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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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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막한 어둠이 짙게 깔려진 도마의 성 안에서, 고요히 빛나는 촛불들 사이엔 세 마왕이 서로를 마주보면서 앉아있었다. 거대한 암적색 커튼이 창을 덮고 있어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을 주었고, 서로가 조용히 눈치를 주듯이 내뿜는 침식파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연일 울어대는 까마귀들은 짙게 깔린듯한 위압적인 공기를 느끼고선 전부 어디론가 사라졌다.


 겉보기엔 어린 소녀와 두 처녀가 차를 마시는 그림과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방에 무겁게 죄듯이 퍼져있는 위압감은 마치 그녀들을 거신처럼 보이게 했었다. 지금 여기서 의논하는 이유는 이 동맹과 차후의 문제에 관한 것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델의 목적을 짐작할 수 없었던 로자리아가 세라펠을 대동하여 그녀에게 다시금 물어보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로자리아는 찻잔에 담겨진 기이하게 빛나는 액체를 음미하며 마시다가 에델에게 넌지시 물었다. "가아그셰블라, 너는 우리에게서 뭘 원하는 것이지? 혹시 너의 진정한 목적을 말해줄 수 있느냐?"


 안대를 꼈지만 감각만은 완전했던 세라펠은, 로자리아의 물음과 동시에 에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보았다. 에델은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군요. 확실히, 제가 로자리아 당신이나 치천사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게 증명했는데요."


 "그게 아냐." 로자리아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너에게 동맹을 부탁한 것이지, 정전을 요구한 게 아니야. 그리고 알다싶이 서로에게 명백한 이점을 보장하지 않고서 유지될 수 있는 관계는 없어."


 세라펠이 천사 특유의 높은, 거만하고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서로 과거에 반목한 사실이 있는데도 그대는 이 동맹을 순순히 받아들였지. 혹여 말해주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대, 지식의 마왕이여. 이 동맹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저는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그걸로 좋지 않겠습니까? 이미 두 분의 원대한 계획에 어떤 장해물도 되지 않는다고 약속드렸는데." 찻잔을 잡으려고 손을 펼쳤었던 에델은, 팔에서 갑자기 꿈지럭거리며 튀어나온 검은 촉수들이 툭 치면서 차를 흘렸던 것을 보곤 놀랐다. "어마… 실례."


 하지만 세라펠이 그것을 슬쩍 보곤, 자신의 눈으로 재듯이 훑어보다가 힘을 주듯 노려보았다. 갑자기 시간을 역행시키듯, 컵을 바로 세우며 동시에 쏟아진 물이 되감기듯 다시 담겨졌다. 턱을 괴면서 벽의 책장을 쳐다보던 로자리아가 무언가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마왕이라 불리지도 못할 미천한 침식체 시절에… 우린 서로의 영역을 두고 땅따먹기나 하고 있었지. 마치 자연의 맹수와 다를 것도 없던 나이였어.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지. 에델, 너는 혼돈의 마왕이라 불리긴 하나, 그것에 더해 지식의 마왕이라 자처하지. 너에게 전쟁이란 무엇인지 물어도 괜찮겠느냐?"

 "…당신은 답을 구하기보다 저를 시험할 생각이군요."

 "흥, 항상 느꼈지만 정말 영리해."


 그러자 에델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린애 취급은 그만하시죠. 어차피 이제와선 나이란 것도 의미없으니까요."


 "…대답해주지 않을 거냐?"

 "어차피 제 의견을 말해봤자 부정하려고 하시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게 어떨지요."


 로자리아는 에델을 묵묵히 쳐다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괜히 지식의 마왕이 아니야. 그렇지. 잘난척하는 내가 널 정면으로 반박하면 기분만 상할테니. 그렇다면, 그냥 내 얘길 들어주는 정도라면 어떻겠느냐?"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겁니다. 계속하시죠, 로자리아."


