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열흘간 이어지던 동해안 산불이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드디어 마무리되었음. 기간도, 규모도 역대급인 산불이었는데 뭔가 대선과 시기가 겹쳐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좀 멀어진거 같기도 함. 아무튼 이렇게 사실상 끝이 났고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없어서 너무 다행임.


총 피해 면적이 약 249km² 정도라고 하니.. 서울 면적의 약 40% 정도 산림이 탔다고 함.


이번에도 그렇고, 산불날때마다 뉴스에서 이 헬기 자주 봤을거임. 이녀석 얘기를 하고싶어서 적어봄.


사진 속 헬기는 카모프/까모프 헬기라고 자주 불리는 Ka-32임. 소비에트 연방의 카모프 설계국 제작품이지.

얘가 원래는 군용이었음. 소련 해군에서 힘센 대잠헬기가 필요해서 60~70년대 개발한건데, 80년대부터 Ka-27이라는 이름으로 해군에서 쓰이다가 이걸 민수용으로 바꾼게 Ka-32야.


Ka-27 모습


러시아 장비 얘기를 할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게 불곰사업(노태우 정부때 빌려준 차관 14억 7,000만 달러를 소련이 망하면서 떼일 위기에 처했는데 김영삼 정부때 현물 무기로 대신 받아오는걸로 한 사업)인데, Ka-32도 이때 한국에 들어왔음. 근데 써보니까 힘 좋지, 가격 저렴하지, 너무 좋았던 거임. 그때나 지금이나 카모프 헬기는 비슷한 사양의 서방제 헬기 가격 절반도 안됨.


거기다 [동축반전로터+강한 엔진출력으로 인해 악천후/난기류에 강함, 꼬리로터가 없으니 어디 걸려서 사고날 위험 감소, 힘쎄니까 방화수를 왕창 퍼붓기 가능]까지 가능하니 '뭐야, 그러면 산이 국토의 대부분인 한국에서 산불진화에 킹왕짱이네?' 가 됨.


그래서 90년대 후반 카모프 헬기 대량도입이 정해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산불 진화의 주력이 되었음ㅎ

그 후 싸고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민/관/군 할것없이 카모프 헬기를 도입하여 현재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의 Ka-32 운용국이라고 함ㅋㅋ 여태까지 생산된 Ka-32가 한 240대 정도라는데 그중 1/4가 우리나라로...


다른 화재와 달리 산불은 특이 케이스라 산불진화의 주관기관은 산림청이고 소방청은 경찰, 국방부, 기상청 등과 함께 유관기관에 속함. 현재 산림청 소속 소방헬기 47대 중에 29대가 Ka-32인데, 여기서 11대의 소형헬기는 사실상 제대로 된 소화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Ka-32가 핵심 장비라는 걸 알수있지. 지방 소방청에서도 4대의 Ka-32를 갖고 있기도 해.


근데 올해 들어 큰 문제가 생겼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인데.. 우리나라도 제재에 동참하게 되면서 카모프 헬기 부품을 더이상 수입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야. 아래 기사 참고.

[우크라 사태] “러시아산 산불 헬기 유지·보수 어쩌나”... 산림청 초비상


Ka-32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한 헬기인데, 무엇보다 부품 수명이 너무 짧다고 함. 서방 헬기가 한 2000시간 타면 부품을 교체하는데 반해 Ka-32는 수백시간마다 갈아줘야 한다고; 그래서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래.

즉 처음 살때 싸다고 좋아할게 아니었다는 거지..ㅋㅋ 이게 너무 이상함. 왜 부품 내구성이 그리도 나쁜걸까? 소련~러시아가 기술력이 부족한 것도 아닐텐데.. 뭔가 설계/운용 사상 자체가 다른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골치아프게 되었음. 앞서 적었듯 국내 산불진화의 주력이 카모프 헬기들인데 얘네들이 다 멈추면 그야말로 비상사태라... 


뭐 우리나라도 국산 헬기 수리온이 있으니 그걸로 다 대체하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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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산불과 우크라이나 침공이 동시기 일어나는걸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음.

/이제 그야말로 '악의 제국'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만든 전쟁 무기가 우리나라에 와서 불 끄고, 인명 구조하고.. 여러 좋은 일을 많이하고 있는 모습

/국내 산불 진화를 오랜시간 도맡아온 카모프 헬기가 고향땅의 악행으로 인해 더이상 날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현 상황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현실임.  Ka-32를 생각하면 기분이 참 묘해서 적어봤음.


ps. Ka-32는 러시아 연방 -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쿠메르타우시에서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