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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7]




강함을 추구하며 '스트리트 파이터'로 전향

이렇게 해외 대회에 초청받는 기회가 늘고, 'UMVC3'에 한해서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동시에 생각한 것이 언제 'UMVC3'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UMVC3'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어서 마니아들은 좋아하지만, 실제 플레이어 수는 적은 게 현실이었죠. 해외 유저들을 상대로 일본 플레이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이제부터는 'UMVC3'만으로 대회를 나가는 건 그만두자"고 마음먹었죠. 출전하는 타이틀 수를 늘리면 그만큼 'UMVC3'의 대책이나 연습에 할애할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이미 'UMVC3'에서는 세계 톱 클래스이니 괜찮을 거라는 자신감도 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2014년 5월에 미국에서 열린 '노스웨스트 메이저스 VI(Northwest majors VI)'라는 대회에서는 'UMVC3'에 더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 아케이드 에디션'(스파4 AE) 부문, '길티기어 이그젝스 엑센트 코어' 부문에도 출전하여 각각 3위(UMVC3), 공동 5위(스파4 AE), 우승(길티기어)이라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즈음부터 서서히 저의 주력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로 옮겨가게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변함없이 격투 게임계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인기는 세계적으로도 높죠.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격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들어본 적 있는 타이틀일 겁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4' 시리즈는 생애 주기가 길었던 게임이죠. 2008년에 '스트리트 파이터 4'가 발매된 이후, 게임 센터에서는 2011년에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 아케이드 에디션', 2011년 말에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 아케이드 에디션 ver.2012', 2014년에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 순으로 약 6년에 걸쳐 거의 매년 버전 업이 계속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2008년 '스트리트 파이터 4' 첫 작품이 나왔을 때부터 이 시리즈를 진지하게 플레이하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어느 정도 재미를 보긴 했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죠. 그러니 노스웨스트 메이저스 VI에서 '스파 4 AE' 부문에 엔트리 했을 때도, 'UMVC3'나 '길티기어 이그젝스 엑센트 코어'에 비하면 솔직히 이길 거라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보니 앞에서 말했듯 결과는 공동 5위. 이 결과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앞서 'UMVC3'에는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고 적은 이유는 일본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게임을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는 모티베이션을 얻는 데에 꽤 큰 걸림돌입니다. 해외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자신이 사는 일본에서 마이너한 타이틀이라면 아무래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죠. 애초에 일본에서는 'UMVC3' 대회가 그다지 없는 탓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실력자도 적어서, 일상적으로 대전을 해 주는 상대도 두어 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승부를 겨루는 일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마찬가지겠지만, 역시 강한 상대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둬야 재미있는 법이죠. 그런 강한 상대와 절차탁마해 나가며 스스로가 성장하는 보람도 느낄 수 있는 건 덤이고요. 자신이 없는 채로 참가한 노스웨스트 메이저스 VI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둔 다음부터, 승부처를 '스트리트 파이터 4' 시리즈로 옮겨도 통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주위에 보여주고픈 의욕이 생겨났습니다.

노스웨스트 메이저스 VI로부터 4개월 뒤인 2014년 9월에 미국에서 개최된 '웨스트 코스트 워존 4(West Coast Warzone 4)'라는 대회에서는 'UMVC3' 부문뿐만이 아니라 '울스파4' 부문에도 출전하게 되었죠.

애초에 이 대회의 'UMVC3' 부문에 출전한 것은 필리피노 챔프에게 "이 대회에서 개최되는 UMVC3 친선전에서 저번의 리벤지를 하고 싶다"는 도전을 받아 초청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만큼 필리피노 챔프도 기합이 들어가 있었죠. 친선전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19대 20으로 이번에는 제가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죠. 지금도 인터넷에 영상이 남아 있는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명승부'라고 높은 평가를 받아 기뻤습니다.

다만, 제 마음속에서 승부처는 이미 '울스파4'로 옮겨가 있었죠.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려면 '울스파4'가 더 적합했고, 그 밖의 해외 대회에 초청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울스파4' 쪽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레벨의 실력자들이 모이는 대회였으니 "이 플레이어를 상대한다면 아마 내가 지겠지"라는 예상 정도는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너먼트 대진운도 따라주어서 깔끔하게 우승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대회 내내 줄곧 '압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저 나름대로는 게임 내용도 충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 후로는 '울스파4'로 착실하게 성적을 쌓아나갔습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대회에서는 우승과 준우승을 거듭하며, 지더라도 상위권 입상은 빠트리지 않았죠. 'UMVC3'는 좋아하는 게임이었기에 해외 대회에 나가면 빼먹지 않고 참가하긴 했지만, 이제 대회 성적은 '울스파4' 쪽이 더 좋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게임의 패치도 저에게 순풍으로 작용했습니다. 격투 게임은 버전이 갱신될 때마다 캐릭터 간의 밸런스가 조정되는데, 반드시 자신이 사용하는 캐릭터가 강해질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 있었던 '울스파4' 버전 업은 당시 '롤렌토'라는 캐릭터를 쓰던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했죠. 이러한 사항까지 뒷받침이 되어, 2014년부터 2015년 사이는 그때까지 좀 더 자신 있던 'UMVC3'에서 새롭게 '스트리트 파이터 4' 시리즈로 활동 장소를 옮기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천만엔을 넘게 된 캡콤컵 우승 상금

사실 이 시기에는 제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격투 게임계 전체에 파급력이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종래에 비해 대회의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한 거죠.

