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운터사이드 단편




[처녀보지 마구마구 쑤셔져서❤️ 인간 이하가 되어버려—-! 자지에 휘둘리는 오나홀이 된다구우웃❤️❤️이러면 시집 못 가아아앗❤️❤️]




이런 씨⋯!

갑자기 터져 나온 교성에 황급히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린다. 

좋아. 됐어. 닫았다. 제발. 제발⋯!




[시집? 등신아🎵 시집은 시인이 쓰는 거고❤️

자, 이제 처녀가 아니게 된 네 보지에 인사해야지?]


[흥긋—-! 우우웃—- 바이바이 내 예쁜 처녀보지야아아❤️]


[흐흐흐흐-----음---?!]


[——-뭣? 잠깐, 너 이 녀석—-! 큿—이 조임은—-! 너 설마—-! 처음이 아니었나——!]


[우후후훗❤️❤️ 쟈지 됴하——❤️ 구불구불 질 내에서 쿠퍼액 뷰릇뷰릇❤️❤️ 으으으응❤️ 섹스에서 도망치지 마❤️ 보지에 맞서 싸워❤️]





서둘러서 디스플레이를 닫았음에도 뭔가 잘못 된 것인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천박한 음성. 충전 중이던 코드를 뽑고, 강제로 전원을 내린 후에 두 눈을 감고 테이블 위로 머리를 박는다.


하아, 어처구니가 없다.

새 메일이 와 있길래 습관적으로 눌렀더니⋯ 이런 낚시성 음란 메일인 줄 알았다면⋯

평소라면 이런 건 자연스레 스팸으로 이동했을 건데. 뭐지? 여기 카페, 공용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그런 거야?


“⋯” 


테이블에 박다시피 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나를 쳐다보던 몇몇 사람들은 피식거리며 시선을 피하고, 젠틀하게 커피를 건네주던 마스터는 못 본 척을 하려는 듯 등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될 거 같았으면 출국한답시고, 미리 체크아웃하고 편집장에게 보고를 하는 게 아니었어.

되는 일이 없구만.


내 인생은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주저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는 걸 오늘 다시금 깨닫는다. 혓바닥 위에 남은 커피의 향이 기분 나빠서, 입천장 위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맛을 지우려고 하지만 소용없어서 포기한다.

그러던 와중 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에 다른 이들은 이미 흥미가 떨어졌는지 거둬지는 시선. 그제야 당황한 탓에 이마를 적신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고 닦아낸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출국을 위해 공항에 있었더라면 더 큰 일이 났었겠지. 

직전에 편집장과 대판 싸우고 출국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공항에서 난데없이 음란물을 보는 기자가 될 뻔했어.



“후우…”



공항의 오픈 테라스 카페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테이블 10개 남짓 들어갈 이 카페라서 다행이다. 다른 손님들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주는 모양이고.


후끈해진 이마를 손등으로 훔친 뒤에서야 뒷주머니에 넣어둔 손수건을 떠올린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손수건을 꺼낸다. 밝은 녹색 계열의 체크. 그 바탕 위에 흰토끼가 시가를 물고 있다. 마치 역전의 용사라도 되는 양 득의양양한 그 표정이 언밸런스함을 자아내서 어쩐지 귀엽다. 아니지, 그게 아니라---- 


“…”


나도 모르게 손수건으로 닦는 게 아까워져서 축축한 목뒤를 닦으려다 테이블에 있는 냅킨을 집어 든다. 

생각해보면 선물 받은 후로, 늘 가지고 다니지만 한 번도 이걸로 뭔가를 닦은 적은 없었다.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이 정도 역할이면 차고 넘친다. 그나저나⋯



“오늘 뭔 날인가…”



날이긴 했다. 고꾸라지는 날이었다. 샤레이드, 캄파멘토에서 이어져 여기 프론트 베이까지. 계속 신경 쓰였던 큰 건이 겨우 가닥이 잡혀서 그라운드 원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결국 이 꼴이다. 선물로 줄 사진조차도 몇 장 건지지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 결국 이 모양이다.



“후우우…”



깊게 내쉬면서, 프론트 베이의 습한 공기가 나랑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에어컨이 틀어진 카페 안이라도 느껴지는 습함. 향수를 뿌려도 지지않는 땀과 그 짠 내. 스멀스멀 기어드는 듯한 기후는 흡사 열대를 방불케 한다. 본래는 열대기후가 아니었겠지만, 대정화 전쟁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으니. 손등으로 훔친 이마의 땀이 채 식기도 전에, 턱 아래를 기는 이질감.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뒷주머니로 향한다. 볼록 튀어나온 청바지의 까끌까끌한 촉감 뒤로 부드러운 천 뭉치가 만드는 포근함. 그 감촉에 정신을 차리고, 테이블 위에 구겨진 냅킨을 다시 집어 든다. 턱 아래를 훔친 뒤에서야 겨우 결심이 섰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질러 놨으니 알아서들 하라지. 


