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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난 이후로 치룬 첫번째 전투가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다.
물론 그 전투 이후 부상이 너무 심했던 탓에 완전히 기절해버렸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랑 같이 갔던 1종들이 날 데리고 와준 것인지 내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저승이 아니라 이제는 익숙한 둥지의 모습이었다.
아직 이수연과의 싸움에서 혹사당한 전신이 욱신거리긴하지만 그래도 모가지가 몸에 붙어있기에 차차 고통이 나아질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이었다.
이번에 치룬 사투에서 내가 나름 강하다는 것도 깨달아서 이제는 다른 네임드 4종들처럼 이야기에서 광탈하지는 않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던 덕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돋아난 갑피를 툭툭 두드려보면서 나름 익숙해졌기에 혐오감이 좀 줄어든 촉수 투성이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어났구나. 동생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파란 대가리를 들이밀며 내 형이라는 4종 침식체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몸은 좀 괜찮은거냐?}
"눈에 보이는 데로야. 눈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전투가 끝난 직후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던 나랑은 다르게 아무리 봐도 멀쩡한 외관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난 혹시 내가 막내라고 나한테 어려운 임무를 짬처리한건가 싶어서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눈알이야 있지. 이건 엄연히 투구거든. 물론 이번 전투에서는 진짜로 눈알이 빠질 뻔했지만.}
다만 그는 그런 내 목소리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며 내 옆에 착석했고 나보다 4배 정도는 큰 그의 신장에 의해 누워있던 자리가 좁게 느껴진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론 저정도의 덩치가 4종 침식체의 평균이겠지. 인간형인 리플레이서 킹이나 아포리아 같은 케이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만큼 작은 4종은 드물테니까.
'그래도 진짜 더럽게 크네. 그냥 한손으로도 나정도는 들겠는데?'
그리고 다시보니 저정도 덩치면 내 몸을 한손으로 감싸버리거나 으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난 틱틱거리는 태도를 그만뒀고 그는 거대한 손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하루종일 기절해있어서 배고플거 같기에 뭐라도 좀 가져왔다.}
-꼬르륵...
"그런거 같네...생각보다 재생에 힘이 많이 쓰이나봐."
{어머니가 널 만드실 때, 심혈을 기울이셨으니 아마 몸에 여러 기능이 있을 것이고 그 탓에 에너지 소모가 큰거겠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배꼽시계에 난 그에게서 TMI를 들으며 그?릇?에 담긴 것을 받아서 내용물을 확인했는데.....시발?
"...진짜로..이걸 먹어?"
{왜 그러니?}
"아니 시발, 이건 누가봐도 식재료 비주얼이 아니잖아."
그릇처럼 생긴 무언가에 담긴 것은 일종의 죽이었다.
죽의 색이 보라색인데다가 그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들이 떠있어서 문제였지.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이건 분명히 짐승의 고기는 아닐터였다.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전쟁터에서 음식의 비주얼을 따질 여유가 있나?}
아니 아무리 봐도 맛도 없어 보여서 지랄하는건데요? 이 미친 형님아?
{너 안 먹을거면 나 줘라. 나도 요즘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배가 꽤 고파서 말이지.}
내가 계속 먹는 것을 꺼려하자 그는 내게 그 큰 손을 내밀었고 내가 조심스래 그릇을 올려두자 그릇 째로 죽을 삼켜버렸다.
"....."
{.....}
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아무래도 그는 그저 내 근황을 확인하러 온 것 뿐이라 이미 목적이 달성되어 더 말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고 나의 경우에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다가 정신은 인간이라 침식체인 그와 무슨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것이었다.
"저...."
그래도 일단 공통된 주제로 할만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난 그에게 좋아하는 운동이 있냐고 물어보려 했다.
침식체가 운동?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일단 여긴 전쟁터고 유희거리가 없으니까 침식체들이라도 심심하면 뭐라도 하려들지는 않을까 하는 내 막연한 생각이었다.
뭐, 그의 덩치로 봐서는 공 대신 자동차를 써야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 질문을 누르듯.
{그래서, 처음 나서본 전쟁은 어땠느냐.}
"어...?"
그의 목소리가 선수를 쳤기에 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어땠느냐라.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로 정말 좆같은 기분이라 대답하고 싶다.
난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던 인간이었다.
