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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30개 구단들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팀이자, 내셔널 리그의 창립 멤버.

세 곳의 연고지에서 모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유일한 팀이자, 14시즌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내셔널 리그의 강자.

모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길고 긴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약칭 : ATL

연고지 : 조지아 주 애틀랜타

창단년도 : 1871년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14, '57, '95, '21)

홈구장 : 트루이스트 파크

별칭 : 브라보스(The Bravos), 90년대의 팀(The Team of the 90s), 미국의 팀(America's Team) 등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소속

통산 성적 10921승 10818패 승률 0.502 (1871년 ~ 1875년 보스턴 레드스타킹스 시절 제외)



창단 초기 (1876년 ~ 1900년)

투수로서 역대 TOP 10 안에 드는 성적을 올린 대투수 키드 니콜스

1869년 창단된 최초의 프로 야구팀이었던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는 당시 전미 유일한 프로팀이자 최강팀이었으나, 다른 프로팀이 없는 관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대팀을 찾아다니는 불안정한 운영을 했다.

명색이 프로팀인 만큼 다른 아마추어팀들보다 들어가는 자본도 막대했던지라, 1870년 시즌이 끝난 후 공식적으로 해체한다.

레드스타킹스의 선수였던 해리 라이트를 비롯한 4명은 1871년, 최초의 프로 야구 리그를 구성한 NAPBBP 소속 보스턴 레드스타킹스에 합류한다.

레드스타킹스는 창단 첫해인 1871년, 31경기 20승 .667로 리그 2위를 차지한 뒤, 4년 연속으로 리그를 제패했다.

알 스펄딩, 로스 반스, 조지 라이트 등이 활약하며 리그를 초토화시킨 후, 1876년에 내셔널 리그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셔널 리그 합류 첫해인 1876년에는 8팀 중 4위(승률 .557)로 다소 가라앉았지만, 이듬해부터 2년 연속으로 리그를 우승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러다 1883년에는 스포츠 기자들에 의해 비니터스로 불리게 되었고, 팀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레드스타킹스/비니터스는 명실상부 19세기 최고의 팀이었으며, 1891~93시즌 3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8번의 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프랭크 셀리가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선수 겸 감독이 아닌 최초의 감독이었다.

1897년 시즌에 세운 .705의 승률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프랜차이즈 최고 승률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허먼 롱, 휴 더피, 빌리 내시, 존 모릴, 빌리 해밀턴, 에즈라 서튼, 바비 로우, 조지 라이트, 로스 반스, 지미 콜린스, 키드 니콜스, 짐 휘트니, 존 클락슨, 알 스펄딩, 토미 본드, 잭 스티베츠, 찰리 버핀턴이 있다.



미라클 브레이브스 (1901년 ~ 1935년)

미라클 브레이브스의 상징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이후 14경기만 출장하고 은퇴한 빌 제임스

1901년, 밴 존슨이 아메리칸 리그에 공식적으로 메이저 리그를 선언하고, 비니터스의 연고지인 보스턴에 아메리칸 리그의 야구단이 생긴다.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다.

레드삭스가 비니터스보다 더 좋은 계약을 제시하면서 많은 선수들이 유출되가면서 19세기를 주름잡았던 비니터스는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레드삭스의 창단 첫 시즌인 1901년과 이듬해 시즌에는 5할 승률을 지켜냈지만, 1903년 시즌 .420을 시작으로 1913년 시즌까지 여섯 번의 100패 시즌과 (8팀중)5위가 최고 순위였을 만큼, 지난날의 화려한 시절과 딴판의 팀이 되어버렸다.

팀 이름도 1883년부터 계속 사용해오던 비니터스를 버리고 1907년부터 도브스, 1911년에는 러슬러스를 사용하다가 1912년부터 브레이브스라는 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으로 맞이한 세 번째 시즌인 1914년에도 어김없이 26승 40패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별탈없이 최하위를 달성할 것으로 여겨졌던 브레이브스는 7월 6일부터 9월 5일까지 41승 12패를 기록했다.

게다가 9월 7일과 8일에 브레이브스는 리그 선두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2승을 달성하며 리그 선두에 오르기까지 한다.

