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전사에게서 흘러나왔다. 그에 반응해 옆의 마법사 역시 마음을 다잡듯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두 사람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문이다. 그러나 단지 문을 앞에 두었을 뿐이라면 이렇게 가슴이 옥죄어오고 식은땀이 흘러내리지는 않으리라.


 누가보아도 문은 평범한 인간이 열고 닫을 것을 상정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마치 이야기 속의 거인들이 각자 문의 한 쪽을 있는 힘껏 밀어야 그 무거운 몸체를 움직일 것처럼 거대했다. 단순히 거대한 것 뿐만 아니라 온갖 장식이 새겨져 있었는데 예술에 흥미가 없는 전사에게는 중앙에 있는 거대한 문양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7개의 원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원을 이루고 위 아래로 2개의 원이 따로 연결된 문양이었다. 그 9개의 원 중 하나는 지금까지처럼 다른 것들과는 달리 밝게 빛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맨 위네."

"저희가 거쳐왔던 두 군데는 중앙의 원이었죠..."



 둘은 이미 두 개의 문을 거쳐왔다. 아니 사실 둘이 아니었다. 


 이 던전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일행은 6명이었고 첫 번째 문을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저 평소처럼 유적을 탐험하는 평범한 모험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방문자를 인식한 문이 열리고 한없이 넓어 보이는 얼음의 대지와 그곳을 지키는 검은 용을 마주치자 그들은 자신들이 발디딜 곳을 잘못 짚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입구는 닫히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 때 하늘이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내리고 온몸이 불타는 거인이 뛰어내려 다짜고짜 용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전멸했을 수도 있었다. 다행이 두 괴물의 싸움의 여파를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던 와중 출구로 보이는 문을 찾아 간신히 그 방을 빠져나왔지만 동료중 한명인 사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교리때문에 가면을 쓰고 얼굴을 보이지 않는 남자였지만 언제나 믿음직스럽게 뒤를 지켜주던 동료였기에 평소 그와 티격태격하던 마법사도 그때만큼은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제의 부재는 빠르게 다가왔다. 두 번째 문이 열리자마자 일행에게 닥친 거대한 망치가 기사의 방패째로 그를 뭉개버렸다. 평소라면 사제의 축복이 기사를 보호했겠지만 과거의 이야기일 뿐,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바닥의 얼룩으로 변해버린 모습이 현실이었다. 

 다행이 모험가들은 베테랑이었다. 빠르게 진형을 잡고 주위를 탐색했고 그들을 공격한 적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 많은 해골



아니 해골모양의 쇳덩이를 마치 팔다리처럼 이어놓은 거대한 골렘이었다. 골렘의 주위에는 하얀 요정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왼손에 쥐고 있는 망치가 눈앞의 덩치가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골렘의 전투력은 위협적이었다. 단단한 몸체에는 공격이 먹히는 건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며 육중한 망치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전열이 흩어졌다. 그 틈을 타 요정들의 날카로운 공격이 시시각각 후열을 노렸다.


두번째로 쓰러진 것은 레인저였다. 그녀는 전사와 드루이드에 날아드는 요정들에 조준을 집중하느라 미처 뒤로 돌아오는 요정을 시야에 담지 못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요정과 골렘의 협공에 전사와 함께 전열을 맡던 드루이드가 잘게 다져졌다.


하지만 그 동안 주문을 완성한 마법사가 그녀가 가진 최고위의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강력한 열기에 요정들이 일소되고 큰 피해를 입은 골렘에 전사가 마무리 일격을 날리자 영원히 서 있을 것 같던 골렘의 거대한 몸체가 쓰러졌다.





"상태는 어때?"

"제법 회복됐어요."


'제법이라....'


사건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 노력하는 전사였지만 컨디션이 '제법' 회복된 정도로는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가보자. 어차피 입구로 돌아갈 수 없는 시점에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어."

"........."


"혹시 모르잖아?"


마법사가 전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앞에 출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전사가 발을 앞으로 내딛자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마치 닿는 자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바람에 실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전으로 보이는 고풍스런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전사에게는 건물의 웅장함도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바람도 그 순간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전의 입구에 서있는 하얀 후드가 달린 옷에 가면을 쓴 사람이 전사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첫번째 방에서 헤어진 동료를 다시 보자 기쁜 마음에 그에게 달려가려했다.








"멈춰요!!"




뒤에서 터져나온 날카로운 외침이 전사를 붙잡았다. 


"당신... 당신 누구야..."


전사는 그녀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제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왜그래?"

"대장 정신차려요! 저건 우리의 동료가 아니에요!"