 로자리아는 자신의 짙은 보라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촛불만이 가느랗게 불타오르는 그곳에선 왠지 그녀의 머리가 검은색으로 보였다. 테이블에 팔을 올려놓고 살짝 깍지를 끼며, 로자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순수한 파괴면 모를까, 정복은 언제나 지배를 동반해.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비틀었으며 미래를 만든다고 할 수 있지. 오랜 시간 인간들을 지켜봐왔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도 딱히 다르진 않아. 그리고 이런 흐름의 끝은 비슷한 결과로서 귀결되지. 손을 잡고서 승리한 세력은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는 원래 독립된 존재들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습니까? 분열이라고 불릴 것도 없었는데도."

 "이유 없는 결과는 절대 존재하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이 동맹에서 네가 원하는 미래가 대체 무엇인지 난 아직도 알 수 없단다. 세라펠은 이 세계를 심판하길 원하고, 나는 단지 내가 눈여겨본 소수만 내 세계에 들여온다면 그걸로 좋겠지. 우리는 목적이 서로 충돌되지가 않고, 그렇기에 우리 둘의 동맹은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로자리아는 팔짱을 끼면서 에델에게 물었다. "하지만 넌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 거지?"


 "……."


 에델은 침묵했다. 로자리아는 그녀를 뚫어지도록 쳐다보다 이어서 말했다.


 "사실 짐작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 레지나 맥도날드라고 했던가? 그 처녀를 뺀 나머지는 전부 내가 가져도 되겠나?"

 "그녀의 이름은 레지나 맥크레디입니다. 맥도날드라니… 햄버거 가게라도 인수할 생각이신지요."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그걸로 됬냐고 묻고 있어."


 에델은 손을 입가에 대며 잠시간 생각하고 있다가, 곧 대답했다. "…물론 레지나 님은 무조건 필요하지만, 저는… 그러네요. 세라펠이 세계를 심판하고 싶다면, 오히려 철저히 부숴버리면 만족하겠죠. 그 추악함과 더러움이 전부 드러나도록… 누구도 원하지 않을 그 세상의 민낯을 보이도록…."


 여태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서 숨겨왔던 에델이었다. 지금 그녀의 진심을 듣고, 로자리아는 물론이고 세라펠조차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 로자리아가 팔짱을 풀고는 왠지 모르게 에델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저 녀석… 최근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지도 못하겠어. 어째서지? 누구보다 지식에 목말라하는 네가, 이 세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사실 그녀는 에델이 어떤 존재인지 이미 꿰뚫어보듯 알고 있었다. 하지만, 되려 그렇기에 그녀의 행동에서 어떤 일관성도 연속성도 보이질 않는다고 느꼈었던 것이다. 혼돈의 마왕인 가아그셰블라… 애초에 혼돈이란 성질은, 마치 관리자나 로자리아 본인처럼 오직 하나의 명확한 의지를 가진 존재들은 갖출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에델이란 것은 마왕으로 불리기 이전까지도 그런 녀석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이 가진 생각이나 감정들을 그냥 모으듯이 아예 삼켜버려왔고, 자연히 지나치게 커졌다. 물론 그러한 혼돈이 하나의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고 그것이 에델 본인이기는 했다. 다만, 진짜로 가치가 있건 없건 지식을 항상 계속해 갈망했었던 그녀가, 지식이 더욱 발생하고 있는 현세계 자체를 부순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질 않는다고… 그것이 로자리아에게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나의 관심사로 빗대어서 말한다면, 케이크 가게나 주스 공장들을 전부 부순단 것이랑 다를 게 없지… 다만 나에게 있어서 그건 취미 중 하나가 사라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이 녀석은 도대체 왜…? 너에게 있어서 유일한 욕망이 아니었던가? 우리의 심판으로 세계가 리셋된다면 어떠한 지식도 아닌 공허한 메아리만 남겨질 거다. 그것을 오히려 네가 바란다고?'


 녀석의 세력도 확실히 학회였었다. 그렇다면 지식의 보존이 완전한 파멸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지 않겠나? 그렇지만, 에델 본인이 전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도 저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은이라고 불렸었던가… 나도 걔처럼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면 편리할텐데 말이지.'


 그렇게 세 마왕이 전부 침묵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문을 정중히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는, 도마가 검은 코트자락을 휘날리면서 들어오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었다.


