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추워”


하고, 겉옷을 껴입는다. 이면세계의 밤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춥다. 이런 겨울날에 경계근무를 서게되면

으레 들려오는. 벌레 소리나 멧비둘기 소리조차 없어.

더더욱 춥게 느껴진다. 습관처럼 카운터 워치를 들여다 보며 남은 이터니움 잔량을 체크한다. 저심도여서

걱정할 만한 소모량은 아니건만.


‘저심도라 해도 이면세계, 항상 잔량을 체크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목소리를 떠올리다가도

헛웃음과 함께 지워버린다. 


드드드드, 멀리서 빛과 함께 거센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정비되지 않은 이면세계의 노면을 덜컹거리며 라이트는 흔들린다. 정찰 나갔다가 돌아오는 차량이겠지.


함선 위치를 이제서야 확인했는지 털털거리며

두돈반, 투앤 하프 전술차량은 함선 옆의 초소를 향해 달려온다.


탈탈탈탈, 엔진음이 기괴하게 진동한다.


“뭐야 처음보는데 경계근무자야?”


방탄처리된 유리창이 끼익거리며 내려가고

선글라스를 쓴 운전자가 말을건다.

엔진음 때문인지 큰 목소리인데도 잡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차 근처로 다가가니 차량 발열 때문에

따뜻한 열기와 함께 안경에 김이 샌다.


“예,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암구호나 신원 확인은...

아, 이면세계지 여기.”


운전자는 창문을 올리지도 않고, 내가 치운 바리케이드 너머로 차를 몬다. 아아, 모처럼 따뜻했는데...

털털털 거리면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서 차량을 세운다.


그래, 이면세계에 돌아다니는거라곤 침식체가 다인데

신원확인이랑 암구호가 뭔 상관이야.

가끔 이터니움 채굴단이나, 해적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런 침식체 구덩이에서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그거대로 반가운 일이겠지.

난 잘 모르겠지만. 으으 추워


캉, 하고 밤의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운전자는 내린다. 혼자만 내렸다는건 동승자는 없었던건가?

출입일지를 뒤져보면 아마 확인 가능할테지만


코끝에 서린 추위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그냥 냅둬도 되겠지.


“어이, 커피 마셔?”


“예?”


운전자는 멀리서 소초를 향해 소리친다.

아까까지 귀를 간지럽히던 엔진음이 없어서 그런가

이 적막 속에서 그 목소리는 잘 들려온다.


“예! 뭐든! 따뜻한거면!”


추워서 생각보다 행동이 더디다. 즉각 대답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하는데에 시간이 걸려서인지 운전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다. 내가 외친 소리에 손짓했다.

‘뭐야, 뭐라도 주려고 그러나’하고 죽도를 내려놓고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낀채로 달려갔다.

운전자는 ‘야 엎어진다. 천천히 와’라고 말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걷다가 선채로 얼어 죽을 것 같아, 일부러 몸을 더 움직였다.


“담배 펴? 아무튼 이것좀 들고있어봐”


가까이 서 본 운전자는 생각외로 키가 컸다.

18...5?7?  쯤 되려나. 탄탄한 몸에 까맣게 탄 목덜미가 보인다. 이 추위에 넥워머도 없다니.

특이한 점이라곤, 머리가 꽤 길어서 단발머리 정도 되고 코가 꽤 큰데, 스포츠용 선글라스를 써서

부각 된다는 점?


운전자는 내게 담배를 맡기더니, 뒷문으로 들어가 뭔가를 꺼내는듯 했다. 후으으으, 담배가 타면서 나오는 흰연기조차 차가워 보인다. 그렇게 담배를 들고 서있자니


타타타타타타, 하고 다시 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운전자는 운전석으로 안에서 이동한건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자연스럽게 내게서

담배를 가져간 후, 한모금 핀다.

약간 비릿한 냄새와 어쩐지 고소한 향이 퍼지면서

운전자는 목 뒤에 스민 땀을 닦아낸다. 뭐지?

저 차량은 난방이 잘 되기라도 하나?


“땡쓰땡쓰, 좀만 있어봐 죽이는거 하나 줄게.”


그는 익숙한 몸짓으로 담배를 그대로 땅바닥에 버리려다가, 멈칫하더니 다시 버린다. 아아, 현실이랑 착각할만하지. 이면세계야 법률도 없고 담배를 버리던말던 뭔 상관이야.


또르르르, 하고, 보온캡을 열어 뜨거운을 물을

붓는 소리가 난다. 익숙하게 믹스커피 봉지로 대충 휘저어 스테인레스 컵을 내게 건넨다.


“뜨거워, 조심해서 마셔.”


“아 예, 감사함다.”


장갑을 낀 채로 받는다. 보온 장갑의 두터운 솜 너머로

미세하게 따스한 온기가 스민다. 새카만 이면세계의 밤. 별이라고는 없는 하늘. 하얀 김이 퍼져나가며, 안경에 김을 만든다. 하아, 코 끝부터 찡하게 풀어주는 온기.

따뜻하다.


“초소 들어가서 근무하지 왜 나와있어 근데?”


운전자는 차 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면서 묻는다.


“ 함선 이터니움량이 부족해서

함교 당직 세울 수가 없대요.

임시 초소라고 세워두긴 했는데 난방이 안되는 철판이라 더 추워요.”


“뭐? 애미씨발! 이 쓰레기 회사. 진짜 그만두던가 해야지.”


