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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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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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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거대한 바다가 증발된 듯한 영혼이 없는 천공을 날아다니며, 힐데는 주위를 계속해서 둘러봤다. 파멸의 도시에 벌레처럼 들끓는 야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고속기동하던 그녀의 앞으로 비행 침식체들이 몇몇 돌진했지만 배리어를 전개하고는 아예 앞으로 부딪쳐 그냥 몸통박치기로 떨어트려냈다.


 "이게 전부인가? 그럴리가…." 혼잣말을 하는 힐데는 뭔가 위화감을 지울 수 없어 자세를 멈췄다. 바로 그때….


 바로 밑에서 검붉은 색에 뒤덮인 날카로운 십자가가 치솟으며 힐데를 습격했다. 그걸 느끼고는 발로 초승달을 그리듯이 백점프를 하며 피했지만, 구형의 배리어는 날에 갈려지며 깨졌다.


 자세를 고치며 공중에서 듀얼 블레이드를 쥐는 힐데의 앞으로 솔리키타티오가 순간이동하면서 모습을 나타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었다. "전천사도 땅에 떨어졌군…. 움직임이 매우 둔해졌어."


 "거지처럼 들개들을 이끌고 다니는 망국의 왕녀에게 얕보일 정도라면 진짜 그럴지도."

 "분수를 알아라, 네녀석의 발할라도 몰락한지 이미 몇천 년이 넘었노라."

 "지금의 나는 관리국의 카운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우습구나. 인간들의 시종이 되었다고 좋아하기는… 그게 바로 너의 분수에 맞는 자리였었겠지."

 "하찮은 도발은 관둬라. 쓸데없는 헛소리를 들어주는 취미는 없으니까."


 둘은 침묵하며 서로를 노려보다, 이내 솔리키타티오가 손가락을 그녀에게 향하면서 붉은 빔을 쐈다. 힐데는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빔은 그대로 힐데의 목을 향해서 날아가다가 실드에 막혀서 보이지 않았던 표면에 퍼져버렸다.


 항상 냉정한 표정을 짓던 힐데는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너야말로 정말 약하구나, 솔리키타티오… 로자리아가 똑같은 것을 쐈다면 꿰뚫렸겠지."


 하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서, 계속 빔을 쏘는 솔리키타티오. 이런 비물리계 약공격은 전혀 배리어를 뚫지 못하지만, 어째선지 무의미한 행동만을 반복했다. 붉은 마력 에너지는 마치 우산에 맞는 빗물처럼 그냥 튕겼다.


 "대체 뭘 하는 거냐? 못보던 사이에 정말 멍청해졌군."


 힐데는 차갑게 노려보다가 이내에 전속으로 그녀의 몸을 날리며 단칼에 솔리키타티오를 베어버렸다… 아니, 베어버렸다 생각했었다.


 검은 형체가 칼에 뭉개질 때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었다. "환상…? 녀석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지?" 그곳에는 단지 검은 연기만이 뭉개지듯 피어올랐다가 퍼졌었다.


 천공에서 혼자 주위를 둘러보던 힐데는, 곧 하늘의 공간을 꽉 채우듯 천둥처럼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었다.


 "주제를 알거라, 나약한 발키리. 너와 네녀석의 어린 제자들이 감히 나를 막을 수 있다 생각했었느냐? 결국 심판의 날은 미뤄졌었으나 너의 파멸은 당초 예정되었던 것이었노라. 누구도 피할 수 없어! 그리고 나의 어머니 타기리온과 다른 마왕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니라… 하하하하, 하하하하!!!!"


 힐데는 적대적인 프렛셔를 느꼈지만, 딱히 아무것도 보질 못했다. 검을 집어넣고 잠시 주먹을 쥔 손을 입가에 대곤 생각했다. 활공하는 강철의 날개에선 입자들이 계속해서 흐트러져 뿌려지며 조용한 노이즈를 내었다.


 "아예 후퇴한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멀리 가지도 않았겠지. 첫번째 날렸던 십자가들은 환상으로는 구현하지 못할 기술이고."


 그리곤, 다시 검을 뽑으며 전함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녀는 단지 자신만 돌파하길 원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힐데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원래 코핀이 있던 포인트에 도달했던 그녀는 아키들이 몰아닥치는 침식체들에 맞서면서 전투중인 것을 봤다. 맹수와도 같이 몰아닥치는 침식체들을 고기방패로 세워 서윤들은 뒤에서 사격했었고, 그것에 맞춰서 리타가 전함을 이륙시키곤 아키와 대시에 라이플로 함에 접근하는 비행체를 공격하라 지시했다.


