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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분들은 다 좋으신 분들 같아요. 앗, 부사장님."

"어서와요. 카린양. 시윤군도 고생하셨습니다."






본사 연구실과 공방에 들렀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정문을 들어오니 부사장님이 우릴 반겼다. 뭐지, 오늘은 땡땡이 안쳤는데.





"다름이 아니고 추가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두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아~"

"말씀만 주세요.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하아, 시윤군이 카린양 반만 닮아도 참 좋겠군요. 여튼 별건 아니고, 카린양의 CRF 측정을 다시 했으면 합니다."

"엥?"





나의 의문과는 다르게 묘하게 카린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번에 그렇게 결과를 부정하더니 나 몰래 재측정이라도 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기가 좋군요. 누구랑은 다르게."

"하하..."





교묘하게 돌려 까는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따라오라는 부사장님 뒤를 바짝 따라가는 카린양을 천천히 쫓았다.








-





"전력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테크 레벨3 장비를 준비했습니다. 좋은 결과 기대할게요. 카린양."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린양은 기운찬 대답과 함께 측정실로 들어갔다. 아까 공방에서 좋은 장비도 받았고, 연구소에서 정밀 훈련도 받았으니 어쩌면 더 높게 나올지도 모르겠다.

측정실 문이 닫히자 시스템 음성이 특정 시작을 알렸다.




"시윤군. 공군 기지에서 정말 A급 카운터의 실력을 본게 맞나요?"

"저를 아무리 못 믿으셔도 스승님도 A급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신빙성이 떨어지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시윤군이 생각하기엔 어떤 것 같나요."

"글쎄요... 전력을 숨길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결과 듣고는 납득을 못하겠다고 재측정 하고 싶다고도 했고."

"그렇군요. 아무래도 본인이 뜻하지 않게 전력을 못 내는 상태가 아닌가하는 추측이 드네요."

"... ..."

"엑자일러라는 존재는 애초에 저희에게도 생소해서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추측 할 뿐이죠."






더 이상의 말 없이 출력 화면을 보았다. 게이지가 올라간다. 저번 보단 좀 높아지는 것 같기도-






[측정중...] 


[...] 


[수고하셨습니다. 카운터.] 


[결과를 출력합니다.]






"턱걸이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B군요."

"... ..."





측정실 문이 카린양이 나오자마자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MSG를 좀 치고 알려줘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 고민은 찰나였다.





"카린양 고생하셨습니다. 이전 결과 보단 높게 나왔습니다."

"앗, A맞나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B중에서도 최상급입니다."




MSG 치긴했네...

부사장님의 대답에 카린양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생겼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인지 모르겠다. 그게 더 카린양 답긴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현재 카린양은 본인이 살던 세계와 위상 차이가 아주 큰 곳에 와있습니다. 여기서의 B급이 카린양의 세계에선 A급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리고 B급도 업계에선 아주 훌륭한 인재로 높은 대우를 해줍니다. 너무 A급에 집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장 저희 직원 중에서도 C급 카운터가 펜릴소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격려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만족 할 수 없는지 표정은 어두웠다. 부사장님이 나를 쳐다본다. 알아서 달래라는 거겠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카린양에게 다가갔다.





"자자- 카린양~ 좌절하기엔 남은 할 일이 산더미에요~"

"에? 아앗! 밀지 마요!"






반 강제로 카린양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서 부사장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마요. 노오~력이 중요한 거라구요~"

"그치만..."

"으음- 모의 전투는 S받으셨는데 계속 침울 하실건가요?"

"네? 그때 안 알려주셨어요!"

"하하하하- 그럴리가요. 알려 드렸었는데~?"

"아뇨! 안 알려주셨습니다!! 제 기억은 정확해요!"






탕비실에서 투닥거리는 동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은 미나양이였다.





"안녕, 선배. 싸우는 소리가 저기 복도 멀리서 부터 들려."

"아, 미나양. 출격했다가 돌아온 건가요?"

"안녕하세요. 미나씨."

"카린씨도 안녕-. 아~ 선배 없어서 힘들어 죽겠... 선배 얼굴이 왜 그래? 너무 초췌해 보여서 불평도 못하겠네."





한숨을 쉬고 미나양이 탕비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카린양에게 이제 부상은 괜찮냐며 묻는 것을 시작으로 둘의 대화는 나를 빼놓고 이어졌다.





"선배랑 있으면 피곤하지 않아? 같이 있으면 머리가 하루 종일 아프던데."

"네? 아니요. 계시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요. 자주 놀리셔서 화나는 거 빼고는요-"

"...?"





미나양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미나양이 카린양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뭔 가를 말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뭔 말인지는 몰라도 카린양이 깜짝 놀라 미나양을 쳐다보고, 미나양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내가 뭐 어쨌다고...

카린양이 묘한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편한 이유는 아마 시영ㅆ.."

"카린양."




검지를 들어 내 입에 가까이 대고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카린양은 아차 싶었는지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나양이 왜 나는 안 알려 주냐고 물어보는 거엔 회사 기밀이라는 답을 주었다.




"시끄러워. 복도에 쩌렁쩌렁 니네 떠드는 소리가 다 울린다."

"아, 왜 안 오나 했어!"




