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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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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시 기억하기도 싫은 옛날의 일이다.
철없는 말괄량이 소녀는, 밤마다 아버지와 친구들이 어디론가 떠나며 아침에야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몰래 재미있는 것을 한다 생각하며 질투했다. 호기심이 많은 어리석은 아이였었기에, 그녀는 너무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찾는 것일까?
도대체 뭐 때문에 계속 그곳에 가는 것일까?
어른들의 말만 들으면 된다며 마치 공주처럼 갇혀 길러지던 소녀에겐 답답함에 더해 너무나도 큰 궁금증만 유발했다. 결국 먹구름이 짙게 낀 날, 소녀는 자주 보던 소년에게 얘기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같이 가보자고. 신기한 걸 보고 싶어.
의젓한 소년은 그것을 거절했다. 그의 말을 들어야만 했었는데, 소녀는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소녀를 따라서 소년도 배에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갔었다.
지옥.
아름답고 낭만적인 동화 속의 세계가 아니라, 망자의 울음이 저주처럼 메아리를 치는 그곳.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은 소녀를 보자마자 날뛰었고 쫓아왔다. 배는 부숴졌고, 그림자의 뒤로 악마가 자신을 보았다.
다리가 떨려 움직일 수 없었던 소녀에게, 소년이 밀치면서 도망치라 말했다.
절대로 자신이 막아보겠다고.
소녀는 뛰었다. 무작정 뛰었다. 방향조차 모른 채로,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달리었다. 마치 도망치는 걸로 사죄를 받을 수 있다 생각한 것처럼. 그리고….
무슨 기적이었을까, 어른들이 곧 나타났다. 자신이 목에 걸었던 로켓(locket)의 발신장치를 추적해서 찾아왔었던 것이다. 울며 죄송하다 끊임없이 말해, 소녀는 소년이 위험하다면서 어른을 불렀다.
다행히… 소년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침식후유증으로 한동안 눈을 뜨질 못했다.
그래선 안 되었다.
자신이 다쳤어야만 했었다.
계속 간호하며 결국 소년이 눈을 뜨자 소녀는 기뻐하며 안겼다. 그걸로 자신이 지은 죄가 완전히 씻겨진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소년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고, 주기적으로 두통을 앓거나 기절을 하였다.
그랬기에.
어른들은 그를 기관장으로 추대하는 것을 반대했다. 설령 그가 전설적인 버넷 경의 후계자였어도.
…….
짙은 녹빛의 안개가 둘러싼 그곳.
수면의 안쪽을 볼 수 없는 검은 바다의 위에서, 정적인 무드로 흔드는 쪽배가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누워서 고요히 잠들어 있던 엘리자베스가 눈을 뜨며 일어났다.
"으… 으음…. 여긴 어디?"
기지개를 피며 눈을 비비던 그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바로 느꼈다. 바다에서 올라온 수증기와 같이 사방을 들이막고 있었던 위압적인 기묘한 안개만이 아닌, 자신의 몸 전체가.
"큰 나뭇배군요… 아니, 잠깐…."
소녀는 아기처럼 하얀 손으로 더듬더듬 만졌다. 잠깐….
너무나도 이상했다. 몸만 아닌, 자기 입술에서 나온 목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이건, 설마."
가냘픈 몸에다 얇고 높은 목소리. 몸에는 평상시와 다르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목을 보면 아예 카운터 워치 자체도 사라져 있었다. 있는 것은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닮은 자기 자신의 신체.
그것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설마…."
싸우기도 전에 당했다는 건가?
아니면 이것은 단순한 환각일까?
아니면 혼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
"…어째서, 저 혼자만 이 보트에 있는 걸까요? …윽!"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머리만 깨질듯 아파서… 그대로 식은 땀만 흘리며 이마를 어루만졌다. 주위에 흔들리는 그림자가 무언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나쁘다.
"하아, 하아… 음? 저건…."
사악하고 몽환적인 기운이 넘쳐흐르는 하늘의 아래, 안개가 꿈틀거리며 생물처럼 옆으로 걷혀졌었다. 놀랍게도 작은 섬과 외롭게 세워진 낡은 저택이 보였다. 소녀는 일어서서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혼자 그쪽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십 분 뒤에, 천천히 물살에 흔들리며 기슭에 닿았다.
