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 중심은 황하강 중류 중원이었지만, 점차 황하가 황폐화되고 결정적으로 실크로드 시대가 끝장나며 중심지에서 멀어졌음. 


이후 원나라는 민족의 고향과 가까운 북경을 수도로 택했고, 명나라도 북방민족 컨트롤 차원에서 북경과 남경을 공동수도로 채택함. 

청나라는 민족의 본토 만주, 제국 제3의 민족 몽골, 중원을 잇는 도시인 북경을 당연히 수도로 채택했음. 매우 매력적인 도시였지. 


중화민국 시절 봉건 잔재가 가득하고, 남중국의 여러 도시에 비래 근대화되지 못한 채 인구만 많은 북경을 버리고 남경을 택하게 됨. 특히 중화민국은 한족 민족주의와 연관이 깊어서 북경을 만주족 색이 가득한 도시로 여겼음.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다시 북경을 택하는데, 이는 마오쩌둥이 북경을 사회주의적 포텐셜이 강한 도시로 생각했기 때문임. 

마오쩌둥은 도시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소련식 공산주의와 달리 농민 중심의 공산주의를 제창했는데

남경, 상해 등이 자본주의 색이 강하고 도시의 면모가 강했지만

북경은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이 구시대적 산업에 종사하는 등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