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 지난 화 -


차원 전쟁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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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이 돌상은 무엇인가요?

교도기관까지 이동하면서 에클레시아가 신도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웨더링 솔저와 접촉한 에클레시아의 머릿속엔 이미 그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지만 신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난감했다.
정확히는 말해선 안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에클레시아는 신도들을 향해 난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저의 새로운 친구. '웨더'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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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발굴용전투비경체, 웨더링 솔저는 굉장히 폭력적인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다.
주 목적은 전투의 기제로 삼을 화석을 발굴해낸 뒤, 그 화석의 정보를 읽어 전투병기로 재구축 및 조종하는 것.
어느 정도의 의사전달이 가능하고 기본적으로 최초 인솔자의 어떠한 명령에도 복종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솔자'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웨더링 솔저는 이 '무언가'를 밝힐 생각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드러나는지 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알버스는 웨더링 솔저를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제어가 가능하다해도 한 문명을 멸종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병기다.
에클레시아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웨더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급류에 휩쓸려온 만큼 어떤 결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미지에 대한 공포. 알버스는 그 누구보다 그 공포에 대해 잘 알았다.

"저도 가능하면 웨더를 떠나보내고 싶어요."

"……웨더?"

"아, 이름이 너무 길어서요. 간단하게 웨더."

에클레시아가 침착하게 말했다. 무조건 말릴 줄 알았던 알버스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저도 조금은 무서워요. 아무리 저를 위해 움직인다고 해도 인솔자인 저에게 조차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품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에 혼자 놔두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성녀로서 만물에게 자비를 베풀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의무가 있어요. 모든 걸 파멸시킬 수도 있는 기계였다고 할지라도…아니, 아니에요 그냥 뭔가 불쌍해서 그래요. 헤헤…"

알버스는 에클레시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도 에클레시아의 자비를 받은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알버스는 한때 용의 모습을 한 채 성당을 파괴했고 성전을 불태웠다.
교도군과 신기의 활약으로 알버스는 소년으로 돌아왔지만 지은 죄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오직 에클레시아만이 알버스를 감쌌다.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 온 소년에게서 빛을 보았다고 했다. 죄를 뉘우치고 자신이 인도한다면 신도들을 위한, 드래그마를 위한, '신의 서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토록 강경한 에클레시아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당장이라도 파면 될 수 있을 정도의 발언이었지만 에클레시아는 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았다.

만물을 사랑하고 죄를 지은 자를 속죄의 길로 이끄는 것.
성녀의 헌신 그 자체.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베푼다.
에클레시아의 자비가 웨더에게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웨더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까?



"교주님에겐 제가 잘 설득 할게요. 교주님 제 부탁이면 의외로 껌벅 넘어가시는 것 같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에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에클레시아가 말했다. 교주의 머릿속을 알버스는 알 도리가 없지만 자신을 용서해준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알버스는 교주를 좀처럼 신용하지 못했다.
교주는 신도들 앞에서 단 한번도 가면을 벗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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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님이 예상하신대로 였습니다. 령신의 성전은…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위라드 님도, 아이나도…아니, 사람이 지낸 흔적 자체가 없었어요.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얼마 전에도 원인 모를 마력의 파장으로 사이버의 영역이 파괴되었다고 하는데. 성전이 있던 자리에선 전투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에클레시아와 알버스, 그리고 웨더의 너머로 드래그마의 최고위 사제이자 교주인 막시무스가 양손을 모은채로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이따금식 긴 손톱 장식으로 턱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에클레시아가 말을 이었다.

"령신의 위광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저…드넓은 초원과 왕성한 숲, 나무 밑둥 밑에 숨은 토끼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보고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성녀 에클레시아."

막시무스가 말을 끊었다.

"저 역시 위라드로부터 받은 보구의 신령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군요. 령신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원소의 핵이자 재해의 형상이라고 불리우는 령신에게…영향을 끼칠 정도의 강대한 힘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역시 그 마법사가 의심스럽군요."

에클레시아도 마법사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몇 달 전, 성전에 홀연히 나타난 한 마법사가 있었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지팡이와 두꺼운 마법서, 언제나 후드를 쓰고 있던 하얀 마법사. 그는 인력을 비롯한 성전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대신, 성전에 머무르며 령신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수호자들은 처음엔 반신반의 했으나 그의 마법은 성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소환수들은 성전의 큰 보탬이 되었고 때로는 외부의 침략에 맞설 전력이 되었다. 령신의 노여움을 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엘리멘트세이버는 마법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돌연히 찾아온 행운은 언젠가 큰 화를 부르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령신의 성전에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엔 마법사와 성전을 포함한, 엘리멘트세이버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말했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악의를 품고 엘리멘트세이버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 게 아닐까 싶군요."