침을 꾹 삼키고는, 소녀는 천천히 해안가를 걸어선 저택에 다가와선 대문을 두들겼다.
아무도 없는 것일까. 문을 당기거나 밀었지만 열리지도 않았었다. 초록색 연두색 그림자가 뒤섞여서 광인의 망상처럼 색채가 뒤섞여 몽롱한 느낌을 주었던 하늘은 어째선지 검게 변했었다. 정말로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계속 노려보는 것 같았다. 소녀는 으슬으슬 떨리는 느낌에 다시 급하게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어서 오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리코리스가 문을 열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리코리스 씨?"
"……."
소녀는 메이드의 눈을 보았지만 묘하게 뒤틀려있는 것을 눈치챘었다. 초점이 없이 녹은듯, 평소대로의 에메랄드 눈동자는 탁한 거미들이 살고 있는 늪지대와도 같은 느낌만 줬다.
"너무 늦은 밤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절대로 뭔가 이상해, 그렇게 생각했었던 소녀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그냥 입술을 꾹 닫았다. 왠지… 본능적으로 그런 인상이 들었다. 지금 보이는 이 환상은 너무 아슬아슬하게 지켜지고 있으니까… 만일 자신이 진실을 지적하는 말을 함으로서 환상이 깨져버리면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눈 앞의 괴물도 가죽을 벗고서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을까.
지금 이건 정말 리코리스일까?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밖에서 혼자 있느니, 소녀는 저택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궁금하게 생각하여 따라갔다. 메이드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정중하고 침착하여 묘하게 위화감을 주었다.
저택의 내부로, 낡은 샹들리에의 밑에, 곡선적인 나무 난간들을 잡고 올라가여 이층의 복도 안으로 들어갔다. 창의 바깥은 너무나 어두워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빗자루질을 하고 있던 릴리가 보였다.
"저… 릴리 씨? 리코리스 씨가 무언가 이상해… 응? 아까까지 저기에 있었는데…."
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다. 바깥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뒷통수만 보이면서 계속 빗자루로 쓸고 있던 그녀였다. 뭔가 너무 이질적인 기괴함에 다급하게 메이드를 불렀었던 소녀. 그러자 메이드는 손을 멈추고서 조용히 멈췄었다.
그리고, 목을 정확히 백팔십도 돌리면서 눈알이 비어있는 끔찍한 얼굴을 드러냈다.
"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예상치 못했었던 엄청난 공포에 소녀는 놀라면서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서 그 괴물을 다시 보려고 했었지만… 갑자기 그것은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놀란 가슴에 손을 조심스럽게 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빗자루도… 대체 그건 뭐였을까?
'가아그셰블라!'
발끈하듯 짜증내며 엘리자베스는 눈을 부릅뜨곤, 저택에 전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당신 같은 방법만 골라서 쓰는군요, 더러운 마왕이! 자신의 힘으로 저를 당당하게 맞서기엔 너무나 두려웠던 건가요?! 듣고 있는 거 다 알아요, 나오세요!"
마치 공포를 분노로 가리듯, 그렇게 외치면서 계단을 밟아 내려왔다.
하지만 소녀가 방 밖으로 나와서 저택의 모든 방들을 전부 뒤져보고 다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씩씩거리며 정문을 다시 열려고 다가갔었던 엘리자베스는 당혹스런 목소리를 내버렸다.
"잠기다니…? 누가 문을 잠궈둔 거죠?"
어떻게 할까 고민한 소녀는 지금 너무나 졸리고 지쳐, 방 안에 들어가 잠깐 잔 뒤에 창문을 깨서 나가리라 결정했다. 너무나도 꺼림직해 방금 전에 릴리가 있었던 방이 아니라 다른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궈놓고 그걸로도 모잘라서 가구까지 문에 밀어놔서 바리케이드를 쳐놨었다.