 그것을 본 서윤은 저격총을 장비했던 샤오린을 제외하고 모두들 로켓 런쳐로 바꾸라고 말했었다.


 적이 대함용의 중화기로 바꿔드는 것을 보고는 당황한 리타는 오메르타를 날개로 변형하곤, 그녀들을 저지하기 위해 서윤들이 포지션을 잡은 옥상으로 날아갔다… 대충 그런 상황이다.


 "성가시게… 이래서는 다가가지도 못하겠어!"


 빠르게 접근하는 리타를 본 서윤은 바로 소빈에 미니건으로 바꿔들라고 지시해, 탄막을 뿌리며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렇게 몰아넣어진 리타는 샤오린의 저격총에 계속 맞고 있는 중이었다. 카운터의 힘에 의해 데미지는 상쇄시킬 수 있었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그들을 멈추진 못했다.


 유진과 서윤은 계속해서 코핀을 향해 로켓을 날렸다.


 "경, 경솔하게…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모르고 함을 띄워두, 띄워두었으니…."

 "어찌… 됬건… 우리에겐… 이기지 못할 테니까. 너도… 우리와 같은 자매가 되는 거야."


 린과 소빈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곤, 리타는 격하게 부정하며 대답했다.


 "누가 너희 같은 침식체 괴물이 된다고!"


 하지만 리타는 확실히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난색을 표하며, 팔을 교차해 날라오는 총알을 막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을 향해 쏘아진 기관총과 저격총의 탄막이 멈춘 것을 느꼈다. 힐데였다. 엄청난 속도로 그녀들의 뒤에 달려들어 강습했다.


 "힐데 소대장?! 좋아, 지금 나도…!"


 리타는 연한 초록색 머리를 흩날리며, 마치 공기를 밟고 몸을 튕기듯 달려나갔다. 그리고 빌딩으로 착지하며 서윤들을 밀쳐내곤, 바로 커다란 로켓 상자를 차서 떨궈버렸다.


 "이… 이 녀석이…!"

 "이래서는 큰 언니한테… 혼나고… 말거야…."


 그리고 오메르타를 낫으로 변형시켜 양손으로 잡아 서윤을 향해 휘두르려 했었지만, 재조립된 침식체가 되었던 탓인지, 일반적인 카운터보다도 기민하게 움직여 리타의 공격을 쉽게 피했다.


 "뭣… 빨라?!"


 그리고, 옆에서 리타를 노리던 샤오린이 단검을 꺼내어 옆구리에 찔렀다.


 살기를 느끼고 옆으로 몸을 비틀은 리타는 칼날이 깊게 박히는 것을 피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큰 통증을 느끼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리타는 배를 만지다, 그르렁거리는 소릴 내며 그대로 칼을 뽑아 던지며 외쳤었다. "얕보면 곤란해, 애송이들! 나라고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건 아니야!"


 그런 리타의 뒤로 힐데가 다가오면서 등을 마주대고는 물었다. "리타 씨, 솔리키타티오는 이쪽에 오지 않았나?"


 힐데의 배리어에 자신을 향해 쏘아졌던 총탄이 막히는 것을 보면서 리타는 잠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리타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다가 깊게 들이쉬고는 천천히 말했다. "전신이 검게 물들은, 하늘을 부유하는 마녀지? 한솔 씨가 반대편의 건물에 갔다는 것을 알아채곤 황급히 사라졌어."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길래 녀석이 당황하며 한솔을 쫓아갔지? 어쨌거나 솔리키타티오가 여기에서 함을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는 나은 전황인가…."


 힐데는 흰색과 검은색 장검을 꽉 쥐면서 말했다.


 "리타, 이쪽의 움직임에 맞춰서 행동해주면… 음?"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건물의 옥상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아키와 대시도 각각 근접무기를 쥐고 떨어져 내렸다. 이미 이겼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전술적인 상황이다.


 폐건물의 옥상이란 좁은 공간에서 레인지형 침식체들 넷이 밀리형 카운터 넷에 잡혀졌던 것이기에.


 그리고, 아키가 서윤에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됬네요.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그날부터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하지만 결국은…."


