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아. 난 너를 남자로 본 적이 없다. 아들 같다고는 생각했어도."


힐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내게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히는 말을 해야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거구나. 어쩌면 서먹해져서

다신 예전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없는 농담도,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능글거리는 모습도. 

하지만 주시윤은 더 행복해져야 한다. 아직 살 날이 더 오래 남았고

한창 좋을 시기를 나같은 부모의 원수와 보내게 할 순 없다.

힐데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거짓말을 하는 눈빛이시네요, 스승님."

"뭐?"

"스승님도 거짓말을 할 때 눈에 티가 납니다. 오래 같이 지내봐서

아주 자알 알고 있죠."

"쓸데 없는 소리.."

"저를 한 번도 남자로 본 적이 없다고 하셨죠?"


주시윤은 앉아 있는 힐데와 거리를 좁혀 앉았다. 주시윤의 체취도

맡을 수 있는 거리. 힐데는 그를 마주 볼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 마치 주시윤을 의식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주시윤은 조금 더 힐데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체온이

전해질 정도로, 그리고 더 가까이, 코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힐데는 당황하여 주시윤을 밀쳐냈다. 천천히 좁혔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럼에도 주시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 소녀같아서 귀엽네요."

"이, 이건 다르다!"

"어떤 엄마가 아들이 다가온다고 밀쳐낼까요?"

"스승을 놀려먹는거 아니다. 버릇이 없군."

"아까도 말씀드렸을텐데요. 저는 진심이라고."


힐데는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분명 주시윤을 이성으로 본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비친 주시윤은.. 


"스승님, 그렇게 얼굴을 붉히시고, 여기까지 심장소리가 들리는데

아직도 우기실 생각인가요?"

"술마셔서 그런거다! 건방떨지 마라."


더이상 그녀의 눈에 주시윤은 예전에 같이 살았던 꼬마로 보이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 녀석이 술책이라도 부린걸까? 


"...너 혹시 지금 용혈쓰고 있냐?"

"그럴리가요,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스승님이 ok하기 전까진."

"누가 ok한다더냐?"


힐데는 주시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그와 지내며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처음 검을 쥐었을 때의 주시윤, 

가르침을 받는 주시윤, 그때의 힐데는 분명 제자를 아들처럼 

바라봤다. 좀 더 성장해서 힐데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주시윤.

그때부터는 친구같이, 전우로 여겼다. 더 성장한 지금의 주시윤..

힐데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분명히 제자를

이성으로 보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녀나 여신같은

웅장한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대해줄 어쩌면 유일한 남자.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 정정하지. 너는 지금 분명히 내게 이성으로 보인다."

"ok사인 인가요?"

"물론 아니지. 넌 아직 너무 어려. 더 좋은, 더 많은 여자를 

만날 필요가 있다."

"하하.. 제가 언제 스승님이 처음이라고 말 했던가요?"

"?!"


힐데는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치는 입장이지 맞아본 경험은

일천한 그녀에게 그런 감각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너 연애 경험 있냐?"

"네, 스승님을 잊어보려고 한동안 방황했었죠. 그리고 사귀던

여자들마다 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넌 숨기는 게 너무 많아.'"


주시윤은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걸 숨기고 있으니 들킬만도 하겠죠.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숨기고 있었으니, 늘 솔직할 수 없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스승님과 비교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절 이렇게 만든 건 스승님이라는 겁니다. 책임져주시죠."


힐데는 보기 드문 주시윤의 진심이 가득 담긴 말에 놀랐다.

나를 향한 이 녀석의 마음은 진심이구나, 힐데는 그를 배려하고자

밀어내는 것이, 그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시윤의 마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그녀를 괴롭혔다.


"후.. 네말은 잘 알겠다. 그런데.. 몇가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어."

"네? 어떤거죠?"

"... 듣고 놀리지 마라."

"하하, 일단 들어보고 나서?"

"나는.. 그러니까, 나이가 나이라 네 또래의 알콩달콩한 연애는

못 할수도 있다."

"제게 맡기시죠, 스승님을 신세대로 만들어 드릴테니까."


그게 싫어,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 힐데였다. 뭐, 이제 시간은 많으니까. 


"진짜 놀리지마라! 결혼 ... 말인데."

"풉!"

"...."

"아, 아니 아니, 방금까지 고백의 성공여부를 걱정하고 있다가, 

결혼 토픽까지 나오니 긴장이 확풀려서요. 하하하."

"놀린거 아니지?"

"귀여우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나, 나는 결혼하고 싶다고!"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스승님께 꼭 웨딩드레스를 입혀드리겠습니다."


힐데는 다시 시작된 능구렁이같은 제자의 대답에 머리를 싸맸다. 


"아.. 이제 회사에 무슨 낯으로 다녀야 하냐..."

"한참 연하를 꼬신 능력녀의 낯은 어떠신가요?"

"이수연이 뭐라고 할까.. 아니, 그 이전에 신입이나 다른 애들도.."


힐데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주시윤은 턱을 괴고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요정이

그의 짝이 된 것이다. 소년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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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안 써져서 찍쌈 이러면안되는데 쓰고는 싶은데 안써져서 화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