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엘리시움 피날레



1편






(2) 택함받은 자




"그러나 목자 되신 이가 길 잃고 방황하던 우둔한 양들을 한데 모으니


그분께선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거니와


양들은 목자가 나타날 때 시들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이면세계에서 발견된 경전, 34장 22절 ~ 25절.







엘리시온

서부 대륙, 아에라리움

전투 시작 1시간 경과.





https://www.youtube.com/watch?v=trSb9BmONzw






전투는 1시간이 넘게 계속 이어졌다.


쉴 틈 따윈 없었다. 엘리시온의 인류에겐 이것이 모든 전력을 기울인 마지막 싸움과도 같았다.


마지막 남은 교단의 직할지를 방어하기에도 부족한데 코러스 함선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이 원정에 동원했다.


어디 함선 뿐이겠는가? 악단 60개, 도합 60만의 군단을 차출하는 것 역시 직할지의 방어를 크게 약화시키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절박하게 싸움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알!!!"


"죽여! 다 죽여!"


"사방이 다 적입니다!"



사방에 시체가 쌓였고, 흘러내린 피가 역병으로 검게 된 땅을 적시자마자 탁하게 오염되었다.


지속된 전투에 엘리시온 성전군의 피해도 자꾸만 누적되어갔다.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끌어왔건만, 타기리온의 군세 역시 만만치 않았다.


타기리온은 지난 6년간 온 엘리시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경악스러운 속도에는 수를 측정할 수 조차 없는 역병체의 대군이 뒤따랐다.


그 군에는 일반적인 역병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짙은 역병의 기운을 내뿜는 개체들도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즐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단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었고, 죽은 역병체의 자리를 대신 역병의 기운을 강하게 띈 개체들이 메워갔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무한한 군세. 사람들은 공포를 담아 마왕의 세력을 무한의 군단이라고 불러왔다.


그런 무한의 역병 파도 속에서도 성전군은 굉장히 잘 싸우고 있었다.


한 악단 지휘자가 단원들을 향해 손짓한다. 현악기 단원들이 잠시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죄수 방패병들이 버텨줬다.



"전 악단, 합주를 시작합니다!"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악단의 모든 악기가 힘찬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웅장한 선율과 그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노니는 음악들이 전장의 광기를 잠식하고, 역병체들의 정신을 좀먹어간다.


악단의 합주가 시작되자 역병체들은 자중지란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떤 것들은 발작을 하며 쓰러졌고, 어떤 것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했으며, 그 혼란의 범위는 연주의 음이 뚜렷히 들려오는 모든 영역에 달했다.


반대로 합주를 듣는 다른 악단의 단원들은 용기백배하여 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


허나 일반적인 악단의 전사들이 연주의 힘으로 역병의 기운을 버티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그 상대가 존재만으로도 대지를 썩게 만들 만큼 강한 악취를 뿜어낸다면, 악단으로서는 연주의 힘을 몇 겹이나 겹쳐도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코러스 함의 대군폭격이 있다 한들, 음폭주 엔진이 과열될 여지가 있었기에 남발할 수 있는 패는 못되었다.


성인들이 이곳 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기동타격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미봉책에 불과했다.


성흔을 가졌다지만 그들 역시 근본은 인간. 마왕의 단말과도 같은 최상위 역병체를 조우한다면 여지없이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으니.



"제10 카바티나 악단의 전열 손상이 40%를 넘어섰습니다."


"제23 아라베스크 악단은 소프라노 유닛이 반파! 성가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제48 데스칸트 악단으로부터 지원요청!" 



각 전장으로부터 악단 지휘자들의 다급한 논의가 빗발치듯이 오갔다.


아군을 강화시키고 적군을 약화시키는 가수와 성가대 유닛들의 노래 덕분에 전열은 여전히 붕괴되지 않고 있었으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떤 악단은 지휘자가 죽어 지휘체계를 잃고 휘청이는가 하면, 어떤 악단은 구성원의 70%가 죽어 더 이상 전투속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예 몰살당한 악단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제5 엘레지아 악단입니다! 대형급 역병체의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런 개체들은 단원들의 힘만으론 벅찹니다! 성인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안됩니다! 성인들까지 전장에 투입하면 난전 속에 제 살을 깎아먹는 격입니다!"



각 악단의 지휘자들끼리도 이렇다 할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비행형 역병체들이 함대를 급습하여 폭격 지원마저 끊긴 가운데, 함대로부터 대규모의 대형 역병체들이 서쪽에서 진군해오고 있다는 보고까지 들려왔다.