"고작 한 명의 인간이 령신과 성전 전체를 이동시킬 수 있단 말인가요?"

알버스가 삐딱한 자세로 딴지를 걸었다. 막시무스의 시선이 알버스 쪽으로 향했다. 가면 중앙에 새겨진 십자 모양의 틈새. 그 틈새는 홀의 모양과도 닮아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나빠진다. 에클레시아가 우물쭈물하며 알버스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막시무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 명의 인간이 벌인 짓이라고 하기엔 범위가 너무 넓어요. 하지만 그의 숨겨진 동료들이 있다면 어떨까요? 차원 너머에 있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벌인 일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음모를 꾸민 것이죠."

"처음부터 령신을 속이고 접근했다는 건가요?"

"차원 너머의 인간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령신의 능력이 닿지 않았거나 혹은 그 마법사가 사전에 수작을 부려뒀을 수도 있죠."

아무런 근거 없이 추측만으로 마법사를 몰아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외에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드래그마를 포함한 세계 어떤 세력도 령신과 정면으로 맞서서 무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작용했다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다음 타겟은 성전과 가장 가까운 저희 드래그마 일지도 모르겠군요. 가능한 빨리 일정을 바꿔 추기경과 군장들을 모아 회의를 열어야겠습니다. 동맹국인 데스피아에게 보낸 서신의 답에 따라서 향후 처신을 모색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요. 언제까지 대답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성전에서 뭔가 단서가 남아 있길 바랐으면 좋았겠지만…."

"죄송합니다 교주님…저는 그 곳에서 아무것도……"

에클레시아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오히려 상냥한 어투로 답했다.

"아니오. 성녀 에클레시아. 오히려 저는, 역시 당신이란 존재는 언제나 희망을 가져다 주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네?"

"미지의 힘은 지금 당신의 뒤에도 있지 않습니까?"

원탁에 앉아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웨더에게로 향했다.
웨더는 한 순간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웨더…라고 했죠? 어떤 힘을 품었는지 모르지만 성녀인 당신을 따라왔고 이 곳 드래그마에 당도했습니다. 이는 곧 신의 뜻이 아닐까요?"

막시무스의 어투는 어쩐지 격양되어 있었다.

"신의 부름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드래그마는 언제나 미지에 대한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해왔지요. 그 공포가 실체로 다가오기 직전, 성녀인 당신의 외침에 응해 웨더를 보내셨습니다. 어린 양들인 저희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재해의 화신이라 불리는 령신과는 다른, 그저 선이신 우리의 신께서…"

아, 또 시작이네. 알버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틈만 나면 막시무스는 신을 찬양하며 성문을 읊는다. 신도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고 찬양가를 부른다.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데 신은 얼어죽을. 막시무스는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신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알버스는 조금이라도 빨리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에클레시아는 다르다. 막시무스의 과장된 몸짓과 비교하면 한 없이 가녀리고 소박하지만 그 어느 기도보다도 무겁다.
속삭이듯이, 오물거리는 입술 사이에는 막시무스와 신도들, 그리고 알버스를 위한 기도를 품고 있다. 거기에 웨더가 포함되어 있다.
에클레시아의 기도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 사실 덕분에 알버스는 막시무스의 찬양을 견딜 수 있었다.







적막이 흐르는 서재. 막시무스 외엔 누구도 없었다.
닥치는 대로 고대 문헌에 관한 책들은 꺼내 읽어봤지만 유의미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저녁 예배 시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건너편에서 신도들의 찬양가가 들려왔다.
조용히 찬양가를 듣고만 있던 막시무스가 돌연, 탁자 위의 은촛대를 후려쳤다.



물어죽일 년
하루가 멀다하고 쓰레기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구나.


웨더를 처음 본 순간, 막시무스는 그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성녀는 친구라 말했지만 거짓말인 것이 훤히 보였다.
홀에서 떨어진 알버스와 같은 부류의 힘인가?
어째서 그녀에겐 그런 힘들이 줄줄이 들러붙는 것인가?
그 돌덩이는 오직 그년의 말에만 대답했다.
나의 말을 무시했다.
이토록 불합리한 일이 어딨는가?



아니 그전에

이유가 어찌 되었든간에
성녀 에클레시아가
 


감히 이 막시무스에게 진실을 숨겨?


십자 틈새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비집고 나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에클레시아의 목을 쳐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었다. 알버스를 감쌌을 때 파문을 빙자해 함께 죽였어야 했나? 원정을 나갔을 때 자객을 보냈어야 했나? 건냈던 음료에 독을 탔어야 했나? 보고를 받을 때 '그들의 힘'으로 알버스와 함께 처형 했어야 했나?


허나 에클레시아는 막시무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드래그마의 안위 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녀를 처리하면 웨더와 알버스의 비밀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차지해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자신과 '그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