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전편 링크

서문 [0]

1장  [1] [2]

2장  [3] [4] [5] [6]

3장  [7] [8] [9]




터무니없어 보여도 "나는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힘'

그러면 스폰서를 획득하기로 마음먹고 제가 처음 한 일은 무엇일까요? 답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취업 규칙이나 복무규정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회사원이 겸업으로 하는 활동이니 규정에 어긋나면 안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그게 "게이머로 활동하는데 스폰서를 붙여도 괜찮은가?"라니, 전례를 찾기 힘든 특수한 사정이었죠. 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 상사에게 상담받기로 했습니다.

상담에 응해주신 건 골프를 좋아하시는 소속 부서 과장님과 전에 면담해 주셨던 부장님. 상사 두 분 앞에서 "이 회사에서 근무하며 스폰서를 얻어서 게이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됩니까?"라고 얘기를 꺼내자, 두 분은 무척이나 곤란해하셨습니다.

일반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하 직원에게서 "스폰서를 얻어도 됩니까?"라는 상담을 받으면 "자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가?"라고 되묻고 싶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불안정한 얘기밖에 없으니까요. 부하 직원이 게임 대회에 나간다는 사실, 그 대회가 꽤 큰 규모라는 사실, 그리고 상금이 나온다는 사실까지 들어도, 게이머에게 스폰서가 붙는다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점에서는 아직 저에게 스폰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저 스스로도 실제로 스폰서를 얻을 수 있는가, 얻는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충분히 질 수 있는가, 하나도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었죠.

다만 마음속에서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일을 남들에게 얘기하면, "취직할 때도 업무를 할 때도, 평소엔 현실적이고  진중한데 가끔 당돌하고 대담한 결단을 하는구만"이란 얘길 들을 때가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요.

어째서 그렇냐고 하면, 아마도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든 '굳게 믿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아직 스폰서가 붙지도 않았는데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만은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그걸 전제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이제부터 회사원으로서 일하는 동시에 스폰서의 후원을 받는 게이머로 활동하려고 한다면,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만큼은 명확히 해결해 두려고 했던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신 상사 두 분도 전례가 없는 케이스에 바로 답변하실 수 없었습니다. 소속 부서 과장님은 "그것참… 그게 과연 가능할까?"라며 회의적이었습니다. 한편 부장님은 "확실히 조사해 보고, 취업 규칙에 위반되지만 않는다면 괜찮지 않겠나"라며 전향적인 의견이었습니다.

부장님께선 "모회사에는 바를 경영하는 사원이 있고, 그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사원도 있네. 그와 별로 다를 건 없겠지"라는 얘길 해 주셨죠. 즉, "취업 규칙에 위반되지만 않는다면, 개인으로서의 활동은 회사와 관계가 없네. 본인의 의향대로 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판단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취업 규칙을 상세히 찾아보았지만, 명확한 금지 사항에 해당하는 게 없어 그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애초에 개인 자격으로 스폰서를 얻어 부업 활동을 한다니, 취업 규칙에는 전혀 상정하지 않은 일이었겠죠. 스폰서 기업과의 계약은 고용이 아니고, 업무 위탁으로 취급하면 거의 확실히 문제 될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남들과 만나고 전하는 것

떳떳하게 취업 규정에는 위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는 했습니다만, 스폰서를 어떻게 얻을지는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죠. 이윽고 스폰서를 얻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격투 게임과 관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다양한 오프라인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비추게 되었죠. 의식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래부터 게임의 오프라인 이벤트에는 되도록 참가하는 타입이었지만, 더욱더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회장을 빌려 다수의 PC에 랜선을 연결하여 여럿이서 네트워크 게임을 즐기는 'C4 랜' 등, 게임과 조금이라고 관계가 있는 이벤트에는 전부 참가해 보는 식이었죠. 게임 관련 기업이 부스를 내는 전시회에도 발걸음을 옮기며 여러 부스에 방문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게임과 접점이 있는 기업에는 닥치는 대로 말을 걸어 제 활동을 설명하고, 때로는 "스폰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상담까지 받으면서 사람들과 만나길 계속했죠.

