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2533509

2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2541510


"왜 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니...? 넌 손님이잖니."

선생은 남자의 로망에 잠겨 있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얼떨떨한 얼굴로 부엌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매일 샬레 업무 때문에 피곤하시잖아요. 혼자 사시니 선생님의 식사를 챙겨주시는 분도 없고, 어제 선생님이 사드신 음식을 보니까 맛은 괜찮아도 영양 밸런스가 별로 좋지 않은 걸 보니... 역시 제가 직접 식사를 차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러면 내가 널 부려먹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오랫동안 게헨나 급양부에서 일하다 보니까... 직업병이 생겼지 뭐예요. 오늘은 일찍 눈을 안 떠도 되는데, 시계를 맞춘 것도 아닌데 평소 아침 급식을 준비하던 시간에 눈을 떠버려서 심심하기도 했어요."

선생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세상에, 이게 아직 고등학생 2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할 말이란 말인가? 학생이 터무니 없는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는 건 9억 엔의 빚을 진 아비도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여전히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었다.

"그러니까 앉아 주세요. 이제 다 준비됐어요. 평소에 수천명을 먹일 요리를 하다가 2인분을 해 보니까 양 조절에 조금 실패했지만요, 남은 건 통에 넣어서 나중에 드시면 되겠지요?"

"물론."

선생은 후우카의 말에 순순히 따르곤 자리에 앉았다. 후우카가 준비한 아침 식사는 간소하지만 정갈했다. 밥,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 계란후라이, 그리고 나물무침이 선생의 뱃속에 들어갔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게 뱃속에 들어가면 전혀 부담 없이 위장에 녹아들었다.

"이런 식자재가 냉장고에 있던가?"

선생은 원래 요리에 관심이 없었고, 업무가 바쁘다 보니 집이든 바깥이든 사 먹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냉장고에 든 거라곤 냉동식품이나 레토르트, 포장음식이 전부였다.

"주변 마켓에서 사왔어요."

"영수증 보여주렴."

"괜찮아요. 저도 같이 먹는 걸요. 선생님에게 신세를 지는데 식비를 축내고 싶지 않아요."

선생은 후우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쓴 돈을 내주려고 했지만, 후우카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선생은 자꾸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았기에 죄책감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자 후우카가 선생이 말리기도 전에 뒷정리와 설거지까지 했다. 후우카는 급양부 부장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선생이 개입하는 걸 막았다. 결국 선생은 두 손 두 발 들고 후우카가 원하는 대로 뒀다.

"설거지가 이렇게 즐거운 건... 오랜만이에요."

후우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리 중얼거렸다. 선생님의 집에 오기 전, 이렇게나 설거지가 즐거웠던 게 언제였을까? 후우카는 이제 녹슬고 풍화된 기억을 뒤졌다. 1학년 시절에는 분명히 그랬던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게 되고, 급양부 부원이 줄면서 결국 자신과 주리만 남게 되자... 기쁨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후우카야, 나는 이제 샬레로 출근해야 한단다. 너도 이제... 게헨나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급양부는 안 가더라도 수업은 들어야지."

"... 그럴까요...?"

후우카는 선생의 충고를 듣고 후우카는 잠깐 고민했다.

"싫어요. 지금은... 학교에 가봤자 다른 얘들이 절 보면서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하니 가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게헨나 학원에 제대로 출석하는 학생은 얼마 없는걸요. 어차피 수업은 컴퓨터만 있으면 BD나 온라인 수강으로 처리 가능하고."

선생은 그 말을 들으니 후우카에게 뭐라고 하기 난감해졌다. 그 말대로 게헨나 학생은 예로부터 교칙 좆까고 내키는 대로 땡땡이 치기로 유명했다. 게헨나의 오랜 역사상 지금까지 학교의 허락을 받고 조기하교를 간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널 내 집에 하루 종일 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선생은 질문하기도 전에 후우카의 대답을 이미 짐작했는지 금방 다음 제안을 했다.

"그러면 임시 동아리 활동으로 치고 샬레로 오지 않겠니? 지금 샬레는 급한 일이 없으니까 거기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가끔 내 일도 도와주면 내 권한으로 출석 일수를 채워주마."