가끔 지루하기 짝이없는 레포트를 쓸 때나,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봤던 조별과제를 할때는 없던 인간혐오와 교수혐오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결코 이러한 행위와 직결될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살인과는 직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사이에, 정말 눈깜짝할 순간에 지나갈 며칠만에 난 사람들을 죽였다. 괴물들을 부려 그들을 사냥했다. 손에 무수히 많은 피를 묻혔고 들어본적도, 잡고 싶지도 않았던 냉병기를 손에 쥐었으며 고의가 없었다고 한들 이유없이 학살을 자행했다.
아직도 생생하다. 몰아치던 뇌우 속에서도 분명히 들리던 승무원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뚜렷하다. 눈앞에서 흩날린 사람이었던 것들의 잿가루가.
분명히 침식체가 되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내 자아에 대해 고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겠다 다짐했지만 그건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기에 그때의 다짐도 다시 돌아보니 변명처럼 들린다.
저지른 일을 그저 자의가 아니었다는 핑계로 넘기고 운명을 탓하는. 어린아이의 행동처럼 느껴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되새겨보니 너무나도 쓰게 느껴지는 기억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답할 수 있다.
난 정말로 전쟁이 싫다고.
그러나 그가 원하는건 그러한 대답이 아닐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그는 완전한 침식체다.
침식체란 최초의 관리 실패 이후 나타난 부산물들, 인간을 위협하는 이계의 존재들.
그런 이들의 무리를 이끄는 사령관인 그에게 인간은 적, 사냥감, 장애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닐 것이다.
적에게 자비를 배푸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역사에 남은 무수히 많은 패배자들의 모습이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가 내게 원하는 대답은 긍정.
수많은 이들의 시체로 산을 쌓고 살려달라 비는 이들을 태워버리는 일을...내가 긍정적으로 여기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난 납득할 수 없다.
"좆같았어. 정말로."
{......}
살인을 즐기라고? 당연히 여기라고?
엿이나 처먹으라 그래라.
나는 절대로 그것들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을거다, 결코 그것들을 당연시 여기지는 않을거다.
살아남고자 발버둥칠 것이지만 딱 그것으로 끝낼 것이다.
나를 위협한다면 싸우겠다.
나를 죽이려든다면 받아칠 것이다.
내게서 소중한 이들을 빼앗으려 든다면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나는.
"그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어. 그리고 난....절대로 그 일을 긍정하지 않을거야."
무고한 이들을,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들은 해하지 않을거다.
그게 이상론이라고 해도 이상을 품고 살지 않는다면 무엇을 등에 지고 살아갈텐가.
자신만의 이상이 없는 이는 그저 짐승일 뿐일텐데.
{........}
나의 말이 끝나자 생각할 것이 있었는지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는 다시 눈을 뜨더니 그 큰 손을 천천히 날 향해 뻗어왔다.
그래 시발. 댁 눈에는 내가 비정상으로 보일테고 이 무리의 오점처럼 보이겠지.
침식체로 태어났으면서 아, 난 사람 죽이기 싫어요! 이러는 미친놈이 댁 눈에는 위선자로 보이겠지.
그리고 분명히 처분해야할 대상으로 인식되겠지. 잘못하면 무리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내게 손을 뻗는거고 머리를 노리는거겠지.
머리가 으께지면 4종이라도 죽을테니.
아. 젠장할.
그냥 인간으로 태어날걸 그랬네.
다가오는 거대한 손이 내 몸전체를 가리는 그림자가 되었고 이내 정수리에 도달하자 난 두 눈을 꼭 감았다.
이왕이면 머리가 한번에 박살나서 아픔은 안 느껴지길 바라면서.
그러나.
{귀여운 녀석.}
"?"
느껴지는 것은 아픔이 아닌 부드러움이었다.
가해지는 것은 압력이 아닌 쓰다듬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내가 이게 도대체 무슨 전개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자. 그는 날 보고 씨익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 뭐, 굳이 전쟁을 즐길 필요야 없지. 세상은 넓고 전쟁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부는 아니니까.}
분명히 침식체인데도 볼수록 인간처럼 느껴지는 웃음은 이질적이었다.
{너는 아직 어리고 잔혹한 일을 많이 겪지 않았지. 우리와는 다르게. 나랑 베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왔어.}
그리고 동시에 허탈함을 담고 있었다.
