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엘리시움 피날레




1편 2편







(3) 오열하는 그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이여. 포도잎이 쇠잔하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을 보고 어찌하여 가뭄이 왔음을 알지 못하느냐.


죽음 앞에서도 헛된 소망을 품은 이들이여. 너희가 믿는 견고한 성과 모든 것들을 내가 칼날로 쳐 진멸하리니.


감람나무에서 소출을 얻을 수 없을 것이요, 들판에 추수할 곡식이 없을 것이며, 온 대지가 죽음으로 가득하리라.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희 세계가 열매를 맺을 일은 없을 것이다."






......


..........




먼지가 일고 광범위한 타격의 잔향이 서서히 가신다.


엘리시온의 원정군도, 타기리온의 역병체 군단도, 그녀를 본다.


전장의 모두가 그 장엄한 정적의 현현을 눈에 담는다.


전장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의 모든 원정군이 전율하고, 그들의 전율은 신앙이 되어 기적으로 통하는 길을 연다.



"예하께서 앞장서셨다!"


"위대한 정적께서 함께하신다! 돌격!!"



그녀를 향한 믿음이 곧 우리의 힘일지니.


악단의 단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용기백배하여 다시 전선을 향해 뛰어들었다.


엘리시온의 살아 움직이는 신이 현재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은 원정군으로 하여금 크나큰 힘이 되었다.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타기리온의 군단이 점점 밀려간다. 역병체들은 무가치하게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장 저 너머의 고원 지대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열렸다.


고원을 중심으로 검은 구름이 응집되는 가운데 탁한 빛의 기둥이 보였다.



"주의하라! 역병의 악취가 짙어진다!"


"큽... 정화의 연주를 서둘러라!"


"우읍, 우웨에엑...!"


"어서! 당황하지 마라!"



짙은 역병의 냄새가 호기롭게 무기를 치켜든 원정군 전체를 덮쳤다.


악취가 사람들의 코를 찔렀다. 몸을 마비시키고, 오감을 뒤덮으며,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어찌나 독한지 속을 게워내는 이들도 있었다.



"예하...! 저건...."


"그래. 안다. 타기리온이로군."



에클레시아는 확신했다. 탁한 빛이 자신을 향해 오라고 손짓하듯 일렁였다.


아마 저 고원에 이 모든 재앙과 전쟁의 근원이 있을 터였다. 근위대 격인 역병체들을 대거 토막냈으니,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지금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을 때.


검을 고쳐잡고 에클레시아는 탁한 빛의 기둥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성인들이라도 대동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원정군 예비대로서의 소임이 있노라. 나 역시, 나만의 소임을 행해야 하겠지."



만류하는 지휘자들을 향해 에클레시아는 힘차게 손짓하며 명령했다.



"맡기겠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리고 소녀여. 그대도 여기 남아 원정군을 돕도록."


"네?! 그치만 예하! 혼자 가시면....!"



소녀가 반박하려던 순간. 에클레시아는 고개를 돌려 은은한 미소만을 지었다.


눈과 눈이 마주한다. 한없는 환희와 확신을 담은 그 눈을 앞에 두고 소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호소력 있는 미소는 누구라도 무한한 신뢰를 품게 하고, 자연스레 따르게 만든다.


미소를 뒤로 하고 에클레시아는 도약하여 빛의 발원지를 향해 나섰다.


대화 없이, 그 카리스마만으로도 감화시켜 믿게 하고 따르게 하는 존재. 


그것이 엘리시온의 다섯 대주교 중 하나. 에클레시아.



"....몸 조심하세요. 예하."



역병의 악취에 미약하게 몸을 떨며 소녀는 손을 모아 읊조렸다.


부디. 신이 계신다면 그 분의 오른팔을 들어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엘리시온

주 전장 인근 고원 지대

전투 시작 1시간 20분 경과.






빛의 발원지인 고원에 다다르자 굉장히 강한 역병의 악취가 에클레시아의 오감을 긁듯이 자극한다.


이런 수준의 악취는 에클레시아조차도 처음 느껴보는 강도였다.


아마 이 정도 역병의 기운을 마주한 자는 이미 전부 죽고 없겠지.


그녀의 입장을 기다렸다는 듯, 검은 장막이 무대를 닫는 커튼 콜과 같이 고원 지대를 잠식해나갔다.


과연 마왕의 앞이라 이거군.


그리고 시야 앞에 검붉은 피로 칠갑이 된 듯한 갑옷을 입은 존재가 보였다.


마왕의 단말이라 칭해지는 역병체와 동일한 갑옷, 동일한 체구, 갑옷의 색깔이 조금 진하다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이 동일했다.



"네가 타기리온인가."



