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엘리시움 피날레



출처 : [그림][스포] 타기리온 - 카운터사이드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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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옥




"나를 지나는 사람은 비탄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 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 신곡 지옥편 中





※ 주의!!!! 후반부에 고어한 장면이 있습니다. 보기 싫으면 대충 읽거나, 넘기기!!!!






엘리시온

교단 직할령 수도 '아스칼론'

세계침식률 : 6a7!6&@#22%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푸른 하늘은, 그 빛을 잃고 흉흉한 핏빛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생명의 부흥에 대한 기대로 차있던 대지에는, 주검이 곳곳에 산처럼 쌓이고 사방에 피의 강이 흐르는 지옥이 남았다.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역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역병의 악취와 섞여, 구역질이 나다 못해 공포로 몸이 덜덜 떨리게 만든다.


문명의 부흥을 과시했던 웅장한 건물들도,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던 시가지도, 전부 사라지고 온 세상 천지가 검붉은 죽음으로 뒤덮인다.


무너진 도시 곳곳에서는 역병체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무참히 죽여갔다. 무력하게 살해당하는 이들의 비명이 간간히 들려오는 듯 했다.


이 도시는 멸망의 구렁텅이였다. 찬란했던 엘리시온 인류의 역사가 종언을 고하기 직전의 한 끝자락이었다.



"....."



죽어버린 도심의 한복판에서 에클레시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생명의 흔적은 없다. 둘러봐봤자 사방이 역병체와 산재해 있는 죽음 뿐이었다.


이미 성흔이 없는 이들 대다수는 역병의 악취와 역병체들 탓에 전부 죽거나, 법의식을 마친 피난처 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거나, 피난처에 들지 못해 역병의 악취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성흔이 있는 이들이라 한들, 엘리시온 역사상 가장 짙은 역병의 악취가 세상을 덮은 가운데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이미 역병체로 변이해버린 성인들도 부지기수였다.


이 지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에클레시아는 푸른 검을 치켜들었다.


위대한 정적을 따르겠다며 그녀와 함께할 병사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저 혼자 남은 채 역병체들을 베고, 생존자가 있으면 피난처로 보내고, 다시 역병체를 베는 일을 반복할 뿐.


연이은 격전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예장인 순백색의 갑옷은 피와 더럽혀진 얼룩으로 가득했다.


가장 위대한 성황은 더 이상 긍지 높은 전사가 아닌, 궁지에 몰린 가련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도심 내에 어딘가에 살아 있을 다른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고 싶은데. 살아야 하는데.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에클레시아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과 함께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분명 마왕 타기리온을 처치하고 나서 엘리시온을 향한 역병체들의 공세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다시 인류 부흥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건만, 어느 순간부터 역병의 발원지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아닌가.


온 땅이 다시 전화에 흽쌓였다. 기존의 마왕 토벌전에서 많은 전력을 소모한 탓에, 전쟁의 첫 6년처럼 전선은 파죽지세로 밀려갔다.


이번의 침공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역병체들은 지성이라도 있는 양 악단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마치 사람이 싸우는 것 같은 정교함으로 악단을 유린했다. 모든 지휘자들이 역병체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패하고 죽어갔다.


패전 보고만이 성황청에 전해지는 보고의 전부일 뿐. 엘리시온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린다.


밤의 끝자락처럼 늘어지고 헤진 드레스를 입은 여성 형태의 역병체도 새로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타기리온의 단말에 버금가는 강함으로 눈 앞의 모든 것들을 잔혹하게 찢어발겼다.


6달.


단 6달만에 교단 직할령을 비롯한 온 세상이 끝장나고 말았다.


어떠한 군략도, 기술도 그것들을 막을 수 없었다. 멘탈 프린팅의 부산물도 역병의 군세 앞에선 쓸모가 없었다.


추기경들과 네퀴티아는 급한 대로 모든 성인들의 영혼을 프린팅하고자 했으나, 애초에 멘탈 프린팅이란 성흔이 부여될 대상을 필요로 하는 기술.


