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디스포리아 채널

 옛날엔 몰랐다. 라면이 질리게 될 줄은, 할아버지가 매번 질렸다고 하던 그 말이 나에게 닥쳐올 줄은 몰랐다.


 밀가루 맛이 구역질났다. 생각하려니까 두렵다. 그래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먹게 되어 있다.


 슬픔이 닥치면 술을 먹기도 했었다. 근데 결국은, 그게 멍청한 짓거리란 걸 알아서 포기했다.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무언가 다른 것으로 고통을 표현해야 했다. 그 일종이 지금 써내리는 글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으나, 고통에 잔뜩 온 몸을 비트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감정기복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엔 몸살기운이 있었고, 열이 났다.


 힘이 없어서 가끔 초점을 잃을 때가 있었다. 오늘 일이었다.


 그래서, 이 논점조차 흐릿한 멍청한 글에서 술이란 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내 엄마란 작자는 술 없이는 못 사는 인간이었다.


 어떤 술이던 상관 없었다. 매일, 매주, 매달. 끊임없었다. 그 인간이 저지른 실수의 수많은 부분이 술과 함께한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그것이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미성년자기도 했다.


 얼마 전 글에 끄적였다. 금욕적인 사람이었겠다고, 금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요즘 들어선 성욕도 없더라.


 근데, 사라진 욕구가, 금욕이란 단어가,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가 있고, 더 좋은 걸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더라.
 

 근데 난 그런 것 조차도 없었다. 내 뇌 속이 아직도 한참 꽃밭이란 사실이었다.


 다 잘 될 거라고만 믿어왔다. 피폐물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항상 꽃밭인 소설을 기피했다. 내 뇌 속이 그런 상태란 것조차 모르면서, 내가 우울한 것들로 나를 다그치고 채찍질하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 또한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건 실패했나보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꽃밭에 눕겠다. 벌이 무서워 조화로 가득 채우고.


 그렇게 눕겠다. 따가운 플라스틱에 잔뜩 헤져서는 피가 뚝뚝 흐르게 되면 나는 그걸 좋아한다고 말할까



 이젠 아무런 생각도 안 든다. 내가 라면에 질려가게 되면서 할아버지 생각도 하게 된다. 부모에겐 미안하지 않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겐 진심으로 미안하다. 나에게 기대했을 그 마음에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죄송했다.


 내가 머리를 박아내고 그 때에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나 또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마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에겐 최악의 불효자가 아닐까 싶다.


 손녀로 불러달라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꼴이 되지 못해서란 소리도 분명 있겠지만, 미안했다.


 그저, 말 없이 이해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내 방에 걸린 치마를 보고는 말 없이 넘겨주는 것일 터였다.


 그래서 미안했다. 기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서.


 성별도 목적도 성공도 전혀 반대인 존재가 되어버려서, 정말 죄송했다.


 근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꽃밭인 거다.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기약없는 멍청한 믿음 하나만 가지고 산다.


 그것이 나를 나락으로 이끌었음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바닥조차 없는 곳으로 떨어져도 그것은 날 놓아내지 않겠지.


 그냥 그럴 뿐인 이야기다. 아무런 의미도 없을 멍청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