그런데도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던 소녀는, 조용히 침대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눈을 감고는 침대에 누웠다… 상황에 맞지 않지만, 따뜻한 하얀 이불의 촉감이 부드러웠고, 곧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얼마정도 지났을까,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고 있던 소녀는 왠지 모르게 꿈 속에서 전혀 모르는 낯설은 광경을 보았다. 거대한 검은 호수에, 모양이 제대로 식별이 불가한 괴물들이 마구 술렁이는 광경들. 괴물들은 흰 머리 소녀를 보고 있었다. 주위에 무언가가 계속해 흔들리면서, 꿈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계속, 계속 흐려졌다….
"으, 음…?"
눈을 떴을때는 너무나도 피곤했다. 머리가 울리는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자신의 눈 앞에서 누가 내려보고 있다.
"자, 잠깐?!" 소녀는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눈의 핏줄이 진하게 돋아나 마치 튀어나올 것만 같았었다. 핏자국이 배인 슈트를 입은 라이언이 어째선지 그녀의 옆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fuskila, furskola, felesikolo ayriolo leopin, poalos, melausos."
"josirueleo diemloslas melionosan. foskolosni rusolo auluroxoni."
"honnofulovski, syxe, jeax, zlon, ofloski leopin, rasilono diem."
마치 숨을 쉬지 않고,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소녀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며 단지 겁에 질려서 부드럽고 연약한 다리를 움츠리며 벽을 향해서 천천히 몸을 밀었다. 그때…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콰직하며 흐르기 시작했다.
"far be it for me to prevent your demise."
그것은 평상시의 라이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마네킹이 떨어지듯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아직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던 소녀는, 조심스럽게 시트를 걷고서 문 밖으로 나왔다. 저택은 너무나도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었다. 하지만 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밑에서 이상한 음악 소리가 났다.
소녀는 궁금하게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저택이 너무 넓게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진짜 넓어졌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숨을 죽이며 조심스레 걸어 몇 분 지나서야 겨우 메인 홀에 갈 수 있었다. 아까 전엔 몇 초 걸리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기긱거리며 킹킹거리는 이상한 소리도 들렸다.
기분 나쁜 멜로디가 저택을 지배하듯 울리는 가운데에, 소녀는 샹들리에의 밑에서 기이한 그것의 존재를 보았다. 리온이었었다. 극도로 뒤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눈동자도 마치 구글리 아이에 담긴 무언가와 같이 이상한 방향으로 휘젓고 있었었다. 그리고 리사는 중얼거렸다.
"저, 저게 대체…?"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숨을 마시면서 놀라하는 목소리를 그것이 들었다. 마치 악마의 살덩이 같이 검고 붉은 이빨들이 날카롭게 돋아있던 토토가… 리온의 팔 대신에 붙어있었고, 아까부터 뭐가 즐거운지 미친듯이 광소를 터트리던 리온은 소녀의 소리를 듣고서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아, 아아… 싫어, 싫어!"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이며, 소녀는 뒤쪽으로 달리며 도망쳤다. 쿵쿵거리며 리온이 그 뒤를 곧 쫓아왔었다. 마치 가위처럼 토토의 이빨들은 칵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서로 챙챙 거리면서 부딪쳤다.
"오오오오… 오오오오…!"
"토토가, 토토가 배고파 하고 있어… 오오… 오오오오…!"
"하아아앗, 크하아하하하하하핫!!"
두려움에 질려 소녀는 다시 이층으로 돌아가며 대문을 잠궈놨다. 하지만, 리온은 미쳐버린 것처럼 버둥거리는 토토를 문짝에 대고 그대로 갉아먹게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위험함을 직감하며 오른쪽의 창고로 들어갔다.
"어, 어떻게 해야만…?" 소녀는 숨을 곳이 없나 찾아보다, 와인이 담긴 배럴을 보고서는 바로 고민하지 않고 퐁당 웅크리며 들어갔다. 잠시 뒤에, 큰 발소리를 내며 리온이 쫒아와 기분 나쁜 숨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 토토야, 녀석의 냄새가…."
소녀는 운이 좋았다. 광인의 팔에 붙들린 괴물과도 같은 흉측한 팔은 와인 통에 잠겨졌던 리사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만일 장롱이나 침대 밑에 숨었다면, 소녀의 냄새를 맡고서 이 괴물이 끄집어내 갈갈이 찢어 삼켰을 것이다.