내가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아.

편집장 그 자식은.


‘팩트체크도 안 된 걸로 무슨 기사야? 내가 확인할 때까지 사고 치면 너 진짜 모가지야. 알아들어? 모가지라고!’

라고 했던 그 대머리 말이다.

팩트체크는 무슨 팩트 체크야. 


교차검증하기 위해서 합중국에 자기네들이 꽁꽁 싸맨 기밀을 물어보면 퍽이나 좋다고

‘예 그거 맞습니다. 저희가 국민들 속이려고 가짜 뉴스 내보냈습니다~’라고 하겠다.


의도적으로 숨긴 진실을 밝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 검증은 필요 없다. 의혹이 제기되고 난 후에 얼마든지 알아서 해줄 건데. 그러니 부인한테 황혼이혼이니 뭐니 당하고 사는 거야. 대머리. 아니, 나도 남 말을 할 처지는 아닌가⋯


아무튼, 이쪽도 계속해서 종군을 시켜주니까 그럴만한 커넥션이 있으니까 붙어있던 것 뿐이야. 이제 와서 크게 연연할 필요도 없어.



“잘 마셨습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불어닥치는 열기와 짠한 내음. 강렬한 햇빛에 눈이 살짝 먹먹해지고, 흘러내린 땀방울들이 마치 바람이 불어 다시 타는 불씨처럼 끈적인다. 이제 어떻게 한다. 그라운드 원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지체되었지만, 결국은 돌아가야 한다. 곧 생일이기도 하고.


내리쬐는 햇살과 스멀스멀 기어드는 습도에 벌써 젖기 시작한 턱 아래를 다시 한번 훔친다. 보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호텔로 가자. 거기서 반나절이라도 묵고, 다음 그라운드 원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자. 샤워하고, 씻은 뒤에 체크 아웃 직전에 보내버리면 된다. 그렇게 하자.


그럼 가장 가까운 호텔이⋯


인도 안쪽으로 물러나서 휴대용 단말을 꺼낸다. 선명하게 부서지는 햇살을 가리는 어닝. 그 아래로 숨어들자,

눈 바깥쪽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같은 태양일 텐데 프론트 베이는 유독 강렬하다. 두 눈을 꾹 하고 감고, 안경 아래의 안구를 살짝씩 눌러본다. 고양이가 꾹꾹 하고 누르듯이 두세 번 반복한 뒤에 눈을 뜬다.

그런 뒤에 휴대용 단말을 바라보니 그 전보다는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디 보자. 전 일 내가 묵었던 곳은 멀고, 여기가 공항에서도 가깝고 괜찮겠군.


“후우⋯ 가볼까.”


그렇게 멀지는 않다. 도보로 3km. 이 날씨 아래에서 걷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중간중간 햇살을 피해 휴식을 취하면 금세 도착하겠지. 이거 참, 벌써 겨드랑이가 젖어오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빨래를 돌려야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만신창이가 되어서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건 거부감이 없지만, 냄새는 또 다른 문제라서⋯



“⋯음?”



길가에 멈춰 선 검은색 밴이 보인다. 열린 조수석에 걸린 손. 검은색 재킷, 새하얀 셔츠 소매. 그리고 접혀있는 사이드미러. 


뭔가 이상하다. 이 날씨에? 게다가⋯


밴 앞에 서 있는 앰뷸런스가 더 이상해. 녹색등은 돌아가고 있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는다. 출동 중이 아니라면 등을 꺼놓는 게 정상일 텐데.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나는 그대로 뒷걸음을 쳐 골목으로 들어선다. 대로를 걷는 건 위험해. 이건 감이다. 군인은 아니지만, 온갖 곳을 누비며 취재했었던 내 감이 말해주고 있다. 


프론트 베이의 용병들끼리의 항쟁인가? 그러고 보니 최근 프론트 베이 샤크스인가 해서 방벽 건축제에 사고가 났던 거 같기도 하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일단은 우회해서 호텔로⋯


“엇⋯”


골목에 들어서자, 키가 늘씬한 여자 하나가 서 있다. 어깨 위로 늘어지는 새빨간 머리칼. 짜증 난다는 것처럼 가늘게 뜬 녹색 눈동자. 빈말로도 치안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골목. 그 입구에 서 있기에는 너무 깔끔한 외형에 발걸음이 멎는다.


“⋯당신⋯”


마치 맞춰 입은 것처럼 아까 그 밴에 타고 있던 정장과 같은 블랙 앤 화이트. 뒤늦게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순간.



“하아⋯애먹이고 있어⋯”



손이 뻗어지고, 순식간에 모든 게 끊긴다.

마치 전원 플래그를 뽑은 모니터처럼 암흑으로 돌아간다.





















원제

울지 않는 꾀꼬리

















남자는 슬며시 눈을 뜬다.

그와 동시에 그를 덮치는 것은 어둠.