그 후 자이언츠가 16승 16패를 기록할 동안 25승 6패로 마감하면서 리그 우승에 성공하고야 만다.

이는 7월 4일에 꼴찌였던 팀이 리그를 우승한 유일한 사례다.


월드 시리즈 시행 이후 첫 WS무대에 오른 브레이브스의 상대는 지난 4년간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한 당대의 초강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였다.

브레이브스가 기적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어도 대부분은 에이스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브레이브스는 에이스를 4대 0으로 제압, 역대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스윕을 달성하며 창단 첫 우승에 성공한다.

그렇게 브레이브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남기며 미라클 브레이브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1916년까지 5할 승률을 계속 달성하기도 했지만 다시 성적이 하락하고야 만다.

그나마 1921년에 다시 5할 승률을 달성하긴 했지만 바로 이듬해부터 3년 연속 100패라는 구덩이에 빠진다.

1928년에는 당대의 톱타자 로저스 혼스비를 데려오기도 했고, 혼스비도 타-출-장 석권 3관왕에 fWAR 9.0의 성적을 남기지만 팀은 103패 .327로 20년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다행히 1923년에 팀을 사들인 에밀 훅스는 브레이브스를 위닝팀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 노력은 1932년부터 34년 시즌까지 3년 연속 5할 승률로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인기를 위해 말년의 베이브 루스를 영입해 1935년 한 시즌동안 뛰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공황과 맞물려 훅스의 수입은 심각하게 고갈되었고, 그 여파는 1935년 115패 .248로 되돌아왔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월리 버거, 래빗 마란빌, 프레드 테니, 딕 루돌프, 빅 윌리스, 레프티 타일러, 에드 브란트가 있다.



보스턴에서의 말년 (1936년 ~ 1952년)

1947년 내셔널 리그 MVP에 오른 밥 엘리엇

결국 훅스는 구단과 같이 파산해버렸고, 1935년 8월 브레이브스의 지배권을 포기하는데 강요되었다.

새 구단주 밥 퀸은 팀을 비스로 개명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크게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비스라는 이름으로 치룬 다섯 시즌동안 두 시즌은 위닝 시즌을 달성하긴 했다.

5년 후 루 페리니가 다시 이름을 바꿔 브레이브스로 되돌아왔다.


옆동네 레드삭스가 테드 윌리엄스의 등장으로 팬들이 유출되가던 1946년에 팀명이 브레이브스로 다시 바뀐 이후 첫 5할 승률 달성에 성공하더니, 1948년에 마침내 카디널스를 누르고 리그 우승에 성공한다.

이 때 워렌 스판 - 자니 세인으로 이어지는 원투펀치는 강력했지만 나머지 선발진들이 약했어서 마치 류현진의 한화 시절 류현진-비-비-비-비 처럼 스판-세인-비-비-비 를 주제로 보스턴 포스트의 작가가 시를 쓰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해 스판-세인이 선발로 나온 경기보다 안 나온 경기의 성적이 더 좋았다)

34년만에 돌아온 월드 시리즈에서는 인디언스에게 4대 2로 패배, 흑인 선수 첫 우승의 업적을 내줘야 했다.

그리고 이게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영광이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토미 홈즈, 밥 엘리엇, 자니 세인이 있다.



밀워키에서의 13년 (1953년 ~ 1965년)

밀워키 명전 3인방 행크 애런, 워렌 스판, 에디 매튜스

보스턴을 넘어 전국구 슈퍼스타가 된 테드 윌리엄스 때문에 브레이브스가 보스턴 제1의 팀이 아닌것은 점점 확실해졌다.

1948년 시즌 이후 네 시즌에는 홈구장 브레이브스 필드가 펜웨이 파크보다 더 친화적인 평판을 가졌어도 관중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결국 1953년 구단주 루 페리니가 브레이브스를 밀워키로 옮기는데 NL에게 허가를 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보스턴에서의 역사가 끝난 후, 팬들이 80년 동안 보스턴에 있던 팀의 퇴장을 애도했다.

반세기 동안 MLB에서는 단 한 번도 연고 이전이 없었다.


