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기자조선의 기자(箕子)에서 따 온 이름으로, 

기성(箕城)은 ‘기자의 도시’라는 의미임. 


평양에서 집무를 본 평안도 관찰사는 '기백'(箕伯)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지. 


기자조선의 실체에 대해서는 현대 학계에서 매우 논란이 되지만,

조선시대까지 기자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단군 이상급 대우를 받았음. 동방의 오랑캐를 소중화로 교화시켜 준 은인으로 칭송받았지. 

구한말 문서에도 ’우리는 기자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적힌 부분이 꽤 많음. 


그래서 과거 평양에 대해 저술한 대부분 기록에는 기자가 빠지지를 않음. 평양의 자랑과 같은 인물이었지. 실제 기자릉도 있음. 


현대 평양을 실질통치하는 북한에서는 이 이름을 사대주의의 잔재로 보아 매우 나쁘게 취급하며, 1950년대 김일성의 지시로 기자릉도 사라졌음. 대신 사당은 이전하여 사적으로 보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