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소설에는 통칭 미즈키 로그라이크. 

카에룰라 아버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해당 스토리의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열람을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시하고 읽었다가 스포당해도 책임 못 짐





















----------------------------------------------------------------

이베리아 표준시 02시 00분.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이베리아에서 시작된 파도는 바로 전 세계로 퍼졌고, 이베리아, 빅토리아, 라테라노부터 시라쿠사, 라이타니아, 키시미어, 우르수스에 이르기까지, 검은 파도가 멎었을 때 테라인의 약 90%가 그 파도 속에서 죽었다. 영겁과 같은 찰나가 지나고 파도가 멎었을 때, 테라라고 하는 세상을 지배하던 것은 더 이상 인류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테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0일. 


'그것'들이 지상에 올라온 결과였다.


테라 원년에서부터, 지금의 1100년에 이르기까지. 10세기가 넘는, 문자 그대로 천 년에 걸쳐 인류가 쌓아온 모든 노력과 번영이 부정 당하는데 정확히 100일이 소요됐다.


파도가 인류의 모든 법칙과 규율을 집어 삼켰고, 파도가 그친 테라에는 오직 단 한 가지의 법칙만이 남아 있었다.

붉은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미치광이라는 새로운 법칙이.


미쳐 날뛰는 이 법칙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손 놓고 지켜볼 수 만은 없었다.


남아 있는 재판관은 오직 나 뿐이니까.


.

.

.



-촥.


  마지막 녀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더러운 체액을 내뿜으며, 생명의 빛을 잃은 괴물은 바닥에 누워 싸늘하게 식어갔다. 더 이상 근처에서 녀석들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근처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둘. 시본들의 시체와, 바로 나.


  한계다.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꼴사납게 놈들의 시체 속을 구를 수는 없어 이를 검으로 억지로 버텨 몸을 세웠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감각이 사라진 왼손이 꿈틀거리고, 반쪽 짜리 시야가 흐릿하다. 


  끊임 없이, 머리 속에서 노랫소리가 울린다. 바다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 입 닥쳐. 입술을 깨물었다. 점등하는 고통과 함께, 수 없이 흘렸던 피가 입 밖으로 흐른다. 닦아내기에는 손도 모자라고, 온 몸에 튄 녀석들의 체액과 내 피가 구별되지도 않는다.


  떨리는 오른손을 억지로 움직여,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손과 검을 묶은 매듭을 고쳤다. 말을 듣지 않는 부위가 또 늘었다. 처음에는 왼손, 다음에는 왼팔. 나아가 왼쪽 눈과 왼쪽 다리. ...그리고 이젠, 오른손의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슬슬 한계일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검은 파도가 몰아친 이후로, 태양은 이젠 대지를 비추지 않았고 달빛은 더 이상 어두운 밤하늘을 밝혀주지 않았다. 등불을 잃은 이 세상은 무저갱의 심연 속에 잠겨, 바닥 없는 심해로 가라 앉았다. 언젠가 바다는 이 곳에 있는 것과 있을 것.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지.


  이것이 등불을 잃은 것들의 말로다. 제 발 밑을 비추지 못하고, 제 앞길을 밝히지 못한 자들의 최후다.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지. 등불을 잃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이제 정말 한계다. 이제 곧, 이 몸 역시 무너져 바다로 끌려 내려갈 것이다. 이제 곧, 이 몸뚱아리는 흩어지고 혼은 조류에 휩쓸려 사라지겠지. 이것이 나, 아이린의 말로다. 마지막 재판관은 이렇게, 그 누구도 기억해주는 이 없이 흩어져 사라지겠지.


  웃음이 나왔다. 위대하신 대재판관 성도 카르멘께서도 전 세계를 집어삼킨 검은 파도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쳐버리시고 말았다. 수십 년을 전선에 나서며, 수십만 마리의 해사들을 쓰러뜨린 그분조차도 검은 파도의 참혹함에 굴복했는데... 고작 말단 재판관인 나 혼자, 그것도 등불을 잃은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꼴에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도 카르멘께서 건재하셨다면 그 분은 분명 검은 파도 속에 잠들어 있는 그 거인을 향해 나아가셨겠지. 그것이 살아 있는 한, 바다는 영원히 고요할테고 파도는 영원히 몰아칠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등불을 잃은 나는 검은 파도의 원흉 근처에도 닿지 못했고, 그저 몰려드는 해사들을 베어 넘기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사라질 운명이다.


스승님. 저는, 잘 해낸 것일까요?

스승님. 당신은, 이런 싸움 속에서도 어떻게 두 발로 서 죽음을 맞으셨나요?


