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릴 일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나유빈이지 주시윤이 아니다.
하지만 왠지 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소년의 이름을 부르는 스승의 목소리가 너무나 애틋하게 느껴져서 나유빈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기억속에서 힐데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토록 부드럽게 말 하는 능력이 없는 여자였다.
잡담보단 단답으로, 연설보다는 행동으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늑대로서 힐데는 자신을 제외한 타인과는 관계를 맺을 생각조차 없어보였었다.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힐데의 눈길은 단 한번도 그를 향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운하다거나 한 적이 없었던 건 힐데는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였고, 그렇기에 더 강하고 특별해 보인다는걸 스스로 납득한 까닭이었다.
이내 나유빈은 이 상황이 역시 꿈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것도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자각몽.
문득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는 무의식 속에서 존경하던 스승으로부터 자신이 받지 못 했던 애정을 받는 후배가 되고 싶었던 걸까.
“하도 오래 잠들어 있길래, 몸이 안 좋은게 아닌지걱정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거냐?”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걸어오는 힐데때문에
왠지 낯이 간지러워진 나유빈은 의도치 않게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마주한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상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피곤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공무원이 아닌, 누가봐도 흑막의 유년기처럼 생긴 실눈 소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차피 꿈이라면 원래의 몸이었다면 좋았을걸, 꿈속에서조차 그는 자신의 몸으로 힐데의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좀 슬퍼져서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난데 없이 이마에 서늘한 감촉이 들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니 걱정스런 표정을 한 힐데의 손이 그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열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안 아픕니다. 스,스승님..”
얼굴은 왜 발갛게 달아오르는 걸까.
힐데의 손에선 희미하게 담배냄새와 그걸 덮으려고 애를 쓴 흔적인 진한 향수냄새가 함께 풍겼다.
얼굴이 붉어진 탓에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손길의 여운과 여전히 코를 맴도는 향은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선명해서 다소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아픈데가 없다니 다행이군.”
나유빈은 순간 힐데의 얼굴에 미소 비스무리한 것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나유빈으로서는 한 번도 본적 없던 표정에 그는 속이 갑갑해졌다.
정적.
남녀 모두 입을 다물고 어색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눈 앞의 낯익지만 낯선 여자는 그가 알던 스승이 아니다.
언제나 고고하고, 남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위대한 사명을 위해서 작은 것 하나 둘 쯤은 미련없이 끊어낼 줄 아는 초인이었어야 했다.
그래야만 신을 잃은 신도,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에 처했을지라도 스승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주워온 어린 남자애 한명의 눈치를 봐가며 담배를 핀 손에 향수를 끼얹고, 아픈덴 없는지 전전긍긍하며, 소년이 편하게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자 답지않게 어색한 미소를 흘려대는 여자가 아니라.
나유빈의 머릿속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나’ 와 그 ‘소년’ 의 가치가 달랐을 뿐, 힐데는 늘 이런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버려진 주제에 멋대로 그녀를 재단해서 그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에 끼워맞췄었던 것 뿐이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려본 것이 언제였던가.
힐데가 잠적한 후로 살이 몇킬로그램이나 빠질 정도로 오열해대던 이수연을 다독이면서도 그는 울지 않았었다.
나이를 먹고 눈물샘이 말라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던 것도 같다.
비록 자신의 몸은 아니라도 일단 어려져서일까,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위화감이 들지만, 넘실거리기 시작한
감정을 다스리기에 그의 신체적 나이는 너무나도 어렸다.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버려졌다‘ 라는 걸 제대로 받아들인 나머지 어른의 정신적 나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설움의 둑이 터져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닭똥같은 눈물이 이불을 쥐어뜯고 있는 작은 손등 위로 떨어진다.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은 소리를 내지 않고 끅끅 거리는 것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꿈에서 얼른 깨버리고 싶었다.
퇴근 후에 이지수와 에이미와 함께 술이나 한잔 하면서, 낮잠 자는 동안 말그대로 개같은 꿈, 개꿈을 꿨다고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몇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떠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나유빈이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뺨을 꼬집으려는 순간 그의 코에 달콤하고 은은한 체취, 은근한 담배냄새와 어지러울 정도로 지독한 향수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유빈의 눈물로 범벅이 된 젖은 얼굴이 힐데의 흰 셔츠를 적시고 있었음에도 힐데는 그를 어색하게나마 품에 끌어안고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힐데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작고 봉긋한 젖가슴이 나유빈의 얼굴을 파묻으려 애썼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크기였다해도 효과는 발군이었다.