스승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있었다. 미나양이 커피를 건네받았다.




"응? 사람은 4명인데 2개밖에 없네."

"유감스럽게도 쟤네가 있을 줄은 몰랐지."




스승님이 카린양을 보더니 미나양에게 탕비실 종이컵에 따라주라고 시켰다.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카린양이 스승님의 눈치를 보는게 느껴졌다. 




"아... 감사합니다. 미나씨."

"거기 너 그땐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짓더니 이제 살만한가 보군."

"... ..."

"스승님."




한 순간에 탕비실 안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반사적으로 스승님을 불렀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스승님이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젓는다.




"왜들이래... 시비 거는 거 아니니까 오해 하지마."

"그런거치곤 말투가 너무 살벌한 것 같은데..."

"이대로 사고 안치고 있으면 상관없어. 위에 사장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이수...부사장은 맘에 들어하는 것 같더군. 적어도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열심히 해봐."

"와우."




스승님의 말도 안되는 태도 변화에 감탄사를 뱉었다. 잔뜩 쫄아 있던 카린양의 표정이 펴지고 눈이 반짝이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스승님을 향해 90도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갑자기 부른 바람이 부셨을까요? 그렇게 매정하던 스승님이 말이죠~?"

"시끄러워. 계속 말하지만 사고 안치면 그만이고, 어차피..."

"아~"

"시끄럽다니까! 아~는 무슨! 아침에는 죽상이더니 뺀질대는거 보니까 이제 괜찮은가보지?"




뒷말을 잘라버렸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을테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카린양은 뜻밖의 격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띄고 커피를 깨작깨작 마시고 있었다.

오늘 하루의 피로 같은 건 다같이 나눠 마시는 커피로 조금씩 잊어갔다.










-





퇴근 길이 카린양과 조금 겹쳐서 같이 퇴근하게 됐다. 문득 아까 두 여자가 나누었던 귓속말의 내용이 궁금했다. 대체 뭐길래 나를 그렇게 쳐다본건지.





"카린양. 아까 미나양과 무슨 얘기한 거에요?"

"네? 이야기요?"

"두 분 이서 귓속말 하셨잖아요."

"아~ 그거... ..."

"...?"

"미나씨가 비밀로 해달래요."

"...엥?"





대답을 질질 끌더니 갑자기 비밀이라며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갖다 댔다. 낯선 모습에 순간 멍을 때렸다.





"욕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미나양 표정은 흉 잔뜩 본 것 같았는데 말이죠?"

"정말 아니에요."

"... 알았어요. 카린양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괜히 빈틈 보이기가 싫어 빠르게 이야길 마무리 지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트길 바랬는데, 오늘은 가능성을 보았다. 이번 주만 지나면 펜릴 소대에 배치라도 되는 거 아닌 이상 이렇게 까지 붙어 있을 일은 없겠지. 그렇게 되면...





"시윤씨? 시윤씨~"

"네?"

"제 말 듣고 있어요? 이제 여기서 헤어져야 해요."

"아~ 조심해서 가요."

"시윤씨도 멍때리지 말고 조심해서 가세요. 오늘 정말 피곤해 보여요."

"카린양도요. 오늘 고생하셨어요."




그녀가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고 걸어간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나는 서서 지켜보았다. 


인간은 참 간사한 생물이다. 그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령...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낸다는 아주 흔한... 이유 말이다.















*




[Sound Beta : 이전과 동일한 B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B-에서 B로 올라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Sound Alpha : 그렇다면 측정기 문제는 아니군.]

[Sound Beta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추측 하신 대로라고 생각하시나요.]

[Sound Alpha : 결과 값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으니, 역시 강제로 출력이 막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

[Sound Beta : 업계에선 B급도 충분히 현역 대우입니다. 아니 애초에 B급이면 모셔가는 수준이죠. 당사자는 전투원 배치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다.]

[Sound Alpha : 내가 설명을 잘못 한 것 같군. 정확히는 출력이 막힌 상태가 아니라. CRF 사용을 위한 힘이 다른데로 쓰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네.]

[Sound Beta : ...그 친구의 미래가 마냥 밝지는 않군요. 그럼 진실을 알려주고 선택지를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Sound Alpha : 그렇네만.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일단 함구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제 곧... 카린이라는 친구만의 문제는 아니게 될테니 말이야.]

[Sound Beta : ... ... 일단 본인의 희망 사항이 있으니 독자적인 후방 지원이 가능하도록 카린양을 지원하도록 하죠. 사내 재정을 생각 해 줄 정도의 실력 있는 카운터를 기용 할 수 있게 된 게 천만다행입니다. 누구처럼 개인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요. 그렇지 않나요. 사.장.님.]

[Sound Alpha : 크흠... 자기 만족이라니 어불성설일세. 투자 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할 뿐이지. 가치가 없다면 투자할 이유가 없어. 그녀는 분명 이무기가 가지고 있는 여의주 중 하나를 가져 거라고 믿고 있다네.]

[Sound Beta : 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일단 보고는 여기까지 입니다.]




통신음이 끊어지고, 정적이 흘렀다. 남자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댄다. 남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백신 맞고와서 어지러워서 이거쓰는데 한참걸렸네;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