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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베니 람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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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베니 람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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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베니 람부카
Sitiveni Rabuka
프로필

1. 개요2. 상세

1. 개요 [편집]

시티베니 람부카, 1987년.
시티베니 람부카, 2023년.
Sitiveni Ligamamada Rabuka

피지의 군사 독재자 출신 정치가. 소속 정당은 인민동맹이다.

2022년 12월 24일부터 피지 총리를 역임하고 있으며, 같은 군사 독재자 출신의 친 인도계[1] 프랭크 바이니마라마와 대립하고 있다.

2. 상세 [편집]

피지의 군인 출신으로, 뉴질랜드 육군 부대에 입대한 경력이 있고, 레바논 내전에 평화유지 다국적군으로 참전했으며,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분쟁에도 참전해 경력을 쌓았다.

1987년 5월 영국 왕실과 인도계를 상대로 피지 민족의 자주권을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그는 피지 역사 최초로 피지 원주민들의 정부를 설립했고, 이 때문에 피지인들에게 영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는 친 인도계 총리였던 티모키 바바드라 총리를 축출하고 집권했다. 하지만 피지 대법원이 쿠데타를 무효화하고 총독이 예비 집행권을 행사해 피지를 5월 쿠데타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피지를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자신을 임시 군사 정부의 수반으로 선포했다.

1990년 피지 민족의 정치 체제 지배를 보장하는 새 헌법이 채택된 후, 1992년 총선에서 피지당을 이끌고 승리하며 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당 내의 경쟁자 호세파타 카미카미카 전 재무장관과의 대립으로 인해 초기부터 취임덕 현상을 겪게 되었고, 점차 정치적으로 수세에 밀리자 인도계와 협상을 통해 피지 원주민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던 헌법 조항을 제거했다.

그리고 1999년 선거에서 패하며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는데, 선거 패배 이후로는 대추장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야권 지도자로써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에 벌어진 피지 민족주의 쿠데타를 선동하고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대추장회의 의장직을 사임하고 체포당해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모두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이후로는 프랭크 바이니마라마의 2006년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주장이 돌았으나, 쿠데타 직후 바이니마라마의 선거 실시 거부를 비판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야권 지도자로 활동하다 자산 및 부채 신고와 관련해 피지 독립 위원회로부터 기소당하고, 소델파 리더 자리에서 축출당하는 등 여러 고난을 겪기도 했다. 2022년 총선에서는 인민동맹이란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는데, 16년 만에 바이니마라마의 독재를 완전히 종결시키고 집권해 1987년 정권을 잡은 이래로 35년 만에 정계 전면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총리 지명 이후로는 키리바시를 방문해 타네티 마아 마우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치르며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이번 정권 교체로 피지는 향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는데, 라부카는 중국보다 미국에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으며 자신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해왔다.

신냉전 정국에서 람부카 내각은 친서방 국가들과 협력할 뜻을 밝히며 중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는데, 그는 “비슷한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가진 나라들과 협력할지 여부를 다시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처럼 피지와 체제가 다른 나라로부터 협력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임자인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전 총리와 달리 미국, 뉴질랜드, 호주와의 관계 강화에 집중하며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의 경찰 협력 협정 중단을 검토하고, 미국의 우방인 호주와 '주둔군 지위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국 군대는 상대 국가에서 머물면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7월 26일, 휴대전화를 보다가 넘어져서 대깨문이 돼버렸다. # 이 여파로 예정됐던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1] 친 인도계 성향이긴 하다만, 바이니마라마는 피지 원주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