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해제 프로토콜 85%. 현재 함내 침식파 농도 급속히 상승 중. 동결 인원 다수 고준위의 침식 오염이 확인됩니다.




"음..."




눈을 뜬다. 새빨간 비상등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다.

여긴... 식당. 인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그 때 펜릴소대의 부전대장과 합류해서 방주인가... 하는 함선을 타고.

읏, 왼팔이 아파... 




"..."



이게... 뭐야...?



이상한 느낌에 확인한 왼 팔.

불이꺼진 철제 구조물. 함선이니까. 그래 그 곳을 비추는 유일한 빛. 붉은 비상등.

그럼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왼 팔이. 이상하게 뒤틀려있다.

이건...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동요는 했지만 숨긴다. 다른 애들마저 동요하면 곤란하니까.


아,


애들은?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새빨간 조명이 아래. 식당. 고정형 테이블과 의자에 널부러진 전대원들.



다행히다. 무사하구나.






"..."





아니구나. 무사하지 못하구나.






이미 슈트 너머로도 침식이 진행되서 나처럼 사지 중 하나가 뒤틀린 애들이 있어.

포격 지원병인 니콜라이는 다리가. 관측병인 셜리는 머리가. 의무관인 셰리아는 오른 팔이. 소총병인 마르치니는 딱 봐도 오른다리가 부풀어 오른게 진행 중이다.


아까 함내 아나운스로 나온 건...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겨우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잠깐, 동결이라고?



동결은 무슨 소리야?



류드밀라는? 우리 전대장은?



"부전대장님...?"


다급하게 식당을 나서려고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뒤돌아보니 슈라와 옐레나. 다행히도 아직 큰 침식 증상은 없다.


다른 애들을 뒤로 한 채 일단은 상황 파악을 위해서 식당을 벗어난다. 쿵, 쿵. 하고 함선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가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현재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필요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우리가 전원 동결처리 되었고, 그리고 지금. 침식화가 진행 되었는지.


나는 몰라도, 애들은 치명적이야.

전원 일반인이라고.


나야 왼팔이 이렇게 된 상태여도 어느정도 직감으로 알 수 있어.

완전히 침식화가 되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그야, 워치가 째깍째각하고 알려주니까.



그렇게 옐레나와 슈라와 함께 함선 바깥. 해치로 나선다. 




"어리석도다. 이미 우리와 가까운 존재인데. 왕의 지고하신 뜻을 거스르려하다니." 


"허억...허억...!"


"저 안에는... 내 전우들이...!"




함선 바깥에는 낯익은 형체가 둘.

하나는 우리가 적대했던 마왕의 사도.

하나는...




"전대장님!"


"얼른 도와서 응전해야합니다. 부전대장님!"



"잠깐."




다급하게, 사지를 잃은 채 상공으로 도망치는 류드밀라.

그걸 쫓는 불길할 정도로 붉고, 검은 십자. 칼날.


류드밀라의 사지. 아주 약간이지만 재생하고 있다.

재생?


저건...




"..."




저건 류드밀라가 아니야.

우리의 전대장이 아니야.

류드밀라가 카운터로써 우수한 건 맞아. 나랑 비교해도 한단계 정도 격의 차이가 있어.

카운터가 뛰어난 재생능력을 갖춘 것도 맞아. 하지만 사지가 돋아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야.

재생능력이라는 특수능력이 있는 카운터 정도만 가능한 거야. 그리고 내가 알기로 카운터가 발현한 능력 외에

다른 능력을 얻는다는 건 불가능. 그래, 저건...


그리고 나도 알 수 있을만큼 저 애달픈 침식파는.




"그림자가 됐구나. 류드밀라."


"네?!"


"그럼... 그림자가 되었는데도 싸우고 있단 말씀입니까?"




바보.

멍청이.

얼간이.


그랬어. 넌 항상 그랬어. 혼자서 전부 다 짊어지고서 뭐하는거야. 그림자가 되어서도 바보냐고.



전우라니.



보통은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뒤틀릴텐데.

있지. 류드밀라. 우리 전부 늦었어.


애들이랑 나랑, 전부 사이 좋게 전부 침식됐어.



너는 뒤틀려가면서도,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어가면서까지,

그런 걸 좇고 있었던거야? 도대체 얼마나? 얼마나 긴 시간을?


나도 모르게 눈썹이 미간에 모인다.


목이 뜨겁고, 식도의 끝자락에 뭔가 걸린 것처럼 메어져 온다.





'괜...찮나...?'


'A타입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 하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 전대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 다른 전대로 전출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름이 없다고?'


'그렇지. 알렉스는 어떤가?'