한참동안 둘러보던 리온은 발길을 돌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코를 찌르는 포도주의 냄새에 취해, 소녀는 숨을 죽이며 간신히 배럴에서 빠져나와 보라빛 액체를 뚝뚝 흘리며 우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이제 싫어…."
무릎을 꿇고선 지친 표정을 짓던 소녀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나가야만 한다… 지금은 그것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와인을 뚝뚝 떨어트리며 복도 끝까지 가려고 했던 소녀는 이상한 것을 알고야 말았다. 창문의 바깥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올 때 보였던 보트 뿐만이 아니라, 마치 이 저택 자체가 무슨 거대한 공허에 잠겨진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었다. 소녀는, 창고에서 주워온 드라이버를 밖에다 던져봤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절망이 그녀의 마음을 감싸는 가운데, 리사는 갑자기 아래에서 울리는 음악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음률의 현악기. 예전에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소녀는 죽어버리듯 복도에 엎어져 버리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꿈에 본 하얀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어디선가 들었던가, 무언가 차갑고 이지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속에 울렸다.
"진정한 지식이 뭐라고 생각해? 남들에게 구해야만 알 수 있는 걸까? 자신 스스로서 도달하지 못한다면,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 생각해?"
모노톤의 회상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다. 마치 장소의 기억을 읽는 느낌이었다. 마치 시간이 빨리 감기는 듯한 광경들이 보이더니, 이제는 그 소녀가 마치 다 자란 처녀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그녀가 모노클을 쓴 여자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 봐야겠어. 여기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많으니까."
"저희가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책에서 봤던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직접 가서 보질 않으면 안 돼."
둘은 묘하게 싸우는 것처럼, 싸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모노클을 쓴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냥 저희의 옆에 항상 있어주세요, 밖에는 당신이 모르는 위험한 것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나도 뭐가 맞고 틀린 건지 알아."
"그렇지 않아요!"
"…이러지마, 에델. 갑갑해."
마치 질렸다는 표정하고 지친다는 목소리와 같이. 그러자, 갑자기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모노클을 쓴 여자는 떨듯이 말했다.
"죄송해요, 레지나 님. 저희를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
"레지나 님…?"
"싫어할리가 없잖아. 에델은 내 친구인 걸."
그렇게 말하면서 하얀 머리의 처녀는 고개를 돌려, 뚜벅거리며 걸어나갔다. 혼자 남겨진 여자는 단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쪽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자신을.
등골에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리사는 악몽에서 깨어나려 노력했다. 곧, 그녀는 눈을 떴었다.
음악의 소리는 계속해 들렸다. 아직도 시큼한 와인의 냄새를 맡으며, 소녀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밑으로 내려갔었다. 도대체 뭐가 일어나는 걸까. 벌써부터 터질듯이 아픈 다리를 손으로 계속 주무르며, 멸망의 노래가 울리는 지하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니…?"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었다. 악기조차 보이지 않았고, 휑한 공간만이 있다. 아니, 사슬하고 발자국이 보였다.
소녀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에 무언가 채였다. 그걸 주워서 보니 권총이었다. 그것도 누군가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레버넌트가 썼었던 것이다. 모델부터 독특한 장식까지 일치했었다.
"사슬… 지금 보니까 로이의 것이 아닌지."
어떻게 할까 고민한 소녀는 그대로 사슬을 한 손으로 잡고 걸으며, 다른 손으로 총을 잡고서는 주의하며 길을 따라갔다. 신성과 카운터 워치를 잃은 지금의 엘리자베스에겐 유일한 무장이었다.
그렇게 몇 분, 그렇게 몇 분. 처음에는 단지 저택의 일부인 지하실 같은 내부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가 뭔가 동굴 같은 곳까지 도착해… 침묵 속에서 땀을 흘리면서 소녀는 차가운 사슬만 붙잡고 그대로 묵묵히 갔었다.
우물이 있었다.