철을 긁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시작으로 심연의 공동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 기운을 마주하고도 이 앞에 다가오다니. 너는 그간의 들이랑은 다르군."


"벌레....?"



꽈악. 검을 쥔 주먹이 분노로 인해 부숴질 듯 떨린다.


항상 평온한 수면 같았던 눈동자에 해일이 일며, 겉잡을 수 없는 분노의 폭풍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흉흉한 살기가 에클레시아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지금, 네가 죽여온 그 모든 이들을, 감히 누구 앞에서 벌레라고 칭하느냐."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더냐? 제 운명조차 모르고,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그것들을, 벌레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화를 내라고 유도하는 듯 타기리온은 이죽거리며 에클레시아에게 되묻는다.


모든 이들의 목숨을 지켜왔던 지도자를 향해 그가 지켜온 것의 가치를 폄훼한다.


하찮다. 쓸모없다. 버러지만도 못하다고.



"이....!!"



도발은 아주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처음으로 살기를 가득 담은 눈을 하고, 섬광처럼 타기리온에게 달려들었다.




엘리시움 피오레

샤콘느 Chaconne




변칙적인 각도로 틀어지는 동시 3방향 연격.


푸른 검의 섬광이 번뜩이며 정면, 왼쪽, 위쪽을 각각 노리고 쇄도해온다.


대검을 들고도 이런 빠르고 정교한 검술을 구사한다니? 타기리온은 내심 놀라워했다.


허나.


부족하다.


검을 뽑아들고 타기리온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을 향해 나아갔다.



채앵! 카각!



앞으로 일 보 전진한 것만으로도 측면과 정면을 향한 공격을 빗겨 맞고, 검을 들어 위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가볍게 쳐냈다.


공격이 막혔지만 에클레시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왕 씩이나 되는 괴물이 이깟 공격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네가 기어올라온 무저갱으로 다시 돌려보내주마. 외도여."


"기량은 훌륭하군. 허나 의미없다."




엘리시움 피오레

검의 노래 Arpegio Spada




에클레시아는 멈추지 않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흐르는 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검의 선율이 타기리온을 감싸고 죄여온다.


격정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느려지다가도 다시 빠르게, 하나의 흐름을 가진 노래와도 같이 발해지는 검무.


갑옷에 튕겨져 나가거나 검에 막히더라도, 검의 운동은 정지하지 않고 무한히 이어진다.


검과 갑옷, 검과 검이 맞닿을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제아무리 방어력이 대단하다 한들, 끊김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대항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터.



"한낱 인간의 몸으로 신을 대적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더냐?"


"신이라고? 심연의 우두머리가 어느 안전이라고 불경함을 들먹이느냐?"



방어가 뚫리지 않는다면 변주를 줘서 패턴을 흐트러뜨린다.


피오레 검술의 진가는 정해진 흐름과 어긋난 흐름을 멋대로 오가는 자유분방함.


하나의 흐름을 급격히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부터 변칙적인 공격을 꽂아넣는 기습적이고도 아름다운 검.


그야말로 음악과도 같은 죽음을 선사하는 검술.



변주 ad libitum



타기리온의 눈 앞에서 검의 궤적이 급격하게 휘어진다.


뻔히 보인다. 타기리온은 어떤 감상도 내비치지 않았다.


휘어지는 궤도 상 공격이 오는 각도는 옆, 혹은 뒤. 그 방향에 맞춰 방어하려는 찰나-


예상했을 터인 궤적이 다시 한 번, 바뀐다.



"?!"



오히려 검이 들이닥친 방향은 아래에서 위로 베어내는 정면 일점 베기.


측면이나 후면을 예상하고 그쪽을 향해 들어지느라 오른팔은 사용 불가.


전혀 다른 곳에서 쇄도해오는 일격에 타기리온의 몸이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었다.


본체를 지키려면 타기리온은 왼팔을 희생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막을 수 없ㄷ-




엘리시움 피오레

불협화음 Dissonance




서걱!


에클레시아의 푸른 검이 타기리온의 왼팔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빠른 일격의 후폭풍으로 타기리온의 자세가 살짝 뒤로 밀려난다.


음악 같은 검의 움직임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세가 흔들린 틈을 비집고 바로 뒤이어 양손검의 세로베기가 날아왔다.


타기리온은 검을 들어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냈으나, 에클레시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왼쪽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타고난 역할에 비해 과분한 숙명을 지고 있구나. 헛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발악하는지."



타기리온에겐 보인다.


이 여자에겐 자신을 죽일 만큼의 강대한 힘도, 그럴 운명도 없다. 이 여자는 이 세계에서 선발한 자신의 대적자가 아니다.


