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6484476

2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6693426

3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6965547



부팀장님과 그 부사수가 쏜 대전차 로켓이 긴 꼬리를 끌며 날아가다가 하늘로 솟구친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갑차량의 상부장갑을 노리는 탑 어택 방식이다.


드론들로 이루어진 첨병이 돌아올 기색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장갑차들의 후방 도어가 일제히 열렸다. 적 보병들이 바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이제 저 새끼들이 이쪽으로 사격대형을 갖추면, 팀장님이 바로 은폐시켜 놓은 크레모아를 터뜨리는 거다.


"...어?"

내 입에서 새된 소리가 세어나왔다. 뭐..야 저거?

저거.. 사람인가?


지금껏 수도 없이 사선을 넘으며 나름대로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하던 나지만,

맹세코 저런 것은 처음 보았다.


개인방호구를 충실히 갖추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적 보병들이 보인다.

손에는 개인화기도 들고 있다.

그 외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흑색 혹은 적갈색으로 변질되고 부풀어오른 살덩이가 덩어리지어 엉겨붙어 있었다.

얼굴도 사지도 전혀 원형을 알아 볼 수가 없다.

육안으로 보이는 질감은 딱딱해 보였다. 피부라기보다는 말라붙은 나무껍질에 가까운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침식체 같았다.


충격과 경악 때문에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간신히 눈동자를 돌려 팀원들을 바라보니 다들 얼음처럼 굳어있다.

심지어 가은씨마저도.


그 때 우리 팀장님의 냉철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크레모아 격발 크레모아 격발!]


팀원들이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일제히 몸을 숙이고 엄폐했다.

이건 머리로 판단해서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지금껏 해왔던 수많은 훈련과 실전경험에 따라 몸이 알아서 반응한 것이다.


나도 바닥에 엎드리려다가 가은씨가 여전히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한김에 달려들어 목덜미의 밍크 같은것을 잡아당겼다.


콰아아아앙

살짝 고개를 들어 창 밖을 관측했다.

적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거나 혹은.. 아직도 살아서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변하면 쉽게 죽지도 않는건가?


팀장님의 낮고 힘 있는 목소리가 팀 무전망에 울렸다.

[정신들 차려 이놈들아. 

저것들이 어떻게 생겨먹었건 뭔 상관없다. 이쪽을 향에 총 겨누고 있으면 적이야. 맞서 겨누고 쏴. 

우리는 블랙 타이드 에코팀이다. 저 되다 만 장난감 같은 놈들은 그냥 짓뭉개버려.]


그랬다. 그 말이 맞았다.

저 새끼들이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게 장비건 똥 덩리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블랙 타이드인데.

내 총을 들어 어깨에 힘있게 견착한다.

이 쪽을 향해 총을 겨누혀는 적을 사이트 중앙에 넣고 

방아쇠를 부드럽게 당긴다.


타다당


그리고 

폭풍같은 총성이 일제히 적을 향해 몰아쳤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적들은 그저 외형만 괴상하게 변한것이다.

이성이나 지성 심지어 공포심 같은 감정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쪽 다리가 날아간 적을 다른 적이 질질 끌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다가 창민이의 유탄에 사이 좋게 박살이 났다.

옥상 기관총에 제압된 적 대여섯명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적 간부로 보이는 자가 무전으로 무어라 급하게 소리지르는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

저것들 말도 할 수 있었나?


그 적을 겨냥하는 순간,

적 전차들이 차체를 이쪽으로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접근한 다음 일제히 포신을 들어 이 쪽을 향해 겨누었다.


이런 미친..

간담이 절로 서늘해졌다.


[적 전차! 누가 염병할 적 전차좀 저지해!]

누군가의 무전이 귀를 찔렀고,

그리고 무언가가 폭발했다.


엄밀히 말하면 폭발이라는 묘사는 부적절했다.

화염도, 폭음도, 폭발과 함께 동반되는 모든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땅에 내려치는 벼락이 그 형질을 바꾸고 지상에 파괴의 신으로서 강림한것만 같았다.


사람 크기의 두 세배 쯤 되는 거대한 푸른색 구형 번개가

적들이 밀집된 한가운데서 '터졌다'.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마치 폭풍에 휩쓸리는 개미떼들처럼 적들 한 무더기가 사지가 찢겨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조금 전 이쪽을 겨누던 전차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고,

자기들 전차 바로 뒤에 엄폐해서 교전하던 적들이 그 폭발에 휘말려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창 밖으로 작은 권총을 겨누고 있는 가은씨가 보였다.


양 팔이 떨리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권총은 다시 한번 불을 뿜었다.


그때 적 총탄 수 발이 내 바로 옆에 꽂혔다.