끝에는 그것과 철봉으로 박혀진 표지판이 있었다. 그것에는 'lskfurliqop' 이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단어만이 적혀졌다. 소녀는 사슬이 끝까지 내려진 우물의 바닥을 보았다… 우물인데도 내벽의 둘레로 촛불이 걸려져있고, 바닥 끝엔 어떤 발자국이 걸어나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여기로 가야만 할까요…?" 그렇게 고민하던 소녀는, 사슬을 중앙으로 모아서 꼬아 원으로 만들곤 옆의 표지판에 묶어놨다. "아마 괜찮겠죠. 아마… 떨어지지 않을테니."
스륵, 스륵.
몇 분 동안 소녀는 온 집중을 다해, 발을 우물의 내벽에 대며 천천히 내려갔다. 천천히 움직이는데도 사슬의 손가락에 피부가 쓸려서 너무나도 아팠었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고,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단 느낌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몇 시간과 같은 몇십 분이 지나, 소녀는 안전히 땅에 내려와 발을 디뎠다.
"발자국…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요." 그렇게 중얼거렸던 소녀는 레버넌트의 권총을 주머니에서 꺼내, 공포와 피로에 의해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발자국을 쫓아갔다.
중간에 갈림길이 보였다. 잠깐 고민한 소녀는 일단 발자국을 쫓아가기로 결정했다. 동굴의 내부는 너무 음침하고 어두워서 전혀 진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갔더니… 이상한 제단이 보였다. 바닥에는 짐승의 피로 칠해진 펜타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제단에 다가가 살펴보려던 엘리자베스.
"읏?" 갑자기 놀랐다. 어째서? 아까부터 꾸던 꿈의 연속이다. 리사는 바로 옆에 하얀 머리의 소녀가 앉아 누군가와 말하는 것 같은 몽상을 봤다.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형체가 엄청나게 빨리 지나갔다. 아까 전에 보았었던 모노클의 여성, 하얀 머리의 소녀가 매우 어릴 때의 모습, 약간 성장했던 모습, 그리고 소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누군가, 너무나도 많은 그림자가 빨리 지나갔다.
소녀의 머리는 깨질듯이 너무나도 아팠다.
'그… 그만…! 머리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진정한 지식이 뭐라고 생각해? 남들에게 구해야만 알 수 있는 걸까?"
"저희는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하질 못했어요. 여태까진 다른 것들을 흡수하고 그들의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저희와 융화할 뿐이었었죠. 하지만… 레지나 님은 언젠가 진정한 지식을 찾을지 몰라요. 저희가 도와드릴께요."
"네가 감히 나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반항적일 수가 있지?! 널 그분에게 제물로 바치고 말거야! 어떻게 너 같은 혐오스러운 것이 그분의 총애를 받을 수 있지?! 어째서?"
"…그만하시죠, 어머니. 그러면 당신이 삼켜지고 말겠죠."
"닥쳐!"
"이렇게 혼자서 고민할 때가 얼마만일까… 레지나 님과 하나가 되고 싶지는 않아. 레지나 님을 원하지만 저희와 하나가 되서는 안 되니까, 그러니까… 저희와 하나가 된다면 그분은 더이상 자신으로 남지 않겠죠. 하지만 언제까지나 보호해드릴게요, 저희가 언제까지나 지켜드릴게요… 반드시."
"자, 가아그셰블라! 바로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바로 하나 뿐인 저의 혈육, 제가 당신을 사모하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이번 의식의 제물입니다…!"
"수고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당신은 결국… 이렇게 되어야만 했겠죠."
"…네? 잠깐, 어째서…?! 이, 이럴 수가… 안 돼, 꺄아아아아아악!!"
"에델은 마왕이라고 불리는 존재였지? 그런 건 사실 어떻게 되도 좋아. 마왕이라해도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 존재로서 보이니까."
"레지나 님은 저희가… 아니, 제가 무섭지 않나요?"
"무섭다기보다, 그냥 싫지 않아."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인간들을 삼키며 저희는 그것을 알아버렸어요, 이 세계는 너무나도 추잡하고 너저분해… 속고 속이며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이런 더러운 세상에선 힘만이 정의예요. 어째서, 어째서…! 레지나 님은 현명하고 아름다워, 그렇기에 당신을 노리는 가증스런 짐승들이 많을 거야… 고작 한 명의 소녀인 당신이 역겹고 교활한 인간의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요?"