혹, 자기 자신이 마왕을 대적할 자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백성들로부터 전해받은 소망을 품고 분에 맞지 않는 위세를 부리는 걸까?


그렇다면 이 어찌나 우둔한 자인가! 가엾기도 하지.


타기리온은 목소리에 연민을 담아 에클레시아를 향해 조소했다. 방금 전 일격으로 깨어져 나간 투구 속 어둠으로부터 기분 나쁜 웃음이 보이는 듯 했다.



"6년이다. 내가 너희 세계를 싹 쓸어버리는데 고작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마저도 전력으로 하면 너무 재미가 없으니 개입을 최소화했지."


"....."


"지금의 이 전황 역시, 6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너희를 모조리 벌레처럼 짓밟아버릴 수 있는 한순간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헌데 어찌하여 저항하는 것이냐? 헛되고 희망이 없음을 아는 것은 너와 같은 위에 서는 자라면 더욱 분명히 보일 터."


"....심연 속에서 비웃는 자여. 내가 해줄 대답은 하나뿐일지니."



왜 저항하느냐고?


살아있고 싶은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적인 소망이니까.


그런 소망으로 가득찬 이 세계는 삶을 갈구하는 이들을 향해, 모든 악에 맞서 싸울 힘을 빌려주기 때문에.


내가 맞서는 이유는 그것뿐일지니.


푸른 검에 십자가 형상의 빛이 깃들며 입방체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거대한 십자가와도 같은 빛이 에클레시아의 검을 감싸 폭발하듯 분출됐다.


에클레시아가 지닌 성흔은 '자신을 향한 믿음을 힘으로 바꾸는 것.' 


이 빛은 원정군 60만 명의 믿음 뿐 아니라, 교단 직할지에 남아 있는 2천여 만 명의 엘리시온 인간들 각각의 소망이 구현된 총체와도 같았다.


삶을 갈구하는 이들을 등에 업고, 그들의 의지를 하나의 검으로 벼려내어 일거에 폭발시킨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밝게 빛나는 빛을 모두에게 보여준다.


정적 속에 희망의 별을 가슴에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그대, 위대한 정적이라 일컬음 받으라.



"그 가증한 입을 놀린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엘리시움 피오레

포스타 데 스텔레 Posta de Stelle

베라 크로세 Vera crose




푸른 빛이 작렬하며 심연을 찢어발긴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공간을 뒤흔든다.


빛이 어둠을 살라먹고 심판하듯 모든 에너지가 단 하나의 대상을 향해 쏟아부어졌다.


검은 장막으로 둘러쌓인 고원지대가 푸른 빛으로 덮이며 땅을 조각내고, 타기리온이 서 있는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빛의 여파가 가시고 나서도 여전히 타기리온은 살아 있었다.


힘을 폭발시켜 질량 째로 찍어누르는 기술이니, 아마 같은 강도의 힘을 맞부딪혀 상쇄시켰을 터.


역시 마왕이라 이건가. 에클레시아의 눈이 찌푸려졌다.


꿇어 앉아있던 타기리온은 남은 오른팔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공격을 막는 것은 마왕인 그에게 있어 어렵지 않았다. 푸른 빛이 날아오는 순간 같은 출력의 힘을 해방하면 그만이니까.


예상 외인 것은 상대가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의 한계였다. 내가 괜히 네 앞에 선 것이 아니라고, 저 여자는 실력으로 말하고 있었다.


마왕의 단말들을 통해 이 세계를 수도 없이 봐왔지만,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 한들 이만큼의 출력을 가진 이는 지난 6년간 없었다.


개인의 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방대한 출력이다.


침식을 받아들이며 존재를 승격시키지 않는 한, 개인이 품을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을 터.


....아.


혹시 개인의 힘이 아닌 건가?


타기리온의 눈이 예리하게 빛난다.



"이 세계에 살아있는 생명들로부터 힘을 빌려오는 것인가."


"....?!!"


"뭘. 간단한 이치다. 인간 하나가 품을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카테고리 이상을 넘지 못하니까.


하지만 힘을 빌려온다고 가정하면 나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 역시 설명이 되지."


"그 말 대로다. 이 싸움은 개인에 속한 것이 아니요, 멸해야 할 악에 대항한 우리 엘리시온 2천만 인간 모두의 싸움이며, 나아가 세계 전체의 싸움이다."



에클레시아는 푸른 검을 타기리온에게 겨누며 재차 말했다.



"내가 건재한 한, 우리는 결코 쉬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또한 그들이 살아있는 한, 이 세계는 나와 함께 널 심판할 것이다."


"뭣.... 푸흡, 흐흐하하하하하하!!!"



순간 타기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이 여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하는걸까?


세계를 대표한다고? 그럴 자격도, 운명도 갖추지 못한 부적격자가? 과분한 숙명을 끌어안겠노라고?


