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엄청난 찐따였던 나는 나만의 특별함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이상한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중 나를 강력하게 잡아끌었던 것은 바로 환단고기였다.


과거 국정 역사교과서 시절 근현대사 부분에 서술된 일제의 만행과 식민사관에 대해 배우고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가 짓밟히는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그당시 유튜브도 없었기 때문에 책을 찾아보며 나름의 연구를 하였고, 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UCC 들을 찾아보며 세계를 호령했던 환족의 후예라는 망상에 점점 사로잡히고 있었다. 


특히 만주일대 BC 15000년 쯤 존재했다고 여겨진(날조된) 초고대문명인 오석문화(또는 흑오석문화) 에 심취하였다. 


당시 영롱한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오파츠 사진들을 보며 고대 환족의 엄청난 문명수준에 탄복하였고 15세의 찐따는 그렇게 환국의 후예가 되어갔다. 


환단고기라는 글따위가 아닌 실질적인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은 역사의 혁명이다! 간도와 만주를 되찾을수 있다! 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당시 선동에 상당한 실력이 있었는지 몇몇 친구들이 나의 말을 믿어줬고, 심지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기까지에 이른다.


나의 말을 믿으며 오오... 오오오~ 를 해주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찐따가 아닌 '깨어있는 애국자, 진실을 알고있는 유일한 자' 로서의 우월감과 쾌감에 점점 멈출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그 친구들중 한명은 역사를 꽤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빠져들게 된다. 


이친구가 부회장이 되고 나중에는 악의 축이 된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는 특목입시 등 바빠지면서 점점 동아리활동 및 환빠 활동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때부터 부회장이 실질적인 활동을 주관하며 내가 만든 나비의 날개짓이 토네이도로 발전하게 된다.


나도 모르던 사이 이 친구는 나의 병신력을 한참 넘어서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펼치게 된다.


심지어 교내 역사 토론회를 열고, 국사 선생님들을 초청하여 병림픽을 하는 미친짓을 한다.


아아... 선생님들의 눈에는 얼마나 병신같았을까! 


그뒤 동아리에서 중국문화탐방이라는 이름으로 만주일대 고구려 유적 및 고대문명 탐방까지 간다. (Only 만주/ 백두산만 돌아다니는)


이때 나는 느꼈다. 선을 넘었다는것을. 그리고 이 부회장이라는 녀석은 '진짜 미친놈'이라는것을!


당연히 나는 해외문화 탐방을 가지 않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동아리 활동을 접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페이스북으로 메세지가 한 통 왔다.


인사를 주고받은 뒤, 밥을 같이 먹자는 친구의 제안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예전 동아리활동할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친구는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환빠 및 진짜역사 바로알기 에 심취한 이친구는 우연히 만난 증XX에 가담하게 되었고


당연히 물만난 고기처럼 활동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더욱 심화된 연구? 및 포교활동으로 무장하여 나를 포섭하기 위해 온것이었다.


노트북으로 PPT 슬라이드를 수백장씩 보여주며 진짜 증거가 있다. 유적이 있다. 중국일대에 피라미드가 있다. 헝가리에서도 환족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등 미친소리를 한다.


심지어 어디서 가져온지도 모르는 비교언어학 자료들을 들이밀며 


중국어가 한국어에서 만들어졌다, 한자는 동이족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 일본어 한국기원설 등등등등등 수백 수천장의 자료를 미친듯이 보여주며 2시간동안 설파를 한다. (정작 증XX에서는 이렇게까지 안한다고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개소리는 중국어로 didi 弟(동생) 는 한국어 '띠' 에서 유래되었고, 한자 弟 도 띠(또는 끈) 두개를 엮어놓은 모양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띠가 묶여있는것처럼 아우와 형의 관계가 그러하다' 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후 손절해버렸다.


근데 내가 얘를 이렇게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