쉽게 피로해진 후각은 담배냄새에도, 향수냄새에도 전부 무뎌졌다.
하지만 힐데의 체온과 심장소리는 여전히 나유빈에게 전해져왔다.
나유빈은 무심코 힐데의 젖가슴에 손을 얹었다.
오래지 않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나유빈이 움찔했지만 힐데 또한 흠칫, 찰나의 순간만을 경련했을 뿐 그의 손을 쳐내거나 제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그린라이트로 받아들인 나유빈은 곧 대담하게 손을 움직였다.
어린 소년의 손엔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봉긋한 젖가슴의 촉감이 세상 그 어느 물질보다 말캉거려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꿈에 그리던, 꿈에 그렸기에 비로소 꿈에서 만난 스승의 가슴.
나유빈은 그녀 품에 얼굴을 더욱 깊게 파묻으며 젖을 움켜쥐었다.
“..너희 부모님 일은, 미안하다.”
한참을 주물럭거려진 뒤에 힐데가 내민 첫 마디는 사과였다.
“너도 어머니 품이 그립겠지.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마라. 하지만 묻지도 마라. 뭔가 알아내고 싶다면, 나를 상대해서 쓰러뜨리도록.“
힐데가 차분한 목소리로 나유빈의 귓가에 속삭였다.
물론 나유빈은 그런데에 관심없었다.
지금 당장 꿈에서 깨더라도 손에 강렬한 기억이 새겨질만큼 원없이 말랑한 힐데의 젖가슴을 만지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을 집중공략당한지도 벌써 십여분, 힐데는 슬슬 가슴이 아파올 정도였다.
쪼끄만 꼬맹이가 왜 이다지도 악력이 좋은지, 연화도 고생이었겠다 싶었다.
연화는 가슴이 커서 좀 덜 아팠으려나 하는 생각도 잠시, 부모님께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무뚝뚝하고 가정적인 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자신과 살게 된 주시윤의 응석을 받아주고자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어느새 선을 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만지는 방식이 꽤나 음란해서 힐데는 곤욕스러웠다.
이건 종족을 번식하려는 수컷의 유전자단위에 각인된 본능인걸까.
테크닉이나 노하우 없이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생 2회차같은 관록이 느껴지는 스킨십에 점차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녀의 강력한 전투력과 그와 반비례하는 앳된 외모 덕분에 접근하는 남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접근을 하더라도 질 나쁜 녀석 뿐이었던지라 그녀의 육욕은 해소없이 쌓이고만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닌 단순한 가슴 주무르기에 더욱 야한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작 이런 꼬맹이, 그것도 맡아주겠다 약속한, 제자 부부의 유일한 혈육의 귀에다대고 신음을 흘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상황은 더욱 곤란해져만 갔다.
“크흠, 이제 그만 떨어지도록.”
분명히 들릴 정도로는 크게 말했건만, 주시윤은 매미처럼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야한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그저 어머니의 사랑이 고픈 것 뿐이라고 자신을 다그쳐봐도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 이 녀석! 오늘은 여기까지..”
힐데는 애초에 여러생각을 동시에 하는데 능숙한 타입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부모를 잃은 가엾은 아이를 혼내면 안된다는 생각과 이대로라면 그녀 자신이 이상하게 되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 등, 머릿속에 상반되는 생각들이 가득해지자 그녀의 행동원리는 단순해졌다.
콩.
가볍게 꿀밤을 한대 때려멕일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주먹으로 3종 침식체도 잡을 정도의 전투력의 소유자였다.
주시윤은 맞은 자세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 쓰러졌고, 머리가 식고 사태를 파악한 힐데는 어쩔 줄을 몰랐다.
카운터가 아니었더라면, 용혈의 계승자만 아니었더라면 위험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보였지만 힐데는 이 연약한 어린 제자를 다루는것에 더욱 더 신중을 기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기절하여 누워있는 주시윤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