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부정하는 메마른 대지. 그 위로 상흔처럼 수많은 시체가 있고. 그 너머 너머에 거슬러오르듯 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남자의 지난 세월을 증명하듯 널부러진 수많은 침식체의 시체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의 찌꺼기가 타 들어가고 있었다. 부정한 세계에서 남자는 마침내 자신의 치욕을 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치욕이 자신 그 자체라 하더라도.


 기록되지 못한 세계선에서, 그는 자신의 영원한 숙적이었던 마왕을 마침내 결단 냈다. 이제 더 이상 그 둘은 고통받지 않으리라, 자신은 악역이 되리라. 그리고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리라. 



"하...하....드디어...드디어 끝났나"



-정확히는 끝나버린 것이지. 이 멍청아.

-그러게요. 맨날 남한테 구박만 하더니 자기는 더한 멍청이에요.



"자의든 타의든 피니시 라인을 멋지게 끊었다는거 아닙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인데 조금은 칭찬해주시죠."



 혼잣말을 말해본다. 가벼운 말투와 달리 그 모습은 절규와 같이, 쥐어 짜내 듯 신음하는 것과 같았다. 굴러가는 부평초가 이보다 쓸쓸할까, 길가에서 죽어간 짐승의 시체가 이보다 처연할까. 남자는 자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다. 


 처음은 분노했다. 왜 하필 자신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인지, 왜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두 사람이 죽어야만 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싸웠다. 자신을 단련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그 다음은 절망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자신은 별이 될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을 살릴 수 없었다. 몸부림 칠수록 운명은 더욱이 잔혹해졌다. 발버둥치는 모기를 천천히 찍어누르듯.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장난감을 더욱이 천천히 죽여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그는 받아들였다. 자신을 태우기로. 별이 되지 못한다면 별을 찾아 빛나게 하리라. 더욱더 높이, 밝게 빛나게 하리라. 수많은 세계선을 찾아다녔다. 분에 넘치는 짓을 하려는 대가로 그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갔다. 웃기게도 자신을 잃어갈수록 운명은 관대해졌다. 조금씩 희망을 보여줬다. 


 허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찾는 것은 희망 같은 모호하고 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별이었다. 그가 찾아 헤메는 것은 오직 별이었다. 찬란히 빛나 자신은 '따위'로 만들 수 있는 별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어느 한 세계선에서 그 별을 찾을 수 있었다. 미약하되 드높이 빛날 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했다. 그 별이 빛나기 위해 운명이 요구한 제물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했으니. 남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잘라내야했다. 












































[하란다고 진짜 하네. 이거 완전 등신 아냐]


































































 어느 세계선에선 '윌버'라고 불렸다. '쓰레기'라고 불리기도 했고, '당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선생님', '선배님', '멍청이', '후배', '얼간이', '망할놈', '윌버씨'...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멸칭과 별명과 이름으로 그 남자는 불렸다. 우습게도 그 이름을 불렀던 자들의 얼굴은 이제 새벽빛에 사라져가는 별들 마냥 흐려졌거늘, 왜 그들이 부른 이름 만은 뚜렷이 남아 자신을 태우는지 그는 항상 궁금해했다. 차라리 모조리 사라졌다면. 눈을 감았을때 그 목소리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훨씬 편해졌으리라. 



"윌버 웨이틀리. 아니 스타 시커."



 그래도 이제 곧 편해질 수 있겠지. 별을 찾는다는 놈이 위를 단 한 번을 쳐다보지 못해 바닥을 기어다니니 결국 별께서 행차하셨지 않나. 



"...오셨습니까."


"....썩 기대했던 태도는 아니군요. 휴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정확히는 난 것 같다. 이미 청각은 잃었다. 희미한 시야에 비쳐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것이 뿌옇게 흐려진 별빛이었다. 그는 땅바닥에 누워서 그 진동으로 누군가가 근처에 앉았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고 찾아왔던 '별'이라는 것 또한.



"시신경은...구실만 하는 수준이고. 청각은 이미 상실. 슈트를 이용해 직통으로 외부 소리를 듣고 있군요. 효율성을 위해 잡다한 소음은 차단하고 있고."


"맞습니다. 나름 궁리를 해본 것이죠."


 

 별은 여행자를 내려다보았다. 여행자는 눈을 감았다. 씩씩 거리는 숨소리만이 그 적막을 채웠다.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해가 뜰 만큼의 고요가 흐르고 마침내 별은 말문을 다시 열었다. 



"당신은. 윌버입니까?"


"그럼 당신 눈엔 뭘로 보입니까? 아 실례. 카메라라고 해야합니까?"


"글쎄요. 그것보다도 물은 것은 접니다 휴먼. 질문에 질문에 답하지 말라. 초등학교 논리서에도 있는 내용 아니었습니까?"


"....."



 남자는 아주 오래간만에 갈등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를 고민한 것이 아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신이 자신을 내려놓았던 그 날. 자신은 모든 '윌버'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자신에게 목이 잘리며 저주를 퍼붓던 윌버도. 흔쾌히 모든 것을 넘겨주었던 윌버도. 왜이리 늦었냐며 울부짖던 윌버도. 이미 죽어있던 윌버도. 단지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합당한 결말이 될 것인가. 아주 약간의 고민이었다. 그래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예. 저는 윌버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윌버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휴먼. 그것이 당신의 바램이라면. 마지막의 마지막 정도는."







 서서히 들어올려진다. 자신은 날고 있는건가. 아니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그 끝에 차가운 섬뜩임이 있을지도 모르고, 조용한 입맞춤이 있을지도 모른다. 별은 빛나지만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자신이 걸어왔던 길 또한 그러리라. 허나 하나 만은 확실할 것이다.







 마침내. 자신은 별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