분진과 파편이 튀어 오르고, 나는 반사적으로 총구를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놀란 가은씨가 이쪽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은씨가 뭐라고 했더라.

'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건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사람을 죽게 할지도 모른다는건, 그게 좀 무서워서..'


그리고 내가 뭐라고 대답했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가은씨 혼자 싸우도록 두지 않을겁니다.

옆을 바라보시면 언제나 제가 있겠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총구를 쳐들었다.

우리 쪽을 향해 대전차 로켓을 겨누던 적을 향해 사격했다.

총에 맞은 적이 쓰러지고 미사일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다.

주변의 적 수 명이 후폭풍을 뒤집어 쓰고 뒹굴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팀원들,

죄다 어디서 한 가락씩 하다 온 양반들이다 보니 죄다 사격 실력이 장난 아니다.


특히 은근히 걱정하던 막내 민혁이놈은 역시 SART출신이 어디 가는것은 아니었는지,

조정간을 자동으로 놓고 필요할때마다 능숙하게 적당량을 끊어서 사격하고 있었는데,

교전 전 평소의 그 못미덥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팀장님은 그 와중에도 핸드폰으로 적들의 저 괴상망측한 상태와 무장수준 등을 촬영해 

블랙 타이드 지통실로 전송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사람은 카운터 가은씨였다.

그 조그만 권총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지 사방에서 무언가가 터져나갔고,

적들이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 가공할 궁극기가 휩쓸고 지나갔다.


엄폐물에 숨어도 소용없었다. 직접 봐서 알게 된 거지만 저거 직사로 나가지 않는다.

마치 탄환이 적을 찾아 저 혼자 날아다니며 구상번개를 흩뿌리는 느낌이었다.


그 때 드론들 특유의 윙윙대는 로터음이 들려왔다.

아까 그놈들이 이제야 돌아오는 모양이다.

"드론 로터음 확인됩니다! 다수추정!"

내 경고소리에 팀장님이 즉각적으로 지시했다.


[정찰조! 드론과 조우하면 적 드론을 우선적으로 격추하고] "가은씨! 제 말 들립니까?!"

"네 잘 들려요!"


카운터라 그런가 이 난리통에 잘도 듣는다. 난 절반도 안 들리는데.


"적들이 이제 내빼려는 모양입니다! 보병들은 냅두고 장비 특히 전차만 중점으로 잡아주세요!"

"알았어요!"


그 말대로 드론들이 우리 앞으로 들이닥침과 동시에 적들이 자기들 부상병들을 장갑차 안으로 집어던지다시피 하면서 후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산개해서 회피기동을 하며 살려고 기를 쓰던 얼마 안 남은 적 전차들이

모조리 엄폐물에서 나와 우리 앞에 몰려들었다.


PMC면 으례 그렇듯이 전차들도 무인전차가 대부분이니 보병들의 후퇴를 위해 희생하려는 모양이었다.

저것도 어떻게 보면 저 괴물딱지 같은 놈들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앞으로의 결전에 도움이 되는건 저 박살난 보병 부스러기들이 아니라 저 전차들일테니 말이다.


드론들이 다 격추되고 마지막 전차가 가은씨에게 격파되기 직전

몇 명 남지도 않은 적들은 장갑차에 탑승해 황급히 전장을 빠져나갔다.


타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다당

옥상의 기관총이 불타는 궤도장비들을 배경으로 쓰러진 적들에게 확인사살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들이 들썩거리면서 어딘가가 터져나갔다.


일단은.. 끝난건가? 

진짜로..?


헬멧을 벗고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는데 가은씨와 또 눈이 마주쳤다.

억지로 씨익 웃어주니 가은씨도 같이 억지로 웃어주었다.

미소도 울상도 아닌,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정말 가관이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수통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가은씨가 뭔가 아기사슴같은 얼굴을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뭐야 가은씨는 물이.. 없구나! 하도 급하게 출동하느라 아무도 챙겨주지 못한것 같다.

재빨리 수통을 건내주자 감사도 재대로 못하고 꼴깍꼴깍 받아마신다.


그때 본부 지통실과 교신하던 팀장님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주워섬겼다.

"염병할.."

평소 욕은 하지도 않던 팀장님이다. 또 무슨 일이야 저거.


"알파팀 주목!

적들이 ATAC-130기와 동일 혹은 유사기종인 건쉽을 보유중이라는 관리국 발 첩보가 입수됐다!"


아니 뭐라고?!


"그리고 그게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무거운건 전부 버리고 개인화기랑 군장만 챙겨서 주 방어선으로 퇴출한다."


진짜 염병할이다.

도대체 무슨 좆같은 테러범새끼들이 건쉽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럼 그냥 군대잖아.


