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en Ending

1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10323 

2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38064 

3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69223 

4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109871 

5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147990










정장을 입은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CCTV화면을 지켜본다. 화면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자는 화면 속 쓰러진 여자와 우두커니 서있는 남자에게 집중한다. 팔짱을 낀 손가락을 까딱이다 이내 멈춘다. 원격 조종기에 남자가 손을 올린다.



"귀한 원석을 다듬는건 당연히 힘든 일이지."










*


복도에서 사장님 특유의 이동 할 때 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사장님이 기계 팔로 팔짱을 끼고 보고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인가-"

"사장님. 사장실에서 다 보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호통치실 시간에 차라리 거들어 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시윤군도 멍하니 서있지 말고 도우시죠. 맡은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했습니까? 뛰어온 미나양이 할 일이 아닐텐데요."

"저기..! 지, 지금은 다친 사람부터 봐야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뭘 하기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달려와서 보고 있는데 뭘 도우란건지...



"흠- 시윤군. 어제 대체 뭘했길래 이 사단이 나는겐가?"

"신분 위장을 위한 쇼핑?"

"... 그냥 땡땡이 친 거를 그럴듯하게 말하는군요."

"그럴리가요. 카린양의 희망사항에 맞춰서 신변을 숨길만한 물건을 샀다구요? 부사장님이 케어하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수습이 끝났는지 카린양은 침대에 올려져 있었다. 부사장님의 한숨 소리와 함께 나와 사장님을 째려본다. 




"부사장. 그렇게 째려보지 말게! 내 귀한 몸뚱이에 구멍이 나겠구만!"

"됐습니다. 항상 그런식으로 떠맡으셨죠. 나머지는 시윤군이 처리해주시죠."

"네?"

"원래 시윤군이 해야 할 일을 저와 미나양이 한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이 위험한 물건은 어디서 구한건진 몰라도 다시 손대지 못하게 치우겠습니다."

"부사장도 미나양도 고생했네. 부사장 말대로 뒷 일은 시윤군에게 맡기게나."

"하하하... 남의 집 청소는 취미가 아닌데요~ 게다가..."

"출격하는거 보다 땡땡이가 더 좋아 보이는데. 선배... 그럼 일단 오늘도 출격해야해서. 다녀올게- 힘내고-"






북적이던 병실은 나와 사장님. 그리고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는 카린양만이 남았다. 병실이 붉게 엉망진창이 되어있다. 일단 대충 저 피바다부터 치워야겠지. 그런 짓을 하고 일어나자마자 자기 피부터 보이면 생각이 많아 질 것이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





"카린양이 많이 힘든가보군."

"..."

"시윤군. 카린양이 이 곳에 남는다고 선택한 건 본인의 의지였네. 나는 선택지를 주었을 뿐이지."

"..."

"기회를 잡는 건 본인이 결정하는거니까. 무슨 말인지 시윤군이 잘 알 거라고 믿네."

"뭐... 나름 지독하게 잘 알고 있죠."




죽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게 아니다. 살기위해 몸무림치는 모습 중 하나 일 뿐.

수 없이 새기고 파고드는 상처의 고통보다 살아 숨 쉬는 순간이 더 고통이니까.


... 괜히 왼팔이 욱씬거린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쥐었다.




"흐음, 시윤군과 베로니카양, 부사장 외에는 카린양에게 당분간 별 다른 지시 없이 접근하지 말라고 하겠네."

"변하지 않을 내용을 지시하시네요. 사장님."




여태 안 그런거도 아니고... 청소 도구 가지러 가겠다고 말하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땡땡이는 글렀구만.









-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청소 도구까지 정리하는 동안에도 카린양은 깨어나지 않았다.

부사장님이 들고 간 칼. 좀 작긴 했지만 군용 나이프 같았다. 대충 어디서 나왔을지 짐작이 가 병실 옷장 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을 꺼냈다. 다시 입기도 어려워 보일 정도로 옷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자켓 안 쪽과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보았다. 음, 그거 하나뿐인건가? 아예 거꾸로 들어서 한번 털자 접혀있는 접이식 호신용 칼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래, 하나 더 있을 것 같더라.