  그란 파로에서 등대를 되찾기 위해 나를 올려 보내고 혼자 죽음을 맞이한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분이 내 곁에 계셨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희망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도 카르멘께서도 굴복하셨는데. 스승님이라도 방법은 없으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파문처럼 일었다. 한번 퍼진 파문이 일렁이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망 없는 희망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사. 당신이 내 곁에 있었다면, 내가 당신 곁에 있었다면. 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눈을 감고,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희미해진 기억은 빛이 바래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다. ...박사. 평소엔 항상 그렇게 불렀었지. 처음 만남은 그저 에기르인들을 따라가 만난 제약회사의 일원이었다. 그저 스쳐가듯 만난 외부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 빠져 들었다. 헤프게 웃는 그의 얼굴에, 다정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따스하게 날 안아주던 그의 체온에. ....그의 모든 것에 빠져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그와 함께하고 있노라면, 내가 재판관 아이린이 아니라 이베리아 출신의 소녀 아이린이 된 것만 같았다. 그의 곁에 있으면 이따금씩 허황된 꿈을 꿔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모든 것을 잊고, 그의 곁에서 함께하는 꿈을.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났다. 검은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한 무렵. 나는 고향과 대의를 위해 그의 곁을 떠나 이 이베리아의 바다로 왔다. 그의 곁에 있다간 모든 대의를 잊어버릴까 봐, 이베리아의 재판관이라는 나의 의무를 등한시 할까봐. 내 앞길을 비출 등불을 잃어버리게 될 까 봐.


  하지만, 결국 나는 등불을 잃었다. 의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세뇌하며 박사의 곁을 떠난 이미 그 순간부터, 나의 등불은 내 곁을 떠났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한참 예전부터 등불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괜찮을까? 마음 같아서는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고, 그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등불을 잃은 재판관이다. 돌아갈 길을 찾으려 해도, 등불이 없으니 어둠 속에서 나아갈 수 없겠지. 이제 내게 남은 길은 하나 밖에 없다.


  그는 괜찮을 거야. 로도스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그를 지켜줄 사람은 잔뜩 있으니까. 그 재수 없는 성게도 있고, 더더욱 재수 없는 범고래나 상어도 있다.


  바닷물이 발목을 쓸었다. 스산하게 으르렁거리는 짐승과 같은 소리가 난다. 솟구친 파도의 잔해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가볍게 숨을 내쉬며 이를 묵묵히 맞았다. 쏟아지는 비는 온 몸에 묻은 나와 녀석들의 피를 쓸어냈다. 내 몸을 타고, 생명의 증거들이 흘러 내린다. 이미 하나로 뒤섞이기 전부터 구별할 수 없던 두 가지 액체가, 바닷물에 뒤섞여 흩어져 간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제 멋대로 꿈틀거린다. 이젠 정말 한계다. 하지만, 절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는 않겠어.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품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캐넌을 잡았다. 모든 탄환을 소모하고 이제 남은 총알은 오직 한 발 뿐이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총알이다.


  가만히 총을 응시했다. 미련 없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각오와는 달리,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을 듣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 삶에 미련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그를 떠올려버려서 일까.


  등 뒤로, 참방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갑자기 들린 소리였지만,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몸이 말을 안 듣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등 뒤로 들리는 그 소리는, 그 녀석들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의식을 가지고 두 발로 물을 밟는 소리. 해사들은 낼 수 없는 소리다. 생존자일까? 그렇다면 이 곳은 위험하다. 아니, 내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저에게서 떨어지세요."


  고개를 돌려 정체 모를 생존자를 응시했다. 넝마가 된 외투와 얼굴을 거의 다 가린 바이저. 맨살 하나 드러나지 않는 의문의 생존자는 내 곁까지 다가왔다. 검을 휘두를까 했지만 관뒀다. 그는 나에게 적의가 없어 보였다. 


  반 쪽 짜리 시선을 옮겨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멀쩡했다. 발걸음에 지친 기색이 보이긴 하지만, 나와는 달리 그의 몸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보였고 그의 발걸음에는 아직 분명한 희망의 빛이 녹아 있다. 


  약간의 이기심을 섞어, 그에게 고마웠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는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에게 내 이름 정도는 남기고, 이 검을 넘겨주고 끝을 맞이하자. ...그렇다면 저 이름 모를 생존자는 내 이름 정도는 기억해주겠지.


[.......?]


".....어떻게?"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하나 밖에 없는 나의 눈으로 그의 몸을 훑었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서야 발견했다. 그의 외투 아래에 있는 그의 옷을. 


  박사의 옷을.


"....박사?"


  정체 모를 생존자. 아니,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눈물이 흘렀고 그의 품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아니면, 이것마저 그 붉은 미치광이의 환각일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이게 내 마지막이라면,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그 미치광이가 준비해준 마지막 유혹이라면. ....나는 이제 넘어가 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품에 뛰어 들어 안기지는 않았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


  그는 나에게 물었다. 괜찮냐고. 다친 것 같다고. 자기가 이 근처에 은신처가 있으니 같이 가서 치료를 받자고.


