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counterside/27891484



그녀의 전우들은 언제나 완벽했다.

매번 한 두개씩 실수를 일삼는 자신과 달리 그녀들은, 그들은 언제나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곤 했다.


'그래도 우리 중에 가장 '인간다운' 녀석은 너라고?'


언젠가 한 전우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는 말했다.


"인간답다는건...좋은게 아니야."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의식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낯선 천장이다. 이따금씩 의무실에 실려간 동료들이 실없이 내뱉던 농담이 떠오르는 상황이였다.

애초에 그녀는 요즘들어 천장을 보며 누운 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별과 달이 떠있는 밤하늘이라면 모를까 깔끔한 실내의 천장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였다.


"아, 일어나셨군요. 다행이네요."


낯선 장소에 더불어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몸은 곧장 자신의 머리맡에 둔 검을 집어...


"내 검!"

"아, 그거라면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목소리에 이끌린 시선에 끝에는 사람 좋아보이는 남자가 들고있는 익숙한 물건이 있었다.

검은색 검신과 피처럼 붉은 검날이 인상적인 직도. 활성화 되지 않아 조금은 어두운 붉은 빛의 검날이 영락없는 그녀의 것이였다.


"당장 내놔! 그건 내 거야!"

"네, 그래야죠...그 전에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남자는 가볍게 직도를 몇번 휘두르더니, 미소를 지운 얼굴로 물었다.


"당신, 관리국과는 어떤 관계죠?"

"관리국..."


그제서야 조각나있는 기억이 짜맞춰진다.

언제나처럼 떠돌아다니던 그녀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고통에 주저앉았을때, 그때 나타난 남자의 얼굴은 그녀에게 낯설지 않은 이의 그것이였음을.


"...먼저, 당신은 나유빈 부전대장이 맞습니까?"

"질문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이 검. 관리국에서 휘하 전대원들에게 지급한 보급품일텐데요. '구 관리국의 디바이스'어쩌고 하는 소문을 쫓았을 뿐인데...그걸 사용하면서 관리국의 전대명까지 알고있다니."

"저도 관리국의 일원이였으니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했지만 힘이 풀려버린 다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일어나기를 포기한 그녀는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는 것으로 타협하고, 남자를 마주한채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강습전대원이였습니다...펜릴은 아니였지만."

"...1 전대는 전멸했습니다. 살아남은 소수는 전부 파악하고 있어요. 그 안에 당신은 없었으니까."

"1전대라니, 저는..."


얼마만일까.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이름을 입에 담은 그녀는 찢어발기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생존자는...없을겁니다. 기함째로 추락했으니까요. 전부...죽었습니다, 저만 빼고."

"미안합니다. 그건 펜릴이..."

"펜릴...관리국의 1 전대...그들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대장님은 그 소식을 듣고 곧장 퇴각을 명령 하셨지만..."


'살려줘어어어어어어!!!'

'다리, 내 다리가아아!!!'

'다들 어딨어? 장난 치지말고, 나 아무 것도 안보여 얘들아, 얘들아?'

'전원 전장을 이탈-'


"그만두세요. 피가 나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입술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나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눈을 뜨면 '무엇인가'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끔찍한 지옥이 보인다.

이 굴레를 끊을 능력은,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는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지만-


"부전대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부전대장이..."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더 이상은...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실내를 짓누른다.


무너진다. 억지로 쌓아왔던 벽이.

무너질까. 얼기설기 엮어놨던 어설픈 마음이.

무너졌다. 마침내, 그녀가.


"죽고싶습니다...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왜 태어났죠? 어째서 살아있는거죠?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해요. 그들이, 그분들이 살라고 했으니까. 저는 그들의 부탁을, 명령을 어기지 못해요. 그러니까 제발..."


희뿌얘진 시야로, 그저 흐릿하기만 한 남자의 인영을 향해 소리친다.


"죽여주세요. 제발, 당신이. 그들의 명령을, 부탁을 지워주세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아아아!!!"


처음이였다.

알 수 없는 고통, 알수 없는 '무엇인가'에 시달려왔던 그녀가 자신의 소망을 바란건.

죽고싶었기에, 죽지 않으려 했다.

죽지 않기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죽고 싶어, 검을 휘두르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녀의 안식이, 그녀의 평화가 드디어 그녀의 손아귀에 잡힐 거리에 닿아있다.


그녀는, 드디어 오늘 죽는다.


남자는 침묵했다.

그저 묵묵히, 무너져내린 한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채, 무너져내린 조각을 끌어안지도 못한채 산산히 부숴진 그녀에게 남자가 해줄 수 있는건 없었다.


아무것도.


"...당신같은 선봉대원은 클론이였죠. 클론은 애초에 수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끽해야 10년정도이고...이면세계를 넘나들었던 관리국의 전대원이라면 그보다 훨씬 짧을테죠. 그래서 전 아직까지 생존해있는 전대원이 있을거라곤 생각못했습니다."

"그 말씀은..."

"네, 당신의 수명은 다했을겁니다. 분명히."


아아, 그런가.

드디어 이 고통스런 긴 시간이 끝나는가.

그 말에 안식을 얻으려는 찰나, 남자의 잔인한 말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당신이 카운터로 각성하지 않았다면요."

"뭐...라고?"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가르켰다.

거기에 있는건 그저 필요에 의해 어디선가 구한. 아무런 기능따위 없는 쓸모없는 손목시계.

그저 시간을 알릴뿐이였을 시계...였을텐데.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건 아마도 가벼운 침식 증후군이였을겁니다. 제대로 된 카운터 워치를 사용하지 않으니 CRF수치가 불안정했을거고, 그 상태로 싸구려 이터니움 쉴드따위를 사용하니 침식파에 노출되어서..."

"잠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생체 클론. 육체 강화 시술을 받은 소모품이였을진데.


"...역시 자각이 없었군요. 그래서 그렇게..."

"잠깐,잠깐만요. 그럼 제 수명은? 내 죽음은...?"

"카운터는 그리 쉽게 죽지 않습니다...복제 DNA로 인한 수명단축따위, 문제도 되지 않을테죠."


남자는 잔인하게도, 그리고 너무나도 매정하게도 선언했다.


"저는 당신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할겁니다."


그 직후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 펜릴의 부전대장, 이제와서야 야인이 되어버린 남자, 나유빈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방안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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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 4부작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