한 없이 검은 풍경. 동시에 반사되어 나오는 축축한 호흡. 베개 없이 쪽방에서 잠을 자기라도 한 걸까, 사정없이 아려오는 목 근육과 뭉친 어깨. 동시에 손 아래가 그다지 감각이 없음을 느낀다. 당황해서 침을 삼키려고 하자, 뭔가 걸리는 이 느낌. 


물이 흐르는 호스 입구를 꾸욱하고 눌러 수압으로 쏠 때처럼 걸리는 이 이물감. 동시에 가빠진 심장이 거칠게 코로 내뱉은 숨이 금새 안면을 적시는 감각.


과거에도 이런 적은 몇 번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의 직업,


종군기자.


군대를 따라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 관리실패 이후 줄어들 것이라고 보았던 국가와 국가, 세력과 세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탓에 종종 이런 일에 휘말린다. 의무병과 함께 국제법상 그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위법이지만, 그 국제법의 손을 들어 줄 주권자가 뒤바뀐 현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낡아빠진 관습에 불과하다. 국제 협약기구가 멀쩡히 존재할 때도 암암리에 묵인되어 왔으니, 지금이라고, 그라고 해서 멀쩡할 리는 없다.


국가와 국가, 정부군과 반란군, 테러리스트, 혹은 침식체 사냥을 위한 장비 테스트에 훼방을 놓는 적대 기업의 용병 등.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생활에서 비일비재하던 것이다. 이미 몇차례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슴이 뛰고 만다. 익숙하다고 해도 완전히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남자는 한숨을 쉰 뒤 상황을 정리한다.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 어깨의 가동 범위로 보아 팔을 뒤로한 채 묶여있다. 동시에 저려서 감각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만져지는 오른손과 왼손. 완전히 잃지는 않은 평행감각. 의자 뒤로 손이 묶이고, 다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축축하고 뜨거운 숨이 내뱉을 때마다 코와 수염을 적시는 것을 봐서, 두터운 가죽 같은 것으로 둘러싼 후 목에다 묶은 것이다.


조잡한 구류. 정식 기관이라면 제대로 된 수갑을 찰 것이고, 또한 얼굴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나, 광신도 집합이라고 하기엔 굳이 얼굴까지 가리지는 않는다. 그 들이 정보를 쥔 기자를 납치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 대개는 자기과시. 민중의 대표든 혹은 신의 부름이든, 정당성을 과시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대표자의 얼굴을 구태여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얼굴을 가렸다.

어설프다. 그런 와중에 납치 해오는 과정 자체는 굉장히 프로페셔널 했다고 남자는 추측한다. 미리 대기해 놓은 앰뷸런스와 얼핏 보아 느슨해 보였지만 완전히 골목 사이사이를 채운 요원들.


‘가만... 요원들?’


남자의 추리가 어두운 방 안을 더듬거리기 시작할 때, 끼이익하고 철제문이 운다. 비명을 지르며 우는 소리에 또각또각. 신발은 세 개. 바닥을 때리는 구두 소리는 두 개. 하나는 찹찹하고 고무 밑창이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다.


“하⋯멋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합니까?”


“뭐래, 잡으라고 한 건 니네 아줌마거든?”



남성. 아직 앳된 남성의 목소리가 먼저 들어선다. 

그 뒤로 신경질적인 여성의 목소리. 둘 다 그리 들어 보이지 않는 나이. 붙잡힌 남자는 혼란에 빠진다. 남자를 납치할 우선순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는 일단 멀어졌다.


‘용병인가?’


프론트 베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남자 같은 기자를 납치해 봤자, 보도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연결된 군납 기업도 없다. 그런 남자를 향해 목소리와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소통할 수 있게 준비해주렴이 왜 납치가 되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아휴, 이 답답이가. 너네 그 잘난 정보부가 못 잡아내니까 내가 찾은 거 아냐?”


“그러니까 그 정보부까지 왜 멋대로 움직였느냐고 묻는 겁니다. 당신은 어디까지나⋯”



“나라고 뭐~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새벽에 게임하고 있는데 떡하고 공용 네트워크에 걸리는 걸 어쩌라고? 너네는 다 자러 갔지. 급한 대로 현지 정보부에 연락한 게 뭐가 문제라고.”



“아아아, 그래서 뭐야. 너희들. 지금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야?”


그전까지 발자국 외에는 소리를 내지 않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에게는 낯이 익다. 단번에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목소리를 명백히 성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어딘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


“미안한데, 나는 본업도, 위장도 휴가라서 모처럼 편하게 지내다가 급하게 호출받고 와서 얼마나 짜증인데, 그래서 뭐야? 뒤처리 우리가 해?”



남자는 깨닫는다. 그 여자다. 그 빨간 머리 여자.

자신을 납치하려고 골목길에 정장 입은 채 대기하던 여자. 


