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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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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2. 1939년3. 1940년4. 1941년5. 1942년
5.1. 북아프리카5.2. 소련


1. 배경 [편집]

나치[1]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부터 집권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붕괴되었다.
나치는 1차대전의 결과로 비무장지대로 남았던 라인란트(지금의 라인란트팔츠)를 1936년 3월 다시 무장시키고 [2] 1938년부터는 안슐루스,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합병, 체코슬로바키아 분할등의 영토 확장 야욕을 하얗게 불태운다. 그러다가 1939년 9월, 독일은 전쟁을 노린 것인지 단치히를 노린 것인지는 몰라도 폴란드에게 단치히냐? 전쟁이냐? 를 제안하고 그로 인해 전쟁이 발생했다. 단치히의 중요성을 설명하자면 1. 독일이 1차때 빼앗긴 독일의 적법한 영토이고, 2. 동프로이센과 서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전역을 잇는 중요한 영토이며, 3. 독일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하고, 그로 인해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2. 1939년 [편집]


2.1. 폴란드 [편집]

폴란드는 단치히(그단스크)로 독일의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분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반쯤 독립국으로 유지되고 있던 단치히를 요구했고, 폴란드가 거부하면서 전쟁이 발생했다. [독일]이로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는데, 폴란드는 영국 및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고 있었지만, 이 두 국가는 참전만 하고 전투를 안 해서 독일한테 1 대 1로 쳐맞게 되었다. 사실 폴란드에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는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획득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서부로 후퇴하면서 독일군의 피해를 누적시키고 루마니아한테 보급품을 받아 먹고산다는 계획이었으나,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의 또 다른 당사국인 소련이 폴란드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빼앗겼던 영토에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포들라스키에 지역을 더해 점령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폴란드는 수도인 바르샤바 주변을 지키다 멸망한다. 폴란드의 주변국으로는 독일의 괴뢰국이었던 슬로바키아와 독일, 리투아니아, 헝가리, 루마니아, 소련이 있었지만 헝가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찢는 과정에서 루테니아를 받고 입을 닫았고, 리투아니아도 폴란드에게 침공당한 역사가 있어 믿을 건 루마니아밖에 없었다.


3. 1940년 [편집]


3.1. 프랑스,베네룩스 [편집]

멀대같은 엘랑스는 폴란드가 뒤져부릴 때까지 한 게 없었지만, 1940년 초반 프랑스에는 영국군과 폴란드군, 프랑스군을 합쳐 200만 정도의 무장한 병력이 있었고, 견고한 마지노 선까지 합세하면 1차 세계대전과 같이 승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특히 상대가 가짜전쟁(폴란드 침공 시기 엘랑스 전선) 때 한 명의 사상자 없이 많은 영토를 점령당한 전적이 있던 독일이기에 더욱 그럴 것처럼 보였으나, 1년이나 기다려준 탓에 독일군은 폴란드도 쩔쩔매던 개노답 군대에서 소련을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세계적인 군대가 된 상태였다. 독일은 구데리안의 제안으로 이번에도 1머전때와 비슷하게 베네룩스로(이번엔 네덜란드를 더해서) 전진해왔고,독일군 기갑부대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급품과 약을 사용해 정신나간 속도로 진격하여 엘랑스군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다.[4] 엘랑스군은 반격 과정에서도 너무 느려터져서 곧바로 독일군에게 얻어맞고 포위당하게 되었고, 너무 많은 사단을 날린 엘랑스는 결국 파리를 털리고 항복하였다. 이탈리아도 엘랑스 침공에 동참했지만 가용병력도 적었고 산악이라는 지형까지 더해져 영토는 거의 획득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남겼다.


