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전략특수전사령부.
한겨울 추위에 이례적인 폭설까지 겹친 주둔지는 도로를 제외한 모든 곳이 눈으로 뒤덮였다.
그 주둔지 한편에 따로 마련된 델타세븐 관사 휴게실에서 실비아는 따듯한 히터 바람을 쐬며 의자에 기대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커들이 모이는 인터넷상의 가상 공간.
블랙 네트워크 서핑이다.
“아, 오늘은 재밌는 게 별로 없네. 요즘 떡밥 돌 게 없어서 그런가.”
두꺼운 양모 담요로 온몸을 감싼 채 캔커피를 홀짝이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방구석 폐인과 다를 바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과 삼분할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단 것일까.
수많은 인터넷 창이 일제히 떠올랐다가 내려가며 명멸한다.
한참을 정보 수집 겸 취미생활에 열중하고 있자니 휴게실 문이 열리며 도미닉이 들어왔다.
“카일 대위. 안에 있나? 논의하고 싶은 게. 아, 자네로군.”
“뭐야, 아저씨.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오곤. 변태야?”
“여긴 공용 휴게실인 것으로 알고 있다만. 그보다 카일 대위가 어디 있는지 혹시 아나?”
실비아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고선 대답했다.
“몰라. 애초에 걔가 어디 가는지 일일이 말하고 다닐 만큼 나랑 친하지도 않거든?”
“부대원들 간 최소한의 소통은 작전 수행에도 필수적이다. 자네들의 관계엔 개선이 필요하겠어.”
“아, 딱딱한 말은 됐고. 휴일에 무슨 잔소리야. 용건 끝났으면 얼른 나가보셔.”
도미닉은 제자리에 서서 잠시 고민하더니 실비아의 앞자리로 와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뭔데, 갑자기?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도미닉이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쿠퍼 양.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만.”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이라면 사절이야. 난 아저씨 취향 아니거든.”
“아이들은 어떤 걸 좋아하지?”
실비아가 온 얼굴을 찡그리며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별, 미친. 당신 그런 취향이었어?”
“음,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순서대로 설명해야겠군.”
델타세븐 부대, 정확히는 이 전략 특수전 사령부엔 특이한 전통이 있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기념일엔 각 단위 부대별로 인근 고아원이나 초등학교로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이었다.
“뭐야, 그게? 이미지메이킹 같은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사령관님이 개인적으로 하시던 봉사활동이 부대 전체로 퍼진 거지. 우리 델타세븐 역시 이번 성탄절에 봉사활동이 예정되어있다.”
실비아가 부대에 합류하기 전, 작년과 재작년에도 이들은 이미 사령부 옆에 있는 한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나갔었다.
그러나 성과가 좋지 못해 문제였다.
첫 시도 당시에는 도미닉이 산타 변장을 했으나 산타는 흑인이 아니라는 아이들의 지적에 실패.
“아하하! 아저씨는 그걸 그냥 듣고만 있었어?”
미간을 찡그리며 도미닉이 대답했다.
“아이들의 순수함에 잘못을 물을 순 없지. 애초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내 실수이다.”
그리고 작년의 두 번째 도전 때는 카일이 변장을 했으나 마찬가지로 정체를 들켜 실패했다.
“걔는 또 왜? 뭘 잘못했길래 들켰어?”
“산타는 그렇게 딱딱한 말투를 쓰지 않는다더군.”
“설마 애들 앞에서도 다나까 그런거야? 참 그 녀석답다, 다워.”
마침 시집을 옆구리에 낀 카일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미닉을 보자 카일이 재빨리 경례를 올렸다.
“아, 부사령관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올해 봉사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네.”
“봉사활동이라면, 그 고아원 말씀입니까. 하아.”
카일이 드물게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별일이네. 네가 그렇게 싫은 티를 다 내고.”
“크흠. 한번 실패한 적이 있는 임무인지라 솔직히 내키진 않는군요.”
“오히려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전보다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겠지. 좋게 생각하게, 카일 대위.”
카일이 눈을 감은 채 끄덕였다.
“말씀대로입니다, 부사령관님. 좋은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도미닉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부끄럽지만 나 역시 이렇다 할 생각이 떠오르질 않더군. 그래서 찾아온걸세. 함께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겠나?”
“으음. 그렇게 말씀하셔도.”