“아뇨, 실례했습니다. 정보부 요원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부 이 냄새 나는 여자에게⋯”


남자는 흠칫하고 놀란다. 이 허술한 감금. 어설픈 대화. 남자에게 들리고 있는데도 태연스레 나오는 ‘정보부’라는 단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어린애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납치한 사람이 뻔히 들리는 곳에서 저런 대화를? 그것도 명색이 ‘정보부’와 그 정보부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 부서 직원이? 동시에 앳된 목소리⋯


남자는 이마와 뺨을 흐르는 땀, 동시에 가빠진 호흡이 만들어내는 습기를 닦아 내고 싶어 오른팔을 들썩이다 그만둔다. 


‘침착하자. 이것 자체가 작전일 수도 있어.’


뭐가 되었든 사전 정보만으로 추측을 사실로써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작은 사실들로 엮여 거대한 가짜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남자는 신중히 호흡은 가다듬는다.


“야! 누구더라 냄새난대?! 누군 꼭두새벽부터 날아왔더니. 자긴 뭐 다 씻고 깔끔하게 나타나서 뭐? 카이----”


“그만하시죠. 캣. 본명을 부르다니 무슨 어리석은 짓이십니까.”


“웁웁웁----”


발소리가 다급하게 춤을 추더니, 여자의 입이 틀어 막힌다. 그 것을 지켜보던 빨간 머리 여자는 하아, 하고 가볍게 한 숨을 내쉰 뒤 입을 연다.


“하아, 그래서? 빨리 뭐든 하라고. 이쪽은 모처럼의 휴가가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거든?”


“실례했습니다. 심문은 제가 하죠. 추한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웁웁웁---!”


팡팡, 하고 옷 위를 치는 소리. 팔꿈치 같은 걸로 가슴 아래를 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미동이 없다. 


“그럼, 나 믿고 가도 되는 거지?”



남자는 상황을 다시 정리한다.

자신을 붙잡은 것은 ‘정보부’라는 저 빨간 머리 여자들이다. 사실 정보부인지 아닌지조차 확증이 없지만, 일단은 차치해두고, 중요한 것은 ‘정보부’측에서 자신을 붙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백히 타 부서의 어린 남녀의 요청에 의한 것.

그러니 어떻게 보면 남자가 쥔 무언가를 토해내는 작업. 즉 심문을 맡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 깐깐한 정보부가 타 부서한테 요청을 받았다고 이렇게 설렁설렁 제일 중요한 심문 과정을 넘길 리가 없다. 이건 명백히 이상한 상황이다. 억양과 행동거지, 그리고 감금 자체는 조잡한데, 체포 자체는 체계적이고 깔끔했던 것을 보아 남자는 이들이 어디의 ‘정보부’임을 잠정 짓는다.


그때였다. 또각, 또각. 명백히 앞의 세 명과는 다른 중압감을 가진 구둣발 소리. 


“아니, 미안하지만 여긴 내가 맡아겠군.”


중년 남성의 목소리. 낮으면서도, 정확했다. 그 만듦새가 오히려 의문점을 가지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와 발소리였다. 예를 들면, 티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깔끔한 방에서 느끼는 그 비 생활감과 같은 이질감. 


이질감을 살짝 죽이기 위해 때가 탄 커튼을 단 것 같은 불협이 남자의 가죽 안을 채운다.


남자는 눈을 감는다.

이제서야 진짜가 왔다는 느낌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의욕만 넘치는 광신도도, 어설픈 테러리스트도 제1문제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어떤 것이 폭발 스위치인지 모르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목소리와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저 남자는 다르다.


다분히 ‘신사적’임을 연출하고 있다. 실제 판단은 냉철히, 거리낌 없이 죽일지라도 일단 테이블 자체에 앉는 것에 있어서는 ‘신사적’일 것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안도할 수 있다.


그러니 남자는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당신은⋯”


“웁웁웁---”


“반갑네. 전에 화상이지만 본 적이 있지?”


“네, 물론입니다. 경례를 드리고 싶지만, 소리 때문에 여의치 않은 점을 양해 바랍니다.”


“아, 물론. 나도 충분히 이해하지. 그러니 자네도 심문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겠나?”


“이 봐⋯ 당신 뭐야? 당신이 올 거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하하, 이보게. 자네. 

 우리 둘 사이라면 상관없지만, 여기는 다른 곳의 사람들도 계시잖나?

 그러니 존대라도⋯”


“웃기고 있네. 날 그 미친 페티시 약쟁이들 소굴로 집어넣은 주제에 뭐? 지금까지 그 하녀 일 하면서 고생하는 게⋯”


“아아아~ okok 알았으니. 우선 심문 대기실로 가게. 어떤가? 자네들도?”


“네, 그렇게 하죠.”


“웁웁웁-----!”


“자, 가시죠. 캣.”



길었던 서론이 끝나고,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알리는 남자의 허기침. 크흠, 하고 공간을 채운 뒤에 철문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고서는 중앙에 빛 하나만이 있는 방 안에 들어선다. 선글라스를 쓸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남자는 고쳐서 쓴 뒤, 저벅저벅. 의자에 묶인 남자를 지나쳐 정면의 자리에 앉는다.






