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원이 방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외부인이, 그것도 민간인이 방문하는 이상 신경 쓸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처리에 바빴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그렇게까지 신경 쓸 건 없었나, 하는 생각에 지휘관이 쓴웃음을 삼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에도 모항은 잘 정돈되어 있었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청소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일까.


 사관학교 시절, 높으신 분이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칫솔을 들고 화장실와 샤워실의 물때를 닦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높으신 분이 기숙사 구석에 처박혀 있는 화장실에 올 이유가 있기나 한건지.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를 친 지휘관이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고, 시중을 들어주던 카리브디스가 건네주는 재킷을 걸쳤다.


 함선 소녀들과 함께하는 관함식은 별 다른 문제 없이 끝낼 수 있었다. 함선 소녀들의 특성 상 실제 관함식이라기보다는 의장을 전개한 함선 소녀들의 퍼레이드에 가까웠지만


 거대한 함선이 주는 위압감은 없을지 몰라도, 어디 내놓아도 모자랄 바 없는 수려한 함선 소녀들이 의장을 전개한 채 위풍당당하게 걷는 모습은 그 위압감에 꿇릴 것이 아니었다.


 선두에서 그녀들을 이끌던 지휘관이야 혹여 실수할까 노심초사 했지만,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과 달리 몸은 연습한대로 착착 그녀들을 선도했다.


 큰 산을 넘은 셈이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지휘관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지휘관이 거울 앞에 섰다. 평소에 입는 정복과는 다른 복장에 지휘관의 얼굴이 삐뚜름해졌다. 관함식 때 입은 예복은 그나마 몇 번이라도 입어보기라도 했으니 괜찮았는데.


 집사랍시고 입은 옷 자체는 정장이었지만, 목에 맨 나비 넥타이가 이상할 정도로 어색했다. 


 갓 전입 온 것마냥 딱딱하게 굳은 지휘관을 바라보던 카리브디스가 살풋이 웃으며 지휘관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네에, 주인님. 다 됐답니다. 멋지세요."


 애정이 담뿍 담긴 카리브디스의 목소리에 지휘관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듯 카리브디스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지만.


 "빈 말이라도 고마워."


 지휘관이 창 밖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모항 전체를 카페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계획은 과장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함선 소녀들은 실제로 온갖 곳에 테이블을 깔아놓고 엄청난 규모의 카페로 만들어버렸다.


 함선 소녀들의 메이드 체험 중, 손님을 대접하는 걸 경험해보라며 작게 꾸리는 수준이라 여겼다만, 대체 얼마나 의욕에 불탄 건지.


 드문드문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방문객들이 조금은 낯설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함선 소녀들도 보였다. 아름다운 함선 소녀의 모습에 한 눈이 팔려 연인에게 등짝을 얻어맞는 남자도 있었다.


 저 사이를 누비며 팔자에도 없는 집사 노릇을 하게 될 줄이야.


 방문객들 대부분은 함선 소녀들과 모항을 보러 왔지, 지휘관을 보러 오진 않았을텐데.


 차라리 밤을 새서 작전을 세우는 게 나을지도. 지휘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선 소녀들이 고생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으니, 지휘관은 마음을 다잡고 흰 장갑을 끼곤 집무실을 나섰다.


 도착한 카페는 꽤나 분주했다. 본래 적혀있던 인원 외에도 꽤 많은 인원이 있었다. 함선 소녀들의 메이드 체험을 겸한다고 했던가. 제각기 마음에 드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함선 소녀들은 즐거워 보였다. 평소 입고 있던 복장과는 다른 옷을 입은 함선 소녀들의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지휘관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메이드대의 노림수였겠지만.


 카페에 도착한 지휘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에기르였다. 


 "뭐야, 이제 온 건가?"


 개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벌써 싫증이 난걸까, 에기르는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무어라 말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에 에기르를 바라본 지휘관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 입고 있는 전신 스타킹에 비한다면야 노출도가 적다고는 할 수 있었지만, 가슴 가운데만 가리는 메이드복을 입은 탓에 고스란히 드러난 새하얀 윗가슴과 밑가슴이 눈에 독이었다.


 전신 스타킹에 중요 부위만 가린 평소의 복장이 간신히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허를 찌른 기습이었다.