 "존경스러운 마왕님들께 보고드립니다. 방금 전에, 코핀 컴퍼니에서 전력을 셋으로 나누곤 함대를 차원융해지점으로 이동시켰습니다만…."


 그러자 로자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오! 녀석답게 바로 움직이지 않느냐? 어디보자, 감히 마왕에 견주는 힘을 가지는 녀석들이라 한다면… 옛 신성고대종급 둘, 용사 가문 펜드래곤의 상속자하고, 유사 대적자 녀석, 최후의 발키리, 그 반침식체 괴물에다, 그리고 관리자의 제타 머신갑이 되겠지."


 "흐음? 그것의 이름이 제타 머신갑이었던가요?"

 "몰라, 나도. 그냥 대충 불러."


 로자리아는 헛기침을 하고 도마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누가 어느쪽으로 오는지 알고 있느냐?"

 "죄송하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애초 인간들은 침식파를 감지하여 침식체를 발견하고 바로 처치하기 때문에… 사물이건 사람이건, 어떤 수단을 써도 현 관리국의 심장부나 다름 없는 코핀까지 정찰하기는 힘들지요."

 "후, 모르면 그냥 그걸로 됬어."


 그리고 로자리아가 일어나더니, 다른 두 마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오히려 이 편이 더 기대되지 않겠느냐? 자, 힐데는 어디로 올까나? 누가 오로치랑 시무르그를 상대하게 될까? 하! 어쩌면 그 셋 전부다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손을 탁 튕겨, 허공에서 거대한 의자를 만들어낸 그녀가 사뿐히 앉고는 포악하고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방 전체가 울리도록 외쳤다. "무대의 막이 올렸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게 마왕다운 면모를 저들에게 보여주어라, 아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가 서있던 그림자로부터 마치 어둠이 스며들듯 나타나 바로 회전하듯이 일그러지곤, 이내 중심으로 수축하며 로자리아의 형상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침묵하고 있었던 세라펠은 제멋대로인 로자리아를 상대하느라 지친듯이 피곤한 한숨을 쉬고는, 자신도 보라색 성소들을 흩날리며 곧바로 스스로가 연결시켜놓은 차원의 교두보를 지키기 위해 공간이동을 했다.


 '그렇군요… 펜드래건, 오로치, 시무르그, 힐데… 과연 우리에게 대적했던 옛날 그들이 다시 모였던 것 같군요. 살짝 무서울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그렇다고 해도, 전부다 저희 쪽으로 몰려오진 않겠죠. 흐음… 셰나하고 카르멘을 제가 있는 쪽으로 다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까지 둘이 떠나는 것을 보던 에델은 도마에게 손을 흔들면서 가볍게 인사하고는, 자신도 발 밑으로 퍼져가는 심연의 그림자에 가라앉으면서, 자신의 차원인 아포크리파로 떠날 준비를 했다.


 같은 시각, 알비온.


 유럽으로 돌아가는 동안, 레지나는 무언가 혼자서 추억에 잠기듯 그립고 슬픈 느낌을 조용히 삼키면서 단지 알비온의 창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얼음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커피잔을 맨손으로 잡으면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그런 얼음조각상 같은 그녀는 모두에게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주었다. 코핀에서도 그나마 지아나 관리자 그리고 베로니카 정도만이 그녀에게 거리낌없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지금 알비온에 있는 인원들도 딱히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서 혼자 두려고 했었다.


 사실 관리자와 지아 회장은 그들 집단을 총괄하는 수장이고, 베로니카 또한 기품있고 정숙한 메이드의 귀감이기에 모두하고 친한 것을 고려하면 코핀에서 그녀의 미묘한 입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능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주위에서는 저런 태도를 가진 그녀를 매우 신경썼었다. 과거에, 윌버가 리플레이서 폰으로 변신하여 대시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때,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 허수아와 함께 돌파구를 찾았던 그녀였기에. 그리고 조용히 서있던 레지나의 옆으로, 레버넌트가 쿠키를 쟁반에 들고오면서 말을 걸었다.


 "베로니카가 직접 구운 초코쿠키야. 어디있는지 모르겠다고 물어보길래 내가 대신 전해준다고 했지."