  한 쪽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후드 끝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그가 내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박사.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상냥하구나. 그래서 당신을 사랑했어. 그래서 당신의 곁을 떠났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이대로 그와 함께 그의 은신처로 간다면 분명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도 있다. 그 재수 없는 성게나, 촉새 같은 갈매기, 걸벽증 걸린 해룡이나 망할 상어도. 어쩌면 그들 모두 멀쩡하게 살아 남아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설령 그 혼자 살아 남았다면... 순간 이기적인 상상을 해버렸다. 끔찍한 생각이라고 일축했지만, 이미 머리 속에 떠오른 광경은 선명하게 눈 앞을 스쳤다. 그의 은신처는 그 혼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을 것이다. 아마 그는 모자란 의약품을 전부 긁어모아 다친 나를 치료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친 상처에 붕대를 감고, 찢어진 옷을 갈아입고, 지친 몸을 쉬게 하며... 그렇게 그와 단 둘이서...


  또 고개를 저었다. 그 상상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 달콤했지만, 이것은 나를... 아니, 그를 죽이는 독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마음도. ....몸도.


"저는 같이 갈 수 없어요. 박사님, 어서 여기서 피하세요. 여기는 위험해요."


  그래서 박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내 이기심으로 그의 곁을 떠난 내가, 이제 와서 그의 곁에 머물 자격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기적에 가까운 마지막 만남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뿐.


  오른손으로 왼손에 묶었던 검을 풀었다. 이것을 박사에게 건냈다.


"받아요. ...없는 것 보다는 낫겠죠."


  더 이상 나에게 검은 필요 없다. 그와의 마지막 이별을 끝마치면, 나는 그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변해버린 내 몸을 부숴버릴 것이다. 절대 그 녀석들에게 넘겨줄 수 없으니까. 이제 와서 더욱 확실해졌다. 그 녀석들에게 빼앗긴 내 시체라 할지라도, 내 추악한 모습을 눈 앞의 그에겐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박사는 검을 받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곤, 오히려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이건.


  박사가 건넨 등불을 받아 들었다. 


"이건... 스승님의 등불..."


  오른손으로 등불을 쥐었다. 아직 제 기능을 잃지 않은 등불이 밝은 빛을 냈다. 흔들리지 않는 밝은 빛이 주변을 비췄다. 순간 반쪽짜리 시야가 온전하게 돌아온 것만 같았다. 넓어진 시야가 온전하게 그를 담았다. ...박사. 너는 역시 나의.....


"......윽."


  그의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온 몸의 발작이 심해졌다. 당장 요동치는 왼손을 억지로 억눌렀다. 머리 속에 노래 소리가 울렸다. 그를 잡아, 그의 팔을 자르고 다리를 끊어 그 곳에 묶어 둬. 어서. 지금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좋지 않다. 손에 든 등불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아츠를 담았다. 등불의 빛이 거세질수록 머리 속을 울리는 노래소리가 노이즈가 껴 희미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이 등불이 영원히 버텨줄 수는 없겠지. 지금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내 머리를 타고 울리는 미치광이의 노랫소리는 그렇게 울렸다. 


  그 미치광이가 어째서 박사를 노리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를 넘겨줄 수는 없다.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어요."


  등불을 높게 들어 올렸다. 자 등불아, 밝게 타올라 길을 비춰줘. 아츠를 담아 환하게 타오르는 빛이, 어둠을 가르고 뿌연 안개를 뚫어 나아갈 길을 비췄다. ...내가 아니라, 박사가 걸어갈 길을. 


"여긴.... 여긴 위험해요."


  경련하는 왼손을 억지로 억누르며 그에게 건네주려 했던 검을 잡았다. 그가 나에게 준 이 등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 이 등불이 꺼지는 순간, 그는 나아갈 길을 잃게 될 테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검을 거세게 쥐어 잡고, 반대로 핸드캐넌을 그에게 건넸다. 이제 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검 보다는, 이 쪽이 그가 사용하기 더 간편하겠지. ...설령 그가 쏠 수 없어도 괜찮다. 재판관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총은, 그 자체로 뛰어난 무기니까.


  그에게 억지로 핸드캐넌을 건넸다. 박사는 드디어 거절하지 않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박사의 표정에 파란이 일었다. ...봐 버렸구나, 박사. 


"어서 가세요. ....마지막으로 제가, 당신의 앞길을 밝혀드릴게요."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근처의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아마 곧, 또 다른 '파도'가 몰려올 것이다. 더 이상 나는 버틸 수 없을, 거대한 파도가.