익숙한 욕지거리, 세계공용어가 당연 가운데에도 각 언어마다 욕설은 남아있다. 그거랑 발음만으로도 출신을 알 수 있다. 


“한국분이신가 봐요.”


“어? 알아들어? 어 너도 한국출신이야?”


“태어난건요, 자란건 도시구역에서 자랐어요.”


운전자는 덜컹덜컹하며, 차량에서 구식 난로를 꺼낸다.

저런게 들어가 있었어? 용케 보관하고 있네 


“처음 봐? 구식이긴 해도 향이 죽여.

그리고 기다려 봐 진짜 죽이는거 보여줄게.”


도대체 뭘 그리 죽이고 싶은건지 모르겠지만,

코끝을 어루만지는 커피향과 안경에 서린 김에 의지하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근무시간도 아직 남았고

밤은 길다. 할 것도 없고.


.

.

.


“야 향 죽이지? 캬 이 기름내!”


난로는 기름을 채우니, 무섭게 불이 붙어 주변을 

말 그대로 운전자와 내 주변만을 비춘다.

기름내... 처음 맡아본 것 같다. 요새는 아주 작은 이터니움 만으로도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으니.


그는 그 난로 위해 물을 넣은 반합을 올렸다.

그러고선,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난로에서 살짝 멀어졌다.


“어디가세요?”


“아, 기름 처음봐?

근처에서 담배피면 위험해서

그리고 물 빼고 있을라니까

끓으면 불러줘”


뭐야, 노상방뇨에. 아무도 안본다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이 아닌가.

뭐 어때, 이 주변은 따뜻하다. 

하아아, 이대로 녹아버릴 것 같다.


“뭐야 물 끓으면 말해달라니까.”


어느새 운전자는 난로 근처로 왔다. 빠르네.

그는 포켓에 손을 넣어 물티슈를 한 장 꺼내 손을 닦은 후에, 난로 옆에 내려놓은 가방을 뒤적인다.


비닐 봉투에 쌓인 소세지와 식빵을 그는 그대로 반합에 던지더니, 아차하고 유리병을 난로 위에 올려 놓는다.

어...


“저기요. 밀폐된 유리병을 가열하면 터질걸요?”


“아 그치? 깜빡했네.

저기 저기, 뒤에가면 남는 반합있어.

그것좀 들고와줘”


시켜먹기는, 뭔진 몰라도 맛 없기만 해봐라

한참을 차량 안에서 뒤적거리다 겨우 찾아낸 반합을 들고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여기요.”


“아 그러지말고 좀 옮겨담아줘. 부탁할게.”


“예에”


그래, 이왕 하는거 해주지 뭐.

유리병을 여니 코를 찌르는 달콤함과 매운향이 퍼진다.

걸쭉한 소스를 반합에 옮겨담고, 유리병은...


음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 다시 뚜껑을 닫아 난로에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다.


“오 거의 다 되어가네.”


“이게 뭔데요?”


“예전에 우리 엄마가 해준 핫도그....

의 야전판이지.”


“예? 식빵인데요?”


“어, 손에 흐를거니까. 자 이거.”


하고 내게 비닐장갑을 건넨다.

운전자는 물에 중탕한 식빵과 소세지를 꺼내

능숙하게 식빵 위에

소세지를 올린다.


그러고선 반합 뚜껑을 엎어서, 식빵을 위에 올린다.

소스를 꺼내 숟가락으로 휘휘 젖더니 빵과 소세지 위에

눅진하게 뿌린다. 


“잘 봐바 이게 죽이는 거라고.”


그 위에 치즈를 몇덩이 얹으니

반합 뚜껑의 열기에 치즈가 조금씩 녹는다.


... 확실히. 죽일거 같긴하다.



.

.

.


“와 이거 죽이네요.”


연신 그 말을 하며 베어먹는다. 입가가 더러워져도

이 추위 속에서 따뜻한 치즈와 이 소스...!

거기다가 빵과 소시지라니...


“내가 죽인다고 했잖아. 하 이게 섹스지!”


“근데 왜 혼자 정찰 나가신거에요?”


맛있다. 단숨에 먹어치우고 싶지만. 아까운 생각에

입을 떼고 난로 위에서 다시 데워진 커피를

한모금 마신 후에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 아... 그 뭐야.

너랑 똑같지 뭐. 좆같은 회사. 돈 없으니 정찰도 혼자

가라잖아.”


“아... 아아..”


괜한걸 물었네.


“근데 이 소스는 뭐에요?”


“고추제육소스? 몰라?”


“모르겠는데요.”


“너 몇살인데”


“그쪽은 몇살인데요.”


“너보단 많겠지.”


“그래 보여요.”


“새끼... 싸가지없긴.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야?

꼴도 그렇고. 솔저대원 중에서 못봤던거 같은데.”


“저도 그쪽 처음봐요.”


“아 거 새끼... 한마디를 안지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거칠게 빨아재낀다.


“내 이름? 허민. 이렇게 보여도 예전엔 야구 선수였다고. 넌 뭔데? 새로 들어온 솔저대원이야?”


너클볼 같은걸 잘 던지게 생긴 이름이다. 

이름을 말하려다가 잠깐 멈칫하고 카운터 워치를 꺼낸다.


“한솔. 양한솔이에요. 그리고 일단은 카운터에요. 지금은 카운터 능력같은건 없지만요.”



순간, 바람이 불어온 것 같은 기분이든다.

살을 에는 바람은 난로 사이를 지나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습관처럼 땅을 차고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