 마치 차가운 남극의 바다와 같은 눈동자를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지나는 작은 테이블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레버넌트는 표정을 약간 풀면서 보온병에 담긴 보라빛 차를 따라줬다.


 "으음… 특이한 색깔이군요."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레지나는 손가락을 컵의 표면에 대었다. 그걸 보고서 레버넌트도 똑같이 손을 대었다가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떼었다.


 "와아, 엄청 뜨거운데… 카운터는 역시 다른가봐?"


 딱히 그 말에 반응하지 않으며 눈을 감고는 조신하게 마시는 레지나를 보며, 왼쪽 손바닥을 뺨에 대고는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이 차, 아네모네로 데운 거야."


 그러자 레지나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유독식물 아닌가요?" 하지만 레버넌트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자신도 차를 따라서 음미했다. "그로니아산 아네모네는 달라. 학명으로도 아네모네 그로니카라 불리고…. 어렸을 때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쿠키랑 함께 자주 마셨어. 색깔이 예뻐서 마치 동화 속의 공주님이 된 것 같았었지. 후후, 지금은 그냥 마녀가 된 느낌일까나."


 "당신도 로맨틱한 면모가 있군요."

 "레지나 씨도 그렇지 않아?"

 "……."


 그녀는 차를 호호 불더니, 쿠키를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레지나 씨는 왠지 옛날의 나와 닮은 느낌이더라. 그냥 혼자서 있고 싶고, 그리고 그게 더 편해. 왠지 차갑게 부는 바람을 맞거나, 바깥의 풍경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면 차분하고 진정되서…."


 "당신은 지금도 그렇지 않나요?" 레지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찻잔에 뚜껑을 살짝 기울여 대었다. 레버넌트가 그 제스쳐를 읽고 다시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맞아, 레지나 씨는 상당히 예리하네. 솔직히 돈걱정하지 않고서 그냥 아무렇게나 떠돌듯이 살고 싶다고 느껴. 그렇지만 나에겐 엄마가 있으니… 아직은 그러질 못하는 거야."


 "……."

 "후… 뭐라고 해야 할까나…."


 레버넌트는 바로 레지나의 가족에 대해서 물으려고 하다가 바로 관뒀다. 여자의 직감일까, 왠지 레지나는 좋은 가정사정을 가진 것 같지 않았고, 굳이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다간 그녀의 심기만 거스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 쪽에서 회화를 더 이끌지도 못할 것 같아, 그녀는 단지 레지나가 자신에 관해서라도 물어주지 않을까 기다리며 차를 홀짝이며 마셨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아직 말을 하길 꺼리는 건지, 그녀는 단지 쿠키만 집어먹으면서 조용히 있었다.


 '음… 이것도 좋겠지. 서로 친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십 분 뒤에….


 계속 그렇게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둘에게, 선글라스를 낀 로이가 찾아와 브리핑을 시작한다고 전달했다.


 어쨌건 그를 따라서 회의실으로 들어갔더니, 다들 모여서 원탁에 앉아 있었다. 허수아는 힐긋 레지나를 보더니 토끼처럼 손을 올리며 인사했다. 레지나도 똑같이 오른손을 들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고는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레버넌트는 바로 그 옆에 앉았다.


 둘이 착석하는 것을 보고, 엘리자베스가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전부 들어오셨으니 이제 시작해도 좋겠지만… 그 전에 하나만 묻고 싶군요."


 엘리자베스는 날카로운 눈매를 지으면서 레지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을 물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가로채듯 먼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에 관한 것이라면 빨리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저도 모두에게 아포크리파에 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서는, 엘리자베스는 죽이고 싶단 눈을 지으며 레지나를 쳐다봤다. 당연했다. 오래전부터 펜드래곤의 가문을 수호했었던 신성고대종, 오래된 목소리는 가아그셰블라에 의해 타락하곤 결국 처치당했다.