"하하. 이런건 압수에요~"



떨어진 호신용 칼을 주워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긴 싫지만... 위험 요소 하나를 제거하기 위함이니까. 이건 정당방위다. 옷을 다시 가지런히 정리해서 걸어주고 병상 쪽을 돌아보았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을 보니 노란 리본과 같이 놓여져 있었다.

... 나도 물러졌나보다. 다른 세계에서 온 여성에게 선물이나 하고 있다니.


일어날진 모르겠지만 오늘 점심은 구내식당보단 밖에서 사와야겠다.








-


혹시 일어났을까봐 노크를 했더니, 인기척이 들린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 쳐다보는 카린양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피한다. 잘잤냐는 인사와 함께 가까이 가서 침대 간이 테이블을 꺼내고 포장해온 음식을 올려 놓았다.





"오늘은 오래 자던데요?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 ..."

"해가 중천인데 점심 먹지 않을래요? 아침겸 점심이겠지만. 아! 어제도 아점이였죠?"

"... ..."

"다친 곳은 어때요. 좀 나아졌나요?"

"시윤씨가... 혼자 정리한거에요?"




예상 밖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일부러 모른 척 해줬는데.




"하하- 청소하기 힘드시니까 제가 특별히 해드렸죠. 이 정도면 나중에 은퇴하고 요양보호사 같은거 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청소 전문업체?"

"... 다른 사람들도 봤을까요."

"아뇨. 저만 알고 있어요."




무심코 선의의 거짓말을 던졌다. 어차피 봤던 사람 중에 함부로 언급 할 만한 사람도 없으니. 부스럭거리는 비닐 봉투와 포장지를 벗겨냈다.




"...?"

"기분이 별로 일 땐 치킨이 딱 아니겠어요?"

"... ..."

"안 좋아해요?"

"제가 봐왔던 치킨의 모습이 아니여서요."

"순살이라 그런가? 뭐가 다른건진 몰라도, 일단 먹어야 기운나죠. 맛있을거에요. 먹어봐요."




손이 가지 않는지 그저 쳐다보고만 있다. 억지로 먹일 생각은 없었다.

안 먹으면 제가 다 먹을거에요-라고 말하고 일회용 포크에 한 조각 꽂아주었다. 이번엔 받아서 쥐고만 있다. 어느샌가 카린양의 눈엔 눈물이 고여있다. 한숨을 푹 쉬고 옆에 있던 각티슈를 뽑아서 건냈다.




"정말... 먹을 거 앞에서 울면 어떡해요~"

"... ..."

"울지 말고, 먹고 기운차린 다음에 얼마든지 들어줄테니까 울지마요."

"... ..."

"저 팔 떨어지겠어요~ 제가 닦아줘요?"

"제, 제가 닦을게요..!"





재빨리 내 손에 있던 티슈를 채가서 눈가를 닦는다. 하루에 한번 씩은 꼭 울어야 하냐고 놀리니 날 째려보곤 그제서야 먹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표정이 조금씩 펴졌다. 참 생각이 많으면서도 단순한 사람 같다. 몇 조각 집어먹고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더 안 먹어요? 진짜 제가 다 먹어요~"

"이미 배부르게 먹어서 괜찮습니다."

"군인은 보통 많이 먹는다던데 카린양은 여러므로 특이한 분 같네요."

"튀긴 음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보니 많이 먹기가 어렵네요. 그, 그래도 잘 먹었습니다."




가리는 거 없다면서... 가리는게 없다는게 다 잘 먹는다는 얘기는 아니였던 것 같다. 나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니 테이블을 정리했다. 치우는 내내 카린양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리를 다하고 돌아보니 눈이 마주쳤다. 왜인지 이번엔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그냥 쳐다보았다.




"제 얼굴 닳겠어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의 말에 카린양은 시선을 거두었다. 할 말이 있는 표정이다. 먼저 말 할 때까지 나도 간이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았다. 맑았던 하늘에 점점 구름이 드리우고, 햇빛이 점점 사라졌다. 병실 안도 점점 어두워진다. 카린양은 여전히 시선을 떨군 채 말문을 열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것보단 다 나아가던 본인부터 걱정해야겠는데요?"