두 사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진 실비아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여기서 이렇게 머리만 굴릴 게 아니라, 직접 가서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니야? 사전답사라도 해보던가.”
그렇게 실비아의 제안대로 크리스마스 이브 날, 두 군인과 한 명의 민간 군사 고문이 고아원을 방문했다.
“아니, 잠깐. 내가 따라온 거야 뭐 그렇다 치고. 그 버터남은 왜 없는데?”
“소령님께선 어제 관사에 들어오지 않으셨다고 하더군요. 오늘 아침에 찾아갔을 때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마을에 나가 한잔 마셨겠지. 휴일이니 뭐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건강이 걱정되는군.”
“카운터가 술 좀 마신다고 별일 생기겠어? 됐으니까 빨리 볼일 보고 돌아가기나 하자. 추워 죽겠네 진짜.”
“카운터가 찬 바람 좀 쐰다고 별일 생기겠습니까? 여전히 비협조적이시군요, 실비아 씨.”
잡초가 핀 작은 언덕을 올라 커다란 목조 건물의 문고리를 두드리니 발소리 여럿이 쿵쾅거리며 현관으로 달려왔다.
“와, 손님이다!”
“암호를 대라!”
“얘들이 정말. 아, 어서 오세요. 올해도 오셨군요. 어머, 그런데 오늘은 성탄절이 아닌데요?”
도미닉이 과일 바구니를 건네며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미리 아이들 얼굴 좀 볼까 하고 왔습니다. 겸사겸사 원하는 선물도 좀 물어보고요.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들어오세요.”
벽난로에 불을 지펴 후끈하게 달아오른 공기가 세 사람의 몸을 따듯하게 데워주었다.
“아, 이 형 그때 그 형이다.”
“가짜 산타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카일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음, 여러분. 일단 진정하시고.”
느긋하게 안으로 걸어간 실비아가 벽난로 앞 의자에 앉으며 카일을 비웃었다.
“애들한테 참 정중히도 말한다.”
“언니, 언니는 왜 헐벗었어?”
“누나 옷 없어?”
“야! 이건 패션이야! 너희 같은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떠들어?”
이번엔 카일이 받아 칠 차례.
“그러는 실비아씨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시는군요.”
원장과 인사를 마친 도미닉이 둘에게 다가오며 아이들을 둘러 보았다.
“둘 다 그만하고. 얘들아, 이번엔 받고 싶은 선물 있니?”
아이들이 도미닉에게 모여들며 손가락질을 했다.
“아, 이 아저씨도 그 가짜 산타다.”
“산타는 이렇게 까맣지 않아요, 아저씨.”
“이렇게 크고 울퉁불퉁하지도 않고요. 좀 더 풍만해요.”
근육 덩어리, 흑형, 까만 아저씨 기타 등등.
계속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정신공격에 도미닉도 할 말을 잃고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카일이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여러분. 다들 그만하시고. 저희가 이번엔 반드시 진짜 산타를 찾아서 데려올 겁니다. 내일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일제히 야유를 보내는 아이들.
“우우 거짓말 마요 형.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으면서.”
“산타 찾을 능력도 없으면서 그러지 마요.”
“맞아요, 오빠. 산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충격에서 회복한 도미닉도 끼어들었다.
“미군은 결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는다, 얘들아. 우린 절대 무능하지 않아. 이번엔 기필코 진짜 산타를 찾아서 데려올 거야.”
아이들은 짝다리를 짚거나 귀를 후비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네, 뭐. 기대는 안 하고 기다릴게요.”
“두고 보십시오! 저희가 미군의 명예를 걸고 진짜 산타를…”
계속해서 쩔쩔매는 두 사람과 느긋한 아이들 간의 설전이 되풀이되었다.
“거 참 불량한 꼬맹이들이구먼.”
유일하게 실비아만이 원장이 가져다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구경할 뿐.
대망의 작전 개시일.
도미닉과 카일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고아원 앞 언덕에 서 있었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
어제 고아원에서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제이크를 관사로 불러들여 방에 처박힌 채 온종일 나오질 않았다.
‘작전 회의다!’라고 외친 뒤 다음 날 아침까지 두문불출하였기에 실비아는 계획에 관해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 것이다.
여전히 뿌듯함을 감추지 않고서 카일이 말했다.
“후후. 두고 보십시오, 실비아 씨.”
“후후후. 아주 완벽한 작전이다.”
후후후후후후.
