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아, 그래서 솜사탕은 마음에 드냐?"


"내, 엄첨 마이떠여!"


"...입에 든 건 삼키고 대답해, 멍청한 꼬맹아. 설탕 덩어리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에헤헤-"


거리에 전기불이 들어오는 시각. 둘은 가로등과 놀이기구의 조명으로 환한 벤치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슬슬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놀이공원은 낮과는 달리 제법 한산했다. 술 한 잔 마시면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이 될 법하다. 옆에 앉아 솜사탕을 삼키는 이 소녀가 술친구가 될 만한 녀석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한 손 가득 솜사탕을 세 개나 들고 뜯어먹는 대시의 함박웃음은 정말 맑았다.


맑은 웃음. 밝은 웃음과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아르세니코는 생각했다. 밝은 웃음은 주변을 빛으로 덮어버리지만, 맑은 웃음은 다른 더러운 것에 물들 것만 같은 안타까운 웃음이다. 사람을 너무 믿기에 언제 어떻게 이용당할 지 모르는 그런 바보나 지을 웃음이다. 하기사, 그러니까 부모라는 작자마저 냅다 사채업자한테 떠넘기는 거겠지.


자켓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가 생각날 때의 대체재다. 그러자 그것을 본 대시가 자기 솜사탕과 그 막대사탕을 번갈아 보았다.


"에이 참, 언니도 달라고 하면 드렸다구요. 이거 진짜 부드러우면서 끈적끈적한 게 맛있어요."


"됐다, 꼬맹아. 난 향 있는 사탕이 더 좋거든. 포도는 와인, 사과는 사이다, 멜론은 미도리, 초콜릿은 크렘 드 카카오. 다 술 생각 나는 맛이지."


"우와, 술도 종류가 정말 많네요! 다 외우시는 게 대단해요! 전 술 하면 그냥 맥주 소주밖에 모르거든요!"


"...되는대로 갖다붙인 건데 그렇게 추켜세우면 내가 더 당황스러워, 꼬맹아."


눈을 빛내는 대시의 시선을 피했다. 차라리 채무자들의 눈길이 더욱 편했다. 그들은 공포와 적개심이 가득했고, 그런 만큼 마음대로 다뤄도 됐다. 하지만 이런 순수하고 무해한 녀석을 상대할 일은 없었다. 아버지조차, 패밀리를 이끄는 입장인만큼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진 않았으리라.


"아,  나중에 저 성인 되면 언니가 술 가르쳐주시는 거에요? 칵테일 바 같은 데서 정장  입고 일하면 정말 멋지고 보람찰 거 같아요."


"상사한테서 배우는 술은 술이 아니라 독이다."


"와앗, 안 돼요!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아요!"


소녀가 호들갑을 떨며 고개를 크게 젓자, 두 갈래 머리칼이 따라서 흔들리며 수금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아르세니코는 왼손으로 사탕 막대를 쥐며 한숨을 쉬고는, 오른손으로 대시의 머리를 짚었다. 움찔, 약한 경련과 함께 그 법석이 멎었다.


"내가 너를 뭣하러 죽이냐. 넌 내 소유물이야. 내가 널 죽이면 얻는 거 하나 없이 너만 잃을텐데 그럴 리 없잖아. 함부로 말하지 마, 꼬맹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엉망이 된 머리를 손으로 살살 풀어주었다. 긴장한 듯 뻣뻣해진 소녀의 몸이 다시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여간, 몇 달이 됐는데도 정신 사나운 건 변하지를 않는군. 수금원으로 일하기엔 꽝이야. 이래서는 언제 빚을 다 갚을런지 모르겠네."


아르세니코의 말에 대시는 잠시 머뭇거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 아르세니코는 그의 머리를 계속 정돈해주며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대시가 입을 열었다.


"언니도 대표님도 잘 챙겨주시는 걸요. 저도 거기 맞춰서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후회 없도록 살았다고 자랑하고 칭찬 받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러냐."


"집에 돌아가서 수고했다고 인정 받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즐거운 일을 찾고, 마음을 나눌 사람과 사귀고.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거에요. 한 걸음씩 계속 나가다 보면, 천릿길을 갈 수 있을 테니까요."


또박또박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 대시의 모습에 아르세니코는 어떤 대답이 좋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사채업자 입장에서 이 녀석을 비꼬지 않고 응원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언니."


"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에 당황한 아르세니코의 눈에 대시의 미소가 들어왔다. 순수하고 맑은 미소.


"옆에서 같이 걸어가주실 거죠?"

찰나. 정말 찰나의 시간이지만, 리타 아르세니코의 사고가 정지했다.

[금일 저희 알파트릭스 파크를 방문해주신 고객 여러분, 오늘 하루 즐거우셨나요? 저희 알파트릭스 파크는 30분 후, 오후 10시에 영업을 마감합니다. 다음에도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또 와주세요!]


안내방송이 놀이공원 안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대시는 벤치에서 번뜩 일어났다.


"아앗! 저 가기 전에 꼭 타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응? 아, 그래. 어트랙션 중에 빼먹은 게 있었나? 바이킹, 역중력 로켓, 롤러코스터, 방 탈출, 레이저 슈팅..."


한 박자 늦게 아르세니코가 오늘 코스를 체크하자, 대시는 입으로 기계 오류음을 흉내냈다. 삐빅-


"그런 거 말고! 놀이공원에 꼭 있는 거요! 회전목마!"


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