그렇기에 이교도들을 그 부여 대상으로 삼아 존재를 덮어 씌웠으나, 이교도의 수는 유한하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에 무한한 개체 수를 가진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이교도가 없어졌을 때, 실험의 칼날은 어느 쪽을 향하게 될까?


자명한 일이었다. 멘탈 프린팅을 통한 성인의 양성은 일반 민중들까지 실험에 차출하여 밀어넣는 끔찍한 학살로 돌변했다.


멘탈 프린팅의 남용을 막기 위해 성황의 성무를 받아들였건만, 에클레시아조차도 그 광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멸망해가는 세상의 속도는 그녀에게 옳은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사람을 갈아넣지 않으면, 멸망은 더 빠르게 앞으로 다가왔으니까.


한 명의 생존이라도 아쉬운 판국에, 결국 세상을 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됐던 유일한 기술은 제 살 깎아먹기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 모든 노력이 이리도 허망하게 무너질 줄이야.


자조하다 말고 에클레시아는 검을 고쳐잡았다.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역병의 악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생존자일까? 에클레시아는 긴장의 끈을 잡은 채 상대가 보일 때까지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자그마한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복장은 달라졌지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끝없는 밤과 같은 드레스의 자락이 땅에 끌린다. 찰박,찰박 하고 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났다. 웅덩이를 밟은 발에는 피가 물들지 않았다.



".....!!"



검은 드레스를 입은 남색 머리의 앳된 소녀가, 저만치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6개월 전부터 행적이 묘연해졌던 이교도 소녀였다.


순수했던 소녀의 얼굴은 밝은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어딘가 엇나가고 공허한 듯이 보였다.


이윽고 소녀는 에클레시아의 앞에서 멈춰섰다.



"아.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예하."



강아지와 같았던 살가운 말투는 더 이상 없었다.


멍한 눈을 하고 소녀는 무미건조하게 말을 건넸다.


딱히 설명을 듣지 않아도, 달라진 복장과 분위기를 통해 에클레시아는 많은 것들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재침공을 이끌었음을.


이 아이가 마왕으로 각성했음을.


그리고 이 아이를 마왕으로 만든 것이, 자기 자신의 짓임을 통감할 수 있었다.



"소녀여. 난..."


"묻고 싶은게... 있었어요."


"...."


"우리 언니. 교단의 실험에 당해서 죽은 우리 언니. 예하께선 알고 계셨나요?"



언니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거짓으로 점철된 에클레시아의 마음이 고통을 호소한다.


아아. 왔구나. 진실의 순간이.


이런 식으로 찾아오길 바랬던 것은 아니었건만.



"그 실험을 승인해준건 누구죠? 언니가 죽었는데도 제게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게 한건 누군가요?"


"그건... 그건.... 소녀여. "








한때 구원자였을 집행자는 차가운 칼날과도 같은 목소리로 진실을 캐묻는다.


행복과 선의로 가득했던 그 눈에는 이제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진실을 요구하는 엄정하고도 공허한 심문 앞에, 에클레시아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죽음의 냄새를 누르고 양자 사이에 짙게 내리깔렸다.


네퀴티아가 나직히 고했던 말이 에클레시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엄청난 죄인이지요. 지금 당장 화형당해도 손색이 없는.



그래. 죄인이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끝에 모든 죄를 끌어모으고, 종국에는 같은 죄인으로 전락하여 이렇게 판결대 앞에 서 있다.


살풍경한 형장의 음울함이 넘치는 이 시가지 거리 한복판에서, 죄인 된 성황은 천천히 고개를 올려 이교도 소녀를 마주봤다.


6달 전부터 응당 해야만 했을 말을, 너무 늦어버린 말을, 비로소 입에 담았다.



.....그래. 차후에 교단 차원에서 실종자를 수색하...

"....그래. 나였다. 내가 지시한 바이다."



마음에 박혀 있던 거짓의 가시가 뽑혀나가며 다시 마음을 할퀸다.


거짓의 독으로 덮혀있던 마음은 독을 뱉어내며 후련해함과 동시에 괴로워했다.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기뻐해주니 고맙....