  이번이 진짜 나의 마지막이다. 슬슬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 머리 속에 울리는 노랫소리도 곧 더 커질 것이다. 성도 카르멘께서도 버티지 못했던 검은 파도를, 내가 이겨낼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내 이기적인 결정으로 곁을 떠나서 미안했다고, 로도스에 있는 기간 동안 내 곁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한다고.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그 어떤 말을 하건, 분명 내 이기적인 고백은 그의 마음에 남아 미련이 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의 앞길을 비춰줘야 할 내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에 대한 내 진심은, 마지막까지 내 속에 묻어둘 뿐이다. ...나는 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의 등불로 남아야 한다. 


  이젠 입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박사는 계속 나에게 말을 했다. 같이 가자고,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고. 그는 끊임 없이 나를 걱정했다. 이젠 대답할 기력도 없어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기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를 세겼다. 마지막으로 듣는 것은 그의 목소리 뿐이고 싶다. 그 미치광이의 노랫소리가 아니라.


  박사가 드디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의 곁에서 함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감쌌지만, 포기했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가 내딛은 길 앞으로 등불의 빛을 비춰주는 것 뿐이다. 자 박사, 어서 가. 이젠 뒤돌아 보면 안 돼.


  내 등 뒤로 파도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에게서 눈을 때지 않았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조용히 지켜봤다. 그렇게 박사의 모습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할 무렵. 그의 얼굴조차 희미하게 보일 무렵. 


  그가 입을 움직여 마지막 말을 나에게 전했다.


[.....]


"......"


  결국 터져나온 눈물을 쏟았다. 볼을 타고 흐르는 두 줄기의 눈물이 뜨겁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고개를 저어 눈물을 훔쳤다. 아아 박사. 역시 당신은 끝까지....


  ...고마워.


"....네. 저도. ...저도 그래요.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에요!"


  마지막으로 내 진심을 담아 외쳤다. 그에게 내 목소리가 닿았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내 등뒤까지 닥쳐온 파도로부터 그를 지키고, 그의 앞길을 밝혀야 한다. 검을 뽑았다. 아직 온전한 오른손으로 등불을 치켜 들었다. 언제나 모든 재판관들의 앞길을 비춰주던 이베리아의 등불은, 검은 파도에 가로 막혔다. 나 역시, 이 검은 파도에 집어 삼켜지겠지. 하지만 괜찮았다. 검은 파도가 모든 테라를 덮는다 할지라도, 내 등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테니까.



잘 있어요, 나의 등불. 


------------------------------------------------------------ 

https://arca.live/b/arknights/57706592

전편 링크


예아 반갑소.

결국 참지 못하거 질러버린 아이린 소설. 

조금 급하게 쓴다고 퀄리티가 살짝 떨어질 수도 있음. 그래서 일단 실시간으로 조금조금씩 수정하는 중. 


...솔직히 아이린 컷신이랑 바로 위에 있는 저 짤이 너무 취향저격이었다. 

이걸로 언펙터 때 아이린 뽑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박사의 대사는 일부로 적지 않았음. 

아주 기본적인 문장은 유추할 수 있겠지만, 조금 몰입을 돕기 위해 각자의 말투와 하고 싶은 말을 적으면 됨.

그래서 일부러 이름 부르는 곳도 안 적었음. 아무렇게 부를 수 있게. 


그리고 일단 다음 부분은 록라 스토리와 다를 수 있음.


1)아이린은 대침묵 시즌2가 시작되자마자 로도스를 떠남. 그래서 로도스의 상태를 모름. 애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신은 못 하는 상태. 

2)원흉이 시테러인건 알지만, 스카디 본인인줄은 모르는 상태. 그래서 그 미치광이, 정도로 두루뭉실하게 표현하고 범고래도 언급하는 것.


의외로 아이린은 검을 왼손으로 쓰더라고. SD 상이긴 하지만.

그래서 변이된 왼손에 검을 묶고 싸운다, 는 느낌으로 적었고. 나중에는 등불을 찾아서 일시적으로 몸상태가 적당히 괜찮아져서 그냥 잡았다고 적었음. 재판관의 등불은 그 자체로 해사들을 억제한다는 설정이니까.


그리고 아이린은 몸의 절반이 해사화 된 상태라, 이샤ㅡ믈라의 지배 하에 노출됐다는 느낌. 그래서 박사가 시선에 들어오자마자 알아채고 박사 잡으러 온 거. 세뇌에 넘어가지 않은 건 아이린 본인의 정신력빨이라는 느낌.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더 나은 글을 위해 언제나 피드백 받음.

그리고 댓글 보는 맛으로 글을 쓰는 파라, 댓글 많이 달아주면 하나하나 다 읽고 쥰내 열심히 글 적음.


댓글 달아줘 어서 

잔뜩 달아줘 당장





일단 단편 신청은 받지만 확정은 아님.

그래도 이 글쟁이는 시간이 걸려도 무료로 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