'위대한 대왕의 이름이지. 아, 사실 우리 삼촌 이름...이지만 뭐 어떤가'


'스러져 간 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자신의 이름에 새기지.'


'내 고향의 작명법이지'


'알렉스. 너인가? 못 볼 꼴을 보였군.'


'봐라 알렉스! 이 솔개...'


'언제가 되면 너처럼 전대원들을 이끌 수 있을까...'






"멍청한 바보가..."



스스로도 멍청한 소리를 했다는 걸 알아.

바보한테 멍청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류드밀라.

어설픈 널 알아.

강하게 있으려는 널 알아.


이미 절망하고도 남았을텐데, 그럼에도 끝까지 싸운 



네 마음을 알아.




바보. 멍청이.




그렇게 될 때까지 싸운거구나.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가면서...







"용기...라는 건... 두려움을 안고서... 그럼에도...!"


"나아가는 거야...! 오만이라니...! 내 소중한 것을 위해서...어...허억...!"






우리는 여기에 있어.

이를 악문다. 두렵다. 지금 전대원은 전원이 부상병이다.

누가 좀 더 낫냐의 차이. 곧, 우리는 침식체가 된다.


절망은 코 앞이다.


그럼에도 너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시간을 희망을 믿고 싸운거니?

기다린 건 절망뿐인데.


지금은 그저 마음만이 남아서, 썩어 문드러진 마음만이 뒤틀린채로 남아서

니가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인간 류드밀라는 어디에도 없는데.

왜 인간 류드밀라는 이토록 강하게 남았어?






"부전대장님이 말려도 저는 가야겠습니다!"


"저기에 있는 건 그림자라고 해도! 우리의 전대장입니다. 부전대장님!"







그래. 맞아.

딱 좋네.


그림자 전대장에, 침식체 전대원들.



알고 있었어. 각오쯤은 얼마든지 했고.

그럼에도 이렇게 닥치니까. 미안. 진짜 미안.


가슴이 살짝 아려.





"씨발년아아아아아!!!" 




남자의 목소리.

검은 머리칼에 끝부분만 하얀 남자.

방패병의 슈트를 입고 있지만 헬멧은 쓰지 않은 얼굴.

어딘가, 나를 조금 닮은 얼굴.


아니지. 나부터가 멘탈 프론팅의 클론 소체인걸.

나를 닮은게 아니라...



"하아아아아앗!"


분명히 달려들기 전에는 그 파동을 느꼈어. 하지만 달려드는 그 순간 사라졌어.

카운터...인 건가? 아니야. 카운터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니고, 도플갱어도 아니야.

뭔가 뒤섞였어. 저건... 한 사람이 아니야.



"저건...슈트 넘버 VAL-8..."


"발레리인가? 하지만 저 얼굴은...!"



마왕의 사도에게 맨주먹이라니, 후후. 재도 바보네.

아무런 효과가 없는데.

저 당황한 얼굴 좀 봐.

꼭 나 몰래 단 거 먹다가 걸렸을 때 표정이잖아.




"맞아. 저거 발레리야."




"부전대장님?"




"그치만, 저렇게 겁 먹었는데 전대장을 위해 달려드는 얘가 따로 더 있대?"




"...그렇죠..."




"슈라. 애들 전부 깨워. 전원, 응전할 거야."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든다. 자, 이제 나가야지.

늦은 만큼. 멋지게 등장해서 시간을 따라잡아 줘야지.

얼마나 늦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방패병 헬멧이랑 방패도 한 세트 들고 나오라고 해."



"네!"



"옐레나. 나랑 같이 가자. 넌 전대장을 구해."




"...맡겨 주세요."







자, 가자.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다잖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류드밀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안해.

그렇게 썩어 문드려질 때까지, 마음만 남을 때까지 혼자 둬서.




그리고 다행이야. 늦지 않아서.






"넌 특별히 천 조각으로 흩트려주마!" 





해치를 박찬다.

텅, 하고 철판이 휘었다가 대롱대롱하고 움직이는 소리.

어머나. 간만이라 살이 좀 쪘을지도.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든다. 늦지 않을까?

늦지 않아.

알아.



마왕의 사도가 날린 십자의 검을 쳐낸다.








"애가 실수할 수도 있는거지."



"화가 난다고 이렇게 위험한 걸 던지고 그럼 어쩐데?"





그야, 마음은.

속도도 시간도 전부 뛰어넘으니까.



류드밀라. 니가 그걸 지금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걸 보여줄테니까.



오래 기다렸지? 류드밀라. 발레리.







더이상 혼자 싸우게 두지 않을테니까.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으니까.

내가 있으니까.


여기 있으니까.














==================================================================================


칼합류 하기 전의 짧은 이야기.

왜 카붕이를 발레리라고 인식했는지.

그리고 떡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