{나의 동족들이 얼마나 인간들을 혐오하는 지를 너무 빨리 알아버렸어. 너무 많은 인간들의 피를 손에 묻혔고 명령을 이행하고자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무너뜨렸어.}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아주 약간이지만 증오심이 담겨있었다.
{돌아갈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언어로 침식체라 부르는 존재여서일까? 그게 아니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걸까?}
{나는 대답을 찾을 수 없고 우리라는 존재를 정의내릴 수 없어. 우린 태어난 존재가 아닌 만들어진 존재이자 살아가던 존재가 아닌 침입자니까.}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내게 눈을 돌려 나를 부드럽게 보더니 새끼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 조심스래 내 뺨을 쭉쭉 늘렸다.
{하지만 너는 달라. 너는 나와 같은 종족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야. 비록 사람을 죽였다고는 하지만...우리만큼은 아니잖아? 그러니 어쩌면 너에게는 돌아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돌아갈 기회..."
{너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우리들의 모습을 감추고, 과거를 기억하되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너는 인간들의 세상 속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도저히 침식체가 꺼낼 법한 말이 아닌 이야기를 꺼내기에 처음에 난 그가 나를 떠보고자 말을 꺼낸 것이라 생각했지만.
"진심인가 보네."
{귀여운 막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만큼 쓰레기는 아니여서.}
그의 가면 너머에 있는 괴이하지만 분명히 인간의 감정이 담겨있는 눈은 이것이 진심임을 내게 피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대답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한번 헤실거리는 미소를 짓더니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정말 힘들면 나한테 말해. 이미 더러워진 손은 더 피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거든. 쉽게 말하자면...]

{내가 너의 '믿고 맡길 수 있는 상대.' 가 되어줄게. 내 말, 이해했지?}
이제는 정말로 사람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난 정말로 그의 정체가 궁금해져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침식체가 맞긴 한거지? 아무리 봐도 인간들이나 할법한 말이어서."
{글쎄? 네 눈에는 어느 쪽으로 보여?}
그러나 그는 대답해줄 마음 없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답했고 왠지 모르게 기분나쁜 웃음에 난 조용히 창을 꺼내들었지만.
{야 이 오빠새끼야!!! 또 어디로 튀었어?! 오늘 훈련 날이라고오오오오오!!!}
밖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진 울음소리(나에게는 목소리)로 인해 우리둘의 대화는 중단되었고.
{이런...이거 슬슬 위험하겠는걸?}
그가 긴장한 표정이 된 것을 본 나는 문 밖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다.
"누나아아아!!! 찾는 사람(?) 여깄어!!!"
{아니?! 동생아!?}
그러자 처음으로 그의 웃음이 깨어졌고 얼굴에 공포가 감돌자 나는 이제 정말 인간같다는 의미에서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배웅했다.
"그럼 나중에 봐.....형."
{...하핫!}
내가 처음으로 형이라고 불러주자 그는 잠깐이지만 공포가 싹 가신 얼굴로 보람차다는 표정을 지었고.
-펑!!!!
{찾았다!! 이 시발놈의 오빠 새끼야!!!}
문을 터트리면서 들어온 침식체 누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대로 창문을 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 딱서!! 오늘만큼은 대가리를 깨고 말테다!!!!}

{어이쿠! 이거야 원. 아픈 동생 앞에서 이러는건 좋지 못하다고 베타. 그럼 나중에 보자! 동생아!}

{동생 앞에서 나잇값 못하는 오빠는 필요 없다고!!! 막내야! 좀 있다가 보자.}
그래도 두 사람 다 나를 향한 안부 인사는 잊지 않고 해줬기에 떠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 다시금 내 침대에 몸을 눕혔다.
아무래도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건 아니었으니까.
서둘러 회복하고 밖으로 나가볼 마음이었다.
물론 절대로 싸울 생각은 없었고 그냥...내가 먹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었다.
에이 설마. 젊수연을 만난지 이제 하루 됬는데 또 누가 나랑 싸우러 오겠어??
힐데? 나유빈? 걔네도 바쁘겠지.
고작 나같은 약골 4종 잡겠다고 올리가 없다는 말이다.
하하........
상식적으로....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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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여기 오기전까지 기절했던게 맞습니다.
네, 분명히 기절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힘으로 귀환한 거지만요.
다음편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