1953년 시즌,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 갑작스럽게 연고 이전한 팀 치곤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다.

비록 리그 2위에 그쳤지만 5년 전 우승했을 때 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것.

풀타임 2년차 시즌을 맞이한 에디 매튜스는 MVP 투표 2위에 오를 만큼 대활약을 했으며, 워렌 스판은 여전했다.

1954년에는 행크 애런이 데뷔해 755홈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다 1957년에 애런이 MVP를 수상할 만큼 (이 해 전후로 계속 그랬지만)폭발, 투타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1914년 이후 첫 6할 승률을 달성하며 리그 우승에 성공한다.

월드 시리즈 상대는 50년대 최강의 팀이었던 양키스였는데, 7차전 루 버뎃의 완봉승(3승)으로 제압하고 창단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이듬해에도 리그 우승에 성공하지만 다시 만난 양키스를 상대하며 7차전 루 버뎃이 패전을 뒤집어쓰며 연속 우승에는 실패한다.

1959년 시즌에는 다저스와 동률을 이뤄 타이브레이커 시리즈를 치렀으나 패배해 연속 리그 우승은 2연패에서 끝났다.


브레이브스는 밀워키에서 안정적인 강팀다운 성적을 꾸준히 올렸으나 점점 관중 수는 하락하고 있었다.

1960년 시즌, 버뎃과 스판이 각각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지만 밀워키 연고 이전 이후 최저 관중수를 기록했다.

이듬해엔 스판이 300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음에도 관중수의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1962년에 100만명 관중 선이 붕괴, 76만명대로 주저앉아버렸다.

1963년에는 밀워키에서의 최악의 성적을 내기도 했다. (.519, 10팀 중 6위)


1962년 시즌 후, 페리니는 윌리엄 바톨로메이가 이끄는 그룹에 구단을 매각했다.

동시기에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 시는 1년도 안 되서 다목적 경기장을 새로 건설했다.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가 이 구장에 들어올 뻔했으나 실패한 후, 시장 이반 앨런 주니어는 브레이브스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스콘신 주에서 금지령을 내려 브레이브스에게 레임덕 시즌을 활약하도록 강요했으나 홈 관중은 56만명도 채 되지 않았다.

결국 브레이브스는 1966년 시즌 전에 애틀랜타로 연고 이전을 했다.

밀워키에서의 짧았던 역사가 끝이 나며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현대 야구에서 한 시즌 이상을 치룬 팀중 유일하게 루징 시즌이 없는 팀이 되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에디 매튜스, 행크 애런, 자니 로건, 델 크랜달, 조 애드콕, 조 토레, 워렌 스판, 루 버뎃, 밥 뷸이 있다.



애틀랜타에서의 암흑기 (1966년 ~ 1990년)

유일무이 너클볼러 300승 투수 필 니크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세 번째 도시에서의 첫 몇 시즌동안은 그럭저럭 5할 근처의 무난한 성적을 냈다.

그러다 1969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4개 팀이 창단하고 지구 제도가 첫 시행된 시즌에 93승을 거두며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애틀랜타에서의 첫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NLCS에서 '어메이징 메츠' 모드였던 메츠에게 3대 0으로 패퇴했지만, 밀워키에서 꾸준히 잘 했었으니까 다음 해를 기대하게끔 만드는 시즌이 되긴 했다.

하지만 이후 성적은 그런 성적과 매우 거리가 멀었다.

필 니크로의 최전성기였던 1976년부터 4시즌 동안은 지구 최하위에 머물렀으며, 1977년에는 1935년 시즌 이후 처음으로 100패를 찍기까지 했다.

그동안 팬들은 행크 애런의 올타임 홈런 기록 경신에 만족해야 했다.

리코 카티와 랄프 가가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1976년, 미디어계의 거물 테드 터너가 슈퍼스테이션(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상파 방송국임과 동시에 케이블/위성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송출되는 채널) WTCG의 소유자로 애틀랜타에 팀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브레이브스을 사들였다.

터너는 브레이브스를 자신의 신생 케이블 채널을 위해 경기를 전국으로 송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브레이브스를 시카고 컵스와 함께 정규적이고 전국적인 시청자와 팬층을 가진 최초의 MLB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만들었다.