 그러자, 서윤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변질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를… 동정하지마… 너 따위에, 따위에게 동정… 받을… 내, 내가 아냐."


 붉은 눈을 번쩍이며 창백한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가 왠지 이전의 카운터였었던 본래 모습으로 보여졌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아키는 울 것 같은 눈으로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어요, 서윤 씨는 저 같은 한심하고 열등하고 바보 같은 여자애한테 동정을 받고 싶어할 사람이 아니겠죠. 그런데도… 그런데도, 전 당신을 미워할 수 없었어요. 구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키의 말을 듣고 있었던 힐데는 그녀를 보면서 놀란 눈을 지었다. 하지만 서윤은 뒤틀린 얼굴로 아키에게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이 쓰, 쓰레기가… 혼자서 마지막까지 착한 척을 하고, 하고 있잖아…! 그래서 네, 네가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싫… 싫다는 거야! 너 같, 같은… 녀석들 전부다…!"


 "…네?"


 "누, 누가… 너 같이 착하게,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된 줄 알아? 누, 누가 원해서 시, 시작부터… 지옥에서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구원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혀가며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을 원했던 것… 같아?"


 침식체로 완전하게 타락하여 재조립 되었을 그녀였는데도, 그녀는 지금 너무나도 붉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서윤… 씨…."


 "너, 넌… 아직도 우리를… 조롱하고 있, 있는 거야… 우리를 이해하고… 위로하려… 하는 게… 아냐. 차라리… 우리를 미워한다면… 차라리, 그 멍청한 순수함을 고집하지 않, 않으면…."


 "하지만, 저는…!"


 "알, 알 게… 뭐야…! 왜, 왜 자… 꾸…! 널, 들, 들이대는… 건데! 알고 싶, 싶지… 않다고! 알기 싫다고! 넌 정말 이, 이기적이야…! 우리들한테…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은 해본 적 있어? 이, 이… 이젠 됬어! 죽… 죽어! 아, 아… 아니면… 나, 나를 죽… 죽여!"


 그렇게 말하며, 서윤은 아예 아키를 향해 조준도 하질 않고서 총을 무작정 쏘았다. 다만 그것은 힐데의 실드에 걸려 닿지도 않았다. 그런 서윤을 보며 아키는 대검을 놓칠 것 같은 흔들리는 손으로 간신히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그녀는… 갑자기 총성이 멎는 것을 느끼고 머리를 다시 들었다.


 힐데였다. 그녀가 서윤의 왼쪽 목 옆에 레긴을 박고선, 배와 오른쪽 허벅지까지 깊숙히 베어갈랐던 것이다. 죽기 직전에 서윤은 초점 없는 눈으로 힐데를 보고 중얼거렸다.


 "아, 아파…. 너무, 아파…. 난… 대체… 뭘 위해 태어난 것일까…."


 죽는 순간에 그녀는 마치 평범한 소녀처럼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얼굴에 묻었던 침식체의 붉은 눈물자국을 씻어내듯이. 그 모습을 본 아키는 결국 대검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조용히 힐데를 불렀다. 자신도 왜 그 상황에 힐데를 부르는지 모르며.


 "힐데… 소대장님…."


 "……."


 하지만 힐데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서 대답했다.


 "…난 지금의 너에게 남을 죽이라고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 아냐. 하지만 서윤이 했던 말을 기억해라. 언젠가 죽이질 않으면 죽는 상황이 온다. 그때는 어리광부리지 말도록."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키의 옆에서, 대시가 리타에게 말했다.


 "지옥에서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구원받지도 못하고서 죽는다라… 너무 불쌍해요. 어쩌면 저희도 이렇게 됬을 수도 있었고…."


 리타는 애써서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맹아, 아직도 덜 컸구나. 인간은 태어난 이상, 단지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동물들도 생존만이 목표였지. 애초부터 이게 자연이야. 저것들도 서로를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남들의 시체를 밟으며 올라왔다가 이제는 자기가 발판이 되었을 뿐이야."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그런 목소린, 누군가에게 위로하듯 끝마쳐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죽으면 모든 게 끝나. 죽으면… 이 추잡하고 너저분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리타 언니…."


 리타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냈지만, 대시가 어째서 그런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는지 몰랐다. 어쨌건, 낫으로 변한 오메르타를 쥐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호라이즌과 유빈 씨와 사장님하고 연이 닿았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졌던 빚을 갚기 위해서도 여기서 멈출 순 없어, 그렇지?"


