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물론에 따르면, 다시 말해, 권리가 인간이 내재한 특수한 힘이 아니라, 인간이 현실적으로 처해있는 물질 관계의 표현적 반영임을 전제한다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같은 이분법적 대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권리는 '실제로' 대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어떻게하여 여성 권리를 침해하는가?

자유주의적 관념론자들은 태아에게 허용된 생명권이 여성의 실질적인 선택을 제약하여, 여성 권리를 침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권리는 항상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사유에서 권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을때" 온전히 가능하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여성과 태아의 대립관계에 대한 심각한 추상화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출산을 목적으로 하여 태아를 발생시켰을때, 여성의 행동과 태아의 존재가 분리되어있습니까?

권리 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성의 의식과 태아의 생명은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 합목적적으로 일치하여, 두 대립항이 통일되어 서로가 서로를 형성하는 관계입니다. 여성의 선택은 태아가 존재함으로서 가능한 것이고, 태아의 존재는 선택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의 대립은 이러한 관계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는 형식적인 대립을 표현하고, 실질적인 대립은 실질적인 상황 내에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성 권리가 억압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권리가 다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객체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음에 따라 적대적으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여성 억압, 또는 낙태는 이러한 목적성에 반하는 것이죠.

본디 여성 활동의 목적은 태아의 존재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종의 증식은 생물의 본질이죠. 이렇듯 유물론을 전제한다면 개인의 의식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물론은 이것, 낙태의 형성을 외부적 조건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물질 관계가 여성에게 출산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억압 또는 낙태가 가능한 이유는 마찬가지로 물질 관계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계급 사회에서 이뤄지는 피착취계급의 대상화는 피착취계급을 착취계급에 통일시키면서도, 피착취계급을 자기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국가는 출산을 요구하지만, 개인은 비출산을 요구합니다. 국가적 요구는 여성에게 있어 무의미한 것이며, 오히려 부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사회적 소외가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계급 사회에서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공 이익은 착취 계급의 배타적 소유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치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자기 이익의 성취를 위해 적대적으로 투쟁합니다. 따라서 계급 사회에서의 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성 착취를 낳고, 개인적 요구는 사회적 저출산을 낳습니다.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사회는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이 통일된 사회입니다. 왜냐하면 계급 분화를 지양하여 공공 이익이 전사회적인 공적 소유로 이뤄지고, 사회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개인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의 성 문제는 사적 차원과 동시에 공적 차원에서도 다뤄지게 됩니다. 계급 투쟁의 일환인 자본주의에서의 낙태 문제와는 달리, 사회주의에서의 낙태 문제는 낙태를 승인하고, 금지하는 이분법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낙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낙태 권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라는 소외 형식을 여성 집단으로부터 본질적으로 지양시키는 것, 여성을 실질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성 문제는 본질적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처도 유동적으로 다뤄져야합니다. 그 차이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맹아를 형성하는 계급 투쟁의 과정이였던 1920년대 전시의 레닌 체제와, 심층적인 사회주의의 발전 과정에 있던 1930년대 스탈린 체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1920년 소비에트 연맹에선 세계 최초로 낙태를 합법화하였는데, 낙태의 소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계급 투쟁으로서 혁명적 역할을 가졌기 때문에,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체제인 소련에서 여성 해방의 수단으로서 가능한 것이였습니다. 반면 1930년대의 소비에트 연맹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전사회적 통치가 이뤄짐에 따라 사회에 적대적인 낙태는 혁명적 성격을 잃었고, 따라서 지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낙태 권리를 제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낙태의 필요 또한 지양하는 것으로 이뤄졌습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이것이 인간 해방으로서 이해될 수 없는 것이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인간 해방을 위해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