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엘리시움 피날레



1편 2편 3편







(4) Destiny call





"세상을 구하길 원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그 숙명을 등에 이고 걸어갈 수 있는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할 운명을 타고난 이가 그를 받아들이기로 다짐한다면, 세상은 거기서부터 바뀐다."












6i 타기리온

권능해방 Atsilut

- Mandara Vanitas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이 아에라리움 평원 일대 곳곳에서 하늘이 열렸다.


하늘로부터 아까와 같은 탁한 빛의 기둥이 터져 나온다.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은 숫자가.


공기가 으스러지고, 대지가 조각나는 끔찍한 소리가 귀를 찢어발긴다.


본능적으로 에클레시아는 원정군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이미 늦었다. 내가 그들이며, 그들이 곧 나. 너희는 지금 수 백명의 마왕과 대적하게 됐노라."



안 돼.


놈의 말대로 저 직속 병단이란 개체들이 다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면,


저 전장에는 몇 백명의 타기리온이 있는 것과 같다.


내 검격으로도 큰 상처가 없고, 일 대 일의 싸움으로도 쉬이 결착이 나지 않는 괴물이 저쪽에는 몇 백명이라고?


그 순간 그건 전쟁이 아니다. 신들의 결집에 의해 벌어지는 일방적인 도살에 가깝다.


검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의 상황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에클레시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이 굳고 말았다.


거기엔 지옥이 열려있었다.




"크아아아아악!"


"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


고통에 내지르는 비명.


"밀립니다! 연주가 통하질 않습니다!"


"히이익!!! 오지마, 오, 오지마아아아!!!!!"


"안보여...! 아무것도 안보여! 다, 다들 어딨어?"


공포에 질린 비명.


"도망쳐!! 여기 있으면 죽ㅇ"


"모두죽을거야모두죽는거야모두죽는거야아니살려줘살려줘죽기싫어싫어싫어"


"전능하신위대한정적이시여영원한빛으로날인도하시고..."


"살려주ㅅ"


채 이어지지도 못하거나 미쳐버려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




비명들이 자아내는 지옥 속에서 원정군은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숫적 열세애도 대등하게 대치전을 이어갔던 백절불굴의 원정군이 이젠 아예 무참히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마왕의 단말들이 들고 있는 검을 그저 휘두르기만 해도, 인간들은 형체를 유지하지조차 못하며 죽었다.


아니, 타기리온의 형상을 한 그 단말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주변의 인간들은 존재할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시체들이 마구 나뒹굴었다. 아니, 인간의 파편들이 평원에 흘러 넘쳤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며, 뇌수가 흩뿌려지고, 인간이었던 것들이 잘려 휘날리고, 피가 튀기다 못해 바다를 이루고, 부숴진 함선이 추락하며, 죽음이 대지를 덮는다.


영광의 전투를 노래하던 성가 대신 훨씬 거대하고 잔혹한 죽음의 노래가, 살려달라는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로 이뤄진 장송곡이 온 전장을 가득 메운다.


이 모든 상황이, 멀리 떨어져 있는 에클레시아에게도 끔찍할 정도로 잘 들려왔다.



".....안, 돼....!"



많은 목숨들이 스러질 것은 알고 있었다. 전쟁이란건 그런 거니까.


그러나 잃기만 해왔고 빼앗기기만 해온 우리에게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그것 뿐이었다.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능한 모든 전력을 끌어모은 원정군 60만. 거기에 아직 살아 있는 교단 직할지의 인간들이 소망하는 기도까지 포함하여 도합 2천여 만의 목숨.


그 무게라면 마왕을 찍어 누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니, 사실 믿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위에 서는 자는 항상 희망을 제시해야 했으니까.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떠나서,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을 위해 희망을 위해 60만의 목숨을, 나아가 나머지 2천여 만의 목숨을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타기리온의 말마따나, 그 어찌 오만한 결정이란 말인가.


자신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이, 일신의 나약함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재앙이 되어 우리를 덮친다.



"네 놈이.....!!"



무섭다. 두렵다.


몇 천만의 기도를 등에 업고 초월적인 강함을 손에 넣은 자신조차도, 타기리온이 숨쉬는 것에마저 공포를 느낀다.


아니. 포기하지 마. 대항해야 해. 일어서. 분노해.


그럼에도 일어서 싸우라고 몸에 계속 명령을 내린다.


동포들이 무가치하게 학살당하는 광경으로부터 느껴지는 분노와 공포가 어우러져, 에클레시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타기리온!!!!!!!!"




엘리시움 피오레

포스타 데 템페스타 Posta de Tempesta

카덴챠 Cadenza




푸른 검이 격정적이고 화려한 궤적으로 폭풍처럼 휘둘러진다.