 그 말을 듣고, 대시도 결심을 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그리고, 자신도 덩실이를 들면서 리타가 당한 부상을 옆에서 자신의 몸으로 가리듯, 함께 소빈들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에….


 폐건물의 지하에 조심스럽게 내려가 초록빛에 빛나는 검을 그대로 비추면서, 한솔은 어둠 속에서 그것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침식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깨끗했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나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지만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생물이었다. 다리 사이엔 성기가 없어 접합부는 매끄러운 살만 있었었다.


 "…침식체는 아니었나?"


 마치 마네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퀴에투스 뿐만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무언가 이해하지 못할 적대심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럼에도 저건 반침식파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솔은 공격해야만 하는지 아닌지 고민했었다. 이전까지의 침식체들과 달리 무해한 녀석이 아닌가 고민했기에. 하지만 그것은 뼈로 된 날개를 등에서 뽑아내며, 자신을 보고는 붉고 진하게 물들여지는 눈동자의 각막에다 여러 문양들을 겹쳐서 그렸다. 한솔도 그것이 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언가 수상한 트릭을 쓸 것이다, 그렇게 예상한 한솔은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퀴에투스를 휘둘러 초록 불길을 날려버렸다.


 "키아아아아아아악-!"


 시공간이 뒤틀려 버리는 초록빛의 과격하고 극단적인 격노에 의해서, 침묵하는 생명체는 그 육체로 느낄 수 없을 무지막지한 고통을 느끼면서 그대로 폭살되었다.


 "……."


 남아있는 파멸의 에너지는 그 암흑 속을 비추었다. 펄럭이는 긴 망토하고 침묵의 강철갑옷으로 전신을 두른 기사는 단지 그것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직후에 기사는 밖에서 큰 총성을 들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인가.


 철컹거리며 문을 열고, 바깥으로 가니 무한하게 펼쳐졌던 입체감이 없는 색채들의 혼돈. 그곳엔 거대한 솔리키타티오의 얼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초현실적인 광경을 보고서도 한솔은 묵묵히 투구를 돌리면서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군, 침식체여."


 하지만 그런 그를 거대한 눈동자로 쳐다보던 솔리키타티오의 얼굴은 비웃으며 말했다.


 "이게 누구일까, 기사 놀이를 하던 꼬맹이 아닌가? 너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한 달 전에 네녀석이 나에게 아무것도 하질 못했었던 참패를 정말로 잊었더냐?"


 "……."

 "오만한 전천사의 비탄을 보고 싶어졌도다. 미천한 네 몸을 찢어발겨 그녀에게 던져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구나."


 한솔이 말했다. "저 안에서 영혼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이상한 생명체를 보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무언가… 너와 관계가 있나?"


 "전천사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건만…. 네가 마주한 것은 미래에 내 아버지가 될 것이요, 그렇기에 영혼 없는 자이니라."


 그건 바로 영혼조차 없는 순수함의 육체, 릴리스의 클론이다.


 마왕 타기리온은 과거 신성고대종들과 격전을 거치며 죽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단순히 과정에 지나지 않았고, 죽어버린 초월체를 부활시키려는 남아있는 정신체인 솔리키타티오는 마왕의 부활을 위하여 금단의 주술을 시험한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어머니의 의지가 그릇에 빙의될 것이기에.


 한솔이 말했다.


 "그것은 이제 죽었다."


 "……?!"


 철컹거리며 걷는 기사의 발걸음.


 "당신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흉측한 괴수의 존재감과 같은 반침식파는 그대로 환상을 전부다 부숴버렸다. 쿵, 쿵, 마치 땅을 부수듯이 걷는 강철의 부츠에 공간이 지진처럼 울리며, 거짓된 환영을 공간에서 몰아냈다.


 "이건 대체… 묘하구나. 도대체 무슨 힘이 나의 마술을 훼방했다는 것이더냐?"


 힐데를 농락할 때와 같이 멀리서 환술을 건 솔리키타티오는 오히려 그 존재를 보고서는 자기가 겁먹게 되었다.


 처음, 무거운 기사 갑옷을 입은 한솔이 릴리스가 있는 건물까지 들어갔을 때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한 솔리키타티오. 영혼이 없어도 릴리스의 클론이며 환술을 써서 스스로를 지키도록 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 애송이면, 저항조차 하질 못하고 당해 피니시는 자신이 꽂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뭔가가 달랐다. 모두가 달랐다.


