딱히 재능이 없었던 나완 달리 말이야. 앞으로도 마술사들을 부탁하네."

"그래, 그게 자네의 말이라면 들어줘야겠지. 내 벗이여."

크로노는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혜안, 너는 네 혼자 힘으론 큰 도움이 되진 못할 지라도 다른 마술사들과 함께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점을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천룡, 너는 그 말투 좀 고치거라. 너무 불량배 같은 느낌을 주잖니. 다른 마술사들을 몰래 챙겨주는 너를 볼때마다 조금 귀엽기도 하면서도."

"뭣··· 쳇, 일단 알겠어."

"혀도 차지 말고."

"참 깐깐한 영감이라니까."


"홍채, 그 두 눈동자에 깃든 힘을 두려워 말거라. 언젠가 우리 마술사들을 이끌 힘이 되어줄 테니."

"예."


"자독, 그 독이 아군을 해칠 거란 생각은 말거라. 네가 쓰는 독이다. 절대로 네 의도와 벗어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성각, 너는 아스트로와 나를 뛰어넘을 재능을 가졌다. 더욱 정진하거라."

"과분한 칭찬이로군요."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예상치 못한 일을 펼치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노력은 해보죠."


"아스란, 너는 항상 우리들을 지켜주었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전 그저 의무를 다 했을 뿐입니다."

"그래."

크로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거라. 스승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제자의 표정이 그러면 내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겠느냐."

"스승님, 하지만···!"

"내가 언제나 말했지? 시간을 다루는 우리가 봐야할 것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다. 그 미래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거라."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그를 바라보던 크로노는 다시 흑색의 아우라를 내뿜었다.

쿠구궁···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살아남은 마술사들이 의심받지 않도록 큰 격전을 이룬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를 위해 크로노는 과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것은, 연극이다.

마술사의 권리를 위한.

그리고 안일한 선택을 내리고자 했던 우리의 속죄를 위한.

우리는 크로노를 향해, 각자 검과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류를 지키기 위해.

한 늙은이의 소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뛰어나가려는 찰나.

혜안이 입을 열였다.

"대, 대규모 핵 미사일 확인. 도착까지 약 1분."

   
* * *


결국 이리 되는가.

권력자들에게 마술사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에게 저들은 그저 버림말에 불과했다는 말이겠지.

당황한 마술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이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아직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간인들을 신경쓰고 있는 것이렸다.

그렇게 인간에게 배척받고, 미움받았음에도 아직 그들을 지키려 하는가.

그럼 그 의지를 지켜나가는 것은 내 몫이 될 것이다.




【뭘 하는 거냐. 너라면 이 정도 폭격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죽어버린 손녀를 살리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DDD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엄밀히는 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와도 같겠지.

20년 전, 그들의 등장과 함께 나는 내 손녀를 잃었다.

나는 마술사로 각성하자 시간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나 물체 뿐.

이미 죽어버린 이들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신체가 복구될지언정 그 안에 있던 정신까지 되돌리지는 못했다.

슬픔에 젖어 살던 어느날, 나는 제자를 하나 들였다.

눈밑의 다크서클이 꽤나 돋보이던 음침한 소년이었다.

나는 그 소년을 손자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만큼 손녀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제자에게 미래를 중시하라 했거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나였다니.




【이 세계를 멸망시켜라. 그러면 네 힘은 신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럼 손녀딸을 살릴 수 있어. 어서!】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져 간다.

그토록 정신을 단련해 왔는데도 이 모양인가.

육체는 시간의 힘으로 강건함을 유지하고 있거늘, 정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건 참으로 웃긴 모순이로다.

결심을 마치고 눈앞의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이곳에서 벗어나라! 내가 막을 테니!"

내 굵직한 목소리가 모두에게 닿았는지,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스승님! 막을 거라면 다같이 하는게···."

퍽.

제자놈이 내게 다가왔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마술사들이 그를 기절시켰다.

"그동안 고마웠네, 크로노."

어깨에 레논을 들쳐맨 내 오랜 친우가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다른 이들과 함께 전장을 벗어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비와 섞인 채 쏟아져 내리는 권력자의 손이 보인다.

비는 이리 평등하게 내리거늘, 저들은 어째서 이기적인 태도만을 취하는가.

상반된 둘을 바라보며 포탈을 열었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망쳐라! 그리고 세계를 멸망시키는 거다!】




그것을 들으며, 손을 들어 귀에 갖다댄다.