"지하실이라도, 이렇게 에델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네. 그냥 옆에서 책을 읽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편안해."
"당신의 어머니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니까요."
"그래? 하지만 내가 틀렸다 생각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 그게 싫다면 단지 논쟁으로 부정해야만 했었겠지."
"너무나 영특하신 거예요, 당신은…. 그런 당신을 보면, 왠지… 그렇죠, 솔직히 말예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을 스스로 알아내는 그런 모습들이… 마치 지식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아요."
"아냐, 그렇지는 못할 거야! 나도 알아, 밖에서 저들 인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욕망과 쾌락과 환희에 찌들려 남들을 짓밟고, 멸시하며 모욕하고! 그게 인간이야, 당신 같이 고상하진 않단 말야! 왜, 왜 어째서 제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가… 아냐, 제가 싫은가요? 아냐, 그렇지는 않아. 싫지는 않다고 하셨어, 그래… 단지 궁금해서 그러시는 거야, 나처럼, 과거의 나처럼…! 그렇다면… 인간의 세상만 완전한 공허로 돌아가면 돼…!"
여러가지 시공간이 아예 뒤틀리며 뒤섞여진 그런 혼란스런 망상들에 사로잡혀, 소녀는 결국 몸을 겨누지 못하고 그곳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이 자닌 뒤에야… 그녀는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아까 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머리속이 너무나도 붉게 물들여져 검은 글자들이 뒤죽박죽 섞이고는, 심지어는 글자들의 위에 다시 덧씌워지는 느낌이었다. 물건들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아예 색깔들이 이상하게 보여졌다.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 소녀는 단지 그것만 생각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나왔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소녀는 마치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뒤틀린 햇빛이 보이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에 그녀는 비로소 보았다.
이곳이, 바로 아포크리파였다.
절대 방문해선 안 될 세계. 연약한 필멸자의 정신력이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리는 그곳 광기의 요람.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검은 태양의 아래, 뾰족한 첨탑의 오벨리스크와 비슷하게 보이는 구조물이 곳곳에 있었다. 하나 같이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이 표면에 적혀졌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방향들로 마치 생선과 같이 퇴화한 눈과 비틀린 목과 얼굴을 가진,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성화된 사람들이 보여졌다.
소녀는 현기증을 느끼며, 여기서 쓰러지면 위험하단 생각에 다시 동굴의 안에 들어가 숨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분명히 아까 전에 걸어온 그 동굴의 입구가 보이질 않았다. 그것 뿐만 아니었다. 자신의 뒤에는 단지 바다만 있었다. 그리고 저택도 없이, 몇 시간 전에 타고 왔었던 보트만 보였다. 왜…?
머리 속에서 계속 울려대는 이해하지 못할 소리들은 점점 커져갔다.
마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에 소녀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로이… 대체 어디 있어?"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원했던 희망은 결국 최악의 절망이 되었다.
바로 뒤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
"로이…?"
뒤돌아 본 그녀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이마의 흉터는 터져 검은 핏물을 흘리고 있고, 흰자는 검은자로 변하곤 어러 동공이 무수히 나있어 징그러운 괴물의 얼굴을 비추었다.
"안 돼… 안 돼…."
여기서 죽을 순 없다. 본능적으로 리사의 다리는 스스로를 일으켜 도망칠 준비를 하였다: 잡히면 지금의 자신은 무조건 죽는다. 카운터 워치도 신성도 없는 작은 소녀가 뭘 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것보다 본인의 이성이 본능을 막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로이를 이곳에 버려두고 갈 수 있나?
…그때처럼?
"으… 으으윽… 도대체,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리사는 레버넌트의 권총을 꺼내 앞으로 겨누고는 망설였다. 차마 쏠 순 없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으며, 단순히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로이를 쳐다볼 뿐이었다.
"바보… 그러니까, 내가 내리라고 했었잖아…!"
"……."
"넌 왜 내 말을 항상 안 듣는 건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어렴풋이 알았다고…!"