 환혹에 저항하는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사념을 몰아낼 수 있었지?


 언제부터 저 애송이가 고위 퇴마사도 하지 못할 짓을 할 수 있는 건가?


 "도대체가, 릴리스가 어떻게 됬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총성이 들린다. 상황은 어떻게 됬지?


 "발키리 녀석이… 자매들을 모두 정화했군. 그릇에게 신경이 너무나 팔려버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멀리서 볼 수 있었다. 건물의 옥상에 로켓 런쳐를 들고서 코핀을 격침시키라고 명령한 알트 소대들은 전부 쓰러져있었다. 단지 건물 옥상으로 계속 밀어닥쳐오는 잡졸 침식체들을 향해 레긴과 파프닐을 들고는 마구 날뛰면서 죽여대는 힐데, 둘다 낫을 쥐고 힐데의 옆에 서서 원호하는 리타와 대시가 보여졌다.


 이것은 계획이 아니다. 솔리키타티오 본인이 힐데를 지나치며 함선을 박살내 조난시켜놓은 뒤에, 그들을 이곳에서 낮이건 밤이건 계속해서 괴롭혀 지치게 만들고, 식량도 식수도 구하질 못해서 매우 피폐해질 때에 비로소 침식체들로 둘러싸 끝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없었다.


 "이렇다면 릴리스라도 회수해서 다른 마왕들과 합류하지 않는다면 안 돼…."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버지 타기리온의 부활에 있었다.


 건조된 육체인 릴리스는 무조건 지켜야만 했다. 마왕의 의지를 다시 되찾을 때까지 그것을 잃을 수는 없다.


 갑자기 왜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까지 와버린 것일까. 이제는 단지 아버지 타기리온이 릴림의 빈 껍질에 강림하면 되었던 단계에, 그리고 마왕들이 나서서 연맹을 결성하고, 솔리키타티오 본인도 참여했던 지금에….

 떨리는 손을 진정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공중에 가만히 떠있던 그녀는 전천사와 눈을 마주쳤다. 힐데는 곧 자신의 강철의 날개를 피어올려 그대로 솔리키타티오를 향해서 날아왔다.


 "종말의 때가 너에게 다가왔다, 타기리온의 스폰!"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솔리키타티오는 절규하듯 외치었다. "감히 네놈들이…! 네깟 녀석들에게 내가…!"


 아무리 제5종 침식체라지만, 솔리키타티오는 마치 오로치와 같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주문과 셋업을 통하여 상대를 농락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패를 전부 던져버린 상황에선 마치 로자리아처럼 그냥 힘으로서 몸으로서 부딪치는 상대에게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전의 상황과는 달리 너무나도 불리했다. 마치, 보호마법조차 치지 않은 마법사에게 기습적으로 전사가 달려오는 상황과 같았다. 닿는다면 저항조차 하지 못해 그냥 죽는 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저주를 외치며, 공간이동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그것보다도 더욱 빨리 부딪치려는 힐데.


 솔리키타티오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곤 역력히 격분하며 외쳤다.


 "미천한 미물과 같은 네녀석들이…! 이럴 순 없어, 다른 마왕들도 아닌 발할라의 패배자가 날 이겼다고…? 부활하신 어머니의 옆에서 영원히 시중들며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지켜봐야 할 이 내가…!"


 "발할라의 패배자라… 하나 묻지, 그때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마왕 타기리온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 이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었나? 녀석은 로자리아와 다르게 어떤 목적조차 없지 않았던가?"


 "네가 어떻게 그분의 뜻을 알겠느냐? 이 세상은 오직 어머니를 위해 존재해, 모든 것은 단지 타기리온의 뜻에 따라야 할 뿐이다!"


 "…결국, 너도 정복이란 말을 외치나 사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이군. 그냥 이성조차 없는 야수들과 마찬가지로 피와 도취감만 좇을 뿐이었겠지…. 말괄량이 공주인 네녀석에 걸맞는 최후다."


 그리고.


 "다 끝났다, 솔리키타티오. 이제까지 소녀들을 납치하고 세뇌하며 영원한 악몽 속에서 괴롭혔던 네 말로다."


 힐데의 검이 검은 형상을 그대로 가르면서 스쳐갔다.


 "아우우욱… 가아아아악, 가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타기리온의 마지막 여식은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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