/







“반갑네. 아니,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


선글라스를 쓴 남자의 말에 가죽을 뒤집어쓴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흠, 하고 선글라스의 남자는 테이블 위의 서류뭉치를 집어 든다.


필요한 정보는 여기로 오는 도중에 전부 전달받았다. 그런데도 구태여, 아날로그로 준비해 둔 것을 보며 대기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쓸데없는 배려심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들어 올린 뒤에 입을 연다.


“이런, 정신을 차렸다고 들었네만.

 약효가 덜 가셨나?

 이보게. 한스⋯ 아니, 한생웬이라고⋯”


“한스면 된다. 어차피 발음도 제대로 못 하잖아.

 그러라고 만든 닉네임이야.

 그보다 원하는 게 뭐지?”



붙잡힌 한스의 당당한 태도에 끼이익하고, 철제 의자가 운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다리를 꼬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슬며시 띄우는 웃음.


“⋯신기하군.”


“보고 받기로는 그냥 종군 기자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자네는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묻지 않는군그래.


 “원하는 거⋯그렇지, 우리는 자네가 가진 그 진실에 대해서 협상하고 싶어서 여기에 모셨다네.”


“모셔? 협상? 사람을 납치해서 묶어 놓은 놈들이 말 한번 잘하네.”


“하하하, 그렇지. 실례라는 건 잘 알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까⋯”


한스는 침을 삼킨다. 식도를 누르는 끈 때문에 목젖이 크게 움직인다. 급박한 상황. 한스의 안에서 조각들이 맞춰진다. 최근에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라면 공항에서 전화로 다툰 일밖에 없다.


남자는 ‘망할 대머리’하고 삼킨 후에 입을 연다.


“당신 실수 했구만.”


“그래.”


끼이익하고, 우는 철제 의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웃음을 띠며 탁, 하고 서류 더미를 테이블 위에 내던진다.


“합중국인가.”


“그렇지.”


급박한 무언가는 편집장과 이야기한 것 외에는 없다. 그것과 관련된 것은 합중국, 자세히는 군. 그럼 자연스레 정보부도 움직이겠지. 하지만 대처가 너무 빠르다. 공항에서 남자가 편집장과 다투고 나서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한스는 납치되어 여기에 있다. 


그 점이 한스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신경 쓰인다.


흘린 것은 그 대머리인가? 아니지. 아니야.


편집장에게 그럴만한 재주와 깡이 있었다면 진작에 이 커다란 진실을 들고 협상 테이블에 올랐겠지. 그러면 한스가 납치될 가능성도 없었을 것이다.


즉, 편집장을 통해서 흘러나간 것이 아니라 군 자체적으로 조사했다는 결론이 된다. 한스에게는 더더욱 의문점으로 다가오는 결론.


“⋯왜 그러는 거지?”


“뭐가 말인가.”


“아까 어린애들이랑 하는 이야기로 미루어봐서, 상당히 높은 지위야 당신.”


“이런 들렸나 보군.”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그것이 오히려 노림수였다는 듯 훗, 하고 코웃음을 섞는다.


“그런 사람이, 몸소 심문하러 나왔다는 것도 웃기고. 이렇게 내가 얼굴을 가린 것도 이상해.”


흐음, 하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오른손의 검지를 구부려 콧대를 쓱쓱 문지른다. 그 때문에 살짝 들어 올려진 선글라스 아래의 녹색 눈동자가 가끔 백열등을 맞이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용병 나부랭이들이랑 같이 보면 곤란하지. 자기과시에 넘쳐서 보여져도 상관없다는 놈들은 일로써 심문하지 않고, 자신들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움직이지. 이렇게 공사 사가 분리가 되어있지 않은 위험한 놈들이지.


반면, 이쪽은 이렇게 보여도 일이 끝나면 평범한 일개 시민이야.


그렇지. 예를 들면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오므라이스를 시켜서 느긋한 한때를 보내는 그런 민간인. 신이니, 영달이니,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기에, 광신하지 않기에, 오히려 가릴 필요가 있지. 안 그런가?”


“⋯달변이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정보부 요원보다는 야바위꾼에 더 소질이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 어중간하게 실력이 좋으면, 이런 법이지. 이게 참 어려워. 그거 아나? 내가 이렇게 심문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건 초임 때 이후로 처음이라네. 현장을 벗어난 지 한참 되나 싶더니, 또 현장이고, 그러다가 또 데스크. 참 일이라는 건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 하하”


“⋯”


한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남자의 여유는 전부 허세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들이 아니다. 그래, 신을 믿는 광신도. 자기네들이 정의라고 믿는 테러리스트들처럼 자연스럽게 베여든 화술이 아니다.