 그것이 레지나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에델과 깊은 관계에 있던 그녀는 감정적으로도 매우 아니꼽게 보여졌고, 이성적으로도 배신의 우려가 있기에 매우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호오? 그게 거짓정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무리 짜증나도 말투만은 항상 정중했던 그녀가 뒤틀린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말했다. 너무나도 직설적인 어조에 베로니카나 레버넌트와 같이 눈치가 빠른 사람만이 아닌, 둔감한 로이마저도 갑자기 장소의 공기에 날이 서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질 못하니까요."

 "무조건 들어야만 한다고? 그렇게까지 나에게 명령질하고 싶었나 보군요? 응? 레지나 맥크레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배에 탄 이상, 선장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당연해요. 자신의 자리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안다면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데?"


 그러자 레지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때, 그래도 레지나가 아군이라 생각한 로이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사, 레지나 씨도 사실은 피해자…"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로이가 레지나를 변호했단 사실이 엄청나게 화났는지, 엘리자베스는 냅다 잔을 집어던지고는 말했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 챙그랑 깨져 버리며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 바닥에 퍼트려지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조용히 한숨만 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라서 성격을 잘 아는데, 이럴 땐 절대 막을 수 없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자극해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기에.


 그리고 눈빛으로 찔러죽일듯이 노려보는 엘리자베스와, 고개를 다시 들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마주보는 레지나. 몇 초가 진짜 몇 분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베로니카는 평소와 똑같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런 공기에 약한 도로시나 리코리스는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간신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고작 사십 초 정도 지났을 때, 리온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 저, 화장실에 잠깐 갔다올께요. 너무 급해서요…. 못 들은 게 있으면 나중에 물어볼께요!"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그녀는 빨리 도망치듯 방에서 나갔었다.


 이 분 후에, 엘리자베스가 마치 중세의 여왕처럼 위압적인 내리깔아보는 눈빛을 지으면서 물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맥크레디 양.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모두를 돕기 위해서겠죠.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왕 가아그셰블라를 죽여야 한다면, 당신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죽을 정도로 에델은 약하지 않아요. 단지 에델을 설득하거나, 강제로 이 계획을 막는다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입니다."


 그러자 입술을 비틀거리며 엘리자베스가 레지나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것이 고작 당신의 대답입니까? 관리자 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죠, 아스모데우스에 비해 가아그셰블라는 약하다. 그리고 지난 번의 전투에 우리는 그녀를 패퇴시켰습니다… 당신이란 전리품을 그녀에게서 빼앗았죠."


 "다시 말하지만, 저 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누구도 에델을 이기질 못해요.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말하는 겁니다."

 "이기질 못한다? 웃기지 마시죠. 만일 내가 이기면 어떻게 할 건가요? 오히려 걱정되네요, 마왕을 죽이려고 할 때 당신이 방해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그건…."


 레지나가 말을 흐리는 것을 보자마자, 엘리자베스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이 평상시의 사려깊고 품위있던 그녀의 모습과 달랐었다.


 "네가 왜 대체 여기에 있는 건데?! 그 마왕이 죽건 말건 신경쓰질 않는다면 당신은 따라오질 않았어도 됬잖아!"

 "……."


 레지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를 못했었다. 엘리자베스가 이어서 말했다. "그 마왕이 약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전부 기용할 생각입니다. 기습이건 암살이건… 그리고 그것은 여기에 있는 모두도 같습니다. 왜냐면 봐줄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그리고… 당신 한 명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 모두의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어요."


 "미스 펜드래건, 그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관리자 님은 차원융해를 막아야 한다고 하셨지, 마왕의 처치가 목적이라고 하시진 않았습니다."

 "저도 목표가 뭔지는 알아요, 저쪽 클리파 차원에 플레인멜딩을 시키는 첨탑이란 것을 찾아서 부숴야 하는데, 당연히 우리가 수비대를 처치하면 그쪽에서 눈치채고 마왕이 직접 오겠죠. 정말로 가아그셰블라를 상대하지 않고서 임무를 마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녀는 무조건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싸울 수 밖에 없어요!"

 "아뇨, 가능해요."


 엘리자베스는 지금 감정에 휘둘리고 있지만 딱히 이성마저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하는 논조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지나는 굳은 표정으로 결의를 비추는 진지한 눈동자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혼자서 에델을 부르곤 멀리까지 떨어트리겠어요. 그리고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첨탑은 폭탄으로 부수고, 목적을 마치면 바로 탈출하세요."