그 상징 중 하나가 2015년 3월에 에너지 드링크 제조사인 레드불이 프랑스에서 개회한 초청제 '울스파4' 대회인 '레드불 쿠미테(Red Bull Kumite)'입니다.

레드불 쿠미테는 그 이후로도 대상 게임을 바꾸어 가며 규모를 확대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큰 대회로 성장했죠. 레드불은 모터 스포츠나 에어 레이스, 스노보드 등 다양한 스포츠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게임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전부터 국내외에서 이벤트를 여는 등 게임계와 관계를 맺고는 있었지만, 저희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임팩트가 컸던 것은 역시 레드불 쿠미테였죠. 기념할 만한 제1회 대회에서는 일본 플레이어들이 상위권을 휩쓸었고, 저도 그 일각으로 3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호텔의 이벤트 스페이스에서 치러졌던 이전까지의 다른 대회와는 대회장도 연출도 완전히 달랐기에, 해외에서 게임이나 e스포츠를 향한 주목도가 높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이어서 2015년 7월에 개최된 'EVO 2015'에서는 'UMVC3' 부문에서 13위, '울스파4' 부문에서 4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EVO도 이즈음부터 규모나 상금 액수가 확대되기 시작했죠. 메인 토너먼트가 9 타이틀, 사이드 토너먼트까지 포함해 합계 26 타이틀이나 되는 게임이 종목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상금 총액이 바로 전 해의 두 배 이상 늘어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울스파4' 플레이어들에게 큰 반향이 있었던 것이 바로 2015년 12월에 개최된 '캡콤컵 2015(Capcom Cup 2015)'입니다. 상금 총액이 큰 폭으로 올라가 50만 달러, 그중 우승 상금은 12만 달러가 된다는 발표가 있었던 거죠. 이 금액은 당시 격투 게임 대회 사상 최고의 액수였습니다.

2015년 당시 환율로 1달러는 120엔 정도. 우승하면 일본 엔으로 약 1500만엔 가량 되는 상금을 받게 된다는 계산. 그때까지 게임 대회 우승 상금은 높아도 400만엔 정도였으니, 순식간에 세 배 이상이나 상승한 셈이었죠.

캡콤컵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격투 게이머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대회입니다. 앞서 말한 EVO도 큰 대회이기는 하지만, 캡콤컵은 캡콤이 주최하는 '공식 세계 대회'죠. 출전할 수 있는 선수도 일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치러지는 대회 중에서 '캡콤 프로 투어'로 인정되는 대회의 우승자와 그 대회의 결과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의 합계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플레이어, 그에 더해 전년도 캡콤컵 우승자로 한정 되다보니, 그야말로 1년간 성과의 집대성이자 그 해의 진정한 최강 플레이어를 정하는 대회이기도 한 겁니다. '캡콤컵 2015'에서는 각 대회의 우승자 16명과 랭킹 상위 15명, 전년도 대회 우승자 모모치 선수까지 총 32명이 출전하게 되어 있었죠.

그 대회의 상금이 크게 올라감에 따라 캡콤컵은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명실공히 최고 레벨의 대회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출전할 수 있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었죠.

'울스파4'를 주요 전장으로 삼기로 마음먹고 출전한 2014년 9월의 웨스트 코스트 워존4에서 우승한 이후, 국내를 중심으로 '울스파4'의 대회에는 최대한 출장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캡콤컵 다음으로 중요한 대회인 EVO 2015에서 4위를 하여 캡콤컵으로 가는 출전권이 거의 눈앞에 다가왔고, 그 후에 '도쿄 게임쇼 2015' 회장에서 열렸던 대회에서도 4위의 성적을 거두고 포인트 랭킹 순위 안에 들어 캡콤컵 2015 출전을 확정지을 수 있었죠.

이때 저는 캡콤컵 2015 출전 자격을 얻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다양한 대회에서 여러 선수와 대전한 경험에서 볼 때, '난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국내에서는 카즈노코 선수와 본짱 선수, 해외에서는 대만의 게이머비 선수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 세 명은 실력이 좋은 데다가 사용하던 캐릭터도 제가 까다로워하는 캐릭터였기에, 만나게 되면 질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각오하고 토너먼트에 도전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토너먼트인 이상, 운 좋게 이 세 명과 싸우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작지만은 않았죠. 우승을 거두어 고액의 상금을 얻을 찬스도 충분히 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