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관보는 1910년(융희 4) 8월 29일자가 마지막인데,

이날 관보 부록을 보면 고양군 리·동의 합병에 대한 '경기도고시 제6호'가 있음. (국립중앙도서관 뷰어 기준 1089페이지)

8월 29일 고시된건 아니고 고시일은 그보다 전인데, 아마 마지막 날이니까 그동안 관보에 못 실은거 전부 저날 부록에 넣은듯.

경기도고시 제6호

고양군 사리대면, 신혈면, 원당면, 하도면, 구지도면, 중면, 사포면, 송산면에 속한 리·동을 좌(左)와 같이 합병·개칭하고 도령 제2호 제2조에 의하여 이에 고시함

융희 4년 8월 23일

경기도관찰사 김사묵


좌기(左記)


사리대면

대자상·하리를 합하여 대자리라 칭함

관산일·이패리와 시묘동을 합하여 관산리라 칭함

내산리와 유산리를 합하여 내유리라 칭함

상일패리를 문봉리라 개칭함

상이패리를 지영동이라 개칭함

하패리를 설문리라 개칭함


신혈면

일패리와 목암리를 합하여 벽제리라 칭함

지정리와 축리를 합하여 지축리라 칭함

검암리는 진관리 부분 내리에 합하여 진관내리라 칭함

전석리는 진관 일부분 외리에 합하여 진관외리라 칭함


원당면

일패상·하리를 합하여 원당리라 칭함

송현리와 목희리를 합하여 원흥리라 칭함

사근사리와 삼패리를 합하여 사성리라 칭함

주교상·하리와 박재궁리를 합하여 주교리라 칭함

간촌리를 도내동에 합함


(이하 생략)

원문 그대로 옮기진 않고 임의로 약간 고침.

보면 '일패리, 이패리' 등의 지명이 상당히 자주 나옴. 저 고시에서만 사리대, 신혈, 원당, 구지도, 중면의 5개 면에서 보임.

그리고 이미 일본에 사실상 먹힌 상태긴 하지만, 대한제국 시절에도 이렇게 근대적 고시에 의한 통폐합이 있었던걸 볼때

1914년 일제에 의한 대개편 직전의 동리가 그대로 전통적 자연마을과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