"그저....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안하다."



진실을 털어놓자 신전 입구에서 소녀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의 한 켠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도 이렇게 말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런 생각이 에클레시아의 머릿속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소녀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공허한 눈으로 에클레시아를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진실을 들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마음이 망가진 탓에 와닿지 않는 것일까.


그리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음에도, 소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가슴팍에 난 검은 구멍만이 그녀의 공허함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소녀는 비로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요?"


"......"


"왜 그랬냐고요.... 묻잖아요.... 네?"



묻는 소녀의 눈동자가 격정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목소리에 올망올망 눈물이 맺혀갔다.


왜 그랬느냐.


에클레시아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위에 선 이로서,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그저 그 뿐이었다. 실질적인 가해자는 이미 역병의 악취에 취해 사람의 탈을 쓴 괴물로 변한지 오래다.


언제나 그렇듯, 책임의 소재는 머리 된 이에게 향한다.



"왜...!!! 왜 우리 언니 죽여놓고 찾아주겠다며 거짓말했냐고!!! 왜!!!! 왜애애애애!!!!!!!!!"



소녀는 분노와 비탄이 잔뜩 섞인 절규를 목놓아 내질렀다. 쌓여왔던 울분이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평생에 걸친 한은 증오서린 열변을 토해냈다. 슬픔으로 넝마가 된 지 오래인 마음이 울컥울컥 피를 쏟아냈다.


댐이 터진 것처럼 감정의 격류가 눈에서 그칠 줄 모르고 양껏 흘러내렸다.



"이교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이교도였던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렇기에 당신을 믿었어! 이교도라 할지라도 기꺼이 날 거둬주고, 진실되게 대해주고, 함께 싸우고, 내게 희망을 줬던 당신을 믿었는데. 믿었는데...!!!


그렇게도 권력이 좋았어요? 그렇게도 약속이 우스웠어요? 이교도와의 약속 따위는 언제든지 져버릴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무지랭이가 날아봐야 이교도니까?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요. 얼마든지 들어줄테니까, 항상 설교하던 것처럼 뭐라도 말이라도 해 보라고!!!!! 말해!!!!!!!!!!!"



상처입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는 것처럼 소녀는 숨조차 쉬지 않고 거칠게, 그간 품어왔던 한을 정면으로 부딪혔다.


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는 하늘이 소녀의 얼굴에 드리웠다. 한껏 소리를 지르면서도 귀기어린 눈으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보는 이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헉... 헉.... 허억...."


".....미안하다."



그런 이교도 소녀에게 에클레시아가 전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 라는 4글자 뿐이었다.


푸른 검이 땅에 내려진다.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피 섞인 죽은 땅이 더럽혀진 갑주를 더 탁하게 물들인다.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에클레시아는 고개를 숙여 사죄를 표했다. 피의 지옥 속에서 이제서야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미안하다.... 그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이런 슬픔을 겪게 만들어서..."



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진작에 꺼내보였어야 하는 진실을, 사과를,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야 꺼내든다.


진실을 내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진실이 불러오게 될지도 모르는 결과가 무서워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상대를 향한 불신을 핑계 삼아 사과 대신 거짓말을 내밀었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마음이 깨어지고, 생명이 스러지고, 전쟁이 일어나고 끝이 찾아온다는 인간 역사의 교훈이 있음에도.


인간은 또 다시 같은 우책을 반복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에는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전 사과를 구하는게 아니에요. 이유를, 책임을 묻고 있는 거지."



소녀는 에클레시아의 사과에도 눈 하나 흔들리지 않고 냉랭하게 대꾸했다.


사과를 받기에는, 서릿발 같이 얼어붙다 못해 검게 물든 그녀의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좋아요. 위대한 정적이시여. 왜 그랬는지 말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 위대한 입을 열게 하기 위해 당신의 이름에 걸맞는 헌사를 바쳐야겠죠?"


"....뭐?"


"30초."



얼빠진 반응을 보이는 에클레시아에게 이교도 소녀는 손가락을 접어 숫자 3을 표시해보였다.