 "…뭐?"


 레지나의 말을 듣고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려보는 도로시와, 헤드기어에 '!' 표시를 띄우는 허수아, 이마에 손을 대면서 한숨을 하는 로이, 딱히 표정의 변화는 없이 냉정한 눈동자로 보는 베로니카, 진지한 눈매를 날카롭게 뜨고있는 릴리와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는 리코리스, 그리고 추워서 여태까지 팔짱을 끼듯이 양쪽 팔을 잡고 있다가 레지나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레버넌트.


 모건이 눈을 감고서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우리에게 목표를 파괴한 직후에 바로 당신을 버리고 도망치란 말 같군요, 맥크레디 양."


 레지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단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서 엘리자베스가 황당해하는 기색을 멈추지 못하고 물었다. "장난치나요? 도대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것이 제일 합리적인 방법이니까 그래요. 제가 당신이었어도, 이렇게 시켰을 겁니다."

 "당신 혼자 도망쳐서 마왕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릴 위험도 있지 않나요? 그딴 미숙한 작전을 허락할 것 같나요?"

 "그렇다면 지금 제 눈을 안대로 가려서 묶고, 아포크리파에 도착하면 본대로부터 떨어진 지점에서 눈을 풀으세요. 어차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전부 아니까… 그 뒤에는 제가 에델에게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 엘리자베스는 뭔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맥크레디 양,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요?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무사히 생환할 방법은 단지 그것 뿐입니다. 에델은 어차피 저를 죽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미끼가 되면 완벽하게 끝낼 수 있어요."

 "절대로 기각합니다."

 "…왜죠?"


 엘리자베스는 오히려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짜증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배에 오른 이상은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겠죠, 내가 선장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죽어버리라고 당신을 보낸다는 걸 작전으로 전제해선 당연히 안 되겠죠. 리더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무조건 모두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사심 없이 대해야만 하니까요."


 "어째서 모르나요? 저 하나만 희생한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서 끝날 수 있는데…!"

 "그게 아니예요. 자신부터 희생할 각오가 없는 사람은 남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각오가 이미 있어요. 아니, 되려… 다른 누구에게 책임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좋고 싫고 그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


 엘리자베스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마왕의 본거지에 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위협이 있는 것인지는 당신도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포클리파에 돌입한 직후에 알비온의 은폐장을 켜놓고, 거대한 차원의 탑을 찾아서 모든 화력을 쏟아부으며 폭격을 한 후, 즉시 이탈할 겁니다. 마왕의 주의를 끄는 역할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녀가 말한 방법은,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선 제일 합리적인 방법이다. 클리파 차원의 침식을 일으키는 요인이 마왕들이 자신의 차원에서 설치했던 마탑이란 구조물을 들었을 때, 엘리자베스는 알비온의 기능을 사용하여 히트 앤 런 전술로 움직인다면 해결될 것이라고 발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레지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대로 관두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토론에서는 상대의 논리를 부정하질 못한다면 자신이 굳이 말을 한다는 의미도 없으니. 그녀로서도 그 방법이 최선이 아니라고 반박할 발상을 찾질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시원하게 그냥 인정했다.


 "아뇨, 당신의 방법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머지는 부디 운명의 여신이 우리에게 가혹한 장난을 치지 않기를 빌어야겠군요."

 "맥크레디 양, 당신은 그냥 가만히 앉아계시죠. 어차피 제가 마왕을 죽이건, 죽이지 못하건, 결국 목적은 달성할 거니까… 그래도 전 가아그셰블라를 제 손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죠."

 "……."


 그 자리에 앉았던 모두가 어렵게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턱수염을 쓰다듬던 라이언만은 눈을 감으면서 고민했다. '아가씨가 말씀하신 방법이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체 뭐지? 가슴의 울림이 멈추질 않아.'


 회의가 끝난 직후에, 베로니카는 허수아를 불러 무기고로 들어가서는 관리자가 직접 만들어준, 브루탈 모듈이 장착된 플라즈마 라이플을 점검해 보도록 부탁했다. 구석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던 모건하고, 모건에게 아이스 커피를 서빙하는 릴리, 의자에 앉아서 피곤한 표정을 짓는 리코리스와 로켓 런쳐를 다시 점검하는 라이언도 거기 있었다.