"꿈을 꿨어요. 지나온 날들이 스쳐 지나가는 꿈을."

"... ..."

"살아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는 것이 보인다. 처음 이 회사에 오던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나의 생각이 지금의 그녀와 비슷한 걸까.




"제 동료들은 마지막까지 멸망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수 없는 죽음을 뒤로 하고 지나온 길의 끝이 지금 실패한 제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살아있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사소한 행복마저도 저에겐 사치에요."

"그래서 죽겠다고, 그렇게 자기 팔을 난도질 한 거에요?"

"... ..."

"카린양. C급 카운터만 되어도 그렇게 그어댄다고 쉽게 죽지 않아요."

"저도 알아요! 안다고요!"

"그럼 왜 한 거에요!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놀랬는지 흠칫하는게 보였다. 다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바깥의 바람 소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알 수 없는 분함에 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뭐하시는..! 아, 아파요...!"

"아플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환자복 소매를 걷어내자 손목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감긴 붕대가 보였다. 지혈이 덜 된 부분도 있었는지 피가 조금 묻어있다. 손에 힘을 빼자 스르륵 팔이 빠져나갔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과 왼팔이 욱씬거린다. 내 이야기는 되도록 하기 싫었고,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 시윤씨..."

"카린양...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않아요."

"..."




왼팔를 들어 소매를 걷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수 많은 날의 상처가 드러났다. 부모님이 죽고, 스승님에게 거두어진 그 날부터 괴로울 때 그어진, 수 없는 날의 흔적이었다.





"내가 왜 살아있는지, 왜 나만 살아남았는지, 내 부모님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저 역시 수 많은 괴로운 시간을 보내왔어요. 타인을 원망하면서, 살아남은 자신을 혐오 했습니다. 저도... 이미 카운터로 각성한 저는 아무리 팔에 난도질한다해도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그게 미칠 듯한 괴로움을 발산하는 방법이었으니깐."

"... ..."

"카린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카린양. 울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팔을 찢어버릴 것처럼 그어대던 어느 날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이대로 내가 죽어버리면, 찾지 못한 진실을 알게 되는지 또 마음이 깨달아지는지 말이에요."

"... ..."

"저는 그 뒤로 제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쫓기 위해서요. 그리고 제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오니 그런 행동은 자연스럽게 생각나지 않았어요."

"...아..."

"죽음은 탈출구 같은게 아니에요. 카린양. 사람들을 지키기위해서 계속 살아남았다고 했었죠? 악착같이 살아요. 이곳이 당신의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여기서 분해되지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고 스스로 결정 했잖아요. 원래 살던 세계는 멸망했을지언정 카린양 본인의 세계는 끝나지 않은거에요."

"흐윽..."

"최선을 다해서 살아요. 누리는 행복도 마다하지 말고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거에요."





카린양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럽게 울었다. 나는 다시 소매를 내렸다.





"흐윽... 시윤씨는 그럼... 흑...."

"...?"

"진실과 방향을... 찾았나요...?"

"...여전히 찾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제 마음엔 솔직해지기로 했어요."

"흑..."





서러운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러다가 과호흡이 오면 또 곤란해질 것 같으니... 내키진 않지만. 카린양의 등에 손을 올려 토닥였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듯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달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은 유독 추운 것 같더라니, 2월의 끝자락이라는게 어울리지 않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새하얀 함박눈이.













+) 15~20편 사이로 끝나지 않을까 예상중이야

쓰면서 주시윤이 메인스토리 이전부터 지금까지 어땠을까 생각하고, 헷갈리는거 찾아볼려고 도감에서 스토리도 다시 돌려봤어 최대한 스토리에서 드러난 캐릭터의 특징을 너무 해치지 않게 쓸려고... 카린도 마찬가지로 저런 상황이라면 어떨지 고민을 많이 했음!!

모자란 글 이번에도 읽어줘서 고마워!!
+) 문장 흐름이 좀 이상한부분 수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