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디스포리아 채널

 밤새 찬물을 몇 번이나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만큼이나 어두운 상황에 멈춰서 있다는 반증임을 말하고 싶었다.

 멈춘 상태로 서있다는 이야기가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반쯤 자의로 멈춘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은 나 혼자 해야만 할 뿐이었고, 하찮은 변명이라지만 이 나이로 도움 한 번 못 받는다면 나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성인이 된다면 내쫓을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하므로 의미도 없었다.

 이 얼마나 패배주의적인가, 그래도 괜찮다. 이미 모든 세상은 기만과 허상 속에서 패배한 패배주의자의 모임일 뿐이다.

 패배주의자 중 한 명이 나라는데 그게 그렇게 문제일까.

 모두가 내 눈과 귀를 막는다. 나에겐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싼 돈을 굳혀서 받은 심리검사의 결과나, 혹은 숨겨놓은 속마음이라거나.

 빈 말들만 끝없이 범람할 뿐이다. 나는 그것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귀를 닫았다.

 다시 한 번 우울감이 나를 덮쳐올 것만 같다. 결국 벗어나긴 했으나, 우울감의 포근함이 나에겐 더욱 익숙했다.

 우울이란, 매력적인 것이었다. 여성이 되어 수없이 비참해진 설원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매력적인 것이다.

 가끔은 내 눈과 귀를 막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게 하고 들려주고 싶은 것만 듣게 한다면 어떻게 크게 될지에 대해서.

 내 정체성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난 내 성별에 대한 특별한 개입 없이 자라났다.

 결국 그렇게 크게 만들더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고,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 해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시야가 변치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말하지만 나는 굳어간다는 감정을 계속 느낀다.

 앉아있는, 잠든,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순간에서 나는 바닥과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두 상관없다. 결국은 쫓겨나게 될 집안이고, 나는 가족들과 일면식 한번 없는 상태로 살 것이다.

 아빠는 나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이런 행동 하지 않는다고, 이런 대화, 혹은 페티시는 남자만 가진다거나.

 그런 것들을 나에게 훈계하면서, 마지막엔 나에게 물었었다.

 " 아직 섹스해본 적 없지? 자위랑은 다른데, 아직 다 모르는 거 아닐까? "

 내가 남자로 살아갈 이유를 성욕에서 만드려는 것이었을까. 다시 생각날 때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아냐,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날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간절함은 나에게만 존재했다. 가족들은 언제나처럼 평온했고, 도움의 'ㄷ' 자도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뭘 더 해줘야 하냐는 끔찍한 책임론과 함께 나를 쪼아댔다.

 나는 이 집의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이라도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무엇을 했던 그것들은 잠깐의 무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물에 떨어진 돌이 만든 잠깐의 파동처럼, 결국 다시 잔잔해지듯, 그런 무의미가 된 것이다.

 어떻게 소리를 지르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쓰러지더라도, 차라리 날 죽이라고 애원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잠깐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과 위선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남은 것이란 성인이 되면 골칫덩이인 나를 어딘가로 쫓아낼 방법 하나만 있을 것이다.

 미친년, 부모라는 말 좋아하는 작자는 죽더라도 친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고, 할머니에게 불효자는 돌로 찍어 죽이라는 미친 소리나 한다.

 아빠 또한 별다를 것 없다. 날 도와줄 생각은 분명 없다. 대체 왜 그 무엇하나 똑바로 의도를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피해망상을 의도적으로 가속시키기 위함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냥 속임수에 속아넘어간 호구 한 명인 것이다.

 일단 자야겠다. 밤중에 잠을 자지 않는 행위란 이렇게 위험한 결과와 사고를 가져다준다. 최소한 우울하거나 피해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상당한 양의 잠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