"큭....!"



제23 아라베스크 악단의 지휘자는 지휘봉을 잡은 채 손을 긴장으로 부르르 떨었다.


개전 직후 30분째였다면 코러스 함의 음파폭격을 썼겠지만, 1시간이 넘어가는 지금은 공중형 역병체들이 갈까마귀 떼처럼 몰려들어 성전군의 함대가 대규모 난전에 휘말려 있었다.


난전 중이니 코러스의 힘은 빌릴 수 없다.


성인들을 투입하자니 이쪽의 출혈이 클 것이다. 성인들의 피해는 곧 다른 전선의 난착에 개입할 힘의 약화를 의미하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지휘자님! 성가대 유닛의 부재로 전열의 피해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서쪽에서 진군중인 역병체 군단이 확인됐습니다! 타입.... 타입은...."



수석 나팔수가 보고를 하려다 말고 말이 끊어졌다. 23악단의 지휘자는 불현듯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쿠웅. 쿵. 둥.


거인이 발을 구르는 듯 전장이 울린다. 그 소리를 듣는 모든 것들의 영혼에 두려움이 새겨진다.


진동 한 번에 하나씩. 본능적인 두려움이 마음을 기생충처럼 좀먹어간다.



"저건...?!"



전장 저편에서 검붉은 갑옷을 입은 군단이 오고 있었다.


저들은 흔해 빠진 역병체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기분 나쁠 정도로 사람과도 같은 형상을 취한 채,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고 있다.


공포의 현신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타기리온의, 직속 병단....!?"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으로 떨리던 지휘봉은 더욱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최상급 역병체인 마왕의 단말.


사람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체만 출현해도 도시 하나와 수천의 생명이 사라지는 괴랄한 힘을 가진 괴물들.


타기리온의 군세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위협적인 역병체들이, 죽음을 흩뿌리며 점점 빠르게 전진해왔다.


이쪽을 향해 오면 올수록 군단의 발걸음이 멸망을 수놓는다.


는 너희의 음이다. 우리는 너의 멸이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가 그렇게 말한다.



"저, 저게 뭐야?!!"


"최상급 역병체다...!"


"으아, 아아아....!"


"엄마... 엄마.... 도와줘!"



노래를 통해 힘을 얻고 두려움을 잊는 것이 악단의 가장 강한 무기일 터.


가수와 성가대가 반파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에 제한이 생기자 23악단이 두려움에 역병처럼 번져갔다.


하나만으로도 도시를 파괴하고, 성인 여럿이 힘을 합해야 잡을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런 괴물들이 군단 째로 이젠 아예 달려오고 있다.


함의 폭격지원을 받을 수도, 성인을 투입하는 것도 유보중인 상황 가운데 반파된 악단이 무슨 수로 저걸 막는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전멸은 시간문제였다.



"도망쳐... 도망쳐야해!! 이대로면 다 죽을거야!"


"무슨 소리야! 자릴 지켜!"


"길이 열립니다! 역병체들이 길을 열었습니다!"


"싫어... 싫어....!"


"지휘자님? 지휘자님! 지시를! 이대로 가다간 몰살입니다!"



제1바이올린 수석단원이 다급히 지휘자를 불렀으나 23악단의 지휘자는 아무런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도망치자는 소리, 정신이 무너져 살려달라며 연신 울부짖는 소리, 고통에 신음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소리, 절망에 찬 소리,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


소리, 소리, 소리, 그런 소리들이 계속 들려와서 지휘자 뿐만 아니라 23악단 모두의 사고를 가로막는다.


이미 저 최악의 군집체들은 바로 앞까지 와있다. 이제와서 반파된 악단으로는 뭘 하기도 전에 학살당할게 분명했다.


이제 끝이구나.


23악단의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길을 열어라. 앞장서겠노라."


"?! 당신은-"



엄정하고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23악단 모두의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23악단의 지휘자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청광靑光 이 번뜩였다.


유려하면서 동시에 강력하게 검이 휘둘러진다.




엘리시움 피오레

발레토 Balleto




흰 갑주로 중무장했음에도 마치 발레와도 같은 우아한 베어내기 동작.


그 한번의 횡베기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산이 무너진 것과 같은 충격파가 땅을 난폭하게 갈아 엎고 단말들을 덮쳤다.


눈 앞에 즐비했던 마왕의 단말들이, 살아 움직이는 죽음들이 낙엽처럼 무질서하게 휘날렸다.



"무, 무슨?!"