교육으로 만들어진 화술. 스몰 토크로 조금씩 자신이 가진, 공개해도 상관없는 정보를 흘리며 한스에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은근슬쩍 익숙하지 않음을 어필하며, 한스의 심리적 방벽을 조금씩 허무는 화법.


프로페셔널이라고 해도 좋다. 아마 그 점을 위해서 처음에 어리숙한 셋의 실수를 부추기거나 혹은 방치했을 확률이 높다. 그들의 실수가 자신의 이 안정감과 여유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한는 여태껏 많은 이들에게 붙잡혀왔으나, 이런 상대는 처음이다. 그야말로 정통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칼을 쥔 건 상대방. 하지만, 구슬리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칼을 쥔 채로 너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고 배려하고 있다. 칼을 쥔 채로.


“⋯원하는 게 뭐지?”


“자네라면 이미 알았을 테니 않나?”


‘그래. 도미---’


아니. 한스는 지운다.

이 정도로 신중한 상대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는 자신,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의 원래 담당자가 아니다. 한스는 빨간 머리의 여자가 내뱉었던 말을 기억해낸다. 


그러니 아직 패를 내보이는 건 이르다고 판단하에 입을 연다.


“글쎄, 내가 생각하는 걸 여기서 내뱉었다가 당신들의 유도신문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보증이 있나?”


남자는 떠오른 생각을 필사적으로 지우고, 한 번 숨을 쉰다. 가죽 위를 덮은 끈에 죄여 드는 목.


“⋯ 예리하군. 자네 정말 일개 기자인가?”


“전선에 나가보면 알겠지. 일개 기자가 전선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훈장교 급으로 치부하며 아무렇지 않게 여긴 정보부는⋯”


“그렇군. 그렇지. 하지만, 하나 알아줬으면 하네. 우리도 늘 현장에 있다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지. 한스.”





“그 정보를, 자네가 쥔 그 진실을 공개하지 말아줬음 하네.”


“뭔지도 모르는데?”


“그래. 자네가 말하지 않기로 했으니 나도 입에 올리지는 않도록 하지.”


“다만, 그 진실은 아직 일러. 이르기에 우리도 숨기려고 하는 것이고.”





“이르다라⋯ 감추고 싶어 하는 쪽은 늘 그렇게 말하지.”


“흠, 그렇지. 그냥 바라는 바만 말해서는 협상이 되질 못하지. 그 엠바고를 지켜준다면 공표의 우선권은 당신에게 주도록⋯”


“개소리하고 있네.”


“⋯”


남자의 말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끼이익하고, 우는 의자와 테이블 위에 더해지는 무게.


“기자 생활하면서 그딴 엠바고 협약을 빙자한 개수작에 몇 번이나 물 먹을 것 같아?

 애초에 당신들 제안에는 제일 중요한 게 빠져있어.”


한스의 말에 선글라스 아래의 입이 먼저 움직인다.


“⋯그렇지. 당신이 쥔 진실이 공개되기에 이르다는 확증.”


“그리고 내가 약속을 지킬 거라는 확증.”


“⋯”


묘한 정적이 흐르고, 지이이잉하고 두 남자 사이의 백열등이 운다. 화이트 노이즈가 울며, 그 둘의 시간을 새기듯이 1초.


“물론 나도 얼굴을 보여주면서, 자네 두 손을 풀고, 그 양손을 꽉 쥐면서 믿음을 전달하고 싶네만⋯”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비밀이 너무 거대하지 않나.”


‘거대하다라⋯’ 한스는 확답을 내린다. 정보부, 이 요원이 바라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드디어 확신을 가진다. 거대하다. 확실히 거대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붙잡힐 이유는 안 된다.


“글쎄다. 무슨 비밀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하다는 건 잘 모르겠군.”


“음?”


“그게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큰일 날 건 없다는 말이야.”


“어째서지?”


선글라스를 고치며, 남자는 허리를 편다. 철제 의자가 울고 한스는 축축한 가죽 안에서 거센 콧김을 뿜은 뒤 입을 연다.


“물론 다소의 혼란은 있겠지. 하지만 지금, 현 상황에 제대로 된 국가체계를 갖춘 건 합중국 외에는 없어. 그 합중국, 그리고 그 군대가 사라지는 걸 상상이라도 할 수 있나?”


“⋯못하지, 그러니 나와 자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


“그러니 큰 문제는 아니란 말이지. 이게 밝혀지더라도 국민은 여전히 나라가 필요하고, 군대가 필요하지. 둘 중 하나야. 뼈대는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사람 몇몇이 바뀌거나, 혹은 덧칠한 뼈대로 새롭게 만들었다고 기만하거나.”


한스의 말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테이블 위로 팔꿈치를 올린다. 그러면서 읏차, 하고 철제 의자를 끌어 바싹 붙은 뒤에 한스를 바라본다. 


“어차피 합중국과 군은 무너질 일이 없고, 다소 위신의 흠집은 있을지언정 큰 문제는 아니다?”


