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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로 살다보니 과거를 잊은건가요? ”


늦은 밤, 로도스 아일랜드의 3번 훈련장에 때 아닌 열기가 가득 차있었다

사전에 사용신청서를 낸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엔지니어링부의 사람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이 열기를 일으킨 장본인들 중 한명인 글래디아가 제 할 일을 끝 마친 창을 곧추 세웠다

그녀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체력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글래디아는 자신 앞에서 온 몸으로 탈진을 표현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안타까움이 담긴 시선을 향했다


“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어요. 당신도 동의하시겠죠? ”

“ 하‥ 지만…. ”

“ '하지만' 은 없어요. 당신은 지금 빈틈투성이에요. ”


스펙터, 아니 로렌티나는 숨을 고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걷어차인 오금에 미약하게 전기가 흐르는듯 했다

그녀가 그녀답게 있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이렇게 쉽게 뒤를 잡히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수녀로 지내던 시간동안 온 몸에 붓기가 차올랐다

이 붓기를 빠른 시일 내로 빼내야만 한다

채 가시지 않은 통증을 교훈삼아 스펙터는 머릿 속의 해야할 일 목록에 그것을 적어 넣었다


그러나, 그것은 로렌티나의 체크 리스트 1순위는 되지 못했다

그녀가 글래디아가 빈정대는 소리대로 과거를 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오늘 당장 해결해야할 일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 저도 소드피쉬의 말에 동의하지만 오늘은 넘어가주시면 안될까요? ”

“ 어째서죠? ”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탓에 글래디아의 한쪽 눈섭이 미세하게 치켜올라갔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치곤 드문 반응이었다

범인이라면 알아차리기 힘들겠지만 로렌티나는 오랜기간 그녀와 함께 지낸 덕에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로렌티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글래디아는 화가 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완벽한 그녀가 화를 내야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탐탁치 않은 것 같은 반응을 내보인 것은 의구심 때문이었다

평소였다면 스펙터가 대답을 회피할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우아한 외견을 가진 것과 다르게 그녀는 직진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로렌티나가 그녀를 잘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으로 그녀는 로렌티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대치 아닌 대치가 이어지던 중, 글래디아는 먼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스펙터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을 부탁할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그녀가 글래디아가 아는 다른 헌터들보다 조금은 게으를지라도,  동료를 져버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쌓인 붓기가 어느순간 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내일은 기회가 있곘지

글래디아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 그럼 그렇게 하죠. ”

“ 고마워요, 소드피쉬. ”

“ 저도 마침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잘 되었군요. 그럼 내일 보죠, 로렌티나. ”


글래디아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훈련장을 떠났다

오늘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 때만큼이나 우아한 걸음걸이였다

로렌티나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여전히 다리는 삐걱대는 체였다


스펙터가 훈련장을 나왔을땐 이미 글래디아는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전투에서 본성을 해방할 때를 제외하곤 철저히 본인을 감춘다

문명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녀가 택한 철칙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한 철칙 아래에서 그녀는 마치 하늘 아래 자기 밖에 없는 것처럼 늘 느긋하고, 우아하게 살아갔다  

원칙주의자인 그녀가 아무 이유없이 이렇게 서두를 리 없다

3번 훈련장과 대기실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 생겨났다


로렌티나는 머릿 속에서 의심이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에 그것을 떨쳐냈다

대신 글래디아도 아직 머릿 속에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을테니 이로써 빚진건 없다고 여기기로 했다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감추는 일이 한두번은 아니지만 말이다


로렌티나는 바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열리는 틈 사이로 생기있고 달콤한 향기가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로 수많은 예술서적과 조각품들, 그 밖에 수많은 기호품들이 담겨있는 그녀의 작은 보물상자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입었던 의복을 벗어버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훈련장에 가기 전 미리 떠놨던 물그릇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향료를 두방울 어치 풀었다

이것만으로도 은은한 향기가 올라와 로렌티나의 콧가를 간지럽혔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듯이 웃음기를 머금었다

검지 손가락 만을 물 안에 밀어넣었다 그러자 그 손가락을 중심으로 향료와 물이 뒤섞여 가벼운 파문이 일었다

그것을 가볍게 휘저어 물을 향료의 색으로 물들여갔다

물에 향료가 잘 풀린 것을 확인한 로렌티나는 잘 말린 타월을 꺼내 그릇 안으로 밀어넣었다

타월의 가장자리부터 향료를 푼 물이 흡수되며 짙은 색으로 변해갔다

로렌티나는 타월에 물이 충분히 젖어들때까지 몇번이고 풀어 다시 물 속에 집어넣었다


잠깐 고개를 들자 책상 위에 박사가 보낸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편지를 받은 어젯 밤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소드피쉬가 옳았다 

어젯밤부터 자신은 이 편지에 대한 생각만 해왔고 그것이 오늘의 방심으로 이어졌다


물러졌어요 로렌티나

하지만 유쾌하네요

로렌티나는 마치 또 다른 자신이 자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타월을 들어 물이 잘 적셔졌는지 확인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온 몸을 정성스레 문질렀다