'미국의 팀'이라는 별명도 이 당시에 생겨나 미국 남부 지역에서 쓰이고 있다.


1981년 시즌 후, 감독 바비 콕스를 해고하고 왕년의 프랜차이즈 스타 조 토레를 감독으로 앉힌다.

토레가 감독으로 부임한 첫해 브레이브스는 지구 타이틀을 따내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팀의 강타자로 우뚝 선 데일 머피와 밥 호너, 투수진의 스티브 베드로시안 그리고 니크로의 활약이 빚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 해 우승팀 카디널스에게 NLCS에서 3대 0으로 패배하고 만다.

이듬해와 그 다음 시즌에도 지구 2위를 해내며 잠깐 안정적인 성적을 올렸지만 토레가 팀을 떠난 후인 1985년 96패 .407을 시작으로 565666을 찍으며 망해버렸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데일 머피, 대럴 에반스, 밥 호너, 펠리페 알루, 필 니크로, 론 리드, 팻 자비스, 릭 말러, 칼 모튼, 스티브 베드로시안, 릭 캠프가 있다.



동부 지구의 패자 (1991년 ~ 2017년)

야구 역사상 최강의 쓰리펀치 존 스몰츠, 톰 글래빈, 그렉 매덕스

지금까지 있던 117번의 월드 시리즈 중에서 단연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1991년 월드 시리즈의 우승팀은 지난 시즌 지구 최하위였던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그리고 그런 트윈스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펼친 준우승팀은 지난 시즌 지구 최하위였던 브레이브스였다.

꼴찌팀은 어떻게 리그 우승팀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지난 시즌 97패를 당하고 4할을 간신히 찍은 성적으로 꼴찌에 앉았던 브레이브스는 단장 바비 콕스가 다시 감독직에 앉고 존 슈어홀츠에게 단장직을 넘긴다.

투수 코치 레오 매조니은 젊은 투수 톰 글래빈,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를 육성해냈다.

이 셋은 리그를 주름잡는 영건 3인방이 되어 1991년 시즌의 마운드를 책임졌다.

예상치 못한 MVP이자 타격왕 테리 펜들턴, 데이비드 저스티스, 론 갠트 등의 타선도 만만치 않았고, 투타의 조화가 어우러져 끝내 지구 우승을 일궈내었고,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 패배했으나 전국의 야구팬들은 트윈스와 브레이브스 모두를 축하했다.


1992년 시즌에는 6할 승률을 돌파하며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으며, 2년 연속으로 월드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번엔 최전성기의 블루제이스에게 왕좌를 넘겨줘야 했다.

그리고 맞이한 오프시즌에서, 슈어홀츠는 사이 영 상 수상자 그렉 매덕스를 FA로 영입하는 초대박을 친다.

매덕스의 합류로 더욱 탄탄해진 마운드를 바탕으로 1892/98년의 102승을 넘는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인 104승을 달성하며 3년 연속 지구 우승에 성공하지만 NLCS에서 커트 실링의 필리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1991년부터 이어진 이 지구 우승 기록은 14시즌이나 연속됐으며 그 정점은 1995년 월드 시리즈 우승과 93년 시즌의 104승을 넘어선 106승의 1998년 시즌이었다.

(1994년 시즌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당해 지구 우승은 엑스포스가 차지했으나 시즌이 도중 중단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 당시의 브레이브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번번히 물을 마셨다는 점 빼고는 정말 뭘 해도 되는 팀이었다.

90년 드래프트 전체 1번 출신 치퍼 존스가 팀 역대 최고 3루수 자리를 에디 매튜스와 다툴 정도로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빅 쓰리라 불리는 매덕스-글래빈-스몰츠는 1992~98년 사이 영 상을 97시즌 제외하고 전부 독식했으며,

앤드루 존스라는 역대급 수비&50홈런 중견수가 나타나고, 포수 40홈런 하비 로페즈, 팀 역대 최고 2루수 마커스 자일스 등도 나타났다.

또한 그라운드 바깥의 감독 콕스 - 단장 존 슈어홀츠 - 투수 코치 레오 매조니가 역대급 시너지를 내며 고공행진을 했다.