그러던 와중에 어떤 기업의 PR 담당자분께 "스폰서는 구하셨나요?"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각대로 구해지지 않아서 걱정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자, "에일리언 웨어라고 알고 계세요? 관심 있으신가요?"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에일리언 웨어는 2000년대에 들어서 통판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지분을 크게 늘리고 있는 PC 메이커. 미국 DELL 사의 자회사인 게이밍 브랜드입니다.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마침 제가 스폰서를 찾고 있던 것과 같은 타이밍에 에일리언 웨어도 일본에서 e스포츠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중개를 통해 회사와 접촉할 수 있었죠.

저와 에일리언 웨어, 양자가 추구하는 것이 마침 잘 맞았던 것에 더해서 둘 사이를 이어주는 위치에 지인인 PR 담당자가 존재했다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운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죠. 찬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주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곧바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저를 떠올리고 얘기를 걸어주는 케이스도 상당히 많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라며 계속 머뭇거리기만 할 바에야, 차라리 남과 만나서 생각을 전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찬스를 얻을 기회도 많아지게 되죠.


만날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개선하다

스폰서를 개척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시 작성했습니다. 자료에는 지금까지의 활동 이력이나 실적, 게임에서의 활동 전망, 제가 스폰서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나 구체적인 제안 등을, 사진을 포함하여 가능한 보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며 클라이언트에 보낼 제안 자료를 만드는 데는 익숙했기에, 교섭하는 상대도 기업에 근무하는 회사원일 테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게 얘기를 나누기 편할 거라 생각했죠.

다만, 솔직히 말해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기업에 연락하고 어떻게든 논의할 자리를 만들어 업무 도중에 자료를 들고 만나러 갔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틀에 찍어낸 것처럼 "저희 회사에서는 전례가 없어서 무리입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죠. 해외에서는 시장 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는 해도,  e스포츠라는 무브먼트가 일본에도 정착될지는 미지수. 일본에서 'e스포츠 원년'으로 불리는 해가 2018년인데, 그보다 3년이나 앞선 때의 얘기였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계속해서 거절당하면서도 "스폰서는 반드시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던 구석이 있었기에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가지고 또 다른 회사에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죠.

그렇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던 와중에 앞서 말했듯 소개를 받아 접점이 생긴 게 에일리언 웨어. 하지만, 소개를 해 주신 PR 담당자분께 듣기 전까지 e스포츠에 관심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확실히 에일리언 웨어 담당자의 대응은 타사와는 달랐죠. 분명하게 "한번 해보죠", "좋군요"라고 말씀해 주신 건 아니었지만, 저에게 흥미가 있다는 걸 대화를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제가 만든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타사에는 자료를 보여줘도 쌀쌀맞은 태도뿐이었는데, 자료의 세세한 부분을 보고 "이 부분은 좀 더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군요"라며 개선점을 조언해 주시거나, "네모토씨가 하고 싶은 일이나 의견을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라며 여러 번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조언이나 요구사항을 들을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개선하며 다시 가져가는 걸 네댓 번 반복했을 즘, 담당자와의 회의가 계속되며 알게 된 것은 프레젠테이션 자료 개선은 DELL의 일본 법인이 미국 본사를 설득하기 위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담당자의 눈으로 확인하면서 더욱 설득력 있는 자료로 개선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고 "이건 진심일지도 몰라"라며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게 만난 수많은 기업 중 일부도, 담당자 레벨에서는 "e스포츠 사업에 발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으니 당시 아직 프로도 아닌 일개 플레이어인 저를 만나 보고 "이런 자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는 요청을 해주신 거겠죠. 하지만 두 번 이상 연락이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기업 중 몇 군데는 e스포츠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도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거절을 당한 기업 중에는 그 직후에 e스포츠 사업을 창설한 곳이 있었습니다. 스폰서를 맡아달라는 제 요망을 담아 건넸던 자료는 사내에서 사업 검토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생각하니 사업 창설 뉴스를 듣고 놀람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