 


【빨리 도망······.】




콰직!





오른쪽 귀를 짓뭉갠다.





"더 이상은 도망치지 않는다."




손녀의 죽음에서 도망쳤다.

동료들의 죽음에서 도망쳤다.

제자의 외침에도 도피를 택했다.

그러니 이젠 도망치지 않으리라.

여전히 DDD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귀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은 정신을 그 어느 때보다 맑게 했다.

주위로 수백의 포탈을 열었다.

황금으로 빛나는 시곗바늘이 쏘아져 나갔다.

공중에서 수십의 폭발이 일어났으나 아직 수없이 많은 수가 남았다.

째깍. 째깍.

반경 10미터. 그곳의 시간이 멈춘다.

범위에 존재하는 미사일들이 멈췄고, 정지한 미사일에 날아오는 다른 미사일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래봤자 멈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초.

타락한 덕에 시간을 멈춘 후유증은 사라졌으나, 효율이 떨어진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다시 움직인다.

재사용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초.

그렇다면 그 시간에 공격을 퍼붓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다시 한 번 포탈을 여는 것과 동시에, 이미 날아간 시곗바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Inverse Gearwith!"

시곗바늘은 날아갔던 궤도 그대로 다시 돌아오며 궤도에 남은 미사일들이 터져나갔다.

수많은 포탈을 열었음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철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결국 놓쳐버린 공격이 대지에 박히고 말았다.

열풍이 몸을 뒤덮어 앞이 흐렸으나, 내 정신만큼은 흐리게 하지 못하였다.



팔이 떨어져 나갔다.

시간의 힘으로 복구하진 않았다.

나는 마술사다.

손 따위는 마술을 더 쉽게 행사하게 해줄 도구에 불과하다.



피가 흘러내린다.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시원해지니 머리가 더욱 맑아지는구나.




열 수 있는 포탈의 수가 줄었다.

DDD의 힘을 빌려 그 수를 늘렸다.



"커헉!"

피가 섞인 가래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남은 손으로 시곗바늘을 지팡이 삼아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조금이라도 많은 시곗바늘을 쏘아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폭발을 줄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눈앞의 철을 응시했다.

내 의지를 따라 시곗바늘이 쏘아져 나갔다.



포탈이 열리지 않는다.

시간의 힘이 다한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내 이명은 크로노그래프 매지션.

시공을 관장하는 마술사.

내 존재는 유한할지언정, 내가 다루는 시간은 무한할지니.

내 의지 또한, 꺾이지 않는 불멸이리라.

고개를 내리자 주위에 널린 시곗바늘이 눈에 들어왔다.

포탈이 열리지 않는다면 시곗바늘의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다.

부서진 채 바닥에 떨어진 시곗바늘이 하나, 둘씩 다시 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간은 무한하나니]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 미래만큼은 바꿀 수 있으리라.

제자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연스레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남은 건 젊은이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과거로 되돌아간 시곗바늘은 다시금 미래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다리가 잘려나갔다.

몸이 가벼워지니 비행술도 쉽구나.



남은 팔 한 쪽도 잘려나갔다.

DDD의 힘이 그 공백을 채웠다.

적의 힘이라도 내게 도움을 주는구나.



마력이 떨어졌다.

시곗바늘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DDD의 손으로 시곗바늘을 던졌다.



머리가 타들어갔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조용하기 그지 없구나.



침묵만이 감도는 가운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손녀의 모습이 보인다.

끝이더냐?

나는 모든 것을 다하였더냐?



주마등처럼 손녀와의 추억이 지나간다.

'할아버지, 이건 뭐야?'

'리나야, 이건 펜듈럼이라고 한단다. 앞뒤로 움직이며 아름다운 모양을 그리지.'

'계속 왔다갔다 하는게 신기해! 어떻게 이러는 거야?'

'세상에 악한 것만 있으면 펜듈럼은 움직이지 않지. 하지만, 선한 이들의 노력과 힘으로 펜듈럼이 움직이는 거란다.'

'흐응~. 그럼 할아버지가 이걸 움직이게 하는 거구나!'



피식.

펜듈럼이라.

그것 참 좋은 울림이구나······
















어차피 마술사는 딱히 스토리 같은 거 없으니까 내 맘대로 써도 되겠지 뭐

라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다.


그냥 재밌게 감상만 해준다면 굉장히 감사하겠음

아 그리고 이 대사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안 넣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