제23 악단의 생존자들은 경악하여 입을 쩍 벌린 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가만히 목도할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도시를 부수고 수천 명을 살육하는 전대미문의 괴물이, 단 한 번의 검격에 반절 규모만 남아버린 것이다.



"아앗! 절 빼고 가시면 섭하죠!"



쾌활하고 맑은 목소리에 뒤이어 바람의 칼날이 매섭게 휘몰아치며 남은 마왕의 단말들을 시원하게 토막내기 시작했다.


성인들조차 단독으론 힘겨워하는 마왕의 단말을 이렇게나 간단히 회쳐버리는 실력자는 지금 이 원정군의 바람 계열 능력자 중 단 한 명 뿐.


설마.


제 23악단 뿐 아니라 그 일대의 모든 악단들은 오감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하께선 항상 행동이 앞서신다니까. 다들 괜찮으신가요?"



단원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모두가 방금의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찌 잊겠는가?


휘날리는 금발의 머리칼, 고결한 흰색의 갑주, 보기만 해도 경도되는 푸른 빛깔의 양손검. 압도적인 힘.


그리고 그녀의 뒤를 항상 따라다니는 성흔을 가진 이교도 소녀.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예하' 라는 호칭.



"저 분은....?!"


"위, 위대한 정ㅈ..."


"안식을 내릴 것은 온 천지요, 허락된 시간은 부족하노라. 뒤는 그대들에게 맡기마. 따라오라, 소녀여."


"아앗?! 자자잠시만요 예하!!"



마치 바람이 사라지듯, 그 말만 남기고 금발의 전사는 다시 땅을 박차 전장 한복판을 향해 뛰어들었다.


저 옆에 코러스 함들의 분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저 아래 단원들이 피 흘리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순간들을 새기며, 성스러운 분노를 이 하나의 일격에 담겠노라고. 다짐한다.




엘리시움 피오레-




하늘에 뜬 그녀를 중심으로 푸른 빛의 기류가 모여든다.


성흔이 빛나고 태양과도 같은 따스한 빛이 입방체의 형태로 증폭되어 그녀가 든 검을 감쌌다.


원래도 거대했던 양손검이 아예 함선과도 같은 크기로 커지며 창공을 덮었다.


사지의 사투를 벌이던 단원들의 시야가 푸른 빛으로 덮여간다. 하늘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느낌에 역병체들은 인간들을 향해 진격하다 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빛은...?"



눈이 시릴 만큼 자비로운 푸른 빛의 검.


푸른 빛으로 뒤덮인 하늘이 장엄하게 내려와 땅을 덮친다.


그 빛이 휘둘러지는 형상은, 마치 십자가와도 같았다.


이는 내가 내리는 안식일지어니.




포스타 데 스텔레 Posta de Stelle

베라 크로세 Vera crose




콰과과과과광!!!!



대해와도 같은 역병체들의 대오에 심판이 내려꽂힌다.


광포한 소음이 땅을 갈기갈기 찢을 듯한 기세로 흽쓸고 지나가자, 천지가 뒤집히며 생이 사로 역전된다.


활개치던 죽음들은 일거에 죽음이었던 것들의 덩어리로 박살이 났다.


작은 역병체건 거대한 개체건 할 것 없이, 그것들 모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을 맞았다.


타격 지점에는 역병체들의 살점과 피로 이뤄진 검붉은 십자가 형상만이 남아 공격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그 십자가의 정 가운데에. 금발의 전사가 고고히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전장을 감쌌다.



"......!"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정적. 숙연함. 압도.


역병체들도, 악단의 단원들도, 이 경악스러운 심판의 종착점을 눈에 담고 나니 누구 하나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아, 아아...!!"



확실했다. 모든 이들이 확신하고 있었다.


교단에서 그녀를 보필해온 이들도, 그녀를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일지라도 '왜 그녀가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엘리시온 세계의 다섯 추기경 중 가장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자.


세상 모든 인류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하여 교회를 건립한 인류의 희망. 구심점.


위대한 정적이라 불리는 존귀한 성자.


의의 길로 인도하는 자이며, 완전하신 주.





"""위대한 정적이시여....!!"""



- 그녀의 이름, 에클레시아.




Next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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졷됐다.


이거 최소 5편까진 써야겠는데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없다 시발.....


엘리시움 피오레는 무슨 검술일까 싶어서 열심히 조사를 해봤는데 이탈리아에 피오레라는 양손검 검술이 존재했었다더라.


품세에 대한 기록이 아주 잘 남아있어서 아마 스비도 이쪽에서 이름을 차용해온걸로 추측됨.


힘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