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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듣게 된 '언제까지 게임을 계속할 생각인가?'

그러던 어느 날, 소속 부서 부장님과 인사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부장님께서 게임 얘기를 꺼내셨죠. "요즘은 어떤가?" 부장님으로선 아마 별것 아닌 잡담으로 꺼내신 얘기였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부장님께 캡콤컵 얘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게임 제작사가 주최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가 열리고, 이런 플레이어들이 출전하며 거기서 우승하면 상금이 나옵니다. 이번에 그 액수가 1000만엔은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까지 올랐습니다"라고 말이죠. 저에겐 무척이나 큰 뉴스였으니 당연히 한참을 얘기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 부장님께서도 제 게이머 활동을 이해해 주시는 분이었죠. 하지만 이야기를 죽 듣고 난 이후엔 이런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흠, 그렇군. 하지만 역시 언제까지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진 않는 편이 좋겠네."

그때 저는 30세 정도. 큰 프로젝트도 경험하고, 차차 책임이 큰 업무도 담당하게 될 나이대였습니다. 부장님 개인의 의견은 차치하고라도, 회사 입장에서도 슬슬 승진을 요구할 시기였으니 저를 인사 이동할 생각도 하고 있을 터였죠.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판단입니다.

운이 좋아 회사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도 변함없이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에 있던 저에게, 이 면담은 자신의 커리어나 장래와 똑바로 마주하게 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이 회사에서 계속 시스템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게임을 이해해 주는 회사로 전직하여 격투 게이머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인가. 이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겁니다.

이때 제가 처한 상황은, 대학생 때 취직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의 고민과도 성격이 좀 달랐습니다. 취직 활동을 하던 때에는 "좋아하는 게임을 취미로 계속할 수만 있으면 돼" 정도의 생각밖에는 없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저뿐만 아니라 게임을 둘러싼 회사의 상황도 꽤 변해 있었죠.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도 적었듯 게임 대회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의 대규모 대회'라고 해도 제가 처음 출전했을 무렵에는 호텔의 연회장이나 이벤트 스페이스 같은 장소를 빌려, 그곳에서 접이식 의자를 늘어놓고 대전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다가 2015년이 되자, 제대로 스테이지를 만들고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던 겁니다. 2015년 캡콤컵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당시)가 개최한 커뮤니티 이벤트인 '플레이스테이션 익스피리언스(PlayStation experience)'의 일부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대규모 컨벤션 회장인 모스콘 센터에서 개최되었죠.

이런 상황은 게임의 주목도가 올라가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었죠. 그렇게 되면, 의욕은 물론이고 수입 면에서도 플러스가 됩니다. 앞에서 말했던 대회 상금만을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TV를 포함한 게임 관계의 미디어나 이벤트 출연 기회가 늘고, 본업인 회사 업무 이외의 수입이 늘어나게 되었죠. 게임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채 그저 취미를 계속하기 위해 급여가 나오는 회사에 들어왔는데, 게임으로 얻게 된 부수입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겁니다. 게임이 취미라는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했던 거죠.

무엇보다도, 활약하는 장소가 넓어지다 보니 게임을 그만두겠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패배의 분함을 알고, "지고 싶지 않아, 이기고 싶어"라는 마음만으로 게임을 계속했더니 그 길은 해외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세계적으로도 강자라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격투 게이머로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제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었죠.

어떻게 하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생각하고 있는 게 대학생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게임을 계속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 시절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습니다. 게임을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입장 변화, 한편으로는 회사가 기대하는 저의 업무 경력. 의외로 이 두 가지를 저울질해 보았을 때, 상사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단을 제 마음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캡콤컵 2015에 나가서 1승도 하지 못하고 끝마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가짐과 결의는 뒤집히지 않았죠.


'겸업 프로게이머'라는 선택지가 보였다

직장 사람들이 제가 게임을 하는 걸 이해해 준다고는 해도, 회사원으로 커리어를 쌓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15년에 받았던 인사 면담에서 저는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스스로가 납득가는 방향으로 게임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좀 더 게임에 비중을 두면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기업, 게임과 친화성이 높은 기업으로 이직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쿄 게임쇼 2015 회장에서 다양한 기업의 담당자와 만나 명함을 교환하고, 제 상황이나 의견을 얘기해 보기도 했죠. 혼자서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사람과 만나 보고 직접 행동에 옮기는 건 제가 자주 쓰는 패턴입니다.