"단 30초면 이 세상에 성흔이 없는 모든 존재는 다 새로이 태어날거에요. 뼈가 뒤틀리고, 장기가 터져나오며, 세상 고통스러운 비명이란 비명은 목이 터져라 내지르다가 완전한 형태로 재조립되겠죠.


정적을 깨우기에는 딱 알맞은 헌사가 아닐까요? 우리 언니가 당했듯이."



마지막 말 한마디가 에클레시아의 등골을 타고 형언할 수 없는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위기를 알리는 머릿속의 붉은 신호등이 격렬하게 울려댔다. 지금 막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사죄하던 마음도 뒤로 한 채, 에클레시아는 황급히 손을 뻗어 제지하려 들었다.



"....?! 아, 안된다!! 멈춰라 소녀여!! 그것만큼은-"


"늦었어요."





딱-



죽음으로 뒤덮인 세계 한가운데 내려진 냉혹한 선고와 함께, 튕겨진 손가락의 소리가 판사의 법봉 소리와도 같이 울려퍼졌다.



6i 타기리온

Yetzirah-



에클레시아조차 오싹할 정도로 거대한 힘의 흐름이 공기를 짓눌렀다.


오오오오오오- 하고 세계가 공포 속에 두려움 가득한 함성을 지른다.


클리파 차원이, 신의 힘이 공명하며 이 세계를 권능으로 덮어씌운다. 주인인 마왕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의 법칙을 비틀고, 조작한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디붉은 태양이 천천히 멈추고, 하늘을 흐르던 구름의 움직임이 멎는다.


순간 중력이 역전된 것처럼 곳곳에서 하늘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으아악!! 이게 뭐야!!"


"엄마! 무서워요 엄마!"


"이게 도대체, 놔줘!! 놔줘!!"



짙은 역병의 악취에도 불구하고 아직 괴물로 변하지 않고 이곳 저곳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사람들은 거리에 버려져 있건, 몸을 숨기고 있건, 모두 그 자리에서 공중에 날아올랐다.


법의식을 마친 피난처 안에 들어가있다 한들, 그 모든 봉인이 깨어지고 문들이 열리며 그 안의 사람들을 전부 공중으로 끌어당겼다.


수도인 아스칼론의 하늘도, 남부 국경도시인 르비딤의 하늘도, 엘리시온 세계 전체에 아직 살아있는 모든 일반인들만이 전부 하늘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엘리시온의 하늘은 사람들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처럼 공중에 매달린 채 옴싹달싹하지 못했다.


고요했던 하늘에 사람의 그림자가 빼곡히 들어차며 기묘한 광경을 자아냈다.


그들 모두가 성흔이 없는 무력한 일반인들이었다.


이교도 소녀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음악으로 시작한 그 증오스런 역사를, 음악으로 끝맺어주겠노라고 다짐하며.


그리고,



땅에 가득했던 죽음의 역사가, 이젠 하늘 가운데 임재했다.




공중에 매달린 사람들의 몸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고깃덩이가 터지는 역겨운 소리가 온 하늘을 덮었다.


팔이 뽑혀나가고, 다리가 뒤틀려 뼈가 돌출되며, 척추가 뽑혀나오고, 이빨이 전부 뽑히며, 두개골이 쪼개어져 뇌가 드러나고, 상반신이 활짝 열려 갈비뼈가 뽑히고 심장과 폐가 튀어나오며, 내장이 뒤집혀 창자가 흘러나오고, 얼굴이 함몰되며 눈과 코와 귀가 한 덩어리로 짓뭉게진다.


부러지고, 터져나가고, 비틀리고, 접히면서,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엄청난 고통이 희생자들의 몸을 걸레를 짜듯이 찢어발겼다.


죽이기 위한 고통이 아니기에 희생자들은 죽지도 못한 채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극한의 고통 속에 토해지는 것은 인간이 아닌 짐승의 소리에 가까웠다.