 그 때 저 너머 함선 소녀들을 진두지휘하던 벨파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지휘관은 벨파스트를 보며 에기르를 눈짓했다. 벨파스트의 눈길이 에기르를 슬쩍 향했지만, 벨파스트는 도리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무엇이 잘못 됐냐는 뜻이었다.


 하기야, 평소에도 에기르 뿐 아니라 다른 함선 소녀들 또한 워낙 자유분방하게 옷을 입고 다니긴 했다만.


 지휘관은 모항 내에서 하나 뿐인 남자인 자신을 위해 그녀들의 옷차림을 지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별 말을 하지 않기는 했다. 그가 조심하고 또 익숙해지면 될테니까.


 물론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리가 없었다.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눈길이 이리저리 돌아가는 지휘관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함선 소녀들이 지휘관을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은 지휘관만 모르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어찌됐든 이미 총 책임자인 벨파스트의 허가가 있었다면 지휘관이 군말을 더 할 건 없었다.


 메이드복, 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을 입은 에기르를 보고 아까와 같이 등짝을 얻어맞은 피해자가 더 없길 바랄 수 밖에.


 "사람이 말을 걸었으면 쳐다 봐야지."


 에기르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지휘관은 밑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애써 고정하며 에기르에게 물었다.


 "미안, 잠깐, 잠깐 정신이 없어서."

 "흐응, 왜, 주변에 메이드가 잔뜩이니 흥분이라도 했어?"


 에기르가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모든 함선 소녀들의 귀가 쫑긋 섰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카페 내부가 묘하게 조용해진 것은 착각일까. 지휘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아쉽게도 아직도 여성을 대하는데 익숙지 못한 지휘관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어색한 침묵 뿐이었다.


 어떻게 해석할지는 함선 소녀들에게 달려 있었지만, 그 순간 벨파스트와 카리브디스가 은근한 미소를 띄운 것을 지휘관은 눈치채지 못했다.


 "칫, 재미없긴."


 에기르는 그리 말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새 관심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차라리 지휘관에겐 다행이었다. 평소 복장도 간신히 익숙해졌거늘, 얼굴을 붉히지 않고 에기르와 대화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벨파스트가 지휘관을 이끌었다.


 "옷차림이 잘 어울리십니다, 주인님. 제 안목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군요."

 "내가 접대하는 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건 걱정 마시길. 주인님께서는 여기 계시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니까요."


 벨파스트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모항의 지휘관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함선 소녀들에게 엄한 짓을 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은 없긴 할 터였다. 그런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다.


 "네에, 정말로요."


 ……아마도 그런 목적이 맞겠지. 


 "잠깐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잠깐 손님을 어떻게 접대해야할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인도미터블 님도 오셨으니 같이 배우시면 되겠군요."


 그래도 정말 가만히 서있기만 해서는 안될터니, 지휘관은 벨파스트가 이끄는 대로 카페 안 쪽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슥 둘러본 카페는 언뜻 부산스러워 보이는 와중에도 메이드대의 주도 하에 혼란은 없었다.


 저 몸놀림의 반의 반이나 따라갈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도미터블의 복장을 본 지휘관은 얼굴을 감싸쥘 수 밖에 없었다.


 메이드복이라고, 봐야하긴 할까.


 커다란 엉덩이에 밀려올라가 아슬아슬한 스커트는 그녀의 체형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이라도 하지, 가뜩이나 커다란 가슴, 그 가슴께를 가리고 있는 것이라곤 그리 면적이 넓지 않은 팔랑거리는 레이스 뿐이었다.


 까딱하다간 분홍빛 흔적이 그대로 보일게 뻔했다.


 접대하다보면 허리를 숙일 일도 많을텐데, 그때는 그때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윗가슴은 또 어떻게 할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언어조차 되지 못한 표현으로, 지휘관은 고개를 돌려 벨파스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에기르 때와 다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주인님."

 "저게……?"


 무심코 되묻고 말았지만, 벨파스트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눈으로 되물을 뿐이었다.


 "뭐에요,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요?"


 소파에 늘어져 있던 인도미터블이 지휘관을 향해 물었다. 마찬가지로 뭐가 잘못 됐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물론, 인도미터블의 평소 복장이 엄하긴 했지만, 생판 모르는 손님을 접대하는데 저런 복장이, 괜찮은 걸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주인님."


 돌아온 벨파스트의 답변은 단호했다. 사실 잘못된 건 지휘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에도 지휘관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녀들의 말을 존중해주는 것 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현실도피라 할 수 있었고.


