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전 자유민주당(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지난달 29일 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이어 일본의 제100대 총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일본은 여러 정당들이 있는 의회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스가 내각의 코로나19 대응방식에 대해 불만도 높지요. 그런데 왜 일본에선 집권당이 바뀌지 않고 특정 정당에서만 항상 총리가 나오는 걸까요?

일본은 1955년 이래 단 두 번을 제외하고 자민당이 집권해왔습니다. 자민당은 1955년에 생겨났는데 전후 일본이 미국 점령에서 벗어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미국은 자민당 창당에도 관여했습니다. 1994년도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사회주의 세력에 편입될 것을 우려한 중앙정보국(CIA)은 경쟁 구도에 있던 보수파들에게 합칠 것을 격려하며 수년간 자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로 생긴 당이 바로 자민당입니다. 자민당이 집권한 1960~70년대에 일본은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국민들의 자민당에 대한 지지도 굳어졌죠.

창당 수십년이 된 자민당 소속 의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정치인을 골라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선 ‘종합 쇼핑몰’인 셈이죠. 예컨대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로 나왔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은 극우 성향을 띄는 인물이죠.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유산인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주장에 대해 “적의 기지를 먼저 무력화한 쪽이 이긴다”면서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반면 노다 세이코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최고의 보안은 외교정책”이라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죠. 노다 간사장 대챙은 부부 별성제와 동성혼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며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기도 한 인물입니다. 이번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분배 없이는 성장도 없다”면서 새로운 일본식 자본주의를 언급한 온건파로 분류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후보들이 있다는 점은 자민당의 장점이에요.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옹호를 철회한다 싶으면 다른 성향을 가진 후보를 내세울 수 있으니까요. 와세다 대학의 미에코 나카바야시 사회과학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을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그는 “사고 싶은 걸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셈이거든요. 고르기만 하면 바로 배달해 주는 아마존이랑 비슷하죠. 사람들은 다른 후보를 선택할 야당을 찾아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뚜렷한 대안 야당이 없다는 것도 자민당이 장수하는 요인이에요. 현재 일본 중의원의 의석분포를 보면 자민당이 276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반면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13석으로 전체 의석의 465석의 24%에 불과하죠. 기시다 총재는 총리에 오르기 위해 4일 의회에서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자민당은 중의원에서는 자체로 과반이고, 참의원에서도 연립정부를 꾸리고 있는 공명당과 합하면 과반을 넉넉히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총리 임명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대표적인 야당으로 꼽혔던 민주당은 2009년 8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480석 중 308석을 획득하면서 자민당 독주 체제였던 일본 정치의 판을 뒤집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죠. 민주당 승리로 집권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호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내각 지지율은 집권 8개월만에 20%대로 추락했죠. 또 민주당은 경제정책으로는 정부 재정을 동원해 무상복지 정책을 펼쳤는데, 재정이 고갈되자 소비세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조세 저항이 강하게 일어났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박철희 소장은 “외교 안보와 경제가 무너지니 일본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쓰나미와 지진이 그 뒤를 이었죠. 하토야마 이후 민주당의 간 나오토 내각은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여론에 따라 재임 1년 2개월여 만에 물러났어요. 민주당은 그 이후로 이미지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후 2016년 민주당이 해산하고 일부 의원들은 유산당과 손을 잡으며 민진당을 창당했죠. 그리고 민진당 내 자유주의 인사들이 2017년 따로 신당을 만들게 되는데 그게 입헌민주당이에요. 야당이 조각 조각 나뉘면서 다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제1야당이 나타나기 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어요.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공동집행자인 미레야 솔리스는 “야당은 잠깐 집권했던 시기 동안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죠.

자민당이 1999년에 공명당과 손을 잡으면서 세력을 강화한 것 역시 장기집권에 기여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공명당의 조직 기반은 1960년대에 설립된 창가학회로, 공명당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선거에서 특정 비율만큼의 투표수를 가져올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일본의 선거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요. 어떤 선거구에서는 당선자 한명을 뽑고 (이를 소선거구제라고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후보 정당에 투표(구속명부식 비례대표 선출)하기도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민당과 공명당은 각자 이득을 볼 수 있는 지역을 나누어 담당하면서 표를 교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홋카이도 의회 소속인 히사시 이나츠 공명당 의원은 자민당이 지금껏 세 번의 선거에서 본인을 지지해 줬다면서 “집권하기 위해선 본인의 이념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죠.

국민들의 무관심도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어요. 투표율이 69%였던 2009년에 자민당은 민주당에 집권당 자리를 내줬죠. 자민당이 집권세력으로 복귀했던 2012년엔 투표율이 60% 아래를 떨어졌죠. 국민들은 투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미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국제연구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일본 전문가 리차드 사무엘스는 뉴욕타임스에 “국민들은 야당이 뭔가 제공할 것이 없다면 야당에 투표하도록 동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211001060305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