그러나 그에 대항하여 타기리온은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조차 않았다.


마치 하찮다는 듯, 먼지를 털듯이 검을 턴다.


그러더니 눈 앞의 땅이 통째로 조각나고, 아예 공간이 찢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커허윽....!?"



그런 우악스러운 힘의 격류 앞에 에클레시아는 자연재해에 쓸려다니는 미물처럼 무력하게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재빨리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아도 타기리온은 제대로 공격을 해오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놈은 공격할 생각이 없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이미 수준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난다. 2천여 만 명의 목숨을 떠안은 자신에 비해 영혼의 밀도가 말도 안되게 높다.


마치 수 만 개의 세계가 통째로 합쳐진 것만 같은 압도적인 차이다.



"왜? 내가 두렵기라도 하더냐? 아까는 눈 앞의 상대를 벌레처럼 즈려밟을 수 있을 것처럼 기세등등하더니, 고작 권능 좀 해방했다고 이리도 냉정을 잃다니."



한 번 더.


타기리온의 검이 내리쳐지자 세계가 통째로 뒤틀리고 뒤집힌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검격인데 받아내는 것이 너무나 무겁다.


그저 받아낼 뿐임에도 함선에 직접 치이는 것 따윈 비교를 불허하는 고통이 전신을 강하게 찍어누른다.


쿨럭. 공격의 여파에서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에클레시아는 피를 토해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백의 갑옷은 이미 먼지와 피로 인해 피칠갑이 되어 더러워져 있었고,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잘 봐라. 그리고 그 영혼에 새겨라. 힘을 받아 방출하는건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진짜 힘이란 이런 것임을."



죽을 거다. 살면서 처음으로 에클레시아는 직감했다.


그녀의 사고가 경종을 울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해. 생각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면 그들이 죽어.


죽는다고. 에클레시아.


너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타기, 리온.... 용서 못한다!!!!"



검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며, 에클레시아는 다시 검을 휘두르려 들었다.



엘리시움 피오레-



"고작 그 정도로 나를 영접할 셈이었더냐? 영혼을 엮어? 마음을 이어? 한 마음으로 소망하면 이길 수 있겠노라고? 6년에 걸친 멸망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했느냐. 그런 것 따위에 얽매여 있으니 너희는 약한 것임을."



거대한 힘의 압축이 다시 한 번 에클레시아가 있던 자리를 흽쓴다.


땅이 뒤틀리고 힘의 격류가 에클레시아를 뒤삼키며 유린했다.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찬란히 빛났던 푸른 광휘가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악을 몰아내왔던 기사의 검은 꺾여 더 이상 휘둘러지지 않았다.


인지를 초월한 강함 앞에 모두가 죽어간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나는 타기리온. 멸망을 부르는 열 왕 중 하나. 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운명에 따라, 새의 날개를 꺾어 떨어트리듯 너희 세계를 비틀고 부수리라."






.....

.........






엘리시온

서부 대륙, 아에라리움 평원

전투 시작 1시간 30분 경과.






마왕의 단말을 비롯한 여러 역병체들이 바람의 칼날로 토막내며, 소녀는 고원 지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저 너머 고원 지대에서 느껴지던 푸른 광휘가 희미해졌다.



"예하....?! 설마...."



전장에 나서면 모든 엘리시온의 전사들은 에클레시아가 내뿜는 푸른색의 빛을 항상 보곤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광휘는 그들을 승리로 이끄는 기적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푸른 빛이 저렇게 약해져 있을 수가 있던가?


저런 현상은 소녀가 언니를 찾기 위해 에클레시아를 따라 종군하던 이래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에클레시아의 생명이 위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최강의 성인이었지만, 혹 마왕의 힘이 그녀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던 것이라면?


그렇다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해진다.


에클레시아의 생사여부 문제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주 전장의 전황 역시 끔찍했다.


살아남은 백 마리 남짓한 마왕의 단말들이 엄청난 힘을 내뿜더니 문자 그대로 사람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치전을 잘만 이어가던 60개의 악단들도, 이런 규격 외의 힘을 지닌 역병체들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말들이 각성한지 불과 몇 분도 안되어 이미 절반에 달하는 악단이 전멸했다.


음악의 힘으로 정신을 자극하고, 육체를 각성시키고, 적의 발목을 잡고 마음을 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마왕의 힘 앞에서 평범한 인간은 존재할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는 듯 신체 째로 터져나갈 정도였다.


