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채널

마지막 문제점이야.

마이스토고 중 대부분은 기숙사를 운영해.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이 드러나지.

사감이야.

비단 고등학교 뿐 아니라 대학에 가서도 학생과 사감은 절대 친해질 수 없는 존재겠지만 마이스터고에서는 더 특별해.

밤에 불이 꺼지고 선생들이 퇴근하고 학생들이 기숙사로 올라가면 사감은 하나의 절대왕권을 지닌 권력자가 돼.

기숙사 규칙을 멋대로 만들거나 없엘 수 있고 특정 조항을 해석하는 것도 사감 마음대로기 때문에 한 번 밉보인다면 기숙사살이 엄청 고달파져.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읊어줄게.

우리학교에서는 아침운동으로 택견 수련을 해.

그날은 학기가 끝나고 방학식 당일이었기 때문에 택견 선생들은 전날에 미리 내일은 내려올 사람들만 내려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숙사에서 쉬는걸로 합시다! 라고 이야기하고 사감에게 이야기를 해 둔 상태였어.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나를 비롯해서 아침 운동을 싫어했던 학생(전교생 180명 중에서 100명 조금 안되는 숫자)들은 안내려가고 단잠에 취해있었지.

기상 알림이 울리고 사감의 노성이 들려왔을 때 택견 선생의 말과 달랐기에 우리는 패닉에 빠졌어.

몇몇 애들이 전령을 자처하면서 내려가 택견 선생의 말을 들어서 전해줬지.

내 룸메이트들과 몇 애들이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패닉에서 깨지 못한 몇몇은 당황하며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냈지.

이건 우리 잘못이 맞아.

선생의 지시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으니까.

몽둥이를 들고 올라온 사감은 그걸로 우리를 구타하진 않았지만 이층침대의 쇠부분을 강하게 내리치며 우리들을 다그치기 시작했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우리들은 내려가기 시작했지.

그런데 선생은 장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미리 사감을 돕는 자치위원을 통해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점호를 면제받은 사람들까지 강제로 일으켜서 내려보냈다는거지.

아래서 모여 혼난 뒤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한 애가 사감에게 따졌어.

미리 허가도 득했는데 대체 뭐가 잘못됐냐고.

그떄 사감의 대답이 걸작이었지.

선생이 내려오라면 내려와야지 말이 많네. 반 번호 이름 불러(기숙사 벌점 주겠다는 뜻)

그게 도화선이었어.

분노를 터뜨리는 우리에게 사감은 소리쳤지.

난 사감이고 너희는 학생이야 사감 말에 따라 알겠어?

내가 나서서 말대꾸했지

아무리 사감이라고 해도 잘못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잘못한것도 있지만 선생님께서 실수한 것도 분명 있는것 같은데요.

헛기침 몇번과 함께 역정을 내던 사감을 진정시킨 건 상황을 보다 못한 택견선생이었어.

간신히 화를 가라앉힌 우리들은 밥을 먹으로 갔고 나를 포함한 180명 중 대부분이 아주 많이 화가 난 상태였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지.

거짓말 하지 말고 선생 말이나 잘 들어.



사감이, 교장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학부모에게 전달하는 학교의 모습은 우리가 겪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어.

과장을 보태지 않더라도 무언가 촬영이 있을 때의 군대 내무반의 모습과 평상시 내무반의 모습의 차이 정도였어.

나는 군대랑 군대랑 관계없는 다른 것을 비교하는 걸 아주 싫어해.

군대는 하나의 폐쇠적인 공간이고 다른 곳과 소통의 채널이 없는 곳이니까.

그런데 내가 들어간 마이스터고는 군대의 상황과 너무 닮아있었어.

군인은 아니었으니까 휴대폰으로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선생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우리 학생들이 직접 겪은 일은 믿어주지 않았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뭘까?

건강검진 날 우울증 고위험이 나왔던 사람 수가 20명이 넘었어.

8명이 확진을 받았고 한 명은 자살 징후 때문에 당장 입원치료까지 받아야할 지경었어.

나 또한 그 8명 중 한명으로서 우울증과 홧병으로 앓아누워서 반년동안 병원을 왔다갔다 해야했고 아직도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