3.2. 그리스 [편집]

이탈리아는 프랑스 침공에서 영토를 별로 얻지 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 먼저, 그리고 아주 빠르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아버렸던 두체는 뜬금없이 그리스에게[5] 전쟁을 선포했으며, 39년 합병한 알바니아를 교두보로 삼아 그리스를 공격했지만, 그리스의 험준한 지형과 병력의 부족으로 참패하게 된다. 심지어 준비까지 부족했던 이탈리아는 그리스에게 역공까지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다음해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3.3. 북아프리카 [편집]

추가앙망


4. 1941년 [편집]



4.1. 북아프리카 [편집]

추가앙망


4.2. 유고슬라비아 [편집]

독일은 대량의 선물과 외교적 압박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추축국에 가입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얼마 안 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추축국에서 탈퇴했다. 그러자 독일은 동맹국들과 함께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고, 준비 없이 바로 전쟁에 들어간 약소국 유고슬라비아는 2주도 못 버틴 채 독일에게 영혼까지 털려버리게 된다. 허나 이 지역의 파르티잔들은 전쟁 끝까지 적은 인구와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유격전을 벌였다.


4.3. 그리스 [편집]

유고슬라비아를 조진 독일은 이탈리아의 부탁을 받아 그리스도 침공했고, 그리스 역시 금방 패배하게 되었다. 독일은 크레타 역시 공수부대를 동원해 점령했지만, 큰 저항에 직면해 많은 병력을 날리게 된다.[6]


4.4. 소련 [편집]

결국 유럽을 통일한 독일은 6월 22일,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한다. 이어서 루마니아, 헝가리, 핀란드, 이탈리아 등의 다른 추축국들도 참전하였다. 소련은 1머전의 경험을 돌아봤을 때 현재 국경을 유지한다면 아주 빠르게 항복하게 된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병력을 러시아 국경 부근으로 후퇴시켰다. 그러나, 스몰렌스크에서 대규모의 소련군이 아주 빠르게 파악 꼬라박으면서, 독일군은 모스크바까지 몰려오게 된다. 또한 소련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레닌그라드는 독일의 포위로 도시 전체가 굶어 죽을 상황에 놓였다.


4.5. 태평양 전쟁 [편집]

한편, 중일전쟁으로 인한 열강의 경제 제재로 맛이 가버린 일본의 해군은 12월 7일 항공모함을 다수 동원해 하와이를 폭격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 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하와이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여러 섬들, 그리고 동남아를 공격하였다. 유럽에서도 일본을 따라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5. 1942년 [편집]



5.1. 북아프리카 [편집]

추가앙망


5.2. 소련 [편집]

붉은 군대의 영웅적인 전투로 모스크바는 사수해냈지만, 여전히 레닌그라드는 도시째로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소련군은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주변에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고 역으로 독일의 반격을 받아 스탈린그라드가 털리게 된다. 허나 시내에서 지연전을 하는 사이 병력을 모아 온 소련군은 대전차화기가 부족하던 루마니아군이 방비하던 부분을 뚫어서 스탈린그라드에 독일군이 포위되게 만들었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독일군을 구출하고자 공세를 실시했으나, 결국 실패하면서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은 자신들이 레닌그라드에서 했던 것처럼 굶어뒤지게 된다.
[1] [2] 이에 대해서는 나무위키 참조[독일] 방송국에 폴란드놈들이 쳐들어와서 선전포고를 하고 튀어버렸지만, 사실 독일군이었다고 한다.[4] 프랑스가 공군 정찰, 전선 확장만 잘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문제는 아직도 1머전에 머물러 있는 보수적인 전술과 수뇌부였다, 그 때문에 정보를 입수했는데도 숲쪽으로 전차가 못 올거라 판단해 정찰조차 보내지 않고 개활지에 적 병력들이 정체상태로 몇시간을 서있게 내버려두는 병신짓을 저질렀으며, 결국 이는 6주만에 파리 따이고 엘랑하는 계기가 된다.[5] 사실 원래 유고를 침공할 계획이었는데, 아돌프 히틀러가 유고를 추축국에 가담시키고 싶어했기에 포기했다. 그래도 유고 침공때 한을 풀었음[6] 이 때문에 총통이 공수에 제한을 걸어서 이 이후로 팔슈름예거는 공수도 못해보고 일반 지상부대처럼 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