그 결과 저는 금방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도쿄 게임쇼 2015에서 만난 어떤 기업 분께 "한 번, 저희 회사에 와서 얘기해 보시지 않겠습니까?"하는 말을 듣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나중에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서 그 분께서 말씀해 주셨던 내용이 그 후의 제 행동을 결정지었죠.

제 얘기를 들은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모토씨의 얘기를 듣고 보니 환경은 나쁘지 않은 것 같군요. 근무하는 회사에서 '언제까지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지 않는 게 좋겠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는 해도, 현 상황에선 플레이어 활동을 용인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상사가 게임을 이해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해외 대회에도 나가실 수 있는 것이겠죠? 확실히 네모토씨의 플레이어로서의 실적은 지금의 회사에서 살리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해서 다를까요? 가령 저희 회사라면 급여는 일반 사원과 동일한 채로 네모토씨의 네임 밸류를 살리고자 소매점 등으로 영업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저라면 그렇게 하겠죠. 대신 지금의 회사에 계속 근무하면서 스폰서를 얻어 게이머로서의 활동을 좀 더 본격화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회사에서 근무하며 게이머로서의 수입도 노리는 편이 네모토씨에게는 더 잘 맞지 않겠습니까?"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분이 일깨워 주신 건 지금까지처럼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동시에 스폰서를 얻어 게이머로서의 활동에도 진심으로 임하는 길. 즉 '겸업 프로게이머'라는 선택지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죠.

앞서 "게임과 친화성이 높은 기업으로 이직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적었습니다만, 인사 면담을 계기로 자신의 커리어나 장래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제가 상상했던 것은 배드민턴이나 육상경기의 실업팀 선수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일정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한 주에 며칠, 때로는 하루에 몇 시간을 게임 연습에 쏟는다. 그런 방식을 하나의 '이상'으로 그리고 있었죠.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시대'입니다. 이미 이즈음부터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있었지만, 저는 게임을 전업으로 하며 생활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목도가 오르고, 미디어에서 다루어 주는 기회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게임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해도 생업으로 하기에는 불충분했죠. 하지만 프로로서의 활동이 성립되지 않는 경기는 게임 이외에도 상당히 많았죠. 그런 경기의 선수들이 아마추어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실업팀. 그러니 e스포츠도 실업팀 형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게 된 배경에는 해외 플레이어의 존재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격투 게임 팬 사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스틴 웡이라는 미국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2004년에 개최된 EVO 2004의 '스트리트 파이터 3' 부문 준결승에서 우메하라 선수와 사투를 벌였던 선수죠. 우메하라 선수가 이겼던 이 시합은 '렛츠고 저스틴'1)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때 저스틴은 GPU나 그래픽 카드로 유명한 미국 엔비디아사의 품질관리 관계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e스포츠를 사업으로 다루는 부서에도 소속하여 게이머로서 활동하고 있었죠. 저스틴 등 해외 플레이어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일본에서도 그런 상황이 찾아올 거라는 제 확신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상황은 제 예상보다도 훨씬 더 뒤처져 있었습니다. 도쿄 게임쇼 2015에서 명함을 교환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회사에 발걸음을 옮겨봤지만, 어느 회사도 자사에 팀이나 프로게이머를 두는 건 내켜 하지 않았죠. e스포츠 관련 업무를 시작하려는 기업에서도 담당자가 e스포츠와는 관계없는 본래의 업무를 진행하며 어떻게든 시간을 할애하여 겸사겸사 다루고 있을 뿐. 즉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게이머로서 대회에 나가고 있던 당시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던 겁니다.

도쿄 게임쇼에 출전한 기업들조차 이 정도라니…. "일본에서는 e스포츠를 사업으로 다루는 기업이 등장할 환경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실업팀 형식은 시기상조다"라고 저는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반응도 꽤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e스포츠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립하고 있는 상황을 근거로, 일본에서도 "흥미가 있다",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라는 기업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분위기를 말이죠. "확실하게 스폰서로 협력해 줄 기업이라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죠.

만약 몇 년 뒤에 일본에서도 e스포츠가 산업으로 성립되고 실업팀 소속 운동선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다시 실업팀 방식으로 일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스폰서를 얻는다면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 아이디어는 마음속에 간직한 채 스폰서를 개척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죠. 일단은 지금까지 '취미'로 취급하던 게임을, 스폰서를 획득하여 '부업'으로 부를 수 있는 존재까지 끌어올린다. 이렇게 마음먹고 저는 '겸업 프로게이머'라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 역주 : 원문은 '배수의 역전극(背水の逆転劇)'인데 한국에서 더 잘 통용되는 명칭으로 바꿔서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