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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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한 눈에 팔 상황이 아니에요.

그렇게 되뇌이면서도 에클레시아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드래그마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해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에클레시아의 눈 앞에 있는 돌무더기는 주변 풍경에 비해 너무나 이질적이다.


무너져 내린 나무 밑동을 베개 삼아 편안히 누워있는, 마치 사람의 모습을 띤 돌무더기.

늘러붙은 이끼와 대리석 같은 질감의 투박한 모양새가 그 세월을 짐작케 했다.

돌덩이들이 우연찮게 모여 사람의 형상을 띠게 되었다기 보다는 누군가의 의해 만들어진 작품처럼 보였다.



"에클레시아. 지체할 시간이 없어."


한 쪽 눈에 커다란 흉터가 난 은발 머리 소년이 말했다.


"알버스, 저 이게 뭔지 알 것 같아요."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에클레시아가 말했다. 알버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다니. 다른 의미로는 그녀 다웠다.


"이건…화석이에요!! 책에서 봤어요! "


"그게 뭔데?"


"고대의 생명체가 기나긴 세월 동안 지층 속에서 묻혀 있던 것을 말해요. 너무나 오래 묻힌 탓에 결국 돌이 되어버린 거죠. 드래그마가 세워지기 전에도 수 많은 나라와 인류의 문명이 번영하고 몰락했다는데… 어쩌면 이 돌상은 그 문명의 산물 중 하나일지도 몰라요!"


설명을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해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무룩하기만 했던 그녀가 잠시나마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알버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 근처에 유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저번 원정에는 이 길목은 지나간 적이 없었죠. 상황이 안정되고 나면 교주님께 부탁드려서 이 곳을 다시 찾아와야겠어요!"


"…안정된다면…"

알버스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에클레시아도 함께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보고 온 참상을 생각하면 상황이 안정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에클레시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드래그마로 돌아가야 하고, 모든 것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대책을 마련해야했다. 신기한 돌상 따위에 한 눈 팔 때가 아니다.

에클레시아가 쓸쓸하게 돌상을 쓰다듬으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괜찮아요. 저희 드래그마는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테니까요. 저 또한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그때,


에클레시아의 손을 시작으로 푸른 빛이 돌상을 휘감기 시작했다. 동시에 푸른 빛이 에클레시아의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에클레시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황급히 손을 때려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푸른 빛은 순식간에 돌상과 에클레시아를 감쌌다.

"떨어져, 에클레시아!!"

알버스가 그녀에게 달려 갔지만, 돌상으로부터 알 수 없는 파동이 발생했다.
파동은 알버스를 포함해 주변 자연물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오직 에클레시아만이 파동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돌상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뒤로 밀려날 정도로 강한 파동 때문에 알버스는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알버스는 그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에클레시아는 그저 멍하니 돌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클레시아를 지켜야 해. 위험을 감지한 알버스의 눈이 번뜩였다.
교주는 위험한 힘이니 가능한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인간 형태의 알버스는 그저 소년에 불과했다.


소년은 에클레시아를 구할 수 없고
알버스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힘을 해방하기 위해, 목에 걸린 드래그마의 징표를 뜯으려던
그 찰나,


동상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생체 반응 감지에 의한 메인 프로세스 활성화 』

줄 곧 멍하니 있던 에클레시아가 숨을 삼켰다. 동시에 파동이 잦아들었고 그들을 감싸던 푸른 빛은 입자를 뿌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정신이 돌아온 에클레시아는 어쩐지 손을 땔 수 없었다. 아직, 때서는 안될 것 같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얕은 파도가 일어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 최초 접촉자의 세포 구조를 파악해 명령 알고리즘을 갱신, 업데이트 완료까지 앞으로 12초 』

"에클레시아!!"

알버스가 뛰쳐나가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동시에 에클레시아도 알버스의 손을 붙잡으며 뒤를 돌아봤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수 많은 대화가 오갔다. 힘있게 맞잡은 두 손에는 각자의 고집이 담겨 있었다.

어서 물러나. 아니. 잠깐만요. 대체 왜?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에클레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알버스의 손을 좀 더 부드럽게 잡았다. 알버스는 숨을 고르고 에클레시아를 응시했다. 홀에서 떨어진 그 날, 에클레시아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눈빛과 같았다. 너는 나를 해치지 않을 거고 나는 너를 도와줄거야. 나를 믿어도 돼. 여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녀로서의 기품과 결의. 모든 걸 감싸안으려는 고귀함에는 알버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 갱신 완료 』



돌상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에클레시아의 손이 돌상에서 떨어졌다.
균형을 잃고 주저앉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알버스가 부축했다. 그리고 돌상이, 몸을 일으켰다.

이끼가 묻은 돌의 파편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속에 파묻혀 있던 비취색의 골격이 드러났다.
골격은 세차게 돌아가며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관절을 이루었고 남은 조각은 끝부분에 매달려 손과 발이 되었다. 단순히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았던 돌상은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온 몸을 삐걱거리며 동상이 말했다.


『 제 24호 화석발굴용전투비경체(化石發堀用戰鬪碑鏡體) 웨더링 솔저, 대기 중입니다 』






그들보다 키가 2배 정도 컸고 얼굴이 없었다. 목 부근에 놓여있는 꽃 모양의 뼈 만이 이따금씩 빛나기만 했을 뿐이다.
한 마디 뱉은 후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경계심을 풀지 않은 알버스와 에클레시아는 숨을 죽이고 동상을 지켜봤지만 무의미한 침묵만이 흘렀다. 알버스가 동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먼저 입을 열었다.

"에클레시아 괜찮아?"


"…아…아!? 네! 괜찮아요!! 완전 괜찮아요!!"

에클레시아가 황급히 알버스에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피었고 알버스는 갑작스런 에클레시아의 반응에 어리둥절 했다. 혹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하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다가오지 말라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진짜 이상한 것 같은데. 알버스는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을 진정시킨 에클레시아가 동상에게 다가갔다.

"…저기…안녕하세요?"

『 좋은 아침 입니다. 』

에클레시아의 말에 동상이 즉각 반응하며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위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든든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알버스가 뒤에서 소리쳤다.

"너, 정체가 뭐냐!"


반응이 없었다.

"에클레시아에게 무슨 짓을 했어!!"


반응이 없었다.

"저기… 대화하실 수 있죠?"

『 웨더링 솔저는, 인솔자의 질문에 가능한 한 대답 합니다. 』

"야!! 내 말은 무시하냐!!"

반응이 없었다.



에클레시아는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상, 아니 '그'는 적이 아니며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손이 닿았을 때부터, 푸른 빛이 휘감겨 왔을 때부터 에클레시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그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자신에게로 한정되어 있지만 엄연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미지의 생명체.


그리고 에클레시아도 알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생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