“그래 밝혀진다 해도 오래가지 않는 혼란이 있겠지. 그거야 침식 재해나 용병들이 몇 번 날뛰면 자연스레 군과 정부를 부르짖으며⋯”


“⋯”


“그 혼란 속에서 죽어 나가는 건 자네와 같은 민간인일 텐데?”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에 크흐음, 하고 헛기침을 삼킨다. 지금, 미묘하게 온도가 변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신기한 남자다.

아까까지는 신중하게 떠보는 것 같더니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딘가 익숙한 상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반정부 세력, 혹은 테러리스트, 혹은 광신도들.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신념.


남자는 음, 하고 한스를 바라본다.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치, 체스 게임에서 모처럼 만난 호적수인가 싶었더니 중간부터 자멸해서 그 밑바닥을 보이는 어린아이 같다.


“그 죄 없는 민간인을 실험대에 올린 테러리스트를 영웅으로 만들어 숨기는 당신들보다는 낫지.”


“⋯흥분했군 자네.”


한스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사우나다. 얼굴을 덮은 가죽 안은 끓고 있는 뚜겅 닫힌 냄비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그러고 싶었다. 한스는 오른 손가락으로 그의 뒷주머니를 살짝 누른다.


“흥분? 안 하겠나? 왜 사실대로 공표하지 않지?

 그 자식은 테러리스트다! 전 인류를 상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테러리스트야!”


“자네, 뭔가를 투영하고 있나? 아까까지 감추던 진실에 대해서⋯”


“무고한 여자애들을 잡아다 인체 실험을 하고, 세뇌해서 그 아이들을 테러의 주전력으로 써먹었지.

어쩌면 그 아이들은 자기 아비와 어미에게도 총을 겨눴을 거야. 그래도 영웅인가? 대의 아래 희생되는 소수가 당연히 발생한다지만, 그런 식으로 써먹고도 영웅인가?!”


“나 또한 그 사람을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악인이라는 건 잘 안다네. 하지만 그 사실이 가져오는 혼란은 어떻게 감당할 건가?”


“그건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진실 앞에서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고뇌해서 내려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란 말이다!”


“누군가 한 두 명이 멋대로 감추고,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결론에 왜 우리 모두가 휘둘려야 한단 말이냐

너희들이⋯ 도미닉 준장이 올바르다면 이렇게 사람을 잡았다 말할 필요도 없지. 진정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혼자서 몰래몰래 자기들끼리 전부 꾸민 뒤에 뒷감당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잖나.”


“자신이 당당하고, 올바르다고 믿는다면 모두에게 나서서 설득하고, 그렇게 될 때까지 협조를 구하지 않는거지? 왜?!”


“너희들도 아직 이를 뿐이라고 생각하면 왜 나를 이런 식으로 붙잡아서 심문하는 거지?”


“⋯”



남자는 한스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정의한다.

이건 신념이 아니다. 무언가 뒤틀렸다.



“내가 말해볼까? 그야 자기네들이 생각한 방법이, 목적이, 수단이, 남들 앞에서 내보일만한 게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구는 거야.


스스로가 이미 옳지 않다고 알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너네들은. 도미닉 킹 레지날드... 아니! 리플레이서 그 개자식들도!”



“당당하다면, 앞에 나와서 직접 하라고?”



“그래. 숨길 필요가 뭐 있어?”


“그건 옳기만 한 논리일세. 한스.

 옳다면 백주 대낮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사형수를 교살하라는 말과 똑같아.”


남자는 결론을 내리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후우, 하고 두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가진 뒤에 다시 입을 연다.


“그리고, 자네가 그렇게나 저널리즘에 투철한 사람인 줄은 몰랐군.”


“저널리스트한테 저널리즘을 묻는 건 넌센스라고 생각하지 않나 누군지 모를 요원.”


한스의 말에 남자는 벗어 둔 선글라스를 다시금 쓴다. 눈앞에서 선명하게 때리고 있던 백열등의 불빛이 잦아든다.


“하나만 묻지. 한스.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자네한테 무슨 득이 있지? 아, 이건 저널리즘에 관한 질문이 아니야. 직업 관념을 떠나서, 무언가 물질적인 혹은 정신적인 득실이 있냐고 묻는걸세.”


“⋯”


한스는 멈춘다. 아직 뜨겁다. 가죽 안은 마치 달아오른 수조. 숨조차 이제 버겁다. 그걸 식히듯이 남자의 말이 파고든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원하던 바다. 그러니 입을 연다.


“적어도, 딸아이한테 부끄럽지는 않겠지.”


“그래. 그랬군. 딸이 있었나⋯”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끼이익, 하고 밀려나던 철제 의자는 어딘가 잘못되었는지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테이블이 작게 흔들리고 그 소리는 가죽을 뒤집어쓴 한스에게도 들린다.

그다음의 철컥하는 소리도.




“결정하게 한스. 딸아이와 함께하는 아버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아버지가 될 것 인가.”