 "…이거, 총이 아니라 거의 컴퓨터 같아." 바이저에 '…….' 표시를 띄우면서 계속 살펴보던 허수아가 왠지 흥미롭단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러 부품을 보고있다가, 측면에 부착된 파란 스크린을 통해 점검을 마치곤 말했었다. "단순 에너지체 탄환들만 발포하는 것만 아닌, 플라즈마를 그냥 바로 방사할 수도 있어."


 "지난 번의 샷건도 그랬고… 주인님께선 저에게 대단한 선물을 주시는 것 같네요."

 "…이거, 게임도 할 수 있어."


 베로니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진짜요?"


 그러자 허수아는 눈웃음을 치며 부드럽고 차분한 어조로 부정했다. "아니, 농담… 혹시 마이크로 소프트의 엑셀에 깔린 이스터 에그처럼 무언가 숨겨진 데이터가 있는가 봤는데, 없는 것 같아."


 "음… 무기는 단순히 무기일 뿐이니까, 그 이상의 기능을 갖출 필요는 없겠죠."

 "그런가?"

 "수아 님이 쓰시는 장비와는 다르게 제 건 단지 총에 불과하니까요."


 허수아로부터 다시 플라즈마 라이플을 받아 살펴보는 베로니카.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라이언이 물었다. "흐으음… 그러고 보니, 코핀 사의 센트리봇들도 플라즈마 화기들을 장착한 것 같았습니다만?"


 그때 베로니카가 뭔가 말하려고 했었지만, 허수아가 대신 대답했다. "사실, 조금 달라. 그것들은 리조네이터를 장착시킨 소형 플라즈마 캐논으로 기체 내부 파츠에서 에너지를 공급 받아. 이건 소형 화기로서 에너지 셀 팩들을 소모하여 단기간에 높은 화력을 투사해."


 그러자 멍하니 있었던 리코리스가 물었다. "어… 뭐? 무슨 큰 차이라도 있어? 결국 플라즈마를 발사한다는 것은 똑같지 않아?" 그러자 모건의 옆에 서있던 릴리가 눈을 감고서 선생처럼 설교하듯 말했다. "한쪽은 유지력이 높고, 다른 한쪽은 소모형이라는 말입니다, 리코리스."


 "아니, 내가 바보로 보여? 나도 그 정도는 알아들었어." 얼굴을 붉히며 짜증난다는 듯이 릴리에게 대답하는 리코리스. 허수아는 헤드기어에 '( -_?) ?デ?一' 표시를 만들고서는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작전상의 운용목적에서 큰 차이가 있어. 베로니카의 라이플은 압축되진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시키는 물건으로서, 회사의 로봇들과는 다르게 물질반응을 안정시키는 스태빌라이저 파츠를 장착하지 않았어. 그래서 에너지 효율은 낮지만, 카트리지를 빠르게 소모하면서 낼 수 있는 순간화력은 그걸 상회해. 이건 설계부터 지구전이 아닌, 목표물을 빨리 파괴하고 바로 이탈하는 강습전을 고려하여 만들어졌어."


 의자를 거꾸로 들려서 등받이에 양팔을 올리고선 턱을 뉘이며 대충 듣고 있었던 리코리스가 말했다. "헤에, 자세하게 알고 있네." 솔직히 코핀 컴퍼니의 방어로봇에 특별한 관심도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배터리를 빠르게 소모하고 교체하여 가공할 화력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정도로서만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눈으로는 신문을 읽으며 귀로는 주위의 회화를 엿듣고 있었던 모건이 뭔가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허수아에게 말했다. "수아 양은 꽤나 자세히 알고 있군.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나 본데…. 어때, 내가 애용하는 이 녀석의 이름이 뭔지 맞춰볼 수 있겠나?" 그러면서 벽에 걸쳐놓은 총을 눈짓으로 힐끔거리며 가리켰다.