워낙 밥먹듯이 포시를 가다보니 포시 티켓이 안 팔릴 정도였으니.

하지만 마치 00년대 중반, 10년대 양키스처럼 포스트 시즌에는 자주 진출하지만 우승을 놓쳐서 팬들의 속은 점점 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치퍼 존스, 앤드루 존스, 브라이언 맥캔, 프레디 프리먼, 하비 로페즈, 데이비드 저스티스, 제이슨 헤이워드, 라파엘 퍼칼, 마커스 자일스, 제프 블라우저,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톰 글래빈, 케빈 밀우드, 팀 허드슨, 스티브 에이버리, 훌리오 테헤란, 크레이그 킴브럴이 있다.



현재 (2018년 ~ )

우리 시대 브레이브스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2018년에 90승으로 다시 지구 1위를 차지한 뒤 현재까지 4년 연속으로 지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시즌엔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올스타 게임 개최 권리를 박탈당한 것을 포함한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단장 알렉스 앤소폴로스의 신들린 트레이드에 힘입어 팀의 4번째 우승 타이틀을 가져왔다.

오프시즌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프레드 프리먼을 잃기도 했지만 맷 올슨, 켄리 잰슨 등을 영입하며 전력 누수를 최소화했다.

전반기 56승 .596으로 지구 선두 메츠와 2.5경기차로 맹추격하다가, 후반기의 엄청난 질주 그리고 결정적인 메츠전 스윕을 통해 업셋을 이뤄내 2003년 이후 첫 100승 시즌을 만들며 비록 포스트 시즌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지만 지구 우승에 성공하고야 만다.

오프시즌에서도 필리스, 메츠와 함께 치열하게 선두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메츠는 부진에 빠져 트레이드 시장에서 셀러로 전환, 현재 필리스, 말린스와 격차를 벌리고 6년 연속 지구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주요 현역 선수들로는 션 머피, 트래비스 다노, 맷 올슨, 아지 알비스, 오스틴 라일리, 올랜도 아르시아, 니키 로페즈, 에디 로사리오, 케빈 필러, 마이클 해리스 2세,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마르셀 오즈나, 맥스 프리드, 브라이스 엘더, 카일 라이트, 찰리 모튼, 이안 앤더슨, 마이크 소로카, 스펜서 스트라이더, 라이셀 이글레시아스, 콜린 맥휴, A.J. 민터, 조 히메네스, 닉 앤더슨, 커비 예이츠, 딜런 리, 타일러 마첵, 루카스 릿키, 브래드 핸드, 마이클 톤킨, 제시 차베스가 있다.



홈구장 변천사

보스턴에 있을 때 가장 오래 사용한 사우스 엔드 그라운즈

펜웨이 파크보다는 평판이 좋았던 브레이브스 필드

행크 애런의 위대한 홈런쇼가 펼쳐졌던 밀워키 카운티 스타디움

30년 동안 사용했던 애틀랜타-풀튼 카운티 스타디움

현재의 홈구장 트루이스트 파크

'71~'14 사우스 엔드 그라운즈

'14~'15 펜웨이 파크 (보스턴 레드삭스와 공용)

'15~'52 브레이브스 필드

'53~'65 밀워키 카운티 스타디움

'66~'96 애틀랜타-풀튼 카운티 스타디움

'97~'16 터너 필드

'17~현재 트루이스트 파크


19세기부터 사용했던 사우스 엔드 그라운즈는 홈플레이트 주위의 2층 스탠드 지붕 위에 중세적인 외관을 지닌 쌍둥이 첨탑과 포탑을 올려놓았다.

물론 그 시절 목조 구장이 으레 그렇듯, 여기도 한번 활활 탄 적이 있다.


트루이스트 파크는 지은지 20년도 안된 터너 필드를 버리고 새로 지은 구장이다.



라이벌리


브레이브스 - 메츠 라이벌리

1999년 NLCS 6차전 끝내기 밀어내기의 주인공 앤드루 존스

첫 맞대결은 1969년 NLCS였으나, 본격적으로 라이벌리가 부각되고 과열되기 시작한 것은 브레이브스가 1994년 동부 지구에 합류하면서다.