어이가 없어 둘을 바라보는 실비아.
“당신들, 그렇게 웃으니까 꼭 악당 같거든?”
한겨울인지라 초저녁이라 해도 제법 쌀쌀했기에, 같이 나와 있던 아이들에게선 불만이 흘러 나왔다.
“아, 뭐야. 산타 온다며 왜 아무것도 없어.”
“원장님, 추워요.”
“에이, 또 거짓말했어. 저 아저씨들.”
아이들이 실망에 찬 목소리로 투덜거리는데 별안간 밤하늘 한가운데 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번개가 고아원 앞동산에 내리꽂혔다!
“아하하하하하! 메리 크리스마스!”
번쩍!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무심코 뒤로 물러설 만큼 커다란 번개였다.
낙뢰가 친 주변에 심겨있던 잡초는 잿더미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타 날아갔다.
그리고 그 참상의 한 가운데, 슈퍼 히어로 랜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붉은 옷의 산타.
제이크 워커 소령이었다.
“잘 지냈나 꼬마 친구들! 여러분에게 행복과 선물을 전해 줄 산타클로스다!”
좌중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 번개맨이다!”
“바보야, 람쥐썬더잖아!”
“라이트닝 산타! 라이트닝 산타!”
와아아아!
“하하하! 그래! 여러분에게 웃음을 가져다줄 라이트닝 산타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제이크가 하늘을 향해 연신 번개를 쏘아내며 퍼포먼스를 보였다.
천둥이 칠 때마다 아이들도 열심히 제이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실비아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들, 미쳤어? 진짜 제정신이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머지 둘.
“뭐가 문제입니까 실비아 씨?”
“아이들도 좋아하고 있다만.”
이 인간들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민간인 앞에서 저게 할 짓이야? 이거 어떻게 수습하려고?”
도미닉은 여전히 태연했다.
“수습할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불명예를 감수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요.”
“이건 미군의 자존심을 건 작전이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지.”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는 도미닉과 카일.
떡 벌어진 실비아의 입은 여전히 닫힐 줄을 몰랐다.
와, 그러니까.
자존심 때문에 이 촌극을 벌였다?
“애새끼들도 아니고 진짜.”
어느새 아이들에게 늦잠 자리 마라, 원장님 말씀 잘 들어라, 일장 연설을 시작한 제이크를 보며 실비아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잠깐, 저 버터남. 어디서 내려온 거야?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닐 거고.”
“스텔스모드로 전환한 뉴 오하이오를 고아원 상공에 정박시켜 두었지.”
“저 높이에서 하강하는 거야 부사령관님도 충분히 가능하시겠지만 이미 정체를 들켰으니까요.”
“어차피 능력의 화려함은 워커 소령이 나보다 한 수 위다. 재작년 일이 아니었더라도 이 작전의 적임자는 소령이야.”
“그도 그렇군요.”
“그러니까 고작 이 퍼포먼스를 위해서 차원 함선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이 인간들 진짜 미쳤구나.
“이터니움 값이 더 나가겠다!”
“미군의 자존심을 지키는 가격이라 생각하면 싼 거지.”
“명예는 돈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실비아 씨.”
둘은 여전히 자신들의 ‘완벽한’ 계획에 한 치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실비아는 설득을 포기했다.
자고로 대화란 사람과 하는 법.
짐승을 설득할 재주는 그녀에게 없는 것이다.
어느덧 제이크는 연설도 끝마치고 미리 쌓아 뒀던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곧 자리를 정리하며 제이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보지! 다들 착한 어린이로 자란다면 내년에도 날 만날 수 있을 거야, 꼬마 친구들!”
이번엔 땅에서 하늘로 번개가 솟구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하하하하!”
밤하늘을 가르는 섬광과 함께 제이크가 허공으로, 아니, 스텔스모드로 대기 중인 뉴 오하이오로 날아올랐다.
아이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라이트닝 산타!”
도미닉과 카일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돌겠네, 진짜.”
“그래서, 개수작업 중이던 뉴 오하이오를 끌고 나간 것으로도 모자라 민간인들 앞에서 CRF를 사용해 무력시위를 했다 그건가?”
사령관실에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도 읽지 못하고 철없는 사내 셋이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그날 오후, 완전 군장을 멘 은빛 나무 기둥 하나와 금빛 떡갈나무 잎 하나, 별 하나가 밤이 새도록 연병장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