“⋯결국 실력행사로 나오는 거군⋯”


“그럼, 일이니까. 안 될 거 같으면 매뉴얼대로 해야지. 나도 일개 시민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척, 하고 가죽 위로 닿는 철의 감각. 무겁지는 않지만 차가운 감촉과 무게. 한스는 알고 있다. 몇 번이고 겨눠진 적이 있다. 열탕 속에서 가빠진 호흡만이 귀를 때리고, 눈을 떠봐도 온통 암흑.


한스는 가까스로 침을 삼킨다.

목을 옥죄는 끈 때문에 침이 아니라 칼날을 삼키는 것 같은 착각.






“엠바고⋯지켜 주는 건가?”


“물론이지. 자네가 약속을 지켜준다면 때가 되었을 때 연락하도록 하지. 그전까지는 우린 공범이니 걱정할 건 없어. 실제로 여길 무사히 빠져나간 후에도 칼자루는 자네가 쥐고 있지 않나? 물론 후폭풍은 자네가 감당해야겠지만.”


“⋯”


“⋯”




적막. 긴 적막이 짧게 흐른다. 한스의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리듬 아닌 리듬을 짜고, 그 위로 백열등의 화이트 노이즈가 지이이잉. 한스의 머리 위에는 미묘하지만, 확실한 철의 차가움. 가죽 아래는 이렇게 달아오르는데, 더더욱 온도를 올려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는 총알.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말 없이, 아주 약간씩 한스의 머리를 조금씩 누른다. 


칼자루는 상황이 쥐여주는 것인가. 총을 쥐고 있는 남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총구를 들이민 것은 남자다. 하지만, 결국 여기에서 한스가 빠져나가면 총구을 쥔 것은 한스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믿고 보내줄 의리는 없다.

그게 맞다. 한스는 불씨다. 하지만⋯







“비행기를 준비해 줘. 그라운드 원행으로.”


“그러지. 협력 감사하네. 한스.”







남자가 손짓하자, 철문이 운다. 비명을 지르며 우는 철문 바깥에서 구두 소리가 한스를 덮친다. 몇이나 되는 발자국이 한스를 풀고, 그대로 연행해서 사라진다. 그리고 몇 개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선글라스를 쓴 남자에게로 다가온다.


“뭐래? 협력해준대?”


“음, 물론이지.”


“뭐야, 이렇게 고분고분할 거면 그냥 처음부터 총으로 위협했으면⋯”


“아니⋯”


남자는 쓴웃음과 함께 턱을 닦는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사내야. 이것 참⋯처녀인 줄 알았더니 색정광이었⋯으악!”


“무슨 성희롱 발언이야. 수염이나 깎아 선글라스.”


빨간 머리 여자가 옆구리를 톡하고 치자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진다. 건장한 성인 남성을 단번에 제압하는 그 모습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부하직원의 가벼운 하극상에 의문을 가질 뿐.


“아무튼, 나 진짜 휴가니까 한 번 더 불러내면 메이드고 뭐고 없어? 알아?”


“으⋯ 으으윽⋯”


또각또각하고 멀어지는 발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키는 선글라스 남자. 남자는 ‘휴우’하고 한숨을 내뱉은 뒤에 자주 가던 카페의 오므라이스를 떠올리고선 일어선다. 일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일개 시민의 시간이다.


그나저나 행선지가 겹치는 게 신경 쓰이니, 다른 시간대로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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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빠 무사히 도착했어. 응. 지금 공항. 어어어, 물론이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그래, 응. 잘하고. 다녀와서 봐. 선물⋯? 흐흐흐, 그건 기대하고 있어. 알았⋯”


멈추어 선다. 공항 출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하나. 거기에 선 중년 여성이 새빨간 조끼를 입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용케 공항 측에서 허락해줬구나. 함과 동시에 나는 오른쪽 어깨를 들어 단말을 뺨과 고정한 뒤 지갑을 꺼낸다.


이런 상황이지만,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다.

중년 여성 뒤에서 팸플릿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젊은 여자와 남자가 보인다.


관리실패 이후 급격히 발생한 원인 모를 병들. 침식증후군, 혹은 그에 따른 합병증, 기도 변이질환, 근무기력증, 정신착란, 신체변이질환 등.


그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기부하는 재단.

원인 모를 병증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그건 나도 잘 안다. 그렇기에



딱히 선인은 아니지만, 지갑에서 가지고 있던 지폐를 전부 꺼내어 기부함에 넣는다. 요즘 시대에 지폐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전자화폐가 토용 되는 시대에 아날로그 기부함이라니. 다른 나라의 화폐가 섞여 있긴 하지만 알아서 잘 환전하겠지.


그런 뒤에 다시 전화기를 손으로 든다.



“미안, 잠시 뭣 좀 하느라. 그래. 응.

 알겠어. 학교 잘 다녀오고, 갔다 와서 보자”



“소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