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현역]

중2병, 반항의 절정기를 달리고 있을 중3무렵에 

더 이상 집에서 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또 병신같은 선민의식에 찌들어 

같이 학교에서 놀던 친구들이 형편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정말, 굳이 서울 밖을 벗어난 전국 단위 자사고 입학이었음.

학교에서 집까지 존나 멀기에 당연 기숙사 생활을 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커녕 한 학기에 한 번정도 집에 갔음.


문제는 이런 고등학교는 왠만하면 시골 깡촌에 위치해 있어서 학원같은 건 어림도 없음.

스스로 모든 것을 공부해야 된다는 거임.

그래서 여기 입학하는 놈은 이미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공부를 거의 다 보고 온 완성형 괴물이거나

아니면 나처럼 개꼴통 중학교에서 설렁설렁 공부 안 하고 시험기간 때 2주정도만 벼락치기하면 1등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온 인간들이었음.


전자인 부류들은 정시든, 수시든 둘 다 잘하는 괴물들이었고

후자인 부류들은 1학년 첫 학기에 그런 놈들한테 탈탈 털려 내신 평균대가 4~6점대를 받게 되고, 

압도적인 격차를 느낀 이 부류들 중에서도 결국 전학을 가거나, 아니면 나처럼 포기를 하고 그냥

엠생 인생을 살아버리게 된다. 그렇게 나는 엠생 친구들과 함께 공부랑은 관련이 없는,   

축구-피시방-당구장-노래방이라는 타락코스를 매일 타게 되었고

여기에 담배에 기숙사에서 음주라는 환장의 코스를 추가하는 업적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고2 1학기가 끝나고 캐리어를 들고 집에 들어왔을 때 

은폐했던 성적과 내 모든 행적을 모두 알아버린 아버지의 손에는 죽도가 들려있었고

뒤지게 맞았다. 정신 안 차리고 공부 안 하면 자퇴시킨다고 하셨다.


지금 놀고 있던 친구들이 존나 재밌었기 때문에 알겠다고 대충 둘러대고 다시 도망치듯 학교로 돌아왔을 때

개웃음벨이었던건 내가 놀던 친구 무리들 중 거의 대부분이 자기 집에 가서 그런 말을 듣고 온 거임ㅋㅋㅋㅋ


다가오는 고3이라는 위기 의식과 슬슬 무리에서 이탈하여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공부를 시작했지만

거의 일년 반만에 시작하는 고등학교 공부라 개씹노베였고, 그냥 1학년 공부부터 다시 해야했었음.


고등학교 2학년이 1학년이 푸는 개념원리를 열람실에서 풀고 있으니 1학년 두 명이 내 책을 보고는

존나 대놓고 비웃으며 지나갔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그냥 그런 마음가짐으로 1년 반동안 공부하다 보니

스노우볼처럼 점점 공부량을 축적해나갔고 성적도 그에 비례해 가시적으로 오름.


그걸 본 학교 선생들이 그때부터 나를 많이 도와줬었음. 내가 수업을 안 들었어서 몰랐는데, 선생들 경력이 어마어마하더라.

왜 등록금이 존나 비싼 지 알 수 있었다. 고3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모든 과목 등급에 1이 찍혀 있었고, 

그렇게 19수능을 치게 됩니다.


이 해에 국어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것 때문에 멘탈이 나가 제일 자신있는 수학을 그냥 날려버림.

근데 존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날 친 국어가 이제껏 친 국어 중 백분위가 제일 높았다는 거다.

시험장에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친 과목은 그냥 보내버려라



[재수-강대]

성적이 높아지니 꿈도 높아져서 결국 정시로 합격한 대학교에 만족 못하고

부모님도 보기에는 정신차린 아들의 성적표에 적극적인 지지에

정시 '라' 군인 강남대성으로 입학함. 


초장엔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여서 그냥 따라서 했고

빌보드라는 게 있는 데 그냥 모의고사 치면 그냥 성적순으로 쭐룰루 노래 순위 마냥 게시판에 붙여 놓는 게 있었음.

거의 막바지 사설 모의고사에서 거기서 씹 커리어 하이를 찍고 존나 해이해져서 또 엠생 테크를 탐.

재수생이라는 신분을 벗어 던지고 들이킨 술 한 잔, 롤 한 판.. 정말 짜릿했다. 


그렇게 2번째 수능을 치뤘고, 파이널을 제낀 대가로

지구과학 등급에는 '4'라는 충격적인 등급이 떠버렸고

결국 과탐 한 과목을 반영 안 하는 학교에 냈고, 그 학교는 아마 대구에 있었지 싶다.



[3수-군지]

왜 이렇게 자기가 다닌 학교를 두루뭉실하게 말하냐면 입학하기 전에 군대로 빤쓰런을 쳤다.

난 그 학교 가본 적이 없다. 운 좋게 재수를 끝내고 친 토익으로 카투사를 낼 수 있었고 바노사의 기운으로 붙어버렸다!


입대 날 엄마는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당시에 나는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시공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훈련소에서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고등학교 3년 기숙사, 재수를 거치는 동안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한 적이 없었고, 

대화를 한들 공부 때문에 기계적인 대화만 오고 간 끝에 근래, 이제서야, 겨우 제대로 본 아들은 머리를 빡빡 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존나 뭉클해지기 시작했고, 울어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볼 만큼 안 울던 나는 

결국 5분이 주어진 그린비 공중전화 안에서 들려오는 나즈막한 첫 마디에 오열을 해버리고 말았다.


굳은 다짐과 함께 훈련소를 끝내고 온 캠프는 공부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1인실에 모든 전자기기는 반입이 거의 자유로웠고, 자기 일만 잘하면 터치도 없으며

거기에 코로나까지 맞물려 다들 하는 게 ㅈ도 없었다.


그렇게 군인의 신분으로 친 수능은 내가 정말 생각한 만큼 잘 나왔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 수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기대는 ㅈ도 안 했고 제대해서 제대로 볼 생각이었는데 그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그 이후로는 욕심이 나서 말년에 휴가 나가서 다시 한 번 쳤는데 그건 과욕이더라, 

작년 국어도 엄청 어려웠는데 그냥 1교시 치고 바로 놀러나감.  

지금은 전역하고 하루종일 랩챈이나 하고 운동이나 다닌다. 

내년 3월에 24살 신입생으로 입학 예정이다.


너무 잘 치려고 애쓰지 말고 수능이라는 건 또 치면 그만인 시험이다.

재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닌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능을 풀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데 힘 주면 풀릴 것도 안 풀린다.



부디 이제껏 열심히 달려온 랩챈 수능 게이들은 나처럼 2연격이 아닌

한 번에 통관하길 간절히 기도하며...


바노사! 바노사! 바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