더 환장할 노릇은 한국군이 한반도 본토를 공격중인 적들을 소탕한답시고 인근 공항에 주둔중이던 항공기를 죄다 빼가버려서

저새끼들은 그냥 신문지로 접은 종이비행기만 날려도 그 망할놈의 제공권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적들이 정말로 건쉽이 있다면 지금 하늘은 저놈들의 놀이터다.


브리핑때 뭐라고 했더라

이미 그쪽에서 소티 할당까지 다 끝내놨으니 항공지원은 생각도 말라고 했던가

아오 씹새끼들 진짜


"옥상에도 무전하고 당장 이동 준비한다. 움직여!"




옥상 화기중대는 1층에서 사주경겨중인 우리 엄호 하에

기관총진지를 버리고 몸만 빼내서 레펠로 내려오는 중이다.

근데 저새끼들 더럽게 느리네 뭐하는거야.


보다 못한 가은씨가 엄폐물에서 뛰쳐나와 두 굼벵이들 바로 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뭐라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뛰어 내리세요! 밑에서 받아 드릴게요!"


뭐?


"카운터니까 괜찮아요! 한분씩 뛰어 내리세요!"


두 놈이 뭐라고 합의를 보는것 같더니 선임으로 보이는쪽이 먼저 뛰어내렸다.

가은씨는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그 놈을 텊 받아냈다.

공주님 안기로..


이 황송할 영광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수를 무시하고 가은씨는 부사수에게 소리쳤다.

"다음분! 놓고 떨어지세요! 빨리!"


그런데 저놈은 도저히 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자기 사수가 병신 어쩌고 하며 그냥 놓으라고 난리를 쳐대도 손만 부들부들 떨고 있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그때 창민이놈이 뛰어가 지 유탄발사기를 위쪽으로 쳐들었다.

"씨발 이럴 시간 없어!"

그리고 갈긴 유탄은 매달린 부사수를 지나쳐 그대로 옥상 난간을 넘어가 터졌고

그쪽 어딘가에 묶어논 고리 같은걸 박살낸 모양이었다.


줄이 끊어지고 가은씨는 줄째로 떨어지는 병신을 재빨리 받아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고함을 질렀다.

"정신 나갔냐 이 새끼야?!" 


유탄발사기의 유효사거리가 300m가 넘는다지만 탄속이 낮은 유탄은 직각으로 발사될 수록 사거리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통제가 안 되는 짓거리였단 말이다.

그것도 엄폐물 하나 없는 허공에서!


물론 창민이 놈도 지지 않고 맞고함을 질러댔다.

"좆 까 씨발! 이런데서 다 같이 뒤질수는 없어!"


부팀장이 끼어들어 우리 둘을 달랬다.

"됐어. 다 살았으니 됐어! 이제 출발한다. 가자! 빨리!"


통상적인 사주경계를 하면서 진입할때와는 다르게

퇴출중인 지금은 완전한 시가전 교리에 따라 이동중이다.

이곳은 이미 적지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건물들의 옥상이나 창문을 전부 경계한다.

담장이나 집앞을 지날때는 노출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다.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보이면 반드시 한명이 총구를 들고 혹시 출몰할지 모르는 적에 대비해 엄호한다.


이런 식으로 이동하니 도착하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마음은 급한데 그냥 다 잊고 전력질주를 하고 싶은데..


저 멀리 숨겨놓은 채리엇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제 저거 타고 갈수 있는걸까?

그쪽에는 카운터가 세 명이나 있으니 건쉽쯤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그때 하늘에서 불덩이가 날아오더니 채리엇이 순식간에 박살났다.

그 순간부터 모든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채리엇이 폭발하는것도

그 하늘에서 땅에 꽂히는 불덩이가 조금씩 가까워 지는것도

전부 보였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도망치는것도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주마등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아영이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멈췄다.

하늘의 건쉽이 쏘아대던 탄환은 채리엇을 먼저 박살내고 

사격을 유지한 채로 우리를 향해 조준점을 옮기다가 사격을 멈췄다.


어느새 가은씨가 권총을 들어 하늘을 겨냥하고 있었다.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맞췄습니까..?"

어느새 철퍼덕 주저앉아 있던 민혁이가 파들파들 떨면서 물었다.


가은씨는 대답 대신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작은, 아주 작은 주황색 점 하나가 보였다.


팀장님은 이 순간에도 냉철했다.

"다들 정신 차려! 주 방어선까지 구보로 퇴출한다!"


이 판국에도 자동으로 욕이 기어 나왔다.

하 인생 씨벌 진짜..



------------------------


왜 플롯으로 짤때는 짧은데 쓰고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는 걸까..

긴 똥글 읽어줘서 고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