"……."
마치 하소연을 하듯, 차마 총을 쏘진 못하겠고 그냥 소리만 지르던 소녀. 결국, 그녀는 총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때부터… 나는 실패했어. 나 때문에 모두가 하나 둘 죽어… 오래된 목소리도 사라졌고, 그리고 이젠 모두를 잃었어. 후후, 처음부터… 내가 기관장이 되선 안 됬는데…."
그리고 털썩 앉은 소녀를.
버넷이란 이름의 괴물이 방패로 쳐날렸다.
"…아악!"
그리고 한 번, 또 한 번.
그러면서도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저항하질 않았었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니까. 자기가 자초했던 일이니까. 그리고… 두 번 다시, 혼자 살아남아 도망치긴 싫다.
그리고.
괴물이 방패를 내려놓고,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목을 잡고는.
그대로 졸랐다.
하지만 리사는 저항하지도 않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용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로이, 나…."
"……."
"나, 너랑 있을 때에, 정말 즐거웠어. 필요할 때 언제든 같이 있어주고. 너는 슬플 때에 항상 위로해 줬고, 힘들 때에 항상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고 했었어. 여태까지… 네가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
"……."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던 건 왜일까.
그리고.
푸른 빛이 맴도는 손가락의 끝으로, 소년이 가졌던 흉터를 쓰다듬으며, 소녀가 말했다. "친구… 배신하고 도망치지 않는 거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도… 그때랑은 달리, 도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언제라도 곁에 있을 거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아….
지금에야 기억났다.
과거에 소년이, 불량배들에게 맞고 있을 때에 소녀가 나타나 구해주며 했던 말이.
친구는 배신하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때부터… 얘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랬기에, 따라왔던 것이구나.
목이 졸리던 소녀는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슬픈듯 행복한듯 보이는 눈빛을 지었다. 이제… 그냥 이걸로 됬어. 왜냐면…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었던 건지, 지금에야 알게 됬으니까.
그러니까….
"…으윽, 크으으윽…!"
리사가 말했다. "나의 마지막, 너에게 줄께."
"윽…"
그리고 괴물은.
"으으으윽…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가득찬 소리를 내지르면서, 소녀를 놓았다.
털썩 쓰러진 소녀의 앞엔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미친듯이 날뛰던 그 남자가, 이내 엎어져서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서 어루만지는 엘리자베스.
"…로이."
"여기서…."
그의 목소리다.
로이가 말했다. "여기서, 도망가. 빨리… 역시, 너로서는… 아니, 우리로선…."
그때였다.
버넷은, 다리부터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나는… 이미 틀렸으니까. 너만이라도…. 빨… 리… 가야…"
그리고.
로이는 완전히 거대한 얼음의 안에 그대로 갇혀버렸다.
"…거짓말… 이지…?"
털썩 주저앉은 소녀. 그리고 그 익숙한 한기.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 앞에는 남극의 차갑고 고요한 빙하바다와 같이 새파란 진한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레지나가 있었다.
"……."
"설마… 레지나 맥크레디 당신이…!"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선 바로 발걸음을 돌려 걸어갔다.
투둑, 소녀의 머리속에서 무언가 끊기는 듯한 느낌. 단지 증오스러운 격한 분노만이 불타올라, 소녀는 가냘픈 다리를 일으켜서 죽은 눈동자를 굴리며 검은색 방패에 몸을 움직였다.
대신성력 아티팩트 프리드웬. 아까부터 자신의 정수하고 공명하여,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었던 그녀. 마치 복수의 신에게 기도를 하듯, 무릎을 꿇고선 스스로의 힘을 다시 일깨우고 있는 거다.
"당신이 감히 이런 짓거릴… 레지나…!"
그리고 소녀의 몸은 마음의 저주와 같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매서운 푸르른 날개를 펼치었다.
한편, 멀리 떨어지곤 다시 자신의 주위에 얼음 카케라를 띄운 하얀 머리의 처녀. 레지나는 한숨을 짧게 쉬고는, 눈을 부릅뜨면서 도시 중앙에 높게 치솟은 신전을 바라보았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