성인들과 함께 마왕의 단말들 및 거대한 역병체들을 요격하여 수를 많이 줄였음에도, 이 정도의 피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런 끔찍한 전황 탓에 많은 악단들이 아직 저 빛이 약해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 듯 싶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라면 전멸은 시간문제야..."



원정군의 전멸은 곧 인류 전체의 파멸과 같았다.


싸울 수 있는 인력 중 대다수를 긁어 모아 구성한 군단이 녹아 없어져버리면, 엘리시온을 지킬 병사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악단의 지휘자들 역시 멀쩡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더러는 미쳐버리기도 했고, 의지가 꺾여 아무것도 못하기도 했다. 죽은 이들도 수두룩했다.


상태가 그나마 나은 이들은 이런 생지옥의 한복판에서 전열을 유지시키고 본진을 뒤로 후퇴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망이 있는 부대라면 성인들이 속한 별동대 정도.


그러나 성인들도 결국은 악단 지휘자들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부대이다.


지휘자들 전부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려 일반 단원들을 수습하는 것조차 이미 벅찬데, 누가 성인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겠는가?



"크으.... 예하께서 원정군을 도우라고 하셨는데...."



생각을 하다 말고 소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상황이 지나치게 안좋다. 정상적으로 기동할 수 있는 지휘체계가 단 하나도 없다.


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명령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있어 체계가 없다는 것이 곧 조직 전체의 붕괴를 의미함은 소녀도 알았다.


체계가 있다 한들, 이런 종말의 한복판에서 기능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긴 할까?



"....그래도 해야 해."



예하께서 내게 맡겨주셨으니까. 그 분께서도 아직 싸우고 계실 테니까.


나도 내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이교도 소녀는 찡그리고 있던 눈을 서서히 떴다.


'소임'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위기감으로 혼탁했던 마음 속이 깨끗하게 맑아지는 듯 했다.


다시 시작해보자. 소녀는 낫을 휘둘러 바람의 칼날을 쏘아보내 역병체들을 토막내었다.


현재 원정군의 문제점은 세 가지.


하나. 타기리온과 일기토에 나선 에클레시아의 생사불명.


둘. 존재만으로도 원정군을 도륙내는 각성한 마왕의 단말들.


셋. 완전히 무너져내린 원정군의 지휘체계.


세 가지의 불가능한 문제들이 소녀의 머릿속을 감싸고 괴롭혀댔다.


어느 것 하나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첫 번째. 지금 에클레시아에게 간다 한들, 가봤자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자신이 여길 이탈한다면 이 군은 더 빠르게 전멸하리라. 이동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두 번째. 아까 전까지는 자신도 마왕의 단말들을 썰어 넘겼지만, 불행히도 아직 놈들의 수가 많이 남았다.


자신의 힘으로 한 두마리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지라도 세 자릿수가 넘는 것들을 혼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이다.


세 번째. 군략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뭐라 말한들, 군권을 잡은 이들이 전부 무력화되고 군이 붕괴한 마당에 누가 그걸 들어줄 것인가?


심지어 자신은 이교도다. 신정국가에서 이교도가 받는 취급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있긴 하겠는가?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하나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한 개인이 어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린 상황이 그녀의 마음을 다시 옥죄어간다.


침착해.


생각해 내야해. 언니를 찾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온 인류를 멸망에 빠트릴 수는 없어.


예하께서 죽어가고 계신다. 단원들과 죄수들, 원정군의 모두 역시 죽어가고 있다.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순간마저도 수 십 단위의 목숨들이 무자비하게 사라져간다.


영웅의 생사불명, 압도적인 적, 무너진 체계.


내가 군단의 지휘관이라면, 이런 상황 가운데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뭐가 있지?


당장 떠오르는 것이라곤 성인들의 별동대, 후퇴 중에도 시시각각 죽어나가는 잔존 악단 병력, 그리고-


소녀는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코러스 함...."



하늘에 떠 있는 코러스 함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격한 공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마왕의 단말들의 공격에 의해 다수가 추락했지만, 아직 몇 십 기 정도가 남아 잔존 함대를 수습 중이었다.


함선. 함선이라.


수단을 먼저 추려낸다. 그 효과는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를 살린다는 불가능한 과제 앞에서 모든 정해진 전술이나 관념, 법칙은 의미가 없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보다, 불가능을 앞에 두고 비현실로 맞서야 했다.


함선들이 눈에 들어오자 소녀의 머릿속에 떠다니던 정보들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어갔다.


별동대.


병력 재정비.


예하의 부활을 위한 조건.


코러스 함.


코러스 함의 기능은...





째깍-






"......!!!"



머릿속의 전구가 전부 켜지는 듯한 짜릿한 느낌과 함께 소녀의 눈이 크게 떠진다.