그걸 위해서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고, 나를 토벌하러 왔다고?


학살자가, 구원자의 논리를 내세운다고?



"....광대가 따로 없구나."


"뭐라?"


"몇 번이고 말해왔잖느냐. 헛되다, 라고. 어차피 네가 원정군이라 칭하는 벌레들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다. 그 말은 너의 힘도 계속해서 약해져가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더냐?"


"안 그래도 결판을 내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너희 필멸자들의 영혼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놨으니, 너희 백성을 사지로 몬 것과 다를 게 없군. 지도자가 아니라 인간 백정이라고 표현하기 모자람이 없어.


그런 주제에 뭐? 날 심판하겠다고? 미쳐도 곱게 미쳤어야 받아주지, 이건 완전히 광대가 아니더냐?"



무저갱의 권세가 입을 열어 미혹한다. 조롱한다.


사람들의 목숨을 벌레라 부르듯, 이젠 자신의 행적마저 희롱한다.


흔들리지 말지니. 에클레시아는 아무 말도 없이 타기리온을 노려봤다.



"그리고 영혼의 응집을 통한 서포트?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착각하나본데, 마왕과 싸우는 자에게 있어 그 정도의 힘은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


아까 말했지 않느냐? 과분한 숙명을 지고 있노라고. 그깟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교시켜주지."



타기리온이 말을 끝맺자마자 공기의 흐름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바뀐다.


그리고 역병의 악취 역시 갑작스럽게 확 강해진다. 원정군 전체가 크게 당황하여 사분오열되어갔다.


대지가, 하늘이, 세계가, 거기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공포로 절여져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원정군의 모든 단원들도, 역병체들조차도 공포에 젖어 행동을 멈춘 채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빛의 발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자리의 모두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감사하도록 해라. 이번에도 무의미한 여정인 줄 알고 질리던 참이었는데, 심심풀이 정도로 알맞겠군."




영혼동조 개시.



6i 타기리온

권능해방 Atsilut




태양이 뜨는 것의 은 어이니 해 아래의 수고가 유익하지 않고,


모든 별의 탄생은 별의 죽음으로 귀결되니 그 순환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물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으니 들판의 과을 수확할 람이 없도다.




쓰고 있는 투구가 흉흉하게 빛난다.


어디선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들이 타기리온을 향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힘의 주입은 고원 지대에 세차게 휘몰아치는 폭풍을 일으켜 시야를 잔뜩 가렸다.


한술 더 떠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만큼 독한 역병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몸을 뒤덮었다.


힘이 한 점을 향해 모여들며 어마어마한 진동을 발생시키는 소리가 에클레시아의 귀를 가득 울렸다.


세상의 끝과도 같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에클레시아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격이 다르다.


타기리온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그녀가 살면서 봐왔던 어떤 것보다도 거대했다. 잘렸던 왼팔도 다시 자라났다.


이런게 마왕이라는 존재의 힘이라고?


이런건, 이런건....


말도 안된다. 상식 선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에클레시아는 압도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말았다.



"하나 재밌는걸 알려주마. 너희가 마왕의 단말이라고 부르는 나의 사도들은 사실 나 자신의 현현과도 같지."



아직 살아남은 마왕의 단말들이 눈을 뜬다. 살아 움직이는 갑옷들의 틈에서 검붉은 빛이 번뜩인다.


타기리온의 눈이 전장을 담고, 단말들의 눈이 에클레시아를 담는다.


전장의 열기, 광기, 죽음, 노랫소리, 선율, 비명소리, 그 모든 것들을 담는다.


푸른 빛, 신성함, 정적, 팔이 잘려나가는 아픔, 수준급의 검술, 그 모든 것들을 담는다.


어째서인지 많은 수가 남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로도 저 여자의 마음을 꺾고 모든 인간을 멸절시키는데 부족함은 없다.


아아. 타기리온. 자기 자신을 여럿으로 나눈 자여.


오열하는 그들이 또 다른 오열과 슬픔을 자아내네.



"그렇다면 그 모든 나 자신들의 영혼을 한 점에 모아 각각을 증폭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뭐라고?!!"





보라.


모든 형상 있는 것이 헛되며 凡所有相,

기억됨 없이 허무로 돌아갈지니 皆歸虛妄.




- Mandara Vanitas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이 아에라리움 평원 일대 곳곳에서 하늘이 열렸다.


하늘로부터 아까와 같은 탁한 빛의 기둥이 터져 나온다.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은 숫자가.




Next :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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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전이라면 이정도는 해줘야지.


이거 원래 4편 완결 예정이었는데 왜 자꾸 늘어나냐 나 이러다 완결 못쳐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