그럴리가 없었다... 다시 봐도 1년 동안 함께 모험을 했던 동료가 틀림없었다. 항상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저도 방금 전까지 저 사람이 동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런 아무래도 마법을 익히신 만큼 제법 저항력이 뛰어나시군요. 생각보다 빨리 풀린 모양입니다."


'뭐....?'


신전 앞의 사제가 후드를 내렸다. 그러자 눈부신 금발이 전사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기억 속, 사제의 머리색은 검은색이었다.

이어서 가면을 벗은 남자는 마치 커튼을 내릴 때의 광대처럼 과장된 동작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도전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인도자이자 왕들을 섬기는 자, 로프톨이라고 합니다."


"인도....라고?"


"원래의 의미로 말하자면 유인이 되겠습니다만, 여러분의 끈끈한 유대와 팀워크,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실력을 보고 있자니 함정에 걸려든 쥐새끼취급을 하기엔 너무나 대단하신 분들이더군요."


"...."


멍하니 서있는 전사와 마법사를 두고 로프톨은 말을 이어나갔다.



"중요 멤버인 회복직이 빠져있음에도, 순간적인 기습에 동료가 쓰러지더라도! 압도적인 적에 맞서는 그 용기! 부족한 실력이나마 쥐어짜내서 함께하려는 우정! 동료를 끝까지 믿고 자신의 안전을 맏기는 신뢰! 그렇게 기어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승리를 쟁취하기까지... 이 로프톨, 여러분이 보여준 멋진 모습에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대체 이 녀석은 뭐라고 지껄이는거지...?

용기? 승리?

전사의 머릿속은 로프톨이라 칭한 남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프로디님의 알브헤임으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만. 

제가! 특별히! 여러분께는 가장 위대하신 분의 존안을 뵙고 그 힘에 도전할 권리를 드리고 싶다고 말이죠. 역시 승리한 이후에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분께서도 여러분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하셨습니다."



도전? 누구에게..? 애당초 보상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 순간, 갑자기 닥쳐온 거대한 존재감에 전사의 시선이 신전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서 한 명이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검은 로브 위에 갑옷을 입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거한에게서 짓누르는 듯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창과 같은 모양의 지팡이가 서서히 내려가 전사를 향했다. 신전의 주인은 두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듯 했다. 금방이라도 닥쳐올 공격을 대비해 전사는 온몸을 긴장시켰지만 어째서인지 실제로 공격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저 지팡이를 겨눈 채로, 전사는 그것을 마치 도전자가 먼저 공격해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위대하신 분.... 이라 했나?"


몰아치는 바람과 거한의 존재감에 목소리가 떨려왔지만 전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를 도전자로 받아들여 준다고 했지, 그렇다면 도전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되는거지?"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던진 질문이었지만 눈앞의 존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요함이 머물기를 잠시...




"도전의 결과에 따라...."


검은 거한에게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지나친 긴장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것일까, 아니면 압도적인 적을 앞에 두고 현실감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 아마 본능적으로 저 말이 거짓이 아니며 저 신전의 주인은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직감 때문일 것이다. 

전사는 몸에 힘이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터무니없이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탈출구에서 보이는 희망이 전사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그래, 생각해보면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적도 비일비재했고 자신을 압도하는 강한 적을 마주한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위기를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계속 성장했고 지금 또다시 그 순간이 찾아왔다. 



새로운 모험에 직면한 전사는 모든 힘을 밑바닥까지 긁어모아 자신을 대적하는 보스를 향해 돌진했고...









순간 전사의 시야가 암전되며 세상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사님, 정신이 드시나요?"


이상한 꿈이다. 마치 물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몸에 저항이 느껴진다. 

시야가 계속 일렁이는게 예전에 수영장 바닥에서 위를 보면 대충 이런 느낌이........



이런 미친! 물 속 맞잖아!!



남자는 허둥지둥하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남자의 몸이 순식간에 수면 밖으로 빠져나오며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으아아앗?!"


순간적으로 손가락부터 손바닥, 팔뚝, 순서로 땅을 짚으며 낙법을 취하지 않았다면 평소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던 콧대가 조금은 내려갔을 지도 모른다.


"헉... 헉.. 대체 뭐야."



"겨우 눈을 뜨셨네요 용사님."


뒤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 당신은 오랜 맹약의 의식에 의해 이 세계에 내려왔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이 생활을 꾸리고, 미지의 몬스터나 마법의 힘이 존재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크나큰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9년전 나타난 대마왕 하르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푸른 신관을 바라보았다.


"이들에게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 이 신전을 떠나 모험의 여행을 출발하죠. 저도 미력하지만 물의 마법으로 서포트할게요!"





......................................... 뭐??



#제너레이드, #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