이후 브레이브스가 동부 지구의 패자로 군림하면서 동시기 지구 우승의 전력을 갖춘 메츠와의 라이벌리가 생겨난 것이다.

특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2000년 1월호에 사람이 덜 된 것으로 유명한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존 로커의 뉴욕을 향한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과 메츠 팬들을 폄훼하는 인터뷰가 실리며 정점을 찍었다.

2022년 시즌도 지구 선두를 달리는 메츠와 그를 바싹 뒤쫓는 브레이브스 간의 순위 경쟁이 치열했는데, 결국 두 팀이 모두 101승을 거두고 브레이브스가 상대 전적에서 1승의 우위를 가져와 지구 우승에 극적으로 성공해내며 두 팀 간의 감정이 커진 상태다.


주요 경기

1969년 NLCS (메츠 승리)

1999년 NLCS (브레이브스 승리)


통산 정규시즌 전적  ATL 495 - 411 NYM

통산 포스트시즌 전적  ATL 4 - 5 NYM



한국인 선수

봉중근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활동했으며, 2003년 시즌에 불펜으로 나름 많이 출장했다.



그 외


야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팬들 중 한 명인 펄 샌도우는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연고 이전한 첫해 1966년 시즌부터 1989년까지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애틀랜타 홈구장에서 열린 모든 야구 경기를 관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샌도우는 명예의 전당에 밀랍인형이 세워진 여섯 명중 한 명이다.



영구 결번

3
데일 머피
6
바비 콕스
10
치퍼 존스
21
워렌 스판
25
앤드루 존스
29
존 스몰츠
31
그렉 매덕스
35
필 니크로
41
에디 매튜스
44
행크 애런
47
톰 글래빈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들

선수로서 헌액
워렌 스판필 니크로에디 매튜스행크 애런데일 머피자니 세인
델 크랜달키드 니콜스토미 홈즈허먼 롱랄프 가데이비드 저스티스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존 스몰츠치퍼 존스하비 로페즈래빗 마란빌
앤드루 존스팀 허드슨휴 더피테리 펜들턴조 애드콕조 토레
구단 관계자로서 헌액
테드 터너어니 존슨빌 바톨로메이피트 반위렌스킵 캐리
폴 스나이더빌 루카스바비 콕스데이브 퍼슬리돈 서튼
존 슈어홀츠조 심슨레오 매조니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인물들

투표로 입성
래빗 마란빌
1954년
82.94% (14회)
워렌 스판
1973년
82.89% (1회)
에디 매튜스
1978년
79.42% (5회)
행크 애런
1982년
97.83% (1회)
필 니크로
1997년
80.34% (5회)
톰 글래빈
2014년
91.94% (1회)
그렉 매덕스
2014년
97.20% (1회)
존 스몰츠
2015년
82.88% (1회)
치퍼 존스
2018년
97.16% (1회)
베테랑 위원회로 입성
휴 더피
1945년
토미 맥카시
1946년
키드 니콜스
1949년
존 클락슨
1963년
빅 윌리스
1995년
프레드 맥그리프
2023년
감독으로 입성
프랭크 셀리
1999년
바비 콕스
2014년
구단 관계자로 입성
조지 라이트
1937년
존 슈어홀츠
2017년


개인 수상 이력

MVP
'14
자니 에버스
'47
밥 엘리엇
'57
행크 애런
'82, '83
데일 머피
'91
테리 펜들턴
'99
치퍼 존스
'20
프레디 프리먼

사이 영 상
'57
워렌 스판
'91, '98
톰 글래빈
'93, '94, '95
그렉 매덕스
'96
존 스몰츠
올해의 감독상
'91, '04, '05
바비 콕스
'18
브라이언 스니커
올해의 신인상
'48
앨빈 다크
'50
샘 제스로
'71
얼 윌리엄스
'78
밥 호너
'90
데이비드 저스티스
'00
라파엘 퍼칼
'11
크레이그 킴브럴
'18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22
마이클 해리스 2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80
필 니크로
'88
데일 머피
'05
존 스몰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