 걱정과는 다르게 인도미터블은 벨파스트의 지도를 잘 따라왔다. 평소 만사 귀찮아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진중한 모습이었다. 나름 제식을 익혀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던 지휘관은 벨파스트에게서 쓴 소리를 제법 들었는데도, 인도미터블은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던 모양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도미터블 님, 주인님. 이 정도면 손님에게 누를 끼치진 않겠군요."

 "수고했어, 벨파스트."

 "별 말씀을. 잠깐 쉬시지요.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삼십 여 분이나 진행된 벨파스트의 지도가 끝나고 벨파스트가 카페를 나섰다. 지휘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에 속성으로 진행된 집사 강의는 꽤나 고단했다.


 "갔죠……?"


 아니나 다를까, 시야에서 벨파스트가 사라지자마자 인도미터블은 테이블에 푹 늘어졌다.


 "으으, 벌써부터 귀찮아졌어요. 저기, 지휘관 님, 지휘관 님은 아주아주 훌륭하신 분이니까, 메이드 업무도 당연히 식은 죽 먹기죠? 메이드 체험이랑 카페, 나머지는 지휘관 님이 제 몫까지 대신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해도 말이야, 벨파스트가 그렇게 놔두려나."

 "하아, 역시 안 되겠죠……. 제가 무슨 호사를 누리려고 이걸 한다고 했을까요."


 푸념을 늘어놓는 인도미터블을 보며 지휘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 말해도 지휘관이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있진 않았다. 그나마 해 줄 수 있는 건, 흠.


 "안마라도 해줄까?"

 "아, 안마 해주시려구요? 뻐근한 참이었는데, 잘 부탁드릴게요."


 늘어진 인도미터블에게 그리 제안하자 인도미터블은 화색을 띄우며 의자에 바로 앉았다. 사실 이걸 노린 게 아닐까. 그렇게 커다란 흉기를 달고 있으니 어깨가 굳을 법도 했다.


 물론, 지휘관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일은 없었다.


 속아 넘어간 기분이었지만, 안마 정도라면야.


 한껏 드러난 인도미터블의 가슴께에 자꾸만 눈이 갔지만, 어깨를 안마해주는 것 뿐이니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그리 생각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응흣, 흐으……. 아, 거기잇…… 좋아요오……."


 분명 가볍게 안마를 해주고 있을 뿐인데, 왜 야릇한 신음 소리가 인도미터블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지.


 "응, 앗, 앗, 네에, 거기이……."


 지휘관의 손길이 닿은 어깨 뿐만 아니라 인도미터블의 윗가슴께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커다란 가슴 너머로 슬쩍슬쩍 보이는 푸른 핏줄에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합쳐지니, 지휘관은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안마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게 하책이었던걸까.


 "하아, 후으, 후……."


 눈을 감으니 손 끝에 닿은 여린 인도미터블의 피부와, 조금씩 거칠어지는 인도미터블의 숨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지휘관은 인도미터블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인도미터블의 입가에서 아쉬운 듯 여린 한숨이 새어나왔다.


 지나치게 만족한건지, 혹은 반대로 부족한건지. 흐리멍덩하게 풀린 인도미터블의 눈이 지휘관을 향했다.


 숨길 수 없는 색기에 지휘관이 작게 숨을 삼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러선 것은, 불가항력이니 봐줄 것이다.


 "저기, 잠깐 자리 좀 비울게."


 전략적 후퇴를 택한 지휘관의 소매가 당겨졌다. 뒤를 돌아보자 지휘관의 소매를 붙잡은 인도미터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지휘관 님, 저희 땡땡이 칠래요?"


 방금까지 흐릿한 눈동자는 어디로 갔는지, 요염한 미소가 인도미터블의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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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글을 쓸 때는 해당 캐릭터를 비서함으로 세워놓고 글을 씁니다. 대사를 참조하기 위해서인데, 터치 대사를 볼 겸 한 번씩 터치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인도미터블의 엉덩이를 스무 번 쯤 터치했습니다. 스커트를 먹고 있는 인도미터블의 커다란 엉덩이골을 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도미터블도 자기 엉덩이를 폰으로 찍고 있으니 정당방위가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어느 분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변태 같은 후기입니다.


 이번에도 읽어주시고, 또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