 "…몰라. 나, 총보다는 기계 쪽에 관심이 많아서. 게다가 그거 19세기 후반에 생산된 물건으로 보이는데… 진짜 매니아가 아니라면 짐작도 못할 걸."


 겉으로 보기도 그렇듯 허수아는 기계들의 구조 및 작동 같은 부분에 흥미가 많았고, 그냥 관리자의 센트리 봇들을 살펴보다 대충 그런 형태로서 작동한단 것을 이해했던 아마추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오래된 총기를 사모으며 캐비넷에 전시하는 리얼 컬렉터인 모건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가… 자네 말대로 그때 생산됬던 녀석이라 맞췄긴 했지만, 반절만인 정답이라 뭔가 안타깝군." 정말로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모건을 보고서 리코리스가 물었다.


 "뭐야? 아저씨, 또 담배 피려고?"

 "예아, 안될 거 뭐 있나."

 "금연하려고 해본 적은 있어?"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어."


 모건은 비싸 보이는 담배를 대충 품에서 꺼낸 뒤에 입에 물고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다. 한숨을 쉬는 리코리스와 허허 웃으면서 모건 경도 예전에는 끊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변호하는 라이언. 허수아는 플라즈마 라이플과 방사기의 모드를 바꿔놓는 방법을 베로니카에게 상세히 가르쳐 주었고, 베로니카는 마치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두의 모습을 릴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다른 조용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서 이마를 문지르던 로이는, 엘리자베스가 문을 두들기고 돌아오자 살짝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까 얘기 다 끝나지 않았나? 왜 또 귀찮게…."


 "……."


 리사는 말없이 자신의 옆에 앉았다. 나참,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을 보고 흉터를 깊게 쳐다보는 로이. 리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맥크레디 양도, 너도, 이 배에 타선 안 됬어. 지금이라도 내리게 한다면…."


 "아직도 그 얘기야?" 로이는 짜증난단 눈길로 흘겨보며 말했다. "게다가, 나는 또 왜?"


 리사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로이는 자길 걱정하는 말을 해주면 오히려 싫어했었다. 그러니까… 소꿉친구라서 알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정말로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나, 모두의 앞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절대로 이길 자신은 없어."

 "……."

 "내가 죽으면 이제 기관을 이끌 만한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너만큼은 코핀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던 거야. 설령 내가 죽더라도, 네가 남아서 수습을 할 수 있도록…."


 신성고대종인 오로치에게서 신성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더욱 깨우친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위협적인 다채로운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진짜 에델을 처치할 수 있을지 모른단 확신까지 얻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실패하고 죽어버릴 거다. 하지만 그것이 리사의 본심이었다.


 이 전투에서 죽건 말건, 펜드래건 가문의 수호자며 기관의 스승이었던 오래된 목소리의 복수를 하고 싶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짊어질 몫이지, 그것으로 기관의 존속이 불가하게 되는 결과가 있어선 안 되었다.


 그리고… 로이가 자기 아집에 의해 죽어버리게 할 순 없다.


 리사가 말했다. "도대체 왜 모르는 건데?! 난… 더이상 네가 나 때문에 다치는 걸 보기 싫다는 거야!"


 "……."

 "아직도 머리가 아프잖아, 나 때문에 계속 그렇게 견뎌왔잖아! 이제는-"


 "그 늙은이 용의 복수를 하러 가는 거잖아. 내가 빠질 순 없지. 거기다가…."


 로이가 흰 넥타이를 꽉 매면서 말했다. "우린 친구잖아."


 그것은, 예전에 엘리자베스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친구란…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주는 사람. 절대 배신하고 도망치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자신이 물러날 수는 없었다. 자신도 리사가 죽음을 각오한 걸 아는데, 혼자 도망치듯 뺄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로이의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을 잊었던 것인지.


 리사는 고개를 조용히 떨구었다. "맨날 그 얘기… 도대체, 너한텐 친구가 뭔데?"


 "……."


 로이는 피식 웃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머릴 쓰다듬곤 바로 방패를 쥐고 방 밖에 나갔다. 혼자 어두운 선실에 우두커니 남겨진 리사는 단지 죄책감에 슬픈 눈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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