보인다. 단 하나의 수가.


하지만 이게, 가능한 계획일까?


이걸 한다고 해서 그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아냐.... 해야 해."





째깍-





"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해, 000. 언니가 알려준 대로."



현실성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지금의 엘리시온 원정군에 필요한건 이성을 다시 흔들어 붙잡아줄 소식이니까.


거짓일지라도, 그것이 약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전멸할 상황이라면 미친 짓일지언정 뭐라도 해보는 것이 맞겠지.




째깍-





기류 조작 능력을 이용해 소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아직 대열을 유지하고 있는 원정군 악단이 어디 있는지 파악한다.


그리 많은 수가 남아 있지는 않아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북동쪽 방향. 제관을 쓰고 있는 지휘자들 여섯이 보인다.


저기를 거점으로 하여 원정군 전체를, 나아가 에클레시아를 다시 부활시킨다.


소녀는 성흔을 통해 바람의 힘을 자신의 몸 주위로 거대하게 응축시켰다.


바람을 한계까지 몸에 압축시켜 낙하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폭탄으로 만든다.


이 한방으로 거점을 만들기 전에 먼저 역병체들을 일거에 쓸어버림으로서, 한순간이나마 유리한 국면을 형성할 셈이었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을 몸에 잔뜩 두른 뒤, 소녀는 역병체 군단이 인산인해를 이룬 북동쪽 방향으로 쏜살같이 몸을 쏘아보냈다.




째깍- 째깍- 째깍-




이 순간, 그저 사람을 좋아할 뿐인 이교도 소녀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쇼살려주십쇼살려줘아아아악!!"


"도망쳐!! 여기 있으면 다 죽어!!"



해일처럼 밀려드는 역병체들. 그리고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내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가루로 만들고 파괴하는 마왕의 단말들.


이건 더 이상 전쟁이 아니다. 도살장으로 변한 전장 속에서 악단의 단원들은 대열을 힘겹게 유지하며 죽어라 도망쳤다.


마왕의 단말 하나가 검을 치켜들고 단원 한 명에게 휘두르려던 찰나-




파아아아아아아아앙-!!!




귀가 찢겨나갈 만큼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하늘에서 바람이 떨어졌다.


그와 함께 바람 칼날로 구성된 격렬한 충격파가 일으며 사방의 역병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토막쳤다.



"?!"



검을 휘두르려다 말고 마왕의 단말 둘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서 낫 든 소녀가 남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도 이런 대단위 공격을 하는 실력자라 한들, 이미 권능이 발현된 이상 인간이 덤빈다면 승산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에클레시아가 직접 시종으로 거둬들인 성흔 보유자.


원정군과 숱한 전투를 함께하며, 성인들과 함께 지내며 쌓인 경험이 그녀의 감춰져있던 재능을 기폭시킨다.


소중했던 이들이 한 마디씩 건넸던 말들이 모여 그 재능에 깃들어 축복을 선사한다.



'그래. 네 능력이라면 이런 재앙 가운데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네. 꼬맹이.'


'내가 봐온 이들 중에 가장 거대한 재능이로다. 나를 따라 그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겠느냐?'



지키기 위해.


축복, 기억, 추억, 능력, 모든 것을 일거에 모아, 그 재능이 폭풍을 일으킨다.




사계 the four season

봄바람




바람을 휘감은 흰 낫으로 깔끔하게 휘둘러지는 3연격.


대단한 검술을 할 줄은 모르지만, 바람이 고속으로 압축되어 외부로 회전을 흩뿌리기에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그 절삭력은 막강하다.



까드드드드드드드득-!!



폭주하는 역병의 힘 덩어리와 바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원래라면 너무나 압도적인 힘에 의해 인간 1명 분의 힘은 짓밟혀 사라지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것이 신의 힘을 잔뜩 덧칠한 편법 수준의 강함일지라도, 얼마나 힘의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지키기 위해.




서걱- 서걱- 서걱-!




잘라낸다.


각성한 영혼이 일으킨 폭풍 앞에, 휘몰아치던 힘이 종잇장처럼 썰려나가고 부숴진다. 


마왕의 단말 두 마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기도 전에 3등분으로 박살난 채 절명하고 말았다.



""!?!??""



도살당하던 악단의 단원들과 지휘자들은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재앙을 잘라낸 이교도 소녀는 바람을 다시 거두며 악단의 지휘자들 앞에 당당히 섰다.




Next :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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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시쨩 대적자 각성의 시작.


대적자면 솔직히 이 정도 포스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봐주는 사람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너네들이 봐줘서 정말 힘이 많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