평소라면 남사스러워 건들이지 않았을 부분까지 아주 정성껏


한차례 몸을 다 닦아낸 뒤에도 전신거울 앞에서 몸을 둘러보며 한번 더 점검했다

자신의 몸에 혹시라도 남았을 티끌을 제거하고 만전의 상태로 기하고 싶었다

군살이 좀 붙긴 했지만 애교로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인이 끝난 로렌티나는 옷장에서 잘 입지 않았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것엔 새까맣지만 어슴프레 주변 빛을 반사해내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작품에 까다로운 그녀가 보기에도 이것은 틀림없는 상등품이었다

박사도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준비를 마친 스펙터는 박사의 방 앞으로 향했다

훈련으로 인해 무거워졌을 다리도 어느샌가부터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밤이 늦어 복도에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것이 그녀의 기분을 더 고취시켜 주었다

그녀의 수준엔 턱 없이 모자라는 장소지만 박사와 둘만 있다면 분명 낭만 있을 것이다


그녀가 목적지에 다다라갈때쯤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것은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그녀는 그 인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스펙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태연하게,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 …상어? ”

“ 스카디. 박사에게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


와야할 대답은 오지 않고 그녀는 그저 스펙터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글래디아가 오늘 네가 훈련을 하는 날이라고 말했었는데... ”

“ 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가벼운 운동만 했어요. 대장도 바쁜 일이 있어보였구요. ”

“ 글래디아가…. 그래. ”


스카디는 시선을 돌려 방사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박사는 바쁜 사람이다

되려 이 시간에 방 안에 온전히 있다는 것이 어색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방 안에 박사가 있다고 확신했다

단순히 인기척이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스카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아무래도 볼 일이 있는건 내가 아니라 너인것 같아. ”

“ 제가요? ”


로렌티나는 농담을 들은것마냥 가볍게 웃어보였다


“ 그럴리가요. 저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스카디를 만난 것 뿐인걸요? ”

“ …그래. 너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들고서. ”


그녀들의 시선이 한순간 같은 곳으로 모였다

로렌티나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머니에는 책의 모서리처럼 보이는 부분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그 물건을 주머니 깊숙히 밀어넣었다


“ 그냥 제가 보고 싶은 걸 수도 있잖아요. ”

“ 하지만 너가 그걸 사면서 했었던 말에 의하면…. ”


로렌티나의 포커페이스에 금이 갔다

스카디는 멍해보이지만 불과 몇달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것은 그녀와 몇년간 등을 맞대고 싸워온 로렌티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스펙터는 한동안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스카디와의 대화에서 맥이 막힌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몇번을 주저하던 로렌티나는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 그래요. 혼자 보기엔 아까운 서적이라고 했었죠…. ”


스카디와 스펙터의 머릿 속에는 동일한 물건이 맴돌고 있었다

그 편지

박사는 한동안 본함에 있지 않았다

그녀들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기간이 꽤 될 것이다

적어도 스카디와 스펙터가 박사를 그리워할 정도는 됐다


그녀들은 사냥의 프로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선 한치 앞을 모를 정도로 서툴렀다

스카디와 스펙터가 보기엔 박사는 그저 눈을 떼면 파도에 휩쓸려 갈 자갈에 불과했다

그녀들에겐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들은 사전에 짜맞춘듯이 똑같이 행동했다

라이타니엔 사무소로 외근을 나가는 의사 일행을 붙잡아 

박사에게 편지따위는 읽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자신들의 편지를 전달했다

그 편지의 답장까진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얘기를 박사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주길 바랬을 뿐이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가 가장 기꺼운 법이다

그녀들은 편지의 대답을 받았던 어젯밤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을 의사의 방문이 그 날따라 어찌나 반가웠는지….

그리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박사가 돌아온다는 오늘 만을 기다려왔다

그녀들은 틀림없이 오늘이 멋진 밤이 될거라고 상상했었을 것이다


“ 우리 솔직해지기로 해요, 스카디. ”


스펙터가 스카디를 끌고 박사의 방으로부터 조금 멀어진 곳으로 향했다

복도의 끝이라 어둑하고 외진 곳이었다 

평소엔 이런 장소를 기피하지만 지금같은 대화를 하기에는 적당했다

스카디의 눈을 바라보던 로렌티나는 먼저 운을 뗐다


“ 저는 박사를 좋아해요. 이 구닥다리 같은 상자 안에서 대화를 나눌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박사를 제외하곤 몇명 없어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잖아요? 그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행운인 셈이죠. ”

“ …우리 지금 복도에 있는건 알고 있는거지? ”

“ 물론이죠. 그리고 지금은 한밤중이구요. 박사의 방 주변에 인적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


스카디의 말을 들은 로렌티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 보며 오가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복도는 여전히 고요했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스카디, 저는 당신이 무도회에서 박사와 춤을 추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 당신의 표정은… 부끄러울 수도 있으니 자세히 표현하진 않겠어요.

하필이면 당신의 앞 순번이 소드피쉬였다는 것을 감안해도, 당신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너무 티가 났다는 사실을 아나요?