희생자들이 목이 터져라 내지르는 고통의 신음은 마왕의 개선을 찬가하는 노래가 되고,


땅에 흘러내리는 그들의 살점과 피와 뼛조각은 마왕의 개선을 반기는 오브제가 되어,


이 모든 죽음의 역사가 오케스트라로서 거대한 하나의 화음을, 죽음의 하모니를 만들어 온 하늘과 대지를 찢어발길 기세로 뒤흔들었다.


공중에 뜬 채 사람의 형체를 잃어가며 죽어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십자가의 형태를 한 태고 적부터 벼려졌던 검은 의지가 세례를 내리며, 더욱 끔찍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불지옥에서 불에 타며 구원을 부르짖는 영혼들의 한복판에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사람들의 비명은 듣는 이들의 귀를 마비시킬 정도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파. 아파. 아파. 도와줘. 살려줘. 구해줘. 아파. 살려줘. 아파. 도와줘. 제발. 그만해. 구해줘. 살려줘.


언어의 형태로 소리지르는 건 양반이었다. 절대다수는 소리만을 질러댔다. 짐승이 외치는 고통에 찬 절규가 세상을 뒤덮었다.


지옥이었다.


인체가 찢겨나가고, 뼈가 으스러지며, 피와 내장이 땅에 떨어지고, 비명을 지를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은데도 비명을 질러대는 이 광경은,


명명백백한 지옥이었다.


뼈와 살 없이 고통만 남은 무형의 존재로부터 타락한 의지를 통해 새로운 형체가 그 육신을 입어가는 이 광경은,


지옥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30초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지만 이 30초의 지옥만큼은 30만년과도 같이, 영겁의 세월과도 같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갔다.






.....






마침내 약속한 30초가 다 지났다.


지옥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았던 비명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지독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엘리시온의 하늘에 감돌았다.


피로 뒤덮인 붉은 하늘 위에는 더 이상 '사람' 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역병체의 형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때 선함을 무기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했던 이교도 소녀가, 세상에 남은 모든 인간을 30초만에 학살한 전대미문의 학살자로 영락하는 순간이었다.



"아.... 아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에클레시아는 정처없는 눈으로 힘없는 신음을 흘렸다.


시체와 피로 가득한 엘리시온의 대지를 눈에 담고, 역병체와 죽음으로 가득한 엘리시온의 하늘을 눈에 담자, 고고했던 눈은 그 빛을 잃었다.


소녀의 타락은 동시에 성무를 이행하고 세계를 지키고자 했던 숭고한 이의 마음이 완전히 꺾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아, 아아아...!!"



어째서, 어떻게 이런 일이, 어째서 이런 짓을?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엘리시온의 사람들의 목숨이, 아무런 죄도 없이 그저 내일을 바랬던 이 가련한 이들의 소망이,


단 30초의 시간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지켜야 했을 것들이 사라지는데도, 에클레시아는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엎드려진 채 에클레시아는 갈 길 잃은 슬픔과 공허한 분노를 토해내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손톱이 빠져라 땅을 긁어대며, 몸이 두 쪽 날 것처럼 격정으로 덜덜 떨리며, 고함과 함께 절규하고 또 절규했다.


절망을 토해내는 그 모습에선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짐승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자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건만, 운명은 그 모든 노력이 부질없었다며, 이리도 허망히 스러지고 마는 것이라며 잔혹한 현실로 영혼을 유린한다.


이젠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행할 성무조차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모든 것이 무로 변해 있었다.


신민도, 의무도, 병사도, 신앙도 모두 잃어버린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 비루하고 더럽혀진 몸뚱이 뿐.


오직 침묵이 자리한 붉은 하늘만이 울분과 상실감으로 가득한 에클레시아의 마음에 적막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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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타나베린에서 30초만에 카운터 제외한 모든 지적 생명체가 전부 죽어서 자매들로 변해버리는 장면 기억남?


그걸 최대한 표현해보려고 했는데, 난 톨킨 옹이 아니라서 무지무지 자세한 부연을 넣는게 어려웠다 흑흑....


몸이 자꾸 아파서 지지난주쯤에 쓸 내용이 이제서야 나왔는데 다음화가 완결임. 꽉잡아 내려간다 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