후우카는 선생의 제안을 듣자 얼굴이 밝아졌다. 선생은 이래서 샬레의 권한이 편하다고 중얼거렸다. 초법규적인 권한을 가진 샬레는 선생이 마음만 먹는다면 학생에게 정신 나간 해택까지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우카는 처음으로 샬레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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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막 정오가 지났는데 벌써 졸고 계신 겁니까?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어제 정확히 6시에 칼퇴근하셨고, 야근한 기록은 없습니다. 뭐, 세미나 미팅이 예정보다 길어지다 보니 늦게 온 제 잘못도 있긴 하지만... 빨리 일어나셔야 오늘 정시에 퇴근하실 수 있습니다."

"음??? 후우... 아니...유우카 왔니?"

선생은 유우카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자 번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배부르게 먹고 샬레에 오니 점심도 되지 않았는데 졸음이 쏟아지다 보니 살짝 실수한 모양이다. 선생이 고개를 펴니 선생이 처리하던 서류엔 작은 침자국이 남아버렸다.

"네, 선생님. 오늘의 당번은 저 하야세 유우카입니다. 후우는 또 누구인가요? 그런 이름의 학생은 샬레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걸로 압니다만...."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세미나 소속 회계 담당인 유우카는 냉철하고 지성이 깃든 얼굴로 선생님을 보좌했다. 샬레에 소속된 학생들은 스케쥴을 정해 돌아가면서 선생을 보좌하기로 했다. 비는 수업은 온라인 수업으로 때우고 출석 일수는 선생이 커버해주기 떄문에 샬레에 온다고 해서 출석 일수에 지장은 없다. 그렇기에 수업을 싫어하는 몇몇 학생들은 오히려 학교보다 샬레 부활동을 좋아했다.

"아 그게 말이다."

선생은 자신이 유우카를 처음 부를 때 실수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문 바깥에선 영 좋지 않은 타이밍에 후우카가 다가왔다. 샬레에 딸린 교실에서 BD 수업을 끝낸 후우카는 곧 점심시간이라는 걸 보고서 샬레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했다. 비록 안 좋은 일 떄문에 급양부를 그만두긴 했지만, 요리는 후우카 인생의 일부였기에 떼어놓을 수 없었다.

"선생님, 시장하시죠? 식사 준비가 완료되...."

후우카는 노크한 뒤에 업무실에 들어갔다가 선생 옆에 처음 보는 학생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건 유우카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이 학생은 누구인가요? 혹시 새 부원인가요?"

유우카는 후우카를 처음 봤기에 가장 그럴듯한 추측을 내놨다. 유우카는 후우카를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봤다. 물론 알아낸 거라고 해봤자 게헨나 소속에, 몸에서 나는 냄새와 방금 한 말을 봤을 때 선생이 새로 취사담당으로 받아들인 학생이라는 거 정도였다.

'안 그래도 선생님의 식습관이 걱정이었는데, 저 아이가 취사담당이라면 훨씬 나아질려나? 이 거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

유우카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선 한번 저 아이가 한 요리를 맛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후우카의 몸에 배인 냄새는 유우카가 맡기에도 매우 향기로운게 침이 절로 고일 정도였다.

"그렇단다. 이름은 아이키요 후우카. 사정이 있어서 임시로 샬레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안녕하세요. 아이카요 후우카라고 합니다. 갈 곳이 없던 선생님이 거둬주셨기에 한동안 샬레와 선생님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 샬레는 그렇다 쳐도, 선생님의 집에서 신세를 져...?"

선생은 후우카가 별 생각 없이 건네 말을 듣고서 속이 쫄렸다. 생각해 보니 샬레에 오기 전에 후우카한테 다른 샬레 부원이나 외부인이 후우카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면 미리 말을 맞춰두라고 하는 걸 까먹었다.

"선, 생, 님?"

"요... 요괴출현!"

유우카는 얼굴을 씰룩거리더니 선생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은 게임개발부가유우카를 부르던 요괴란 별명이 너무나도 어울렸다.

"지금 후우카 씨가 한 말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설마 학생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는 그런 파렴치하고 음란한 어른이 아니지요? 비록 선생님은 가챠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문제 많은 어른이지만, 저는 선생님을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해명해 주세요!

유우카의 압박에 밀린 선생은 처음으로 유우카에게서 공포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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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해피엔딩 럽코 개그물밖에 못 씀. 다른 장르는 쓰면 2줄을 못넘기고 뇌가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