숨기고 싶었다면 대장이 박사랑 춤을 출 때처럼 기계같이 춤을 췄어야죠. ”


글래디아가 자신의 속을 숨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무미건조한 시선에 비하면 스카디가 박사를 향하던 시선은 너무나 노골적이었을 뿐이다

스카디는 조금 부끄러웠는지 한쪽 발을 주춤거리며 다른 발의 뒤로 뺐다

그늘이 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틀림없이 그녀의 얼굴은 달아있을거라고 로렌티나는 생각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 제 말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오늘 양보할 수 없다는거에요. ”


스카디는 잠시 아무말 없이 로렌티나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멍한 시선이 아니라 확실한 목적이 담긴듯한 강렬한 시선이었다


“ 그렇게까지 날 관찰해왔으니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알겠지. ”

“ 그럴거라 생각했어요. ”


로렌티나는 드물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문득 과거의 자신에게 지금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물러졌어요 로렌티나 

그 말이 머릿 속에 자꾸만 맴돌았다

설마 동료와 연적이 될 줄이야

스펙터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자신의 머리가 아파야만 할까 얄궃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머리가 아파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이 이후에 박사를 마주친다면 반드시 그의 목 주변에 깊은 자국을 내주리라 다짐했다

거울을 볼때마다 평생 자신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도록


“ 박사에게 물어보죠.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


예상치 못한 말에 스카디의 눈이 한껏 크게 떠졌다


“ 상어,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인거 같아. ”

“ 이제와서 부끄러울게 있나요? 용기있는 자가 박사를 얻는 법이에요. ”

“ 아니, 난…. 휴…. ”


스카디는 스펙터를 대신해서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한동안 말이 없는 것을 보아 그녀도 로렌티나 만큼이나 고민인 것 같았다

1분… 2분…. 

로렌티나는 어비셜 헌터즈의 예민한 감각 덕에 더욱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만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 기다림이 4분을 향해 갈때쯤, 불현듯 스카디의 눈이 떠졌다


“ 좋아. 대신 내일이 되면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잊는거야. ”

“ 약속해요. ”


로렌티나는 스카디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스카디는 망설임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스카디를 앞세워 박사의 방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 소드피쉬가 이 일을 몰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


스카디는 말이 없었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되돌아보면 그다지 유익한 대화는 아니었고 되려 머리만 혼란스러워졌지만

이 일을 알게 된 박사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또 그것도 유쾌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술 풀리는 일에는 감흥이 없고 손에 닿는 과일보단 저 하늘에 닿을듯한 과일이 더 맛있어 보인다

이 과정 또한 박사라는 메인 디쉬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전채일 수도 있다

로렌티나는 생각했다


스카디와 로렌티나는 그 과실을 확인하기 위해 박사의 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 …스카디? ”


문의 인증패드에 자신들의 손이 닿지 않았음에도 갑작스럽게 문이 열렸다

열린 방 문에는 어둠을 걸친 인영 하나가 그녀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스펙터와 스카디의 머리 위로 그 그림자를 드려올만큼 높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이것은 박사가 아니었다


“ 로렌티나까지. 아무래도 두 분 다 볼 일은 이 방에 있었나 보군요. ”


은은한 불빛이 커튼처럼 펼쳐져있는 복도를 향해 길쭉한 다리가 드러나며 한발짝 앞으로 나왔다

덮혀있던 베일이 전등에 의해 벗겨지며 그 인영의 정체가 명확히 보였다

로렌티나는 또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훈련실에서 봤던 그 얼굴, 절대 여기에 있을거라 생각치 못했던 그 사람이었다


“ …. ”

“ 들어가서 하려던 일 마저하세요. 단지… 박사가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겠지만. ”


문득 로렌티나의 머릿 속에 한가지 가정이 지나갔다

그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두커니 서있는 글래디아의 온 몸을 자세히 살폈다




훈련실에서 땀 한번 흘리지 않았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눈에 보일 정도로 뜨겁고 습한 증기를 온 몸에서 풍기고 있었다

항상 가지런히 정리해두는 머리카락도 땀을 접착제 삼아 얼굴에 엉겨붙어 있었으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시체라고 착각할법한 창백한 피부는 상기되어 그 생생함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몸에서 평소같아 보이는 것은 완벽한 옷차림 뿐이었다

로렌티나는 머릿 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글래디아는 넋이 나간 둘을 한동안 내려보더니 그녀들의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려했다

그리고 잠깐 어깨가 맞닿았을때,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로렌티나의 귀 가까이에 입술을 붙였다


“ 당신은 지금 빈틈투성이에요, 로렌티나. 조금 더 신경쓰는 편이 좋겠어요. ”


로렌티나와 스카디는 멀어져가는 글래디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한바탕 일을 끝마친 이후 임에도, 그녀의 품은 놀랍도록 우아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로렌티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자신의 계산 속에 글래디아도 넣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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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상상했던 소재를 이용한 글


왜 갑자기 쓰게 된지는 몰루?


그냥 그림그리면서 언더타이즈 OST 듣다보니 자연스레 쓰고 싶어짐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