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원의 피자는 기괴하다. 아르세니코는 그라운드 원에 온 지 1주일 차에 본, 토핑으로 감자를 올리고 거기에 고구마 반죽으로 모양을 낸 피자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을 잊을 수 없었다. 피자는 모름지기 치즈와 토마토 소스가 핵심 아니던가. 고향 땅을 다시 밟기 전까지는 결코 피자를 찾지 않으리라 그는 다짐했다.


"이거 봐요 언니! 쭈우욱 늘어나요! 광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따라서 이건 피자를 맛있게 먹는 게 아니다. 이 멍청한 꼬맹이한테 사주겠다고 약속해서 같이 앉았을 뿐인, 공적인 식사 자리니까.


"아앗, 끊어진다 끊어진다! 합!"


"식사할 때라도 좀 얌전히 굴 순 없냐? 그라운드 원 출신에겐 그게 예절이라던데 넌 정말..."


끊어진 치즈가 땅에 닿기 전에 입으로 낚아채는 요란한 광경에 한 마디 하자, 대시는 실없이 웃으며 치즈를 빨아들였다. 나처럼 앞에 있는 파스타나 그렇게 먹을 것이지.


유럽식, 정확히는 이탈리안 피자에 익숙한 아르세니코와 달리 대시는 이런 싸구려 피자도 감사히 즐겼다. 기름지고, 각종 토핑으로 재료의 질을 감추는 불량식품인데 말이다. 피자에 대한 인식이 다른 문화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념에 잠기려는 그가 문득 눈을 깜빡이자, 눈 앞에 둥글둥글한 갈색의 눈동자들이 있었다.


"...무, 뭐냐 꼬맹아. 한참 맛있게 먹더니만 갑자기 사람 놀래키고."


"저 그게, 맛있는 건 맞는데요. 언니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그치만 언니 아까부터 표정도 계속 언짢았고, 지금 포크를 한 번 봐요."


걱정스런 어투의 대시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빙빙 돌리던 포크에 스파게티 면이 어찌나 많이 말렸는지 아령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무안한 마음에 포크를 접시에 대고 털었다.


"신경 안 써도 돼.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니까."


둘러대고 파스타를 조금 집어 입에 넣자 그제야 소녀는 안심한 듯 빙긋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구를 신경 써주는 거야, 건방지게.


"아무튼 다행이에요, 저 이렇게 누구랑 레스토랑 와서 밥 먹고 그러는 게 처음이라서요. 언니 불편하게 하는 건가 걱정했다구요."


"...별 걱정을 다 하는구나. 감동적인걸. 이런 때보다 평소에 술 담배를 안 막는 게 좋겠지만."


"그건 술 담배가 언니를 불편하게 하는 거에요! 익숙해지면 편안해진다구요!"


"참 이거 관해선 한 마디를 안 지려고 드네. 지금 너 때문에 금주 금연 최고기록을 나날이 갱신 중인 건 아냐, 망할 꼬맹아? 내가 살다 살다 입이 궁금하다고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다닐 줄은."


"사탕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다행히 좋은 대체재, 맞나? 그걸 찾으셨네요!"


방끗 웃으며 꼬박꼬박 대꾸하는 게 어찌나 얄미운지.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 아르세니코는 앞의 음료잔을 집어 마셨다. 그렇게 언니가 침묵하자 대시가 계속 신나서 재잘댔다.


"저 그러고 보면 솜사탕도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TV 볼 때 놀이동산 가서 놀다가 솜사탕 먹고 그러는 거 보면 어떤 맛인지 늘 궁금했거든요. 분홍색이랑 파란색은 어떻게 맛이 다를까? 그런 거요."


"그거 다 똑같은 설탕 덩어리인데."


"그렇지만 그거 있잖아요? 같은 민들레여도 어느 나무 그늘 아래인지에 따라서 맛이 다른 거 같은 차이요."


"몰라. 넌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에헤헷."


실없이 키득이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식어가는 피자 위를 교차했다. 기껏 뭐 먹고 싶은지 얘기하는 게 놀이공원의 싸구려 솜사탕이라니.


그래도 모처럼 오후에 쉬는 날이다. 하루 정도는 꼬맹이 녀석에게 베풀어도 나쁠 건 없으리라, 아르세니코의 생각은 굳어졌다.


"...그러면 우선은 놀이공원, 테마파크인가?"


혼잣말을 흘리며 아르세니코가 휴대용 태블릿을 꺼내들자, 피자를 우물거리던 대시의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대시의 동그란 두 눈이 더욱 커지자, 아르세니코는 피식 웃었다.


"표정 봐라. 얼른 남은 거 먹어치워, 그 동안 근처에 갈 만한 데가 있나 찾아라도 보게."


어안이 